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르케고르, ⟪순간/현대의 비판⟫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제11장: 무기력한 이해, 행동 없는 지식 우리 시대에 익명성은 사람들이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얻었다. 그것은 거의 경구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익명으로 글을 쓸 뿐만 아니라 익명의 작품에 서명한다. 심지어 익명으로 대화한다. 작가의 영혼이 그의 문체 속에 기입되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인격 전체를 대화의 문체 속에 집어넣는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가 지적했듯이, 누군가 책의 정신을 소환한다면 그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단, 그 책에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의견이 매우 분별력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화는 익명성과 대화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정확히 똑같은 사람이 가장 모순되는 말을 서슴없이 뱉으며, 극도의 침착함으로 자신의 삶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발언을 한다. 그 발언 자체는 충분히 분별력 있을 수 있다. 회의에서 잘 들리는 종류의 말일 수 있다. 결정에 이르는 논의에 유용할 수도 있다. 마치 누더기로 종이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의견들을 합쳐도 한 사람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을 만들지 못한다. 반면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도, 비록 주제는 적지만 진정성 있게 말한다면, 그런 인간적 의견을 들려줄 수 있다. 사람들의 발언은 너무나 객관적이고 포괄적이어서, 누가 그것을 표현하는지는 완전히 무관심한 문제가 된다. 인간의 말과 관련해서 그것은 '원칙에 따라'(on principle) 행동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공중처럼 순수한 추상이 된다. 더 이상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대신에 객관적 사유가 모종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추상적 소리가 인간의 말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마치 기계가 인간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에서는 심지어 마부들이 사용할 구문집까지 있다. 결국에는 연인들도 함께 앉아서 익명으로 대화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것에 대한 안내서가 있다. 머지않아 전 세계의 교육은 많건 적건 어떤 논평들을 암기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쇄공이 글자를 골라내듯이 다양한 사실들을 골라내는 능력에 따라 탁월함을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의 의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채로 말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이해의 시대다. 아마 평균적으로 본다면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이 알겠지만, 정작 열정은 없다. 모두 너무 많은 것을 안다. 우리 모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갈 수 있는 모든 다른 방법들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마침내 누군가가 자신 안의 성찰을 극복하고 우연히 행동한다면, 즉시 수천 개의 성찰이 외적 장애물을 형성한다. 오직 계획을 재고하자는 제안만이 열정적으로 환영받는다. 행동은 무기력으로 맞이한다. 일부 사람들은 우월한 자기 만족에 젖어서 행동하려는 사람의 열정을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어떤 이들은 시기하기까지 한다. 단지 그가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시기하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누군가가 행동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수많은 비판적 논평을 생산하고 논증들을 쏟아낸다. 얼마나 더 분별력 있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면서 말이다. 또 다른 이들은 결과를 추측하는 데 분주하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도록 사건들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려 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 영국 귀족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말이 도망치고 있었고, 그는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사람은 도움을 청하며 소리쳤다. 한 귀족이 말했다. '저 사람 떨어진다에 100기니 어떻소?' '좋소, 걸었소.' 두 사람은 즉시 말을 달려 앞서 나갔다. 통행료 문을 열고 도망치는 말의 길을 말끔히 터주었다. 우리 시대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영국 귀족들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큰돈을 거는 배짱은 없다. 하지만 호기심 많고 비판적이며 세상 물정에는 밝은 구경꾼과 같다. 기껏해야 내기나 거는 정도의 활력만 있을 뿐이다. 삶의 실존적 과제들은 현실성이라는 흥미를 잃었다. 환상은 더 이상 내면성이 신적으로 성장하도록 성소를 지을 수 없다. 그 내면성은 결단으로 무르익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궁금해한다. 모두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들이 탈출하는 방법은 이렇다. 누군가가 와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에게 내기를 걸 따름이다. 공동체나 연합(association)의 이념으로는 우리 시대를 구할 수 없다. 완전히 불가능하다. 오히려 연합은 회의주의[였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별성이 균등하게 발전하려면 이것이 필요하며, 그리하여 개인은 상실되거나 아니면 이런 추상들에 의해 단련되어 종교적으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연합의 원리는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이다. 물질적 이익과 관련해서만 기껏해야 유효할 뿐이다. 그것은 도피이며, 주의 분산이며, 환상이다. 변증법적으로 상황은 이렇다. 연합의 원리는 개인을 강화하지만 수적으로만 강화할 뿐 그를 약화시키며, 수적으로는 강화하지만 윤리적으로는 약화시킨다. 개인이 전 세계를 앞에 두고 윤리적 전망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함께 결합한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로 약한 개인들의 연합은 어린이들의 결혼만큼이나 역겹고 해롭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제12장: 인식 불가능한 자, 종교적 구원의 길(끝) 과거에는 군주와 위대한 이들이 각자 자기 의견을 가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족했으며, 감히 의견을 가질 수 없거나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 이제는 누구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의견을 갖기 위해서는 수적으로 뭉쳐야 한다. 스물다섯 명의 서명이 있으면 가장 끔찍한 어리석음도 하나의 의견이 되며, 일류 지성인의 심사숙고한 의견은 역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맥락이 무의미할 때는 폭넓게 조망하는 것이 쓸모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은 각 부분을 그 자체로 고려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입에서 헛소리만 나온다면, 일관된 말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무익하다. 