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2
- 그녀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점점 더 믿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p54
- 나는 수시로 표정이 변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가 하면 매번 말을 바꾸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위선자라고 들었다. 물론 그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사연이야 있을 것이고 누구나 자신을 감추고 싶어하는 법이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너무나 위선적이라 그가 감추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섰다.
p57
- 비록 서류상으로는 내가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로자 아줌마가 내게 조국이 있다고 확신했으니까 어딘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아줌마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나를 아랍인으로 키우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녀는 또, 어쩌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도 했는데, 사람이 돈 한 푼 없이 궁지에 빠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똑같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p60
-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p62
-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p66
- 유태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사실 내 꿈이 바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물을 숨겨두고 필요할 때만 찾아다 쓰는 것이었다.
p68
-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p69
-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때를 잘 맞춰서 지켜보아야 한다. 기적이란 없다.
p72
- 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D-29

Nina

Nina
p82
-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p83
- 그 당시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해입한 내 우산, 아르튀르였다.
- 특별히 사랑할 만한 대상을 갖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어릿광대짓을 하기 위해서였다.
p84
- 사람들은 유별난 물건이 생기면 , 사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데도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에 희망을 걸기 마련이다.
p85
- 우스운 것은, 아르튀르가 옷을 입은 상태일 때는 끌어안고 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로자 아줌마가, 벌거벗은 아르튀르를 이불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난리를 쳤다는 거다. 어느 미친놈이 우산을 침대 속까지 가지고 들어가서 같이 잘 생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아줌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p92
-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p94
- 그녀에게 덜 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p95
- 아직 위험한 나이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의심 없이 환영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나에게도 아직은 귀엽다거나 착하다거나 하면서 미소를 보내주었다.

Nina
p96
- 어떤 때는, 파리 중앙시장을 꽃수레에서 미소사를 한 포기씩 훔쳐서 가져오기도 했다. 그 꽃들이 집에 행복의 향기를 풍기기를 바랐다.
p98
-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99
- 자기 혼자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p103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광대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p104
- 부하 광대들은 그에게 굽실거리며 군대식 경례를 했고, 대장은 그들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발길로 차는 일만 반복했는데, 그는 발길질을 하라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p105
-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귿르이 고통받지 않고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간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 무엇 하나 진짜가 없는 이 서커스의 세계는 인간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복의 세계였다. 철사줄 위에 있는 광대는 절대 떨어질 리가 없었다. 열흘 동안 나는 그가 떨어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가 떨어지더라도 하나도 아프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엇다.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p111
-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다. 그즈음 로자 아줌마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고 나는 조만간 그녀가 나를 혼자 남겨두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 떠오르는 그 생각 때문에 겁이 나서 가끔씩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곤 했다. 어느 정도냐면 상점에 가서 아무거나 큰 물건을 하나 훔쳐서 붙잡혀가고 싶었다. 아니면 어떤 큰 건물에 들어가서 기관총을 쏘며 마지막까지 저항을 해볼까. 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p113
- 아줌마는 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생일이 중요하지, 그 밖의 것, 즉 엄마 아빠의 이름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p118
- 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들을 내 곁으로 불러올 수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내 곁으로 불러올 수 있었다. 킹콩이든 프랑켄슈타인이든 상처 입은 붉은 새뗴라도. 그러나 엄마만은 안 된다. 그러기에는 내 상상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p121
- 나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연히 그곳을 망칠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태양과 광대와 개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그대로도 아주 좋으니까.
p124
- 나는 달랑 혼자인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Nina
p136
- 나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럴 때면 맛있는 것이 더욱 맛있어졌다.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죽고 싶어질 때는 초콜릿이 다른 때보다 더 맛있다.
p138
- 나는 아슬아슬하게 차들 사이를 달리면서 그들을 겁주는 게 재밌었다. 운전자들은 어린아이를 칠까봐 두려워했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무엇인가 하게 한다는 것이 기분좋았다. 아무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p139
- 하밀 할아버지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했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무장강도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찾아내서 보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보살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려고 떼지어 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굶어 죽기도 한다.
