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클래식 2025] 12월, 파이 이야기

D-29
1996년 봄, 내 두 번째 책인 장편소설이 캐나다에서 출간됐다. 성공하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당황하거나, 썰렁한 칭찬을 하는 정도였다. 또 독자들은 이 책을 무시했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노릇까지 불사하며 언론 홍보에 주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책은 꿈쩍하지 않았다. 내 책은 동네 야구에 출장을 기다리는 후보 선수 아이처럼 서점 서가에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내 책은 키만 껑충할 뿐 운동은 못하는 어린이 선수 같았다. 책은 곧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지금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대단한 성공작이다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재창조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만난다 그런 그조차 어릿광대나 곡예사처럼 언론 홍보를 불사함에도 출장을 기다리는 후보선수처럼 그의 책은 서점의 서가에 덩그라니 꽂혀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경험이 있었다니 왠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내게 그곳은 지상낙원이었다. 동물원에서 자라면서 좋은 기억밖에 없다. 난 왕자같이 살았다. 어느 토후국 왕의 아들이 이렇게 넓은 땅에서 뛰어놀았을까? 어느 궁전에 그런 동물원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내 자명종은 당당한 사자들이었다. 사자들은 스위스 시계같이 정확하진 않아도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반드시 포효했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야생동물들은 가차 없는 서열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언제나 공포를 느끼고, 먹잇감은 부족하고, 영역을 사수해야 하고, 기생충을 참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야생동물들은 공간도 시간도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론적으로는—즉 단순한 물리적인 가능성 면에서—동물은 인습과 자기 종족에게 지워진 경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내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입니다 이름의 철자 밑에 두 줄을 그었다. 간단히 부르면 파이 파텔 인심 쓰는 셈 치고, 이렇게 덧붙였다. π = 3.14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책도 읽었지만, 저는 영화에서 이 대사 부분을 내레이션하는 배우의 독특한 발음과 말투를 잊을 수 없어요. 영화는 몇 번 봤는데, 책은 재독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막 뛰네요. 언젠간 꼭 영어로 읽으려고요! (근데 영어가 원문인 책 맞죠? ㅎㅎ)
멋집니다~ 영어원서로 읽기!!^^ 실은 전 그 유명한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완독하면 영화도 뮤지컬도 보고 싶습니다~♡
오오 저는 이번에 완독하고 영화보려고요!!! 영상으로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기대되네요!
파이가 파도에 휩쓸리면서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아빠! 엄마!"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화들짝 놀라실 거예요. 힌두어로는 다르게 발음하던데, 인도인에게 물어봤더니 아마 방언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님 제 귀가 이상하거나요 ㅎㅎ
헉 열심히 봐볼게요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인도인 친구분도 계신가요? 대단하잖아요~~~
친구는 아니고 어쩌다 말할 기회가 생겼는데, '파이이야기'까지 얘기했네요. ㅎㅎ 파이이야기는 아이랑 꼭 같이 보고 싶은데, 노잼이라며 거부하네요. 원래 책 안 읽어 주는데 이 책은 꼭 읽히고 싶어 책도 읽어 줬는데, 다섯 페이지쯤에서 "도대체 언제 재미있어지는거야? 너무 재미없어." 하더라고요 ㅜ.ㅜ
요정님 파이이야기가 인생책이군요!!!! 선정 이유가 있으신가요? 파이이야기가 모험소설이라고 하기엔 꽤나 무서운 장면이 많아서 아이들이 재밌어하려나 싶긴 하네요 크크 오히려 어른들이 좋아할 거 같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파이가 바다에서 표류하기 전까지예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너무 재미있고 다 제 마음 속에 콕콕 박혀요. 특히 세 종교인이 파이를 둘러싸고 싸울 때요.
엇 저도 1부에 세 종교인이 만난 장면이 너무 재밌었어요!!! 오히려 표류 전 부분을 제일 좋아하시군요? 영화에서는 종교대충돌 싸움이 없어서 좀 아쉽더라구요~~
맞아요~저도 아쉽긴 했지만, 이안 감독님이 정말 영화를 잘 만든다고 느낀 게 책 내용을 다 넣을 수 없을 때 어떤 것을 넣고 빼느냐를 잘 선택해서 통일성 있게 작품을 잘 만드신 거 같다는 점이에요.
어제 봤는데 정말 엄마! 아빠! 더라구요....!!!! 자막에서 더빙이 되는 순간... 방언인가보군요. 요정님 말씀해주신 거 떠올라서 더 재밌었어요~~~
이제 아시겠지. 사람이 동물원의 사자 굴에 떨어졌을 때, 사자가 몸을 찢는 것은 허기 때문이 아니고—동물원에는 먹이가 풍부하다—피에 굶주려서도 아니고, 자기 영역을 침범당했기 때문임을.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헤디거는 “두 생물체가 만나면, 상대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우월하다고 인식된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서열은 싸움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서열이 정해진다”라고 했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힘보다는 머리의 문제다. 조련사는 심리적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국적인 환경, 조련사의 꼿꼿한 자세, 차분한 태도와 흔들림 없는 눈길,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가는 태도, 이상한 소리(예를 들면 채찍 휘두르는 소리나 호루라기 부는 소리)……. 이런 것들이 동물의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을 심어주게 된다. 그래서 동물은 자기 처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그것은 동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점이기도 하다. 만족한 이인자가 뒤로 물러서면, 일인자는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소리칠 수 있게 된다.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자, 신사숙녀 여러분. 진짜 불이 붙은 후프를…….”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다른 서커스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동물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열등한 동물이 주인과 사귀기 위해 가장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가장 충직하고 가장 필요한 동반자임을 증명해 보인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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