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코는 스스로의 지적·정치적 도정을 재구성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가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결코 니체 사상에 의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니체 읽기는 훨씬 뒤에 이루어졌고, 여하튼 니체가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1953년경이었다는 것이 증인들의 말이다. (94쪽)
푸코가 자신을 ‘니체적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크게 감동을 받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용하면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던 위대한 작가들, 예컨대 바타유, 블랑쇼 등을 발견했을 때 그가 아직 현상학이나 맑시즘의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타유나 블랑쇼 같은 작가들 덕분에 그는 철학과 정치학의 기존 개념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작가들의 발견이 사르트르의 매개로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사르트르는 1948년에 나온 『상황』 1권에 그들에 대한 긴 해설을 싣고 있다. “우리는 바타유와 블랑쇼를 사르트르를 통해 알았으나 사르트르와는 정반대의 독서법으로 그들을 읽었다”라고 자크 데리다는 설명한다. 여하튼 푸코에게 있어서는, 그가 나중에 여러 번 말했듯이, 그들이야말로 ‘니체의 사상’으로 인도하는 진정한 통로였다. 그는 또한 르네 샤르와 베케트도 발견했다. 1953년에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상연되었다. “놀라움으로 숨이 막힐 듯한 공연”이었다. (104-105쪽)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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