- 로자 아줌마는 인생이 무척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아직 아름다운 인생을 찾지 못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p142
- "이중에 누가 제일 맏이니?"
나는 늘 그랬듯이 모모라고 대답했다. 나는 귀찮을 일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어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p147
-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맡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 책은 아주 천천히, 마치 비가 그친 공원의 데크 위를 지나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읽힙니다. 읽은 곳까지 독후감을 적어둬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책에 적힌 활자 외에 달리 아무 내용도 적지 못하겠다 싶어 미루고 또 미룹니다. 작가는 열 살배기 모모를 통해 정말이지 하고픈 말을 다 합니다. 모모가 절실하게 바라는 한 가지 한 가지를 포기하는 매순간마다 마음이 저밉니다. 그가 삼키는 아픔과 서러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까닭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탓하지 않고 또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거나 원망하지 않는 모습에 더욱 가슴이 미어집니다.

Nina
p151
- 할아버지를 들것에 실어 칠층까지 모시고 가서 청혼을 하게 한 후 두 분을 시골로 모시고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누가 물건을 강매하듯이 할 일이 아니므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두 분이 같이 있으면 서로 말벗도 되고 좋을 것 같다고만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렇게 살면 너무 재미있어서 세월이 흐르는 것도 잊고 하밀 할아버지는 백일곱 살까지도 사실 거고, 더구나 예전에 로자 아줌마도 한두 번 할아버지에게 마음ㅇ르 둔 적이 있었다고 하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둘 다 사랑이 필요했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하는 수밖에 없었다.
p152
- "모하메드야, 오십 년 전에 내가 로자 부인을 만났더라면 결혼했을지도 모르겠구나. "
"그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서로 잘 볼 수도 없고, 미워할 시간도 없잖아요."
- "하밀 알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이제 유타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안 아픈 구석이 없는 할머니일 뿐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죠. 할아버지가 알라신을 보러 메카까지 갔었으니까 이제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보러 와야 해요. 여든 다섯 살에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못하겠요?"
p153
- "우리가 결혼해서 뭘 어쩌겠니?"
"고통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젠장, 다들 그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래요."
p154
- 나는 콜레라에 대해 잘은 몰라도 롤라 아줌마의 말처럼 그렇게 구역질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그저 병일 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 ..... 나는 때로 콜레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적어도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된 것은 콜레라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라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
p155
- 나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무도 닮지 않았고 아무와도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나는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곧 알아챘다. 그녀는 직업상 아이를 가질 수 없고, 그녀 처지에는 아이를 낳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p161
- 나는 샤르메트 씨가 불쌍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
p168
- "언젠가는 저도 진짜 책을 쓸 거예요, 할아버지. 모든 얘기들이 다 담겨 있는 책 말예요. 빅토르 위고가 쓴 책 중 가장 훌륭한 책이 뭐예요?"
- "언젠가는 저도 불쌍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쓸 거예요, 할아버지. ..... ..... "
p171
-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을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 노인들은 겉으로는 보잘것없이 초라해 보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 아무리 열 살 아이라지만 82억명이 넘는 이 세상에서 이리도 선입견 없고 편파적이지 않고 고정관념에 둘러 싸이지 않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Nina
p175
- 한참을 달리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아서, 어느 집 대문 그늘 아래, 수거를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들 뒤에 앉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더 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창피한 마음에 무읖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나는 상상 속의 경찰을 불러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경찰을. 그는 다른 경찰들에 비해 백만 배는 더 큰 덩치에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방탄차까지 몇 대씩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나의 안전을 보장해줄 터였다. 그가 책임을 져줄 것이므로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처럼 억센 팔로 내 어깨를 감싸주면서 내게 그렇게 여러 발의 총을 맞았는데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상처를 입었지만 병원에 가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손을 내 어깨에 얹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일으 처리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내게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아이에게 부모란 이런 존재라는 걸 세상의 모든 아이의 부모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빗물이 조금 새는 지붕이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때론 존재 자체가 무거운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고, 어른으로서 모모에게 미안했던 구절입니다.
p176
-아프리카는 이곳과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거기서는 한 부족에 속하면 그곳이 곧 하나의 사회이며 대가족이 된다.
p181
-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래요. 그러면서도 오래 살 수 있대요. 카츠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줌마 나이에는 다들 그런대요. 선생님은 그런 나이에 번호를 붙여서 불렀어요."
