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그러나 이 '억압 가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이 가설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푸코는 자신의 직업이 한번 더 역사적·비판적·고고학적·계보학적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담론을 떠받치고 있는 '권력-앎-쾌락'의 체제가 어떤 기능과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459,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담론의 생산과 권력의 효과가 성에 대한 진실을 형성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은폐하는 거짓말을 만들어 냈는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담론들의 내용이며 동시에 도구 역할을 했던 '앎의 의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6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지식의 고고학'과 '담론의 질서'에서 담론의 희소화 원칙을 조사했던 푸코는 여기서 그 접근방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지금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성의 담론화', 말을 하라는 독촉이며 그 독촉의 형태다. 또 (말의) 증식의 역사와 그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원칙들, 그리고 그 역사가 기대고 있는 심급들이다. ...... "앎의 의지는 도저히 제거될 수 없는 금기 앞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가 결국 성 과학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정신분석에 대한 공격은 분명해 보였다. "하급담당자가 다른 사람의 성 고백을 들어 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 있는 유일한 문명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46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큰 덩어리로 나뉘어, 위에서 아래로 서로 반향을 일으키며 점차 제한적인 그룹으로까지 내려와 결국 사회조직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러한 전면적 이분법적 대립은 권력관계의 원칙이 아니며 그것의 일반적인 모태도 아니다. 차라리 생산기구나 가족, 또는 제한된 그룹이나 제도들 안에서 형성되고 행사되는 다양한 힘의 관계가 사회조직 전체를 둘로 쪼개는 단절의 효과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셸 푸코, 1926~1984 46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이 책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은 정신분석과 푸코의 결별이었다. ... 푸코는 "당신은 적수를 잘못 설정했다"는 반박이 나올 곳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억압과 금지를 말하면서 성을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프로이트와 맑스의 추종자들)과, 법의 차원에서 말하면서 사실은 "법은 욕망과 그 욕망을 성립시키는 결핍을 구성한다"... 라고 생가하는 사람들을 혼동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그러나 .... 비록 서로 다른 결론과 정반대의 선택으로 귀결된다고는 하나 그것들이 똑같은 '권력의 표상'을 나눠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일한 중앙집권적 권력이라는 왕권적 모델에 집착하는 사법-정치적 개념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6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결국 '앎의 의지'에서 우리는 초기부터 푸코의 책에 강박적으로 보이는, 과학의 개념에 대한 회의를 볼 수 있다. ... 고백을 과학이라는 새로운 형태 속에서 가능하게 하는 이 모든 '권력장치'에 대한 그의 연구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 문화가 이룩한 인간 예속의 거대한 작업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일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63-46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아마도 '맑시즘 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남들이 저 아래 내려가서 본 사실을 위에 앉아 머리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여하튼 그와 똑같은 식의 변화가 "모든 사유의 대상을 손쉽게 역사학자들의 손에서 건네받지 않으려는 풍조를 일으켰다. 역사적 대상에 직접 접근하여 그것을 자신이 정의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나서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자신, 우리의 사상, 우리의 행동에 대한 성찰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또 반대로 역사의 암묵적인 가설에 우리도 모르게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것은 또한 성찰에 새로운 역사적 대상을 주는 한 방식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역사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성찰인 것이다. 우리의 사유에 역사연구라는 훈련을 부과하는 방법이며, 또 한편으로는 역사연구에 개념적·이론적 테두리의 변화라는 시험을 부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셸 푸코, 1926~1984 465-46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나는 욕망이라는 말을 참을 수 가 없어. 당신이 그 말을 다르게 사용한다 해도 나는 '욕망=결핍' 혹은 '욕망은 곧 억압'이라는 생각과 느낌을 피할 수가 없어.' ... '내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은 욕망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여하튼 나는 욕망이 아닌 다른 말이 필요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써놓았다. "물론 다시 한번 이것은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나는 '쾌락'이라는 단어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내게 있어 욕망은 아무런 결핍도 함축하지 않는다.... 나는 쾌락에 아무런 실증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쾌락은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보이니까. 나에게 쾌락은 지층과 생체구조 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셸 푸코, 1926~1984 46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desir와 plaisir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였나?
