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렇게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ㅎㅎ
유튜브에서 장 바라케의 음악을 검색해보니 매우 난해합니다..;;;
피아노 소나타
https://youtu.be/HaJOta-EhxQ?si=oHVNDb8wJ9E3AMlu
Chant après Chant
https://youtu.be/P7GOZTqa3hQ?si=w8WfcUgJPTSkmrb0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borumis

향팔
현대음악은 정말 듣기 힘들더라고요 ㅎㅎ 옛날 모스크바에서 반년살이할 때 저녁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꽁짜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프로그램이 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갔었거든요. 근데 가서 딱 봤더니 앗 오늘은 현대음악 하는 날이다? 그럼 그냥 바로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밥심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가 현대 음악의 난해함을 부추겼다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기존 클래식 음악에 한계를 느끼고 무조성 음악 등 새로운 시도가 막 이루어질 때(마치 추상화 등 현대미술이 기존 미술에 한계를 느끼고 등장했듯이) 독재자들이 기존 음악을 옹호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퇴폐음악으로 지정하고 탄압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망명도 하고 살아남은 음악가들이 반발심에 더 난해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러한 의견을 담은 책을 소개해봅니다. 저도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 그나저나 모스크바에서 오래 지내셨군요. 러시아에 한번 쯤은 가보고 싶은데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 저도 현대음악은 못 듣겠어요. 친구 아내가 피아니스트라 가끔 연주회에 초대받아 가는데 한번은 선곡이 모두 현대음악(존 케이지 등의 작품)이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다신 듣고 싶지 않아요.

전쟁과 음악 - 양차 대전과 냉전, 그리고 할리우드지휘자의 삶과 예술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 『지휘의 발견』, 음악을 듣는 기쁨과 클래식 음악의 표준 레퍼토리를 상세히 설명한 『클래식의 발견』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클래식 음악 감상의 지평을 넓혀준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신작 『전쟁과 음악』을 통해 클래식 음악사에서 사라진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비밀을 파헤친다.
책장 바로가기

향팔
네, 저는 그때 처음 몇 번은 현대음악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앉아있다가 너무나 괴로웠던 나머지.. 그담부턴 프로그램에 현대음악 찍혀 있으면 그냥 발길을 돌렸죠 ㅎㅎ 한때는 러시아-북유럽 세트로 꾸려서 여행 많이들 가셨었는데 장차 어찌될런지.. 그나저나 알려주신 책 흥미로워 보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한테 퇴폐음악가로 단단히 찍히는 바람에 생존을 위해 작곡 스타일을 바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데, 그 사연도 책에 나오려나요.

borumis
예술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변질되는 나쁜 예네요..ㅜㅜ 그래도 스트라빈스키나 쇼스타코비치는 좋아하는 작곡가인데.. 바라케는 제게는 넘사벽이네요;;

borumis
저도 바흐같은 고전적 작곡가가 더 좋아요.. ㅋ 그나마 피아노는 들을 수는 있는데 바이올린 소나타는 정말 귀가 아프더라구요;;;

거북별85
“ 바라케가 1969년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내게 '천재란 절망에 잠긴 엄격한 정신'이라는 주네의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푸코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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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정신병의 정의가 나온다. 즉 정신병이란 "인간이 역사적으로 소외되는 사회 안에서의 모순의 결과다. 그렇다면 정신과 치료를 새로운 방향으로 해야만 할 필요성이 생긴다. "언젠가 환자가 소외의 운명을 겪지 않게 되는 날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정신병을 인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ㅇ다. 그리고 푸코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지 않고는 치료가 불 가능하다. ....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심리학도 인간을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정한 심리학은 심리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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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믄요
이제야 책이 와서 늦게 시작합니다. 철학에 약해서 어려울 것 예상하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연해
“ 그의 생각에 실존분석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에 정신분석은 가혹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신분석이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비현실화'했다고 비난했다. ”
『미셸 푸코, 1926~1984』 p.12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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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푸코의 표현은 이 사설과 놀랍게도 비슷하다. 예를 들면 '갈등의 심리학'이라는 장에서 파블로프의 가설을 소개한 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위 환경의 조건이 자극과 금지의 변증법적 운동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방어에 대한 금지가 자리 잡는다. 병은 방어의 한 형태다." 그것은 결국 "정신병이 들었기 때문에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었기 때문에 정신병이 된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
『미셸 푸코, 1926~1984』 p.12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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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다시 말하면 실증심리학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신병리학이 심리적 경험의 한 근원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것은, 정신병이 거기서 어떤 숨겨진 구조를 끌어내거나 또는 인간이 거기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좀더 잘 알아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거기서 자기 모순의 절대적 요소 또는 그 진실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인 질병은 건강의 심리적 진실이다"라고 그는 썼다. 자신의 근원을 잊는 심리과학에 그 '영원히 지옥 같은' 소명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심리학은 지옥의 회귀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푸코는 결론을 내렸다. ”
『미셸 푸코, 1926~1984』 p.13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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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book
“ (중략) 그러나 '고백' 자체가 푸코에게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듯 민감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 민감성은 새로운 컨텍스트(1968년 이후라는 컨텍스트)속에 투영되기를 거부하는 과거의 정체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70년대의 그의 모든 텍스트에서 우리는, 그 자신도 말하고 남들에게도 말을 시키려 는 사람들의 재촉을 거부하고 피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서도 우리는 일상생활의 1차적인 경험이 학자의 이론적 탐구와 역사적 전망의 근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
『미셸 푸코, 1926~1984』 p.56-5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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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book
성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내 해석이 맞나?

