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그 당시에 스웨덴은 훨씬 자유스러운 나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곧, 어떤 자유의 형식은 억압사회와 똑같은 억압적 효과를 낸다는 것을 그곳에서 발견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13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저도 어릴 적에 해외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 부분이 참 공감 가더라구요. 몇년마다 다른 나라로 옮겨가면서 사는 것을 동경하는 분들도 많겠고 어찌 보면 저도 약간 exile같은 느낌으로 도망치듯 다른 나라로 갈 때도 있었지만 결국 어느 나라에 가든 그곳에 가면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똑같은 억압 그리고 결국 조금씩 다른 면모의 일상적 제약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걸 깨닫게 되더라구요. 부모님들도 주변 사람들도 제게 외교관을 해보지 그러냐고 많이 제안했지만 전 그런 생활에 질려서 오히려 성인이 되서는 외국에 나가길 싫어하는 사람이 된 듯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2월 15일 월요일은 2부 2장 '책과 그 분신들'을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도 『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가 나오고 나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또 그것이 나름의 궤적을 가지면서 어떻게 푸코의 책에서 세상의 책으로 바뀌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가스통 바슐라르(현대 철학에 크게 이바지한 과학철학자), 페르낭 브로델(아날학파의 태두), 미셸 세르, 롤랑바르트 같은 거장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생생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꿀잼은 이 책의 데카르트 해석에 대한 자크 데리다(해체주의의 창시자)의 논평에 대한 푸코의 반응과 그로 인해 촉발된 10년 간의 절교죠. :) 우리가 앞에서 잠시 살펴봤던 반정신의학 그룹에 의해서 이 책이 어떻게 연장통으로 활용되는지, 또 그 과정에서 푸코가 프랑스 정신의학계와 불화하게 되는 모습 등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마 2부 2장을 읽으면서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를 처음 들어본 분이 많으실 듯해서 잠시 소개합니다. 그의 과학철학은 현대 프랑스 철학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현대 사상의 여러 영역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답니다. 넓게 보면, 미셸 푸코도 바슐라르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Break) 바슐라르는 과학 지식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연속적’ 과정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지식, 그리고 그 지식에 들러붙은 직관·상식·통념과 완전히 결별하고 단절할 때 비로소 새로운 과학이 탄생한다는 것이죠. 이것을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앗, 이건?” 하시는 분 계시죠? 맞습니다. 토머스 쿤의 그 유명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선취한 개념입니다. 다만 바슐라르가 과학자 개인의 심리적 투쟁에 초점을 맞춰 단절을 강조했다면, 쿤은 이를 과학자 공동체의 합의된 세계관의 전환으로 확장한 셈이죠. (실제로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서문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바슐라르를 포함한 프랑스 인식론 전통에 빚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단절’의 개념은 푸코 사상에도 아주 짙은 영향을 줬습니다. 푸코가 역사를 ‘연속적인 진보’가 아니라 ‘불연속적인 단절’로 파악한 것 역시, 바슐라르의 인식을 역사와 사회 영역으로 확장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루이 알튀세르의 사상에서도 이 흔적은 뚜렷하게 발견됩니다.) 2. 현상기술(Phenomenotechnique) 바슐라르는 과학적 대상이 자연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론과 실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에 의해서 ‘구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죠. 이를 ‘현상기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앗, 이건?” 하는 분 계시죠? 맞습니다. 1970년대부터 영미권과 프랑스 등에서 시작해 오늘날 과학기술과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 틀이 된 과학기술학(STS)의 ‘구성주의적 관점’이 바로 바슐라르의 현상기술 개념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브뤼노 라투르 같은 사상가도 바슐라르의 적자인 셈입니다. 3. 인식론적 장애물(Epistemological Obstacle) 마지막으로 ‘인식론적 장애물’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경험, 유비적인 이미지, 섣부른 일반화 같은 것들이 장애물이 되어서 올바른 과학적 사고(추상화)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저도 깊이 알지 못해서 제미나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개념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인식론적 경계’ 개념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사회학 연구자가 자신의 계급적 배경, 학계에서의 위치, 엘리트적 편견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하는 성찰적 태도, 이것이 바로 인식론적 장애물과 싸우는 ‘인식론적 경계’입니다. 이 설명을 듣고서 제미나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아모스 트버스키, 대니얼 카너먼 같은 심리학자의 편향 연구와도 연결되지 않나요?“ 그랬더니 제미나이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바슐라르와 카너먼 모두 ‘인간의 직관은 믿을 만한가’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둘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연결된다고요. 바슐라르와 부르디외가 “상식, 직관, 통념”이라 부르며 경계했던 것을, 카너먼은 “직관, 휴리스틱, 편향(시스템 1)”으로 불렀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것이죠.
오오 아직 2부 1장을 읽고 있지만.. 브뤼노 라투르와 대니얼 카너먼.. 반가운 이름들이네요.. 몇달 전에 이마에 주름잡히며 씨름하던 작가들..ㅎㅎㅎ 이렇게 다들 연결되는 점이 재미있어요.
