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클래식 2025] 12월, 파이 이야기

D-29
힘겹게 받은 피에서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한 모금 마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미지근하고 동물적인 맛이 났다. 첫인상을 기억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나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쭉 들이켰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조난자가 되는 것은 우울하고 지친, 상반된 것들 속에 붙잡힌 것과 같다. 환할 때는 트인 바다가 눈멀게 하고 두렵게 한다. 어두울 때는 어둠이 폐소공포증을 일으킨다. 낮에는 더워서 시원하기를 바라며, 아이스크림을 꿈꾸면서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싶어진다. 밤이면 추워서 따스해지기를 바라며 뜨거운 카레를 꿈꾸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싶어진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사람은 무엇에든 익숙해진다 — 이미 그 말을 했던가? 생존자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죠? 사랑이라는 건 믿기 힘들지 않나요?” “파텔…….” “예바른 태도로 날 물먹이지 말아요! 사랑은 믿기 힘들죠. 어느 연인한테든 물어보세요. 생명은 믿기 힘들어요, 어떤 과학자한테든 물어보라구요. 신은 믿기 힘들어요, 어느 신자한테든 물어봐요. 믿기 힘들다니, 왜 그래요?” “우리는 그저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것뿐이에요.”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 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 — 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저…….”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완독했습니다. ^^
저도 완독했습니다^^
리처드 파커, 다 끝났다. 우린 살아 남았어. 믿을 수 있니?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할 신세를 졌구나.네가 없었다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제 네가 가야 될 곳으로 가렴.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맥시코 해안에 도착한 후 밀림을 향해 사라지는 리처드 파커를 보며 파이가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마음으로 인사를 보냅니다. 리처드 파커의 존재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고 나서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질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은 품위있고 부유한 남편과 결혼하여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고, 한 명은 폭력적인 남편과 가난으로 매일매일을 투쟁하듯 살아갑니다.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 같았던 사람은 자살을 선택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음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이야기죠. "바쁘게 지냈다. 그게 생존의 열쇠였다." "시간은 우리를 갈망하게 할 뿐인 환영인 것을. 내가 살아남은 것은 시간 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리처드 파커를 조련하고 그의 먹이를 챙기는 당장의 단순한 필요들이 파이를 생존하게 한 것처럼, 지금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도 각자 가지고 있는 여러 이유의 분주함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파이가 배 안에 리처드 파커가 아니라 초식동물인 토끼와 있었다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삶의 고난은 삶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있... 이라고 쓰려고 보니 무슨 설교 말씀 같아서 재미가 없네요 ㅎㅎ 일 년 동안 그믐과 함께 독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올 한해가 또 특별해졌네요. 건강하시고 멋진 새해 맞으시고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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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12월 4주차 (3부. 멕시코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 ■■■■ ● 함께 읽기 기간: 12월 22일(월) ~ 12월 28일(일) 이번 주에 읽을 3부는 책의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 숨어있는 부분입니다.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파이에게, 일본 해운회사 직원 두 명이 배 침몰 사고의 진실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파이는 그들에게 2부에서 우리가 읽은,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한 227일간의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며 증거를 요구하고, 파이는 그들에게 또 다른 버전의, 현실적이지만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던져집니다. 작가는 이 대결을 통해, 진실과 이야기, 현실과 신앙 사이의 경계에 대해 독자들을 깊이 사유하게 만듭니다. 🎄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마음이 들뜨는 시기이지만, 차분히 책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더욱 뜻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완독을 끝까지 응원할게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4-1. 어떤 점이 인상 깊으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들려 주세요. 책 내용과 상관은 없지만 연관되어 떠오른 다른 생각들도 좋습니다.
4-1. 저도 완독했습니다! 드디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니 뿌듯해요. 덕분이에요. 다른 버전의 이야기는 더 잔인했네요 파이가 가족을 잃고 혼자 바다 위에서 조난 당해서 고생했었던 사실을 같지만 두 이야기가 무척 달라요. 몇 백페이지에 걸친 파이의 조난 이야기가 단 몇 장으로 축소되는 걸 보니 사람은 제대로된 이야기 없이는 삶을 무척 납작하게 보겠구나 싶었고요. 책 끝 부분에 신형철 평론가님이 남겨준 글에서 우리는 각자의 망망대해에서 자기기만과 자기연민에 지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파이는 그걸 했다고 느꼈어요. 저도 그러고 싶다고, 그래야 한다고 다짐 해봤어요.
@도리님 완독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읽고 있는 중인데 계속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라는 중입니다ㅜㅜ 이 책 어린이 동화 아니었을까요??^^;; <파이이야기> 읽는 동안 등장했던 얼룩말, 바다거북, 그리고 사람이 어둠 저편에서 왠지 저를 따라다니는 느낌입니다 차무진 작가님 작품 이후 이렇게 잔상이 오래 남는건 오랫만입니다 ㅜㅜ 차근차근 완독해 나가겠습니다~!!^^
@거북별85 님 완독 축하 너무 감사드려요~ 미리 열심히 읽고 계셨으니 차근차근 멋지게 완독할 것 같습니다 :) 말씀처럼 저도 책에 예상보다 무섭고 그랬어요. 하지만 희망찬 모험보다 이게 더 현실감 있어서 와닿기도 했고요. 알쏭달쏭 한 점도 있어서 더 매력적인 책 같고요. 날이 부쩍 추워졌는데 파이이야기와 함께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4-2.마음에 남은 문장을 적어주세요.(댓글창 아래 있는 문장수집 기능을 이용해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4-2 막상 3부는 충격적이라 표시한 문장이 없었는데 evvi님과 초록단풍님이 남겨주신 문장들 참 좋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파이가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느 이야기가 더 낫냐고 물어봤을 때 첫 번째 이야기라고 대답을 들은 후 울던 파이의 모습이에요. 어떤 마음이었을지, 저는 차마 알 수 없는 부분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에 계속 걸리더라고요.
전 그믐 파티 끝난 다음날 완독했는데요. 파이가 두 개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더 좋으냐고 하는 부분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 '잔혹한 진실' 쪽입니다. 파이의 환상적인 이야기는 참 좋지만, 은유나 환상은 진실을 어떻게든 덮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하여 제가 완존 T일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 F더라고요!! 저도 제가 F라는 거에 놀랐습니다.
올해 본 여러 편의 연극 중 <미러>라는 작품이 참 좋아서 3차 관람까지 한 경험이 있습니다 관객(독자)에게 고단한 삶을 버틸 희망을 주는 것이 과연 좋은 연극(책)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잔혹하더라도 진실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자칫 희망을 준다는 핑계로 사실을 왜곡하고 눈먼 선택을 유도하면 안된다는 거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 파이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동물이 나오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억의 왜곡이나 자기합리화가 아닌, 삶을 버틸 힘을 가지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믐의 에로티카, @꽃의요정 님이야말로 매우 F 십니다 다 드러나요~! ㅋㅋㅋ
”리처드 파커, 다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믿을 수 있니?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 할 신 세를 졌구나. 네가 없었으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 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제 네가 가야 될 곳으로 가렴. 너는 평생을 동물원의 제한된 자유 속에서 살았지. 이제 밀림의 제한된 자유를 알게 될 거야. 잘 지내기를 빌게.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친구가 아니란다. 하지만 나를 친구로 기억해주면 좋겠구나. 난 널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분명해. 너는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을 거야. 이 쉿쉿 소리는 뭐니? 아, 우리 배가 모래에 걸렸나 보다. 자. 잘 가, 리처드 파커. 안녕.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 ㅡ 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 ㅡ 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나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파이 이야기 - 개정판 311,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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