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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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아이슬란드의 데이터 센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열과 수력을 이용한 신재생 에너지로 분명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사실 고용창출효과나 핵심 기술 인력 양성 등의 기능은 많이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조금 아쉬운 사례이긴 했어요. 예전 유럽 열강들의 제국 주의처럼 이제는 글로벌 대형 기업들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it 제국주의가 된 것 같은데 여기서도 인프라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Alice2023 님, 의견 감사합니다. 3장은 AI가 자연환경과 물리적 자원을 독점하면서도 정작 시설의 운영 유지보수를 위한 고용에 있어서는 지출을 줄이고 있는 현실의 대조가 눈에 와 닿죠. 단기계약직, 임시직, 외주와 파견업체를 통한 직원 운용은 기업들이 직접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과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익성의 관점이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고용의 불안정성(그쪽에서는 유연성이라고 어떻게든 포장하고 싶어하는 말이죠.)을 계속 기업들이 확대하는 이유는 더 근본적으로는 '일'이라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관념적 책임마저 기업이 피해가려는 수단이라고 느낍니다. 성과를 증명하지 못했으므로, 더 효율적/효과적으로 일하지 못했으므로 계약을 연장하거나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기준은 단순한 기준을 넘어 개인의 '쓸모'나 '존재의의'까지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가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는 책임의 외주화랄까요. 자업자득이다, 더 노력하지 않았다, 남들도 너 만큼은 한다 같은 말들이 있죠. 불안정성의 원인제공자와 이유마저도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기업은 모든 부담과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니까요.
정치이론가 애덤 코츠코는 이런 자유를 “조직적으로 비난받아도 마땅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덫이라고 했다. 이런 구조는 늘 개인에게 모든 짐을 씌운다.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삶이고, 실패해도 도와주기는커녕 동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마크 피셔는 민영화와 함께 스트레스, 우울증 확산, 불안감 증폭의 민영화도 동반되었다고 강조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그만한 능력을 키울 만큼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도 비참하다면 다른 일을 구하라는 식이다. 이런 논리는 잦은 이직률을 정당화하고 기업은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노동력을 고용하기도 쉽고 해고하기도 쉬워진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16~17,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 담아놨어요.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도 읽어 봐야 겠네요.
AI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것을 팔고 있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46,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가치 사슬에서 창작자가 가장 밑에 위치하고, 그 위에 모든 사람들이 군림하는 구조는 예전부터 존재해 왔어요. AI가 착취 문제를 새롭게 만든 건 아니에요. 다만, 그 문제를 더 악화시켰을 뿐이죠.”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47,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은 직업이 많아요. 하지만 그런 일들이 저 같은 예술가들에게 생활비를 마련해 주죠. 저는 사전, 영어 학습 자료, 설명 영상, 기업 홍보 영상 같은 걸 녹음해요. 이 일이 없어진다면, 다른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겁니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51,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200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발된 챗봇 유진 구스트만은 한때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AI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이 챗봇은 13세의 우크라이나 소년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라는 설정은 이 챗봇이 가진 부족한 언어 능력과 일반 상식의 결핍을 정당화하는 배경 장치로 활용됐다. 즉, 유진 구스트만이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거나 의미 없는 대답을 하더라도, 실험 참가자들은 “나이가 어린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이처럼 튜링 테스트는 실제 창의성이나 지능보다는, AI가 인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속일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더 가까운 실험이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57,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결국 AI가 창의성 테스트를 통과했는지 여부는 특정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65,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기계적 재생산은 수세기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렘브란트는 많은 견습생이 그의 그림 작업을 돕는 대형 작업장을 운영했으며, 미켈란젤로 역시 시스티나 대성당을 그릴 때 조수를 채용해 특정 부분을 채색하게 했다. 더 최근의 예로는 앤디 워홀이 대규모 작업장을 운영하며 그의 조수들이 대부분의 작품을 대량 생산한 사례가 있다. (…) 합성 드럼 비트와 턴테이블이 대중음악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음악 장르를 탄생시킨 것처럼, 기술은 예술을 소멸시키기보다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p.172,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4장에서 다루는 성우의 사례는 비단 성우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유무형의 창작과 그로 인한 결과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가나 크리에이터 직업군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죠. 예술이나 창작이라는 말에서 여러분은 어떤 관념이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르시나요? 고독하게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몰두하고 고뇌하는 작가나 화가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 앞에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아이돌이나 가수일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방송인이나 인터넷 스트리머도 있겠죠. 책의 중간에서도 언급되듯 많은 예술가나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본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부업을 겸하고,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소소한 일거리들을 여기저기서 구하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충당합니다. 또한 예술은 단지 '창작자'들만의 산업이 아니라 실제로는 굉장히 많은 직간접적인 종사자들이 엮여있는 광범위한 생태계이기도 하죠. AI에 의한 예술의 대체에 있어 우리는 인간의 창조성과 예술적 기질이 빼앗기는 것인가를 주로 생각하지만, 이런 개념은 예술이라는 분야를 '창작하는 소수'로만 시야를 제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창의성은 종종 타고난 재능으로서 천재성과 결부되며,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예술가들만이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만 있지 않죠. 당장 미술관만 하더라도 미술관의 운영과 유지를 위한 행정사무직, 안내원, 큐레이터, 작품/문서 복원가, 설치전문가, 행사 준비인원 등 여러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분명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 있어 중요한 핵심이지만 그 핵심이 대중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과 보조가 필요하죠.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에서는 예술 분야에 대한 천재성의 신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굳어졌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종사자들이 마땅한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예술에 있어 천재성이 결합되기 시작한 건 서양에서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러 재화와 상품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때로 보고 있습니다. 온갖 물건이 쏟아져 나오지만 예술품은 예술가가 시간과 노력을 한정시켜 소량만 만들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예술품의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art의 단어의 뜻 중에는 예술 외에도 '기교, 솜씨, 기량, 재능'이라는 의미가 있듯 본래 예술가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부호나 성직자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이들의 능력은 차츰 순수하면서도 초월적인 개념으로 변해갑니다.
