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월 16일 화요일에는 2부 3장 '댄디와 개혁'을 읽습니다. 1960년 가을부터 1966년 봄까지 클레르몽페랑 교수(철학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한 푸코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간에 그는 『임상 의학의 탄생』(1963)과 또 다른 중요한 저서 『말과 사물』(1966)을 집필합니다. 하지만 저서 얘기는 뒤로 미루고, 3장에서는 30대 중후반의 초임 교수로서 푸코를 이야기합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병적인 청년은 빈정대고 독설을 퍼붓지만 전반적으로 체제에 순응하고 때로는 권력의 연줄을 이용해서 고위 행정 관료도 될 뻔한 '댄디'로 변합니다. 심지어 68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해석되는 '교육 개혁안(푸셰 개혁안)'을 만드는 위원이 되어서 그 작성에도 참여합니다. 프랑스 대학의 교수의 모습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누구보다 강의는 성실하게 하는. 다양한 푸코를 이번 장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죠.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YG
@dobedo 그러고 보면, 푸코는 10대와 20대 초반/20대 후반과 30대/40대 이후에 아주 다른 삶을 살았네요.

거북별85
지금껏 읽은 부분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장이었습니다. 10대 20대 초반 병적이고 빈정대고 독설을 퍼붓던 푸코가 체제에 순응하고 고위직 공무원이 될뻔하고 주변인들에게 멋쟁이로 보이면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전 푸코가 클레르몽페랑 학장으로 부임한 가로디의 '지적 빈곤'을 지적하며 집요하게 공격해서 결국 그를 쫓아내는 모습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거북별85
“ 즉 가장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인이면서 동시에 고등교육 부국장이라는 행정적,정치적 기능에도 호감을 갖고 있는 그런 모습의 푸코 말이다. 푸코는 '아카데믹'한 사람인가? 그건 좀 아닌것 같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에 그가 고등사범의 입학시험관이며 국립행정학교의 졸업심사관이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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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가로디는 머리 좋은 학과장이 만들어 내는 온갖 야유와 저주를 그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화를 낼 때에도 그저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참고문헌란에 철자 하나만 잘못써도 푸코에게 불려 가 무능함을 가혹하게 질책당해야 했다. 철학과의 운영은 이런 식의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갈등은 가로디가 한 여학생에게 연구과제를 주면서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일으켰을 때 절정에 달했다. 가로디는 그녀에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수상록>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그 텍스트는 그리스어였다. 그 싸움의 장면에는 증인이 잇다. 왜냐하면 미셸 세르가 가로디와 연구실을 같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푸코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푸코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가로디에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붓고 직업상의 오류라는 죄목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위협했다.

거북별85
이 당시 클레르몽페랑 대학의 학장으로 지내던 가로디와 인터뷰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똑똑하한 푸코에게 2년간 집요하고 가혹하게 욕설을 듣던 심정이 좀 궁금했다. 가로디 학장에 대한 푸코의 지칠 줄 모르는 증오의 이유가 "지적빈곤"에 대한 분노라니!! 푸코는 공산주의자 이외에 가로디 학장같은 사람을 싫어했던건가??? ^^;;

거북별85
“ 그는 '댄디'(멋쟁이)였다. 이 말을 좀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료와 제자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매주 클레르몽페랑 대학에 강의하러 온 그는 댄디였다. 검은색 벨벳 양복에 흰색 스웨터 그리고 녹생의 두터운 모직 망토를 입고 다녔다.... 고등사범학교 시절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번민에 휩싸여 남들과 잘 사귀지 못했던 한 병적인 청년을 현재의 푸코에게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5.6년만에 옛친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외국에 나갔고 박사논문을 썼고 박사학위를 신청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오랜 부재 후에 나타난 푸코의 모습은 쾌활하고 부드럽고 경쾌했다. 냉소와 도발의 취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자신의 인격 속에 통합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여전히 그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으나 적어도 그는 자신과 그리고 타인들과 화해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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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정말 신기하다. 보통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잘 안바뀐다고 했는데....^^;; 5-6년만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다니.. 그의 위대한 학문적 깊이도 궁금하지만 이 부분도 정말 궁금하다....그리고 강의도 움살라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모든 강의가 철저하게 교육적이고 학생들에게 장황하게도 어렵게도 가르치지 않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클레르몽페랑 대학의 마지막 해에는 매시간 끝마다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수업도 정말 궁금하다.
이 당시 5-6년 간의 미셸 푸코의 변화 과정과 원인을 보기 쉽게 편집한 관찰예능프로가 한편 있었으면 싶다^^

borumis
라모의 조카도 못 읽고 칸트도 못 읽었지만 데카르트의 성찰은 읽어서 그나마 아는 내용이어서 구이에의 비평을 재미있게 읽었고 저도 어느 정도 동조하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오역이 아닐까?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역이 맞더라구요.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언젠가 칸트도 읽어보고 푸코를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물론 칸트의 번역은 그냥 '핑계'에 가까웠다지만;;)

borumis
그리고 책 절판과 STS 관련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STS 카테고리에 들어있고 과학 에세이 모음집이 조만간 절판될 예정이라고 하네요..ㅜㅜ 지금 밀리의 서재에도 올라와있는데 전탁수교수님의 '은하의 한구석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입니다. 일본, 미국에서 많이 일하셔서 그런지 마이니치, 아사히 등 좋은 평을 받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 같습니다. 12월까지만 나온다고 하네요. 주말 병렬독서로 읽을 예정입니다.

