[그믐앤솔러지클럽] 3. [책증정] 일곱 빛깔로 길어올린 일곱 가지 이야기, 『한강』

D-29
안데르센 이야기 속 인어는 왕자에 대한 사랑을 품은 채, (독자들 마음 속에는 말을 못하면 글로 쓰지 그랬니, 라는 고구마 먹은 의문을 품은 채) 공기방울로 승화되었는데, 이 작품 속에서는 전 당주가 남긴 비법을 풀어 공기방울 전투로 인어를 도왔으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새홀리기 당주가 남긴 마법의 노래 테이프를 듣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요, b급 공포영화에서는 대개 이런 경우 (오디오 스튜디오와 방음벽을 이용해 신중하게 틀지 않고) 틀지 말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심성 하나 없이 무턱대고 재생시키다 흑마술에 걸려 버리잖아요 그런데 전승된 '노래' 속에 공기방울 전투 방법이 숨어 있었다니 기발할 따름이었습니다
질문 감사합니다, @밥심 님! 질문이 다 ‘어, 이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싶게 날카롭고 특히 3번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드려야 하나,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나 망설였는데 아래 @stella15 님이나 @SooHey 님도 궁금해 하시니, 에라,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말씀드려 보자 싶네요. ^^;;; 오늘 중에 띄엄띄엄 써볼게요.
일단 1번. 어우, 엄청 부담 많았죠. 사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거 이 자체로는 떡밥 회수 제대로 못하는 이야기이고 어떤 세계관 속에 있는 이야기인데 별개로 떼어내서 소설집에 실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여기에서 읽어주신 분들은 괜찮다고 해주시지만, 사실 이곳은 저에게 우호적인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여전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추가로 배경설명을 하자면 이런저런 아래와 같은 사연들이 있었어요. 저 사연들이 다 섞여서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이 <한강> 앤솔러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1-1.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은 사실 현대문학 2019년 11월호에 실었던 단편이에요. 저는 문예지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장편이든 단편이든 프로토타입들을 선보이는 공간이라고 여기고 있고 문학출판사들이니 문예지 독자들도 그렇게 여기지 않나 합니다. 그래서 현대문학에 실을 때에는 <한강의...>가 다른 이야기의 일부라는 사실은 그다지 찜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대문학에 실린 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이 작품이 2020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로 뽑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읽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1-2. 한우 작가님들을 알게 되고 어울리기 시작하던 때가 막 한강 앤솔러지를 기획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저도 한강을 테마로 쓴 단편소설이 있는데 떡밥을 회수하지 못하는 이야기예요, 편집부에서 보시고 괜찮다고 하시면 참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북다 편집부에 원고를 보내드렸는데 좋다, 문제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저대로 출간 전에 조금 손을 봐서 설명을 덧붙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후에 조금 손을 보기는 했는데 이야기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더라고요. 현대문학에 실을 때에는 이현수가 남성이었는데 <한강> 앤솔러지에 실을 때에는 여성으로 바꿨습니다.
1-3.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의 이현수와 장휘영은 모두 제가 2012년에 냈던 <뤼미에르 피플>의 단편 <되살아나는 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에요. <뤼미에르 피플>에서는 두 캐릭터가 서로 만나지는 않고, 또 이현수가 남학생이지만요. 이 설정 충돌은 의도한 것인데 공산당선언과 함께 3번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는 올해 중에 <뤼미에르 피플>의 속편에 해당하는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고, 그렇게 계약도 했는데 개인적 사정들이 겹치면서 결국 쓰지 못했습니다. 그 장편 제목은 <시간의 언덕, 현수동>이라고 하고 여기서 이현수 장휘영 콤비가 활약하는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시간의 언덕, 현수동>과 <한강> 앤솔러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오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쩝... 지금 그래서 <시간의 언덕, 현수동>을 쓰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기자기하고 복잡한 도시 판타지물인데 쓰는 진도도 느리고 별로 팔릴 거 같지 않거든요. 정확히는 쓰는 저만 즐거워할 이야기다 싶어요. 지금은 <추락천사들>이라는 가제로 플롯 시원시원하고,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고(취재나 고증 같은 게 필요 없으니), 판권도 잘 팔릴 것 같은 장편을 쓰고 있습니다. 200매 조금 넘게 썼네요. 그런데 <추락천사들>도 <뤼미에르 피플>과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새홀리기 당주는 가만히 생각하다 "나그네새"라고 대답했다. 새홀리기가 잡을 수 없는 아주 큰 새. 그녀가 만날 수 없는 다다음 당주의 이름.
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p.344, 장강명 지음
그러고 보면 작가분들은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 쓰고 그러지 않는가 봅니다. 어느 땐 이 작품 쓰다 또 어느 땐 저 작품 쓰다 동시에 진행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고은 시인도 세 가지를 동시에 책상과 평상에 펼쳐 놓고 동시에 쓰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어쨌든 그러다 보면 헷갈리고 섞이지 않을까 싶기도한데 장맥주님은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짧게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원고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반드시 좋은 작품이 나오나요? 고치면 고친만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긴 하는데...
