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동물들은 가차 없는 서열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언제나 공포를 느끼고, 먹잇감은 부족하고, 영역을 사수해야 하고, 기생충을 참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야생동물들은 공간도 시간도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론적으로는 — 즉 단순한 물리적인 가능성 면에서 — 동물은 인습과 자기 종족에게 지워진 경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예컨대 평범한 관계 — 가족, 친구, 사회 — 속에 살던 상점 주인이, 주머니에 든 잔돈푼만 갖고 모든 걸 버리고 입은 그대로 자기 인생에서 걸어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굉장히 대담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도 낯선 곳을 배회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인간보다 기질이 더 보수적인 동물이 그럴 수 있을까? ”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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