은하의 한구석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 -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이 세계의 작은 경이이론물리학자 전탁수가 쓴 과학에세이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의 참된 매력을 때로는 시적이고 때로는 흥미진진한 22편의 이야기들로 들려준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되어 제3회 야에스책 대상, 제40회 데라다 도라히코 기념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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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
“ 그러나 여하튼 정신의학적 진화그룹의 의사들이 ‘광기와 비이성’을 훨씬 호의적으로 본 것은 사실이다. 정작 그들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이 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여, 정신의학 기관들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도구를 거기서 발견하고 또 찾으려 했던 운동들에게 이 책이, 푸코가 즐겨 말한 대로 하나의 연장통'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때부터 푸코의 노력에 공감을 표시했던 사람들조차 그들의 판단을 수정했다. 약간 뒤늦게 영국에서부터 반정신의학의 물결이 밀려들었을 때 해당분야의 사람들은 적대감으로 몸을 꼿꼿이 하면서 이 책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다. 반정신의학 운동 주도자들의 확신과 태도가 이 책에서 동력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미셸 푸코, 1926~1984』 p.23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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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
푸코의 책이 반정신의학을 태동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 토대를 많이 제공했네요!
밥심
남자끼리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문명은 없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2부4장 276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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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고통받았던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통해 인간을 이루는 여러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지 않고 분리 및 배제하는 기존 관습에 항거한 푸코의 철학을 대변하는 발언이라 생각되네요.

YG
네, 저도 그 대목 읽으면서 같은 생각했답니다. (저는 역시 동성애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발언으로도 들렸고요.)

거북별85
@밥심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인간을 이루는 여러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지 않고 진정한 문명은 없겠지요^^

꽃의요정
전 얼마 전에 외국인 남자분이 내 남편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결혼이 인정되는 국가 출신이구나 했어요.
대부분 파트너라고 하시는데 husband라고 하셔서 법적으로도 기혼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다 누릴 수 있었음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냥 남편이라고 부르는 걸 수도 있지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12월 17일 수요일은 2부 4장 ‘시체 해부’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광기와 비이성』을 집필하고 나서 1966년 『말과 사물』이 나올 때까지 푸코의 저술 작업을 훑고 있어요. (『임상 의학의 탄생』과 잊힌 작가 레몽 루셀의 작품에 대한 책(『레몽 루셀』)
그 과정에서 앞에서 @dobedo 님께서 언급하셨던 니체와 푸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놓고서,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사람(모리스 블랑쇼, 조르주 바타유,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나옵니다. 특히 피에르 클로소프스키가 자세히 언급되고 있어요. (이번 장에서 나온 『니체와 악순환』(그린비)은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네요!)
결정적으로, 푸코가 니체를 수용하게 된 배경의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뒷부분에 나옵니다. 외과 의사 아들의 정체성을 가진 푸코의 개인사를 『임상 의학의 탄생』과 연결한 대목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거북별85
“ <광기와 비이성>의 집핑에 너무 정력을 쏟았던 미셸 푸코는 스웨덴, 폴란드, 독일 등지에서 보낸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출판하지 못했다. 그후 프랑스에 정착하자마자 그는 잇달아 책을 내고 저술 계획과 논문, 서문들.... 을 써 댔다. 이 다양한 상승세의 운동은 그가 튀니스로 떠나기 직전인 1966년에 <말과 사물>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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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임상의학의 탄생>이 푸코의 앞으로의 연구에 길을 열어 준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다. 이 책은 '개인에 대한 앎'의 가능성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의 문화가 개인에 대해 행했던 첫번째 과학적 담론이 이처럼 죽음의 계기를 거쳐야만 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사건이다. 서구인들은 오로지 자신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만 자신을 구성할 수 있었다. 또 잣신의 파괴를 참조함으로써만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스스로 담론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비이성의 경험에서 모든 심리학과 심리학의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의학사상 안에 죽음을 위치시킴으로써 개인의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생겨났다" 그 위에서 모든 인간과학,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에 대한 인식의 주체이며 객체가 될 가능성이 만개하게 될 그 토대를 죽음의 계기에서 발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미 <말과 사물>을 준비하고 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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