Dreambook
“ 여하튼 푸코가 쓴 120페이지의 서문은 그 당시 그의 지적 경향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자료다. 그리고 좀더 심층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그의 불안과 그때 이후 그가 제기했던 문제들, 그리고 그의 작품의 기원을 그 단초에서부터 파악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다. 1983년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쾌락의 활용』서문에서 푸코는 빈스방거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 정신분석학자로부터 멀어졌는가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경험의 형식들을 그것들의 역사 속에서 연구한다는 생각은 꽤 오랫전에 내 머릿속에서 구성된 것이었다. 나는 정신병의 영역과 정신의학의 장에서 실존분석의 방법을 사용해 보고 싶었다. 서로 상관이 없지 않은 두 이유 때문에 이 계획은 나를 매우 불만족스럽게 만들었다. 그 첫번째는 경험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실존적 정신분석은 이론적으로 불충분했고, 두번째는 실존적 정신분석과 정신과 치료행위의 관계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실존적 정신분석은 치료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난관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일반이론을 참조함으로써 해결하려 했고, 두번째 문제는 흔히 언급되는 '사회적ᆞ역사적 맥락'에 의존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시 지배적인 문제였던 사회사와 철학적 인간학의 딜레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이 양자 택일의 노름을 하기보다는 경험의 형식들의 역사성 그 자체를 사유해 볼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경험의 형식들이 형성되고, 발전되고, 변형된 영역, 다시 말해 사유의 역사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게 된 긴 여정을 펼쳐 보인 후 그는 "50년대 초 니체의 독서가 나를 현상학과 맑시즘이라는 이중의 전통과 단절시키면서 이런 종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
『미셸 푸코, 1926~1984』 p.87-8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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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book
본문보다 더 길고 완벽한 서문이라...놀랍도다..알듯 모를 듯한 문장들..

borumis
전 6장은 초반은 바라케와의 열렬한 사랑이야기, 후반은 정신병에 대한 푸코의 의견들이 흥미로워서 좋았네요. 안그래도 지금 '감시와 처벌'을 읽으면서 죄인과 결백한 자 간의 차이, 그리고 판결을 내리는 '권력'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게 된 것처럼 정신병 환자와 정상인 간의 차이와 전문가들의 진단과 치료의 전문성이라는 '권위'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YG
@개와고양이 @밥심 @향팔 제가 전공자라고 할 만한 깜냥은 아니라서 이런 건 안 하려고 했는데. 기록에도 남으니. :) 좀 더 깊이 있게 읽고 이해하신 분들이 설명을 덧붙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디디에 에리봉의 발췌를 중심으로 『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의 큰 흐름을 다소 도식적이고 거칠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예전에 대학원 공부할 때 메모해뒀던 걸 다듬었습니다.)
*
푸코는 『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에서는 광기를 놓고서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눕니다.
1. 그 첫 번째가 르네상스 시기입니다. 이때만 해도 광기는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배(바보들의 배, Stultifera Navis)를 타고 강을 떠다니기도 했죠. 푸코는 이때 광기가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비극적 광기(Tragic Madness): 보슈(Bosch)나 브뤼헐(Bruegel)의 그림처럼, 광기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우주의 무서운 진실, 혹은 죽음의 비밀을 보여주는 어떤 계시였습니다.
비판적 광기(Critical Madness):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처럼, 광기는 이성의 오만함을 비웃고 풍자하는 ‘대화 파트너’였습니다.
이성(Reason)과 광기(Madness)는 서로 다르지만, 아직 서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광기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일부였습니다.
*
2. 두 번째는 고전주의 시대(17세기)입니다. 17세기가 되자 이성과 광기 사이의 대화가 끊깁니다.
이때 ‘대감금(The Great Confinement; Le Grand Renfermement)’이 일어납니다. 파리에 종합병원(Hôpital Général)이 생기는데, 이건 병원이 아니라 거대한 수용소였습니다. 빈민, 거지, 부랑자, 방탕한 사람, 동성애자, 그리고 ‘광인.’
광기는 이제 신비로운 진실이 아닙니다. 노동하지 않는 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 즉 ‘비이성(Unreason; Déraison)’이라는 거대한 쓰레기통 속에 다른 부류들과 함께 쓸어 담긴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선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성의 확립을 위해 광기를 배제합니다. “내가 미친 사람일 수도 있잖아?”라는 의심은 “아냐, 사유하는 내가 미칠 리 없어”라며 광기를 이성의 바깥으로 추방해 버립니다.
이때의 감금은 ‘치료’ 목적이 아닙니다. ‘치안’과 ‘도덕’의 문제였습니다. 일하지 않는 게으른 자들을 격리하는 경찰 조치였죠.
*
3. 근대(18세기 말~19세기)에 들어서며 계몽주의와 실증주의 시대가 열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필리프 피넬이 광인들의 사슬을 풀어주며 그들을 해방시켰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푸코는 “그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감금된 무리 중에서 빈민이나 범죄자는 노동 시장으로 보내지고, 오직 ‘광인’들만 남게 됩니다. 이제야 비로소 ‘정신병원(Asylum)’이 탄생합니다.
광기는 이제 ‘비이성’이 아니라 ‘정신병(Mental Illness)’이라는 의학적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푸코가 보기에 이것은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육체를 가뒀다면, 이제는 “너는 정상에서 벗어났어”라는 죄의식을 심어주어 영혼을 가둬버린 것입니다. 대화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의사는 관찰하고 진단(독백)하고, 환자는 침묵 속에 대상화됩니다.
*
4. 하지만 푸코는 광기가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1부 7장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고야, 반 고흐, 니체, 아르토 등의 작품 속에서 억눌렸던 광기가 폭발하듯 튀어나옵니다. 푸코에 따르면, 이성적인 척하는 현대 문명은 이들의 광기 어린 작품 앞에서 오히려 자신을 변명해야 합니다. “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런 광기의 질문에 머뭇거리면서요.