"제3기 인생 말이냐?"
"네, 바로 그거예요."
> 줄을 긋지 않고 넘기게 되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많이 사색하고 고민하고 경청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많은 걸 아는 작가는 참으로 현자입니다. 다 읽고 나서도 오래 그리고 가끔 혹은 자주 생각나 펼쳐 볼 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Nina
p188
- 카츠 선생님 말로는, 이 시대는 너무 인정이 메말라서 예순다섯 살에서 일흔 살 정도가 되면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p194
- 나는 왈룸바 씨에게 로자 아줌마를 그의 부족이 있는 아프리카로 보내서 그곳의 다른 노인들과 함께 대우받고 살게 할 수는 없겠느냐고 물었다.
p197
-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놓으려 할 거다. 병원이란 데가 원래 늘 그 모양이야. 법이 그러니까. 나는 필요 이상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더 살 필요가 없어. 아무리 유태인이라도 한계가 있는 거야. 그들은 나를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 할 거다. 그러려고 만든 의사협회라는 것도 있단다. 그들은 끝까지 괴롭히면서 죽을 권리조차 주지 않을 거야.
- 모모야, 나는 의학적 연구를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정신이 들락날락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의학적 공헌을 위해 그런 상태로 수년씩 더 살고 싶지는 않다."
p223
-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p230
- 프랑스에도 자장가는 있겠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장가를 들을 만큼 어렸떤 적이 내겐 없었고, 언제나 머릿속에 다른 걱정들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p237
- 끔찍했던 일들도,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별게 아닌 것이 되는 법이다.
p239
- 나는 크면 안전을 위한 것들을 모두 갖춰놓고 내 마음대로 살 거예요. 그러면 겁낼 일도 없겠죠. 아줌마네 녹음실에서처럼 모든 것을 뒤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p240
-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 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아아,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산과 바다로 동시에 바캉스를 갈 수 없어서 한군데를 선택해야 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전쟁처럼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 아버지의 등장으로 열 살에서 열네 살이 된 모모는 그러나 뭐 하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가장 어릴 때조차 아이일 수 없었던 모모의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 그저 사 년 더 오래 이어졌다는 걸 알려줄 뿐입니다.
* 카이렘 : 당신에게 맹세한다.
말토브 : 축하한다.

Nina
p242
- 그들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얘기하고 싶었다. 그만큼 내겐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곧 지쳤다. 마침내 푸른 옷의 광대가 내게 손짓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졸릴 때면 종종 나타나는 친구다. 나는 그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정신적 결함이 있는 아이로 생각할까봐 겁이 났다.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 누구에게나 작디 작게 접고 구겨 가슴 속 깊은 곳에 감춰둔 이야기가 있고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순간일 수도 십 년의 긴 세월일 수도 있습니다. 운명이라 불릴 만한 상대를 만나면 그 앞에서는 마치 부검 테이블 위의 주검처럼 조심스럽고도 거칠게 내부 장기가 열리고 꼬깃꼬깃한 비밀이 드러나며 펼쳐집니다. 이미 굳었다 싶던 피가 솟구쳐 주변을 물들이기도 하고 때론 끊임없이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모모의 그런 순간입니다.
p246
-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내다니 웃기는 일이다.
>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진 세상은 얼마나 맑고 밝을까요. 많이 아쉽습니다.
p247
-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나는 더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p252
-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가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나는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p254
- 유태인들의 음악은 왜 그렇게 모두 슬픈지 모르겠다. 그들의 민요가 다 그렇다. 로자 아줌마는 종종 자신의 모든 불행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유태인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겪은 고난의 십분의 일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p259
-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지만 또 모두를 죽이고 싶은 모모의 심정일까요. 모모는 불쌍한 사람들의 얘기만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불쌍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그건 너무 슬픈 일입니다만 불쌍하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닐 수 있습니다.
p263
- 그는 또 한숨이었다.
