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의학적 인격체가 광기의 위상을 정확히 집어냈다 해도 그것은 광기를 제대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통제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리고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서는 지배를 의미할 뿐이다.(중략) 광기가 더 이상 밝은 햇빛과 대립되는 어두운 밤이 아니고, 그것에 대해 정상인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관찰 가능한 실재라면 우리는 이 진실이 광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자신이 광인이건 아니건 간에 광인의 수수께끼 속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광인들은 사람에 따라 자기 속에 인간의 진실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갖고 있지 않거나 하지만, 여하튼 그 진실은 그의 인간성이 추락할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컨대 "정상인과 광인은 이 상호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진실의 희미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비이성이 완전히 사라지려 하는 순간 그 횃불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어둠과 밤과 영원한 부정의 횃불, 여기 고야가 있다. "고전주의 시대에 비이성은 무(無)이며 밤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당혹했던 이 광기는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알았던 사람들-니체, 아르토-에게 거의 들리지않는 나지막한 소리로 그러나 분노와 절규에 이르도록 한없이 증폭시키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비이성의 말들을 전달해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그 말들에게 원시적인 힘을 복원해 주고 표현과 시민권을 줌으로써 서구 문화에 대한 인식의 단초를 주지 않았는가? 이 인식에서부터 모든 이의 제기, 전면적인 이의제기가 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중략) "광기는 새로운 승리와 계략, 광기를 측정하고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설명한다고 믿는 이 세계는 이제 거꾸로 그 광기 앞에서 자신을 변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논쟁과 노력 속에서 세계는 니체, 반 고흐, 아르토 등의 작품을 거슬러 자신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기에 대한 지식은 결코 이 세계에 확신을 주지 못하면 오로지 그 광기의 작품들만이 이 세계를 설명해줄 뿐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pp.176-17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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