YG
푸코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금 '미쳤다'고 부르는 기준이 절대적인 의학적 진리가 아니라, 17세기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적 발명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싶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나누는가?" 이 질문을 푸코 식으로 던진 것이죠. 당연히 이 주장은 아주 논쟁적입니다. 이후에 수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는데요. 저의 관심사에 따라서 하나만 소개해 드립니다. @개와고양이 @밥심 @borumis 님 모두 관심 가지실 법한 반론일 겁니다.
푸코의 작업은 엄밀한 역사학(특히 의학사)의 관점에서는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정신 의학의 역사(A History of Psychiatry: From the Era of the Asylum to the Age of Prozac)』(1997)로 유명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가 그 비판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입니다.
쇼터의 『정신 의학의 역사』는 푸코의 관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쓰인 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푸코가 ‘광기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Social Construction)’이라고 보았다면, 쇼터는 ‘광기는 뇌의 질병(Brain Disease)’이고 ‘역사적 시기와 상관없이 실재하는 생물학적 실체’로 보았습니다. 쇼터는 푸코의 책을 “정신 의학의 역사를 왜곡시킨 재앙”이라고 비판합니다.
1. ‘대감금’은 과장되었다.
푸코는 17세기 ‘대감금’을 통해 이성이 광기를 일시에 가두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쇼터는 통계 자료를 들어 반박합니다.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푸코가 말한 것 같은 대규모의, 국가 주도적인 일제 감금이 17세기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8~19세기까지도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가족이 돌보거나 지역 공동체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수용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푸코가 말한 시기보다 훨씬 뒤인 19세기 산업화 이후입니다.
2. 정신병원은 ‘요청’에 의해 생겼다.
푸코에게 정신병원은 권력이 광인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감옥입니다. 하지만 쇼터는 이를 ‘가족들의 고통’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합니다. (장애인 탈시설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과도 흡사하죠?) 정신병원은 국가가 억지로 가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정신질환자를 돌보다 지친 가족들이 제발 맡아달라고 ‘의뢰’하면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즉, 권력의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돌봄의 위기)가 수용소를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3. 광기는 ‘발명’된 게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푸코는 “정신 의학이 광기를 병으로 규정(발명)했다”고 보지만, 쇼터는 “정신의학은 원래 있던 병을 치료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봅니다. 조현병(Schizophrenia)이나 조울증 같은 주요 정신 질환은 고대부터 존재했고, 시대에 따라 이름만 달랐을 뿐, 그 생물학적 증상은 동일하다는 것이죠.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약물(클로르프로마진 등)이 환자들의 증상을 드라마틱하게 호전시킨 것이 증거라는 것이죠. ‘만약 광기가 사회적 낙인일 뿐이라면, 화학 약품이 어떻게 환청과 망상을 없앴겠는가, 어휴, 푸코.’ 이런 반론이죠.

YG

정신의학의 역사 -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18세기 말 치료 수용소의 등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세기 말 정신과 개원의의 조용한 진료실에서 끝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신의학을 장악했던 프로이트 이론은 겨울의 마지막 눈처럼 사라져 가고 있다. 정신의학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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