"반항아가 되거나...... 하지만 안심해라.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니까."
"나는 절대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 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 모모의 눈에 세상의 정상인들은 비열하고 비겁하고 외면에 익숙하고 무관심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진 않겠지요.
p269
- 그녀는 '망슈mensch'라고 말했다. 유태어로 인간이라는 뜻의 이 말에는 여자도 남자도 다 포함된다.

Nina
p271
- "난 너무 추한 꼴이 되었구나, 모모야."
나는 화가 났다 늙고 병든 여자에게 나쁘게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니까. 하나의 자로 모든 것을 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마나 거북이 다른 모든것들과 다르듯이 말이다.
p291
-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제가 한 일은 구글에서 [로맹가리 자폐적 성향]을 검색한 것입니다. 모모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너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로맹 가리(Romain Gary)가 자폐 성향을 가졌다는 직접적인 언급이나 의학적 진단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그의 작품과 삶의 일부 특징(깊은 내면세계, 예민함, 고독감, 독특한 관찰력)은 자폐 스펙트럼의 일부 특성(사회적 소통의 어려움, 반복적 행동, 특정 분야에 대한 몰입 등)과 일부 유사점을 보일 수 있어, 일부 독자들이 그런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문학적 해석의 영역이며, 그는 평생 다양한 활동을 한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라고 알려줍니다. 왜 그리 생각했냐 제게 물으면, '그런 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건 마치, 첫눈이 오는 날이면 '오늘은 모든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많이 나겠구나'라고 예상하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Nina
책은 이제 다 읽었습니다.
아직 작가인 로맹 가리의 글과 평론이 남긴 했습니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 그리고 모모의 주변에서 그의 성장을 돕던 이웃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이 책을 토닥거리며 모두 읽은 사람만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데렐라]를 읽고난 후 저는 과연 신데렐라가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가치관도 생활 습관도 성장 배경도 다른 그 둘이 과연 행복했을까.... 대부분의 동화는 행복한 결말이었지만 어렸던 저는 늘 '과연 그들은....'이라는 의문을 갖고 그들의 실상은 어떻게 진행됐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습니다.
아이를 키웠고 또 지금도 꼬맹이들을 키워주는 저에게 이 책은 마음이 저미도록 아프고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서글펐습니다. 그의 내일을 또 미래를 소설 속 어느 주인공보다 축복하고 또 축복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 고민되는 사람이라면 찬찬히 줄을 그으며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모모의 눈은 추운 겨울날 초가집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 끝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대롱대롱 매달린 가장 맑고 차가운 얼음물입니다.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이나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내게도 이런 생각 이런 눈을 가진 때가 있었지' 사색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1975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최초로 출간된 연도는 검색되지 않습니다만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고 20만 권 정도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1978년 광주의 전일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김만준의 [모모]가 이 책의 주인공 모모라고 합니다. 작가와 작곡을 맡았던 박철홍 씨는 원어로 읽고 노랫말을 지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요.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원어로 읽을 때 작가의 의도나 감정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겠지요.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좇아가는 시계바늘이다.....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이지요.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부모가 없는 모모에게 뭐라 대답해 줘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사랑조차 받은 기억이 없는 모모에게 말입니다.
로맹가리의 글에서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 몇 개를 옮겨 적습니다.
- 여기서 한 가지 에프소드를 소개해야겠다. 그것은 곰브로비치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에게 만들어준 얼굴"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런 시도를 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이자 그 시도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얼굴"은 작가의 작품이나 작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나는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네 권의 소설을 펴냈다. 나는 기존의 관념이 지배하는 쉽고 단순한 분석으로는 절대로 그 가명에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 세상의 모든 작가와 독자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어두운 곳을 찾아 빛을 나누고 밝은 곳에서는 거울을 들어 빛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좀더 분발해야 합니다.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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