1-4. 떡밥을 잘 회수하지 않는 이야기, 그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저는 대체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무조건 안 좋아하는 건 아니고, 좀 예외도 있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와 드라마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대체 뭔 소리야’ 하면서도 푹 빠져보고 다 보고 나서도 만족스러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대체 뭔 소리야’ 하면서 저는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푹 빠져보는 작품도 몇 편 아는데 대표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 TV시리즈와 극장판들이 있습니다. (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팬들의 모습이 더 흥미로운데 설정 구멍 같은 걸 억지로 채워 넣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더군요.) 데이비드 린치 영화를 참 좋아하지만 그 분위기와 스타일은 광기를 타고 난 자가 아니면 따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뤼미에르 피플>을 쓸 때에는 조금 흉내를 냈었어요. 전반적으로 수록작 열 편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깔았고 <박쥐 인간>, <명견 패스>, <피 흘리는 고양이 눈>은 노골적으로 인과관계 같은 건 대충 얼버무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뤼미에르 피플>을 쓸 때 그다지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데이비드 린치 영화들을 의식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거 같아요. 일단 신인 소설가여서 제가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잘 몰랐고 이것저것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또 신촌이라는 공간에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기괴함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을 쓸 때도, <시간의 언덕, 현수동>을 쓸 때도 그리고 그 외에 이현수와 장휘영 콤비 이야기를 쓸 때도 조금 그런 기분으로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지금은 제가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고 리얼리즘에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촌과 밤섬 부근을 무대로 하는 도시 판타지 이야기들을 가끔 쓸 거 같아요. 신촌과 밤섬 부근은 제가 사랑하는 장소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또 그런 도시 판타지를 쓰는 걸 제가 속으로 재미있어 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렇게 쓰는 글 중 일부에는 이현수와 장휘영이 계속 나올 거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2, 3번에서 계속해보겠습니다.
장 작가님의 판타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작가님!! ^^
2-1. 제일 큰 이유는 인어들뿐 아니라 인어들이 사는 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이질적인 침입자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어요. 스케일은 작지만 ‘세계들의 전쟁’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청어들은 공존 가능한 적이 아니며, 그들이 다른 바다 생물체들과 함께 밤섬 인근을 점령하면 인어들뿐 아니라 담수생태계 전체가 멸망한다는 절박함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2-2. 이현수가 이상한 힘을 얻는 과정이 나오고 장휘영도 언급되는 단편 <되살아나는 섬>의 배경이 밤섬이에요. 이후에 이현수와 장휘영이 서로 만나서 밤섬 근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함께 겪고 모험을 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의 언덕, 현수동>도 그런 이야기를 구상했고,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도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썼네요.
2-3. 실은 제가 밤섬 앞에서 6년을 살았는데, 그때 행복한 경험을 많이 했고 제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어서, 소설에 자꾸 그 동네를 등장시키곤 합니다. 밤섬이 나오지 않으면 서강대교가 나오는 식으로요. 심지어 그 동네를 배경으로 에세이도 한 권 썼습니다. <아무튼, 현수동>이라고 해요. ^^;;;
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소설, 에세이, 논픽션을 오가며 새로운 사회와 사상에 대한 상상력을 집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장강명 소설가가 이번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해 썼다. 55번째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현수동>에서 장강명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동네를 좋아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나요?”
고백하자면... 리스트에 올리진 않았지만 <아무튼, 현수동>은 제 인생책 반열인데, 현수동이 제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과 너무 닮아서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비슷하게 엉뚱한 소리 하는 맥주 에세이도 별 일 없으면 내년에 낼 예정입니다. ^^;;;;;;; 세미콜론의 띵 시리즈로요.
장맥주 작가님의 맥주 에세이라,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ㅎㅎ
출간하시는 대로 몸과 마음을 정하게 한 후 히야시 잘 된 오리온과 필스너우르켈을 곁들여 정독하겠습니다.
맥주 에세이! 기대하겠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1 세대 가수중에 누가 그런 노래를 불렀죠. 타향도 정이들면~ 정이들면 고향이라고오~ "하는. ㅋㅋ 누구에게든지 그런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수 이상은이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른다고 노래했지만, 살아 온 곳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곳에 살 때는 그냥 적응하며 사느라 바쁘고, 떠날 때야 비로소 옛 기억과 함께 그곳도 살만했지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리즈 시절 살던 동네는 논현동 언덕 꼭대기 집이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은 25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언제고 저도 제가 살아 온 집과 동네에 대해 글을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소개하신 책 언젠고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
@밥심 @nanasand 3-1. 청어를 선택한 건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고, 주요 서식지가 러시아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공산당선언의 구절을 포함해서 42~44쪽에서 오가는 불친절하고 괴상한 대화는 위의 1-4, 2-2 항목에서 말씀드린 <시간의 언덕, 현수동>이나 이현수-장휘영 콤비의 모험에 대해 엉성한 구상과 관련이 있는데요. 그 구상을 제가 유지할지 잘 모르겠고, 그 이전에 그 세계관의 이야기를 쓸지조차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쓰게 된다면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이 글의 댓글에 3-2 항목으로 정리하고 스포일러 처리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실 42~44쪽은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 독자로서는 맥락을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쓰고 이렇게 선보이는 게 맞나, 이 정도는 괜찮은가, 아니면 괜찮지 않은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래 3-2이 ‘난 이런 거 다 구상했지롱’ 하는 변명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궁금하신 분들만 재미로 봐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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