각 단어를 따로따로 다루는 편이 낫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다가올 변화는 이러하다. 구질서(개인과 세대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에서는 장교들, 장군들, 영웅들(즉 탁월한 인물, 자기 영역 내의 지도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권위에 비례하여, 자기를 따르는 작은 무리와 함께, 전체 속에 그림같이 유기적으로 들어맞았다. 전체를 떠받치면서 동시에 전체에 의해 떠받쳐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위대한 사람, 지도자(그의 위치에 따라)는 권위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평준화 과정(the levelling process)의 악마적 원리를 신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식 불가능할(unrecognizable) 것이다. 그는 사복 경찰처럼 자신의 탁월함을 숨길 것이다. 그의 도움은 오직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주어질 것이다. 즉 그는 사람들을 밀쳐낸다. 반면 추상은 무한히 무관심한 채로 모든 개인을 홀로 심판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시험한다. 이 질서는 변증법적으로 예언자들과 사사들(士師, Judges)의 질서와 정반대다. 예언자와 사사에게 위험은 그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반면 오늘날 인식 불가능한 자에게 위험은 인정받는 것이다. 권위로서 인정과 중요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최고의 발전을 방해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인식 불가능한 자들은 비밀 요원처럼 일하기 때문이다. 신으로부터 사적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다. 사적 지시를 받는 자들은 예언자와 사사일 따름이다. 그들이 인식 불가능한 이유는 모두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보편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서, 자신의 책임을 매 순간 되새긴다. 그래서 이 일관된 통찰을 비일관적 형태로 무분별하게 실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이 질서는 변증법적으로는 조직 질서의 정반대다. 조직 질서에서는 걸출한 인격이 세대를 개인의 지지대로 만들었다. 반면 이제 세대는 추상처럼 인식 불가능한 자에 의해 부정적으로 떠받쳐지며, 개인에 맞서 논쟁적으로 대립한다. 왜인가? 바로 모든 개인을 종교적으로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세대는 스스로 평준화를 원했고 해방되기를 원했으며, 권위를 파괴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파괴하려 했다. 세대는 연합 원리(the principle of association)의 회의주의를 통해, 추상이라는 희망 없는 산불을 일으켰다. 이 회의주의와 함께 평준화한 결과, 세대는 개인과 모든 유기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인류'와 인간과 인간의 수적 평등을 놓았다. 세대는 잠시 동안 이 무제한적 파노라마를 즐긴다. 추상적 무한의 파노라마를. 조금의 솟아오름도 없어 평탄하고, 조금의 흥밋거리도 없어 방해받지 않는, 사막 같은 바다를. 그러면 일할 시간이 도래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개인이 스스로 일해야 한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더 이상 개인은 과거처럼 혼란스러울 때 위대한 이에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그는 끝없는 추상의 현기증 속에서 상실되거나, 종교의 실재 속에서 영원히 구원받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외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는 사실상 권위와 권력이 오용되어 혁명이라는 복수를 자초했다. 하지만 오늘날 최후의 복수를 자초한 것은 약함과 무능함이었다. 홀로 서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힘이 없었던 약함과 무능함 말이다. '인식 불가능한 자'들 중 누구도 대중의 선두에서 직접적으로 돕거나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직접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결정을 지시하고 돕지 않는다. 그 대신 그의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지지하고, 그렇게 해서 개인이 스스로 도달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이 방법 외에는 없다. 다른 방법은 종말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을 쓰면, 그는 인간의 근시안적 동정심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신성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분노하지만 그토록 자비로운 신성의 명령 말이다. 왜냐하면 이 발전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진보이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모든 개인들이 종교의 특정한 무게를, 그 본질을 직접 신으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질 것이다. '보라,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추상의 잔혹함이 세속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영원의 심연이 네 앞에 열린다. 평준화의 날카로운 낫이 모든 이로 하여금 그 칼날 위로 뛰어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보라, 저편에서 기다리는 이는 신이다. 그러니 뛰어들라, 신의 품으로.' 그러나 '인식 불가능한 자'는 인간을 도울 수도 없고 감히 도울 수도 없다.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도, 그의 어머니도, 그가 기꺼이 목숨을 바칠 소녀도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 도약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의 사랑은 중고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식 불가능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같은 정도의 걸출한 인물에 비해 두 배로 일한다. 끊임없이 일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일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준화 과정의 황량한 추상은 그 하인들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구질서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말이다. 평준화 과정을 섬기는 자들은 악의 권능을 섬기는 자들이다. 평준화 자체는 신성에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선한 사람은 때때로 이 황폐함을 슬퍼한다. 그러나 신성은 평준화를 허용한다. 최고의 것을 개인과 관계 맺게 하기 위해서다. 즉 각자 모든 사람과 말이다. 평준화를 섬기는 자들은 인식 불가능한 자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식 불가능한 자는 감히 그들에 맞서 권력이나 권위를 사용할 수 없다. 권력을 사용하는 순간 발전을 되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불가능한 자가 권위라는 사실이 제3자에게 즉시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3자는 최고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인식 불가능한 자는 평준화 과정을 도울 수 있으며, 그 고통스러움으로써 그 도구들을 심판할 수 있다. 