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51. 무라카미하루키, 바람의노래를들어라, 완벽한문장,다시읽기, 감상과기억

D-29
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인생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생책 5문5답] 인생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준 책.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를 주는 책. 당신의 인생책을 알려주세요. 함께 읽고 나누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와 인생책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주인공 '나'는 방학동안 고향에서 시간을 보낸다. 18일동안 있었던 일들. 과거의 기억들. 의문들. 마치 어떤 하루의 한 장면같이 느껴지는 짧은 소설. 독자인 나 또한 질문으로 가득했던 '청춘'으로 명명되는 과거의 시간을 통과했기에 소설 속 '나'가 되었다가 친구인 '쥐'가 나인가 했다가 '그녀'로 불리는 이들 중 하나가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청춘을 두번 살아낼만큼의 나이를 먹은 지금도 삶의 어떤 의문들은 왜 하나도 풀리지 않은걸까. 다시 읽어보니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삶은 불안하고, 죽음은 무섭고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수일에 걸쳐 겪어낸 사건인데도 시간이 흘러 기억은 깎이고 덧붙은 모양으로 응축되어 하룻밤의 소동으로 끝난듯 가라앉아있었다. 황정은의 문장들이 내 기억을 휘휘 저어 떠다니게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 그날 이후로 사실은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작은 일기>를 읽고 있다.
Q2 이 책이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 익숙하고 그의 책은 너무 흔하다. 가장 최근의 작품까지 나는 그의 글들을 가장 많이 먹어치웠다. 읽게 된 것도 쓰게 된 것도 그 영향이 가장 크다. 요즘의 나에겐 리베카솔닛이나 올가토카르추크의 글이 더 신선하고 궁금하지만 내가 '소의 위장에서 꺼낸 풀 뭉치'처럼 곱씹었던 문장들의 대부분은 하루키로부터였다. 너무 뻔하고 촌스럽다 생각해서 인생책이라는 이름 붙이기를 망설였다. 다시 읽어보니 나는 또 질문을 간직한 채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죽어도 해결되지 않을 질문이란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니.
일기를 쓰기위해 하루의 구석구석을 뒤져보기. 어제와 너무도 같았고 안부를 걱정했고 죽음을 말했다. 바람의 모양대로 흔들리는 나무와 파도를 오래 바라봤다.
Q3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거예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나 여운이 없었다. 대략 15년전.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다 버릴까 했는데 너무 깨끗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키의 수많은 책들과 함께 책장에 남겨두었다. 며칠 후 한 소설가가 '소설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첫 작품'이라 평하는 글을 읽었다. 간신히 내 공간에 살아있는 책에게 이런 우연이 생기면 인생이 소설인지도 모를 생각에 짜릿하다. 의문과 믿음이 적당히 섞인 마음으로 책을 펼치는 순간.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첫 문장부터 통했다. 나를 관통했다. 지금의 나는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을 수 없어서 눈 앞에 있는 한장의 그림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관람객처럼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접어두었던 자리가 있었다. 너무 작은 dog-ear. 후루룩 넘겨볼땐 발견하지 못했다. '모두 마찬가지야'라는 문장위에 찍힌 방점의 의미를 나는 그때 알았을까, 내 무의식 속에 남아 어딘가로 이끌었을까. 체념과 의지가 섞인 무정형의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실망할 각오를 하고 기대없이 한 시간을 책 읽기에 투자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달리기나 할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읽었던 때처럼. 근데 인생은 결국 후회로 탑을 쌓고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일지 모른다.
찬바람이 부는 날 아침에는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해. 새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의 질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야하니까. 나도 누군가의 뒤를 따라 이어지는 지도를 그려내는 중이라 생각해. 의미없어도 괜찮은 지도 한 장이 생길거야.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누구에게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마음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 동안 그 결심을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쿨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1년 내내 서리제거제를 넣어주어야 하는 구식 냉장고를 쿨하다고 부를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렇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p. 106,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실 분들은 아래 주소에 입장하여 참여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pecial/5qna 전 국민이 자신의 인생책 한 권씩 소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작년에 소를 해부한 적이 있어." "그래?" "배를 가르고 보니까 위장 안에는 한 줌의 풀밖에는 들어 있는 않는 거야. 나는 그 풀을 비닐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책상 위에 놓았지. 그리고 뭔가 불쾌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풀을 바라보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왜 소는 이렇게 맛없어 보이는 비참한 풀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몇 번씩이나 되새김질해서 먹는 걸까 하고 말이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p. 126,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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