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32,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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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1607년 포르투갈령 인도에서 일본인을 노예로 삼는 일이 금지되었다. 그것은 학대를 받는 일본인의 참상이 고려된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금령 이후에도 일본인에 대한 학대는 끊이지 않았다. 금령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이전에 계약된 노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하인'이라는 애매한 형태로 존재한 '노예 거래'는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33-134,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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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마카오에서 명조의 일본인 입국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많이 살고 있었고 고아에서 일본인 노예 금지령을 내려도 결국 식민지의 필요에 따라 용병과 노예를 유지하고 학대도 계속되었던 것을 보면 결국 실제 효력은 없고 이름 뿐인 허울 좋은 법령은 사회를 변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그저 금지대상의 행동을 음지화할 뿐이고 뭔가 더 실질적인 체제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게 필요한 듯합니다.
오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저 이 그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예전에 봤는데 그때는 무슨 중국 재상인 줄 알았어요;;
꽃의요정
오다 노부나가의 흑인 노예 야스케 씨는 남편 말로는 무사에 가까웠다고 하네요? 게다가 그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 '어쎄신 크리드 : 섀도우즈'가 있다고 해서 찾아 봤어요. 근데 말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borumis
“ 16세기 중반 이후 멕시코에 확실히 일본인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들의 신분은 노예, 상인 등 일정하지 않고 계층이 다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일본인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상업 네트워크 속에서 노예 신분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대항해시대 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49,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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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볼에 달군 낙인을 찍는 것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단순한 이유로 도망간 노예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인물이 노예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56,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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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선점 노예를 처리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 갔다. 18세기 초반에 선장과 다른 고급 선원들은 선점하고 싶었던 노예를 골라 두었지만, 이 노예들이 죽으면 다른 노예를 선택해서 손해는 선주의 몫으로 돌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인들은 선장들에게 해안에서 미리 노예를 선택하고 다른 고급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낙인을 찍어두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 방식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이는 모든 고급 선원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이를 덮어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고 선점 노예를 개별적으로 정하는 대신 노예선이 신세계 항구에 도착해서 판매한 모든 노예의 평균 가격으로 선점 노예의 가치를 환산했다. 이 방식은 모든 노예를 잘 보살피도록 하는 이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평균 가격을 낮추고 선장의 선점 특권을 저해하는 아프고 병약한 노예를 항구 근처에서 죽여 버리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45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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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낙인이라는 단어를 보니 이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대서양 노예 무역에 종사한 선장이나 고급선원들은 미리 상태가 좋은 노예를 눈여겨 보고 찜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노예무역의 후원자는 유럽대륙의 상인들이었기에 노예 판매로 인한 수익의 많은 부분이 상인에게 돌아갔지만, 동시에 선장과 선원들의 배반이나 탈주를 막고자 일종의 성과급 같은 보상체계가 작동했다고 해요.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급여 외에도 항해를 완수했을 시, 무사히 건강하게 살아서 판매한 노예의 수에 비례해 성과급을 주기도 했고 문장처럼 선장과 선원이 자기 몫으로 노예를 남겨 직접 개인거래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걸 너무 봐주면(?) 상태가 좋은 노예들의 수익이 정작 상인에게 돌아가지 못하므로 상인들은 최상급의 노예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상인의 소유라는 표시로 낙인을 찍었지만 다들 담합하여 모른 체 하는 경우들도 있었고요.
borumis
헐 그들 사이에서도 그런 경쟁과 담합이 오가는 거였군요. 사람의 건강 상태를 갖고 가격을 매기고 거래를 하네요.. 그나마 노예들을 너무 험하게 다루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방책인 건가요;;
은화
노예의 육체적 상태, 건강, 질병유무가 직접적인 품질평가 기준이었다 보니 당시 노예무역선들은 노예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더라고요. 특히 목적지에 가까워질 때 즘이면 미리 몇 주 전부터 음식을 더 잘 먹이고,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선상 의사가 점검하고, 흔히 말하는 몸단장도 시켰다고 하고요. 오히려 선원들 중에서는 자신들의 처지가 노예보다도 못하다고 자조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예선의 선장과 상인들은 물건으로서 흑인노예들을 '관리'했을 뿐이지 인격체로서 대우한 게 아니었기에 항해의 중간에 노예들이 반란을 꾸미거나 실행에 옮겼다가 진압 당하면 잔인하게 보복했습니다.
