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한 권의 책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으로, 혹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일단 세상에 나오면 책은 무한한 반복의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책 주위에서 혹은 책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곳에서 책의 분신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매번의 독서는 매 순간마다 고유의 추상적인 육체를 책에게 준다. 책의 어떤 구절들이 책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떠돌아다니고, 이 사소한 구절들 속에 책 전체가 들어 있다는 듯이 여겨지기도 하며 급기야는 이 구절들이 책의 피난처가 되기에 이른다. 수많은 해설이 책을 난도질하고, 마침내 책은 책 속의 담론과는 다른 담론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야 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했던 것을 고백해야 하며, 떠들썩하게 꾸몄던 가식의 모습에서 벗어냐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오래된 책을 정당화하려고도, 오늘날에 재편입시키려고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책의 진정한 기준이 되고, 또 이 책이 속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229,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광기의 역사"는 정치적인가"라고 기자가 묻자 그는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정치적 전선의 도면이 변했다. 그리고 정신의학, 감금, 국민의 의료화 같은 주제들이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여러 일을 겪으며 정치 그룹들은 이 영역들을 그들의 활동에 병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데 통합되었다. ..... 내 쪽으로 온 것은 바로 정치였다. 나는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때까지 거의 정치적이었으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영역을 그들은 자기들의 영토로 만들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23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졌다가 적당한 시약을 바르면 종이 위에 나타나는 비밀문서처럼 그렇게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단어다"
미셸 푸코, 1926~1984 23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섹슈얼리티를 마치 신기한 물건처럼 발견한 것, 사드가 그것을 단숨에 비현실의 하늘에 위치시킨 것, 우리가 오늘날 모두 알고 있듯이 성을 체계적으로 금지시킨 것, 그리고 모든 문화에서 위반의 대상과 도구가 바로 섹슈얼리티였다는 사실은 이 중요한 체험에 변증법과 같은 오래된 언어를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미셸 푸코, 1926~1984 26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죽음은 내 글쓰기의 이면이다" 왜냐하면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며, 그들 '삶의 특성'을 되살려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시체를 해부하는 해부학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진단을 하는 의사다. 나는 진단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작업은 죽어 있는 것의 어떤 진실을 글쓰기라는 절개를 통해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27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살아 있는 자들의 밤은 죽음의 빛으로 어둠이 걷힌다." 그때부터 "생명, 질병, 죽음은 기술과 개념의 삼위일체가 되었다. 생명 속에서 질병을, 질병 속에서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던 수천 년간의 강박관념이 사라졌다. 그 대신 삼각형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는데 그 제일 위의 꼭짓점은 죽음이었다. 유기체의 종속관계와 병리적 시퀀스를 내려다보고 분석하는 것은 이제 죽음에서부터다."
미셸 푸코, 1926~1984 27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서구인들은 오로지 자신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만 자신을 구성할 수 있었다. 또 자신의 파괴를 참조함으로써만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스스로 담론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비이성의 경험에서 모든 심리학과 심리학의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의학사상 안에 죽음을 위치시킴으로써 개인의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생겨났다.
미셸 푸코, 1926~1984 27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인간과 죽음의 관계는 합리적 형태로 과학적 담론을 지배하기도 하고, 또 거기서 한 언어의 근원이 열리기도 한다. 이 언어는 신의 부재에 의해 텅 빈 허공 안에서 무한히 펼쳐지고 있다.
미셸 푸코, 1926~1984 27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니체의 사상이 예고하는 것은 신의 죽음보다는- 혹은 이 죽음을 본따서 그리고 이 죽음과의 깊은 연관에 따라 - 차라리 신을 살해한 인간 자신의 종말이다. 그것은 웃음 속에 그리고 돌아온 가면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머리는 인간의 얼굴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28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서구 문화는 오로지 이성의 유희에 의해 앎의 실증적 영역이 될 뿐, 결코 과학의 대상은 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구성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28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최소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의 앎 속에 제기된 문제 중에서 인간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항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우리의 사유에 대한 고고학적 탐색은 인간이 최근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아마도 그 임박한 종말까지 함께!
