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5.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루시우 데 소우사

D-29
그렇지 않아도 강렬하고 희소했던 카프리인을 종자로 삼는 것은 일본인에게 있어 ‘부귀’와 ‘위풍’의 상징이었기에 교역에 관련된 다이묘들은 저마다 소유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p.230,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가장 의외인 것은 포르투갈인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을 당시 '문명화' 혹은 '그리스도교화' 의식, 다시 말해 그들을 거래할 때 세례를 시키는 관습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나가사키에서도 널리 시행되었다. 즉 예수회 선교사는 노예로 매매된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 거래가 정당화되는 과정에도 관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p.234~235,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본서에서 그려낸 바다를 건넌 노예들의 생애는 다미안과 같이 복 받은 경우는 드물고, 전란 중에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악한 생활 환경에 있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까지의 역사 연구에서 거의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존재인 그들의 일상의 기쁨이나 슬픔이 조금이라도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가깝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p.239,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처음 도착한 때는 아직 전국시대였던 1543년인데, 이 당시 나가사키를 포함한 규슈 지방의 다이묘나 영주들은 서구의 화승총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해요. 포르투갈은 잠재적인 거래 시장으로서, 또한 가톨릭교를 전파할 종교의 개척지로서 일본을 염두에 두었기에 상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이묘들과 거래하기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다이묘들의 입장에서는 화승총의 구매와 사용법 숙지를 위해서라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해야만 포르투갈과 교류할 수 있었기에 종교를 적극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흥미롭네요. 개종 대신 종교를 거래 조건으로 내세워 상대가 먼저 자발적으로 수용하게끔 방향을 잡은 걸 보니 포르투갈이 참 머리를 열심히 굴렸네요. 'In 1543, during the wars of the Sengoku period, the Portuguese landed in Japan for the first time, and soon spread Christianity throughout Japan from Kyushu. Regional daimyō, or feudal lords, were eager to trade with the Portuguese for their European arquebus, while the Portuguese saw the Japanese as potential converts to the Christian religion, preferring to trade with those who converted.' 치열한 전국시대라는 환경으로 인해 신병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았던 일본과, 무역과 포교의 필요성이 있었던 포르투갈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거겠죠.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설령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포르투갈과 접촉했더라도 과연 일본과 같은 방향으로 그리스도교나 화승총을 적극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생각하게 되네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일본에 비해 유교가 국가의 통치관만이 아닌, 개개인의 생활과 관습에도 적용된 조선에서는 포르투갈의 제안에 대해 별 관심을 못 느끼지 않았을까요? 또한 분열되어 있던 당시의 일본에 비하면 조선은 정치와는 별개로 내전의 위험은 없던 시기였기에 (1543년은 중종 사망 직전이었습니다.) 일본에 비해 군사적 필요성을 덜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Okamoto_Daihachi_incident
오, 임진왜란 때 다이묘들 대부분이 가톨릭 교도였다는 게 신기했는데, 이런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였던 거군요. 은화님 말씀대로, 조선은 필요성을 훨씬 덜 느꼈을 것 같아요.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은 그 당시에 일본 보다 한국에 선교사가 덜 왔나?예요. 아님 한국이 외국인과 외래 종교에 대해 더 폐쇄적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 넘 아무것도 모르네요 ㅎㅎ
당시 가톨릭 교회는 일종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의 사용을 합법으로 간주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정의로운 전쟁(justi belli/guerra justa)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guerra injusta)의 구별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규정은 권력자에 의해 입맛에 맞게 해석되었는데 전제는 ‘정전(正戰)’에서 포로가 된 자는 […] 노예의 신분으로 취급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도교 세계의 확대를 위해 일어난 전쟁의 경우에 포로의 노예화가 용인되었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해외 진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있었던 인디오에 대한 침략, 학살 행위를 ‘그리스도교의 확대’를 위한 ‘정전’으로 정의했던 움직임과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십자군 원정에서 시작된 유럽 세계의 신학에 기반한 법적 이해를 이때까지 유럽과 그리스도교와는 무관했던 신세계에 대입하는 것 자체가 오늘날 보기에는 비상식적이다. 당시에도 도미니코회 수도사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등에 의해 스페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격렬한 규탄이 있었고 스페인 국내의 신학자들 사이에도 논의가 분분했다. (161-162쪽)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려는 예수회가 관리하는 나가사키에서 인신매매를 하려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그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를 위해 사용된 것이 ‘정전’ 개념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나가사키에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합법성을 확보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은 문헌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예수회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이묘나 장수들의 전쟁으로 생포된 사람들을 ‘합법적인 노예’로 간주하기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가사키로 끌려와 그곳에서 매매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합법적인 노예’일 필요는 없었다. 사실상 그런 증거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87년 가스팔 코엘료는 “올해 그곳에서 거래된 노예 100명에 하나라도 합법적으로 노예가 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1587년 10월 2일 자 서한). 즉, 포르투갈인에게 구입이 허락된 것은 ‘합법적인 노예’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심사는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서 판매된 것은 ‘합법적인 노예’에 그치지 않았다. (205쪽)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나가사키에서 거래된 비일본인 노예 중 수적으로 가장 많았던 것은 히데요시가 벌인 전쟁으로 조선에서 생포돼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나가사키 개항 이전 사쓰마의 여러 항구에서 거래된 사람 중에는 왜구에 의해 중국에서 연행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이후 후기 왜구의 쇠퇴로 외국인에게 팔려 가는 사람의 국적은 일본 국내 전란 중 포획된 일본인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국내의 천하통일에 의한 전국시대의 종언과 거의 연이어서 일어난 조선 출병으로 나가사키에는 외국인에게 팔려 가는 조선인이 넘쳐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14쪽,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일본에 머물렀던 스페인 사람 아빌라 힐론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597년, 태합(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말함.)