그는 평준화를 직접 극복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그의 종말이 될 것이니, 그것은 권위를 참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고통 속에서 평준화를 극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법칙을 다시 한번 표현한다. 그 법칙은 지배하지 않고, 인도하지 않고, 이끌지 않고, 고통 속에서 섬기며 간접적으로 돕는 것이다. 도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그의 고통을 실패로 여길 것이다. 근원적으로 인식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약한 사람들은 그것이 승리였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다. 오직 그에게서만 확신을 얻을 수 있는데, 만약 그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 확신을 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그의 종말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권위자 노릇을 하기 바랄 때 그는 신성에 불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패다. 단지 권위를 사용하려 하여 신에게 불충한 것뿐 아니라, 신에게 복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강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간청한다 해도 그는 권위를 행사하여 그들을 속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춘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농담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의 미래'에 대한 모든 예언은 오직 오락이나 농담으로서만 가치가 있고 허용된다. 볼링이나 카드놀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찰(reflection)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반대다. 사람의 행동이 더 강렬해지려면(intensive) 성찰을 거쳐야 한다. 열정(enthusiasm)으로 수행되는 모든 행동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즉각적 열정이 온다. 다음에 영리함(cleverness)의 단계가 따라온다. 즉각적 열정은 계산하지 않으므로, 영리함은 계산하면서 자신이 더 높은 것처럼 가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이자 가장 강렬한 열정이 온다. 이 최고의 열정은 영리함의 단계를 거친 후에 오므로, 가장 약삭빠른 행동 계획을 볼 수 있지만 그 계획을 경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열정의 강렬함을 얻는다. 그러나 당분간,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 이 진정으로 강렬한 열정은 완전히 오해받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대중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평범한 사람이 그 정도의 영리함에 도달하여 영리함이 더 이상 그를 유혹하고 매혹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최고 형태의 열정을 얻어 영리함을 지배하되 말하자면 그것을 낭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열정적 행동은 항상 약삭빠름의 반대이므로 결코 명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열정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볼 만큼 충분히 영리했다. 하지만 그 의견대로 행동하기를 경멸했고, 제공된 연설도 거절했다. 그래서 그의 영웅적 죽음에는 명백한 것이 없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는 아이러니한 채로 남았다. 약삭빠르고 영리한 이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반대로 행동했는데도 정말로 영리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영리함이 공중에 매달린 지점이다. 자신의 성찰적 판단과 세상의 판단에 의해 들어 올려진 채, 영리함에 맞서 수행된 행동이 영리함 없이 수행된 행동과 혼동될까봐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즉각적 열정은 그런 위험을 모른다. 그래서 인생을 헤쳐나가려면 가장 강렬한 열정의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런 열정은 단순한 수사적 헛소리가 아니다. '높은 진지함', '더 높은 진지함', '가장 높은 진지함'에 대한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 열정의 표지는 명확하다. 이해에 맞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각적 선함도 성찰의 위험을 모른다. 선함과 약함이 혼동되고 뒤섞이는 위험을 모른다. 바로 그 이유로, 성찰 후에는 선함을 다시 부력하기 위해 종교적 추진력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에는 행해지는 것이 너무 적은데도, 비정상적으로 많은 예언과 묵시록, 미래에 대한 일별과 연구가 나타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기에 동참하여 다른 이들과 함께 떠드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점이 있다. 예언하고 경고할 때 무거운 책임을 지는 많은 이들에 비해서 말이다. 나는 아무도 나를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달력에 표시해두거나 내 말이 들어맞는지 지켜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성취된다면 사람들은 나 같은 하찮은 존재보다 더 중요한 일을 생각할 것이고, 성취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현대적 의미의 예언자가—즉 예측이나 하는 사람이—될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언자는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옛 예언자들의 말을 성취시킨 것은 섭리였다. 그러나 우리 현대의 예언자들에게는 섭리의 도움이 없으므로, 아마도 탈레스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예측하는 것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예언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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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한국 장편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수림문학상 수상작들 🏆
[📚수북탐독]9. 버드캐칭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8. 쇼는 없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기(첫 시즌 마지막 모임!)[📕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6. 열광금지 에바로드⭐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책을 직접 번역한 번역가와 함께~
[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꿈꾸는 도서관> <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번역가의 인생책> 윤석헌 번역가와 [젊은 남자] 함께 읽기[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전차 B의 혼잡>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요리는 배를 채우고, 책은 영혼을 채운다
[밀리의서재]2026년 요리책 보고 집밥 해먹기[책걸상 함께 읽기] #23.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도서 증정] 소설집『퇴근의 맛』작가와 함께 읽기[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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