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푸코는 3년간의 규정과는 달리 티에르 재단에서 1년만을 보냈다. 이미 윌름 가에서도 겪었지만 이 공동생활을 그는 참지 못했다. 물론 각자가 독방을 썼으므로 비교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여하튼 1951년에 모집된 10명과 전해의 연구생까지 합쳐 20여 명이 함께 사는 기숙사임에는 틀림없었다. 매끼 식사를 이들과 함께해야만 했다. 거기서도 푸코는 거의 전원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고 소란을 피웠으며 분쟁을 일으켰다. ”
『미셸 푸코, 1926~1984』 p.7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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