께서 조선 왕국에 전쟁을 걸었을 때 일본으로 수많은 조선인 노예를 데려왔는데, 그중 상당수가 여성이었던 사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아빌라 힐론 『일본왕국기』).” 16세기 말 일본에 온 피렌체 상인 프란치스코 카를레티는 일본 시장에서 본 조선인 노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연령대의 남성, 여성들이 수많은 노예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었다. 누구나 아주 싼 값에 팔렸고 나 자신도 다섯 명의 노예를 겨우 12에스쿠드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20-221쪽,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일본인 노예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이 책 곳곳에 나타나는 예수회와 노예무역의 관계가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는 데 대한 의문도 종종 제기된다. 포르투갈어 원서에서는 사실 두 장에 걸쳐서 그 문제를 논하고 있는데 이 또한 본서의 초판에는 들어 있지 않다. 예수회가 노예무역에 ‘폐지론자’로서의 입장뿐만 아니라 현실에 많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모순을 밝히면 적잖은 풍파가 일어나 학술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불꽃 튀는’ 일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 새 장을 더하긴 했지만 예수회가 인신매매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인신매매 자체에 대해서도 ‘더 나은 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실정상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며 그에 대한 사료 역시 극히 적은 이유는 그만큼 어두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44쪽,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표면적으로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양세계의 노예제는 폐지됐다. 그러나 소위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지역에서는 비록 ‘노예’라는 호칭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형태의 노동은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일본을 포함한다)으로 외화벌이를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에도 ‘노예적’인 노동을 강요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예제를 극복했다고 하는 나라들도 실상으로는 뚜렷한 격차가 남아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류 역사를 보는 한 노예는 모든 곳에 늘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뚜껑을 덮은 채 보지 않으려 해서 그렇지 이는 사실 현대 사회문제의 기층과 연관이 깊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논하려고 해도 본질적인 부분에서 공통 인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개개인이 자의적인 의견에 흐르기 쉽다. 모든 현대사회의 문제는 역사를 모르고서는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고, 역사의 문제는 배우고 직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45쪽,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당시 유럽에서는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신학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중대한 위반을 하고 있지 않은지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예수회의 눈부신 성과를 시기하는 다른 수도회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예수회는 이 문제에 대해 그들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을 피하고 유럽의 저명한 신학자엑 견해를 물어 일종의 '보증'을 받고자 했다. ... 다시 말해 바스케스의 답변은, 병사들로서는 단지 주인의 명령에 따랐을 뿐 전쟁이 부정의하다는 것을 알 수 없으므로 약탈품이나 포로를 취하는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신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예수회 선교사들은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인이 조선인 포로를 구입하는 것을 걱장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15-216,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한반도로 건너간 병사들의 손에 많은 여성이 일본으로 끌려오면서 나가사키 노예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곤세카이초와 신지야초에 생겨난 유곽은 조선인 여성을 제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21-222,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그렇지 않아도 강렬하고 희소했던 카프리인을 종자로 삼는 것은 일본인에게 있어 ''부귀'와 '위풍'의 상징이었기에 교역에 관련된 다이묘들은 저마다 소유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30,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예수회는 노예무역의 과정에 있어서 틀림없이 한 기능을 담당했고 그것을 히데요시는 모른 척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36,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덴쇼 사절의 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아마도 그 소년들보다도 더욱 어렸을 남자아이가 포르투갈까지 건너갔고 성인이 되어 극동으로 귀환한 것과 부유한 상인이 되어 나라에서 쫓겨난 일본인 그리스도교도들을 위해 재산을 기부한 것은, 당시 일본에게는 세계가 생각만큼 먼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과 오랜 해외 생활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고향 사람들에 대해서 '동향'의 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39,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본서에서 그려낸 바다를 건넌 노예들의 생애는 다미안과 같이 복 받은 경우는 드물고, 전란 중에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악한 생활 환경에 있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떠한 환경 에서도 '사는' 것을 선택했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39,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예수회가 인신매매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본다. ... 그래도 역시 실정 상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며 그에 대한 사료 역시 극히 적은 이유는 그만큼 어두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44,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인류 역사를 보는 한 노예는 모든 곳에 늘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뚜껑을 덮은 채 보지 않으려 해서 그렇지 이는 사실 현대 사회문제의 기층과 연관이 깊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논하려고 해도 본질적인 부분에서 공통 인식이 형성되어 잇지 않고, 개개인이 자의적인 의견에 흐르기 쉽다.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245,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완독했습니다. 사실 좀 풀리지 않은 문제들도 많고 너무 자료가 부족하고 산발적이어서 뭐라고 결론 내리기도 힘든 게 많지만 일단 사료가 부족했던 예전에도 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문제들이 묻히고 외면되고 이상한 논리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불어주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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