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글로는 이 책을 안 갖고 있어서 못 담는데.. 꽤 인상적이에요. 첫 장 제목이 Las Meninas(시녀들)인데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제 책의 문장을 구글 번역기 돌려봤습니다.
어쩌면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에는 고전적 재현의 재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공간의 정의가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재현은 이미지, 그것을 바라보는 눈, 드러내는 얼굴,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몸짓 등 모든 요소를 통해 스스로를 재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동시에 한데 모으고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이 분산된 것들 한가운데, 사방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공허함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재현의 토대가 되는 것, 즉 그것이 닮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눈에는 단지 닮은 존재일 뿐인 사람의 필연적인 소멸입니다. 바로 이 동일한 주체가 생략된 것입니다. 마침내 재현은 자신을 가로막던 관계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형태의 재현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Perhaps there exists, in this painting by Velazquez, the repretation as it were, of Classical representation, and the definition of the space it opens up to us. And, indeed representation undertakes to represent itself here in all its elements, with its images, the eyes to which it is offered, the faces it makes visible, the gestures that call it into being. But there, in the midst of this dispersion which it is simultaneously grouping together and spreading out before us, indicated compellingly from every side, is an essential void: the necessary disappearance of that which is its foundation - of the person it resembles and the person in whose eyes it is only a resemblance. This very subject - which is the same - has been elided. And representation, freed finally from the relation that was impeding it, can offer itself as representation in its pure form.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borumis
밥심
아아.. 그림을 다시 보면서 올려주신 푸코의 분석을 읽어보는데 알듯 모를듯 결국은 잘 모르겠군요. 당시 프랑스 대중들도 잘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제 마음대로 생각해봅니다.
aida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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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2부 5장 말미에 다시 그림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그리트와의 일화인데 푸코는 마네가 그린 ‘발코니‘를 재해석해서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에 대해 질문하죠. 찾아보니 이 두 그림의 원조는 고야의 그림이더군요. 한 번 구경하시죠. 어느 것이 누구 그림인지는 보는 순간 아실겁니다.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마네의 회화’라고 푸코가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 있길래 빌려왔습니다. 크게 어렵지 않으면 뭐라고 썼는지 한번 읽어보려구요. ㅎㅎ




도롱
원조가 고야의 그림이군요! 덕분에 좋은 참고가 되었어요. 푸코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