노예들은 저항의 의미로서 스스로 단식을 하거나 음식을 거부하고 입에 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면 선원이나 선장들이 억지로 노예를 붙잡고 입을 벌리는 고문기구를 쑤셔 박아 강제로 죽이나 음식을 부어버렸고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나 거부하면 고문과 채찍질을 하고 본보기로 그 자리에서 처형하기도 했고요.
은화
“ 누구든 음식을 거부하는 행동은 그 행동자체가 본보기가 되어 퍼지면서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선장은 직접 자신의 권력을 동원하여 이 문제에 맞섰다. 선원 아이작 파커는 1791년 노예무역을 조사하던 하원 위원회에서 이에 관한 냉혹한 현실을 증언했다. 1765년 블랙 조크호에 승선한 한 어린아이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음식을 거부했다.” 제 어미와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아이는 어미의 젖뿐만 아니라 팜유를 섞은 쌀 요리도 먹지 않았다. 토마스 마샬 선장은 구교묘 채찍으로 아이를 매질했고 남자 노예들은 방책의 갈라진 틈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큰 불만을 표시하며” 항의했다. 아이는 여전히 음식을 거부했고 며칠 뒤에 선장은 다시 채찍을 휘둘렀고 이번에는 아이의 목에 18에서 20인치 길이에 12에서 13파운드 정도의 무게는 되어 보이는 망고나무 둥치를 줄로 묶어두었다. 파커는 “선장은 마지막으로 아이를 들어 올려서 매질하고는 갑판 바닥에 던져버렸다”고 설명했다. 선장은 그 뒤에 “망할 것… 내가 널 먹게 하지 못하면 널 죽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아이는 숨을 거두었다. 이 잔인한 행동의 끝은 선장이 어미에게 숨을 거둔 아이의 작은 몸을 직접 바다로 던져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34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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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스탠필드와 여러 다른 선원들은 노예의 처지가 오히려 선원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선장에게는 중간항로 항해 동안 그들을 먹이고 살려둘 만한 경제적인 동기가 있었다. 그는 “항해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들의 건강과 식사에 대한 관심은 선원에 대한 것보다 우선되었다”라고 기록했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76,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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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노예의 건강은 더 중요했다. 토마스 스타크는 1700년 제임스 웨스트모어 선장에게 쓴 편지에서 “항해를 통해 얻는 모든 이익은 당신이 흑인들의 목숨을 얼마나 살려오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두 미국인 상인 조셉과 조슈아 그라프턴도 1785년에 같은 점을 지적했다. “당신의 항해 전체가 노예들의 건강에 달려 있습니다.” 한 상인 집단은 아픈 노예에게 먹일 “양고기 수프”를 선원들이 만들게 하려고 양과 염소를 배에 실어두도록 선장에게 말할 정도였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31,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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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선원의 마지막 작업 단계는 배가 항구에 가까워지면 노예들을 판매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엠마 크리스토퍼가 강조했듯이 이 작업은 선원이 아프리카의 포로들을 판매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일종의 생산업이었다. 이를 위해 도착 열흘 전부터 남자 노예들의 손목과 발목에서 속박을 떼어내서 피부의 손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남자 노예들의 (수염 그리고 때로는 머리까지) 면도하고 깨끗이 씻긴 후 질산은을 피부에 발라서 상처를 숨겼다. 회색으로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뽑거나 검은색으로 염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선원은 아프리카인의 몸을 팜유로 문질렀다. 이 모든 과정이 노예의 가치를 창출하고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91,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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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아흑..ㅜㅜ 무슨 푸아그라 만드는 거위도 아니구..;;;
borumis
“ 두 번째의 목적은 소유자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 이런 행위는 한 사람의 인간이 상품으로 변모하고 만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그 시점에서 인간이 재산으로 취급된다. 동시에 그 행위에 의해 노예는 인간 이하의 동물과 동등하게 취급되게 된다. 인두로 도장을 찍는 방법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축에게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57,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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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당시 가톨릭 교회는 일종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의 사용을 합법으로 간주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정의로운 전쟁(justi belli/guerra justa)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guerra injusta)의 구별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규정은 권력자에 의해 입맛에 맞게 해석되었는데 전제는 '정전(正戰)'에서 포로가 된 자는 프란치스코의 계약서에 기재된 것처럼 노예의 신분으로 취급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도교 세계의 확대를 위해 일어난 전쟁의 경우에 포로의 노예화가 용인되었다. ”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161,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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