“천재성에 대한 숭배는 그 자체로 믿음이다. 초월, 예외, 그리고 옆에 걸어가는 누군가가 신일 수도 있다는 믿음이다. 나아가 천재성은 그 자체로 체제의 인프라, 즉 기반이다. 우리는 천재성을 기반으로 예술을 체계화했고, 천재성의 장래성을 기반으로 경제를 조직해왔다.” 천재성에 대한 그 믿음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영역으로 흘러들어왔다. 천재에 대한 찬가들이 예술계는 물론, 첨단 기술 관련 언론 기사, 미디어에 넘쳐난다. 결국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고, 할 수 없는 뭔가를 ‘타고났다’고 믿게 된다. 반면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진짜 능력은 경시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248,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예술가를 특별하고 천부적이고 사회의 틀 밖에 존재한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 유럽이었다. 부유층이 본격적으로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예술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부유한 상인들은 가족과 재산을 화폭에 담는 데 최고의 예술가를 고집했기 때문에 예술가도 고유의 명성을 누리기 시작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252,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산업혁명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집을 꾸미는 데 쓸 돈이 넘쳐나는 새로운 부르주아층의 형성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예술과 노동은 정반대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대량생산이 확산되는 시대지만 예술은 기계로 생산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예술에 가치가 더해졌고, 공장에 밀려 장인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도 더 확실해졌다. 한때 ‘능력’ 정도의 의미를 지녔던 예술은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순수예술과 비슷한 급으로 격상되어, 사실 배운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따라서 예술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 예술가는 일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은 더 이상 종교적 가치가 필요 없었다. 그 자체로 더 높은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253~254,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현대 예술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업화 되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 거장 예술가들은 대형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수많은 인턴 또는 예술 종사자들이 함께 모여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대신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종종 이들도 가혹한 노동조건과 박봉에 시달립니다. 이는 현대로 넘어올수록 예술이 점차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예술의 생산 단계부터 유통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본이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죠. 그나마도 성공이나 명성을 얻지 못한 다수의 예술가나 종사자들은 헝그리 정신이라는 명목으로 열악한 근무조건에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AI가 예술의 속성과 본질을 정당한 보상이나 저작권법의 준수 없이 무단으로 수집하고 재생산 하는 것도 분명 문제죠. 하지만 이는 AI-예술가라는 하나의 구도만을 조명할 뿐 더 대형예술가와 거기에 고용된 종사자, 미술관이나 스튜디오 같은 산업화된 예술 기관과 단독예술가의 관계 같은 다양한 관계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예술가와 예술을 착취하고 창의성을 고갈시키는 문제 못지 않게, 기존 예술의 영역에서 소외되는 직군과 불공정 또한 개선되어야 하죠.
한편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는 직원들이 노조 결성을 고려 중이라는 소문이 돌자 자신의 ‘24시간 작업실’에서 일하는 조수들을 대량 해고했다. 쿤스의 ‘공장형 작업실’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고 현재는 팟캐스트 <예술과 노동Art and Labor>을 운영 중인 루시아 러브Lucia Love는 이렇게 말했다. “공장 안에 창문도 없는 작업실에서 야간 근무를 했어요. 작업 내내 정말 햇빛을 본 적이 없다니까요. 작업장은 밝은 형광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작업도 정말 힘들었죠. 200개의 미묘하게 다른 색깔을 배합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러고는 기를 죽이려고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해고하며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전시회가 이제 끝났으니 모두 다 데리고 있으면서 급여를 줄 수는 없잖아요?’”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276,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브루클린에 있는 도미노 설탕 공장에 전시된 카라 워커Kara Walker의 거대한 작품 <설탕 스핑크스Sugar Sphinx>는 워커의 스케치를 기초로 거의 20명이 되는 제작팀, 3D 조각과 연마작업을 담당하는 ‘디지털 아틀리에Digital Atelier’와 ‘스컬프쳐 하우스 캐스팅Sculpture House Casting’ 같은 회사들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작품을 보도하는 기사 후반에 워커를 도왔던 사람들이 이름도 언급되지 않고 감사한다는 표현으로 한 문장 안에 유령처럼 휙 등장하긴 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277,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4장 아일랜드의 예술가 이야기도 제가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예전에 산업혁명과 기계의 발달, 자동화는 신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했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가장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ai가 작사 작곡도 하고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에 대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 "영원을 향하여"에서 ai가 시를 쓸 수는 있어도 시를 감상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저는 여전히 ai는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통계를 바탕으로 창의를 흉내낸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칸트가 정의한 예술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사실 기계와 사람의 협업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텐데 결국 자본주의는 ai 기술을 핑계로 어떻게든 창작자들을 착취하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겠죠.