아! 저도 책 내용은 물론 제목조차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브뤼노 씨 이름 보는 순간 추억이 방울방울이네요
저는 대니얼 카너먼이요. 벽돌 책 모임에 처음 참여했을 때 읽었던 책이『노이즈』였던 터라... (하하) 벌써 1년이 됐다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연해 님, 작년(2024년) 12월부터 참여하셨었군요! 네, 우리가 『노이즈』 읽은 지 벌써 1년이 되었답니다. 1년간 꾸준히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는 게 신기해요. 저야말로 1년 동안 꾸준히 참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늘 감사합니다. 우리의 든든한 모임지기님!). 벽돌 책 모임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책들... (하하하) 여담이지만 최근 소식(과 결정)도 읽었어요. 제가 자세히 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YG 님의 행보를 계속 응원할게요:)
전 진짜 유명한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이런 분들의 책은 모임이 아니면 접해 볼 수 없는 게 매력 중의 하나죠. 아웃겨
저는 정작 그 유명한 책은 읽지 않고, 노이즈만 읽었더랬죠...(머쓱) 이렇게 또 읽을 책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습니다(행복하다아!!).
@꽃의요정 @borumis 님은 장맥주 작가님과 브뤼노 라투르 책 함께 읽지 않으셨나요? 제 기억에는 이 책이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아, 저는 그 모임을 같이 하진 않았고 리스트에서 살짝 봤던 기억이 납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모순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과학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합적 사유의 새로운 패러다임. ‘논란 속의 과학’을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에서 벗어나 정치-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하는 인문학의 지평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네, 맞습니다! ㅎㅎㅎㅎ STS란 게 이런 거였어?하고 깜짝 놀라게 한..^^;;;
어머, 역시 이해하고 읽으셨군요. 전 읽으면서도 그래서 그게 뭔데에에~하면서 읽었어요. @YG 저 위의 두 권도 읽었어요....표지는 알아 볼 수 있어요. 내용은....먼 산..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흔히 과학은 객관적이고 단일하며 보편적이라 여겨진다. 과학기술학(STS)은 이에 도전한다. 과학기술학자들은 ‘진리’는 왜 진리라 여겨지는지, ‘법칙’은 어떻게 법칙이 되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그 맥락을 들여다본다.
판도라의 희망 - 과학기술학의 참모습에 관한 에세이휴머니스트와 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가 기획한 과학, 기술, 사회를 생각하는 STS collection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과학전쟁에서 공격받았던 라투르가 고뇌 끝에 보여주는 과학학(과학기술학)과 과학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전 지금 세 권의 내용이 어느 내용이 어느 책인지도 헷갈립니다 ㅋ
푸코는 1972년에 데리다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반박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가? 미국 철학자 존 설이 1983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데리다와 '해체주의'를 공격했을 때 푸코와 나눴던 대화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었느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논쟁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요. 그건 이미 설득된 사람만 설득시키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은 더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1984년의 인터뷰에서는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후 논쟁자란 상대방을 "진리 추구의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래서 자기는 지식 세계에서의 이런 '전쟁'상태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리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1991년 한 학회에서 <광기의 역사>를 다시 거론하며 그것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그가 항상 이 책에 대해 갖고 있던 존경심과 그와 푸코를 연결지어 주었던 우정(데리다가 체코의 감옥에서 되돌아온 1982년 1월까지) 그들을 "거의 10여 년간 불편하 ㄴ관계로 만들었던 불화"를 상기시켰다. 이왕 내 개인적인 기억을 상기시켰으니 거기에 또 다른 기억을 덧붙여 보겠다. 1999년 내가 <게이 문제에 대한 고찰>을 출간했을 때 이 책에서 푸코에 대해 쓴 부분을 읽고 데리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 정도로 고통을 받았는지 나는 전혀 몰랐어요. 그런 고통이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타인들과의 관계를요.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을 수없군요." 죽는 날까지 푸코를 특징지었던 섬세한 감수성, 비록 그것을 병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여하튼 아주 예민한 그 감수성이 그의 '고통'과 깊이 그리고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한 권의 책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으로 혹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일단 세상에 나오면 책은 무한한 반복의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책 주위에서 혹은 책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곳에서 책의 분신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매번의 독서는 매순간마다 고유의 추상적인 육체를 책에게 준다. 책의 어떤 구절들이 책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떠돌아다니고, 이 사소한 구절들 속에 책 전체가 들어 있다는 듯이 겨겨지기도 하며 급기야는 이 구절들이 책의 피난처가 되기에 이른다. 수많은 해설이 책을 나도질하고, 마침내 책은 책 속의 담론과는 다른 담론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야 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했던 것을 고백해야 하며 떠들썩하게 꾸몄던 가식의 모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오래된 책을 정당화하려고도 오늘날에 재편입시키려고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책의 진정한 기준이 되고 또 이 책이 속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광기의 역사>가 갖게 될 새로운 의미들은 그러니까 1970년대에 푸코가 천착하게 될 '권력' 또는 '앎-권력'이라는 한 짝의 개념을 위한 정박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통일성의 원칙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이전의 책들을 다시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졌다가 적당한 시약을 바르면 종이 위에 나타나는 비밀문서처럼 그렇게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단어다 "라고 그는 두치오 트롬바도라에게 말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아니 어떻게 종교사학자가 광기의 역사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구조의 개념에 의해서입니다. 그가 신화에서 했던 것처럼 나도 경험의 구조화된 규범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규범들의 도식은 다양하게 변조되면서 상이한 차원으로 다시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13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오히려 전 종교 또한 어느 정도 광기에 휩쓸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단순히 fanaticism에 빠지는 것 외에도 mysticism 등 여러가지 면에서 광기와 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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