미셸 푸코, 1926~1984 28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단절의 시점은 레비 스트로스가 사회들에 대해서, 그리고 라캉이 무의식에 대해서 우리에게 의미란 아마도 일종의 표층적 결과, 혹은 반사나 물거품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었을 때, 그리고 우리 내부를 깊이 관통하는 것, 우리보다 앞에 있는 것,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체계라는 것을 보여 주었을 때부터입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28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체계의 강제와 불연속성을 정신사에 도입하는 것은 진보주의적 정치가 개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체계를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유일하게 체계를 혼란시킬 수 있는 외부적 폭력의 개입이나 야만적 사건을 불러들여야 할지의 딜레마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아닌가?" 이에 푸코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보주의적 정치'의 개념을 분명히 밝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진보적 정치란 다른 정치들이 관념적 필연성, 유일한 결정, 개인적 창의성의 자유스러운 작용만을 인정하는 데 반해, 역사적 조건과 실천의 특수한 규칙들을 인정하는 정치다...." 공은 다시 상대편에게 넘어갔다.
미셸 푸코, 1926~1984 29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하나의 지질학입니다. 우리의 '토양'을 형성하는 일련의 연속적 지층을 보여 준 것이죠. 그 각각의 지층은 어느 특정의 시기를 지배했던 하나의 사유가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의 조건을 규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푸코는 그중의 어떤 것이 가장 흥미가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사육 어떤 방식으로 그 조건들로부터 구축되었는지 또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의 사유에서 또 다른 사유로 넘어갔는지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실천, 즉 역사를 개입시켜야 하는데 그는 바로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그의 전망은 역사적입니다. 그는 시기들을 구분하고 그전과 후를 구분합니다. 그러나 그는 영화를 마법의 램프로 대치하고, 움직임을 일련의 정지상태의 연속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 다시 말하면 역사적 성찰의 불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해 로브그리예, 구조주의, 언어학, 라캉, '텔 켈' 등이 차례로 사용된 그러한 혼성의 종합입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29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철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신화가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철학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학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매우 무지하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수학이 따로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생물학이 따로 있다. 역사도 역시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가 따로 있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역사,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사회적 결정이 한데 뒤섞인 거대하고 광대한 연속성이다. 그 커다란 주제들, 예컨대 연속성, 인간의 자유의 효과적 행사,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결정의 연결 등을 건드리기만 하면, 혹은 그 세 개의 신화 중 하나를 스치기만 하면 그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역사의 침해 또는 역사의 살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 철학자들은 역사를 전혀 다른 양식으로 실천하는데 그것은 역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신화다. 내가 역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역사가 바로 그런 철학적 신화다. 그런 역사를 내가 죽였다면 나는 더 이상 그런 영광이 없겠다.
미셸 푸코, 1926~1984 29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298쪽의 "이들은 구조주의의 여러 비행 중에서도 특히 완료형 앞의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아;;; 이런 이상한 번역이 있다니;;; 이건 문법을 얘기하는 게 아닌데;;
다들 이 말이 이해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전 무슨 문법 문제도 아니고 완료형 앞의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298쪽의 원문은: Cavailles, ...... qui a pourtant refuté d'avance ..... l'argument de ceux qui cherchent à discréditer ce qu'ils appellent le structuralisme en le condamnant à engendrer, entres autres méfaits, la passivité devant l'accompli. 저라면 이렇게 번역했을 것 같아요: 카바이예스는 ... 소위 구조주의자들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의 논쟁을.... 앞질러 반박할(refuter는 피하는 게 아니라 맞서서 반박) 수 있었다. 이들은 구조주의의 여러 폐해(비행보다는 폐해) 중에서도 특히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 수동적 자세를 야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즉, 구조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구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이루어진 역사는 어쩔 수 없다는 수동적 자세를 취하게 하는 위험이라고 구조주의를 반대했던 것 같아요.
저도 이 문장 도통 이해가 안돼서 물음표 쳐 두었어요. @borumis 님 번역을 보니 이해되네요!
수많은 고통과 희열 속에서 글을 쓰고, 머리를 숙인 채 고집스럽게 일에 전념하는 한편으로 나는... 내가 그 안에서 모험을 감행할 미로를 하나 마련한다. 그 미로 안에서 나는 내 가설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가설에 지하통로를 파 주기도 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그것을 깊숙이 땅에 박기도 하고, 그 가설의 경로를 요약해 주거나 또는 왜곡하는 돌출물을 가설하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길을 잃고, 결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시선들 앞에 내 자신을 노출시킨다. .... ....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미셸 푸코, 1926~1984 30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사상의 역사가 텍스트 판독을 통해 사상의 비밀스러운 운동들을 밝혀내려는 곳에서 나는 '말해진 것들'의 수준을 그 특수성 속에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조건, 그것들이 쌓이고 서로 연결되는 형식들, 그것들의 변형의 규칙, 그것들을 토막 내는 불연속성들을 보여 주고 싶다. 말해진 것들의 영역이 소위 '고문서'다. 고고학은 그 고문서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1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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