@Alice2023 님, 의견 감사합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주체들의 의도가 조금씩 다를 순 있어도 어느 방향이든 창작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점 그리고 창작의욕을 침해하는 방향이라는 공통점이 문제 같네요. 요즘 돌아다녀 보면 건물 대형 전광판이나 지하철 스크린 등에서 AI로 만든 듯한 인물들이 들어간 광고가 보이더군요. 또한 개인들은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가상 생성 AI로 본인들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시각적 수단으로 표현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작업물을 만들고 있죠. 기업은 비용과 제작기간의 절감이라는 관리적 측면을, 개인은 부족했던 창조의 욕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 두 방향 모두 기존 창작자들에게는 위협적이죠. 전자의 경우는 노동시장과 업무의 구조적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들의 생계라는 전체 파이 크기 자체를 줄이는 문제라면, 후자의 경우는 AI 사용자들이 본인도 의도하지 않게 창작자들의 작업물을 부당하게 사용하고 배포하는 '간접적인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죠. 책에서도 나오듯 일부 이미지 생성형 AI들은 데비안아트, 픽시브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그림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던 커뮤니티나 플랫폼의 자료들을 무단으로 학습자료로 사용한 이력들이 있습니다. 그림 실력이 없는 개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가의 그림체나 화풍을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정작 그 특성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고를 들인 작가들에게는 어떠한 인정이나 보상도 돌아가지 않죠. 만일 이미지 생성 AI의 개발자들이 이런 문제, 저작권과 창작자들의 생태계를 더 고려했더라면 이런 문제를 최소화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개발과정은 어느 순간부터 저작권을 무시하고 있었죠. '정당한' 방식으로 AI를 훈련하고 교육하려고 하면 저작권에 대한 보상 그리고 시간의 소요로 인해 경쟁에서 뒤처지는 구조적 압력이 이들에게도 작동했겠죠. 결국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AI가 개발의 시작부터 배포와 사용단계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내에서 통용되고 자본의 논리가 이를 합리화하는 한 AI는 절대로 가치중립적일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네요. 물론 이미 예술과 창작도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곳에도 대규모 자본의 논리가 이전부터 개입되어 있었죠. 하지만 AI시대의 창작가들이 겪어야 하는 문제가 이전가 다른 점에 대해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독립된 개인이 혼자 작업하든, 기업이나 대규모 스튜디오가 작업하든 창작활동을 위한 여러 방면의 노고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작업물의 흥행이나 질적 수준 또는 정당한 보상은 별개로 하더라도 개인이든 단체든 창작의 고통은 모두가 겪어야 하는 문제였죠. 심적으로 괴로워 해야 하고,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도 흥행에 실패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AI가 현재 모방하고 있는 창조활동은 그런 기존 시대에 당연시 되었던 창작의 고통이 이제 의미 없다는 듯 무한한 자가복제의 형태로 불어날 여지가 생겼다는 점일 겁니다. 이전에 적었던 내용처럼 산업혁명 시기에 오히려 예술이 가치를 부여받게 된 이유는 공산품들과는 다른 생산의 희소함에 반비례하는 가치의 농도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제 공장처럼 찍어내는 수준을 넘어 복사와도 같이 불어나는 AI의 작업물들은 더이상 희소성은 없게 되었죠. 모래알처럼 늘어나는 복제품을 보면서 우리가 가치를 느끼기는 어려울 겁니다. AI를 통해 예술적 기교와 접근이 어려웠던 개인들이 자신의 창작욕구를 표현할 날이 왔다고 보고 싶지만, 그보다는 '좌우 안 가리고 직진'으로 향하는 길이 뚫린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공감합니다. 창작자들의 수많은 노력을 데이타로 차곡차곡 쌓은 뒤 무한 증식해서 기존 창작자들의 노력을 평가절하시켜 버리는 현실에 대해 장강명 작가님의 책이 떠올랐어요. AI 가 훌륭한 작품을 1000개씩 찍어낸다면 사람이 정녕 거기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셨죠. 작품 자체에 대한 감동뿐만 아니라 그런 작품을 만든 창작가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희소성에 대한 것까지 함께 통틀어서 "감동" 이라고 하는것 아닐까요.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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