그러나 나는 성의 억압이 없었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권력·지식·성의 관계를 판독해 내기 위해 분석 전체를 억압의 개념 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성의 금지·방해·거부·은폐 등을 좀더 복합적이고 좀더 전면적인 전략에 삽입시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현상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주요한 목표가 단순히 억압에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7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평행선(les parallèles)이란 무한대 저편에서 합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이가 벌어지는 또 다른 평행선들을 상상해 보자. 그것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은 없고 그것들을 회수할 자리도 없다. 가끔 서로를 비판하는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다. 그들을 분리시키는 운동 속에서 그들을 포착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치닫고 있을 때, 또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의 단계로 향하고 있을 때, 그리고 '모든 평판'이 사라진 곳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 그 한순간의 반짝임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미셸 푸코, 1926~1984 47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반면 이론의 분명한 정립과 그것의 과학적 가치는 완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위한 진정한 원칙이라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사람들을 행동 속에 끌어들이는 미끼에 불과했다. (중략) 그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앞으로 전개할 투쟁의 의지를 설명했다. 즉 쓸데없는 궤변이나 다변 또는 '총체성' 같은 거대 이론이 아닌 구체적이고 분명하고 정확한 투쟁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325p,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우리가 들어서 그들의 속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그들이 분노와 절망의 몸짓 속에서 권력과 나눈 말일 뿐이다. 즉 ‘이 불행한 사람들’이 다른 ‘불행한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또는 가족이나 이웃 등 자신의 세계에서 뒤죽박죽이 된 모든 것에 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고 왕에게 청원하는 때의 말일 뿐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7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글을 쓰는 것은 다소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책을 한 권 끝낸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책을 사랑하는 동안 책을 쓰지요. 그러나 일단 그것을 사랑하기를 그치면 그때 그 책을 쓰는 일도 그칩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7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 의연하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 국제 시민권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피지배자며, 그런 점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세계 시민의 의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이 결코 말없는 정치적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력자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의 기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임무의 분산, 즉 개인들은 분노하고 말하며, 정부는 숙고하고 행동하는, 그런 식의 임무 분산을 거부합시다. .... 정부가 독점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 개인들의 의지를 새겨 넣읍시다. 정부로부터 이 독점을 매일같이 조금씩 빼앗아 내야 하겠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7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는 독자가 자신의 책을 잘못 읽고, 잘못 이해했다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도 독자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왜 책을 쓰는지 아는가?” 라고 그는 클레르몽페랑의 조교였던 프랑신 파리앙트에게 언젠가 말했다. “사랑 받기 위해서야.”
미셸 푸코, 1926~1984 470쪽 3부5장,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의 시위 참여와 같은 적극적 행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조에 의해 많은 것이 정해져버림을 자신의 철학을 통해 주장했는데 그럼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의 저항을 계속 하자.’
'말과 사물'은 "진짜 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말은 그의 '열정'으로 밑받침되는 저작들이 광기, 범죄, 섹슈얼리티 등에 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미셸 푸코, 1926~1984 349p,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내가 보기에는 담론에 대한 이 외관상의 존경, 이 외관상의 사랑 밑에 일종의 두려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금기와 장벽과 문턱 그리고 한계들을 쳐 놓아 담론의 가장 위험한 두터운 부분을 얇게 만들고, 그 무질서는 가장 통제하기 좋은 형태로 재편성한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언어와 사상에 침투한 흔적마저 지우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기울인 것만 같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는, 아니 모든 사회에는 각기 그 양상은 다르지만 아주 깊이 언어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하다. 사건들, 말해진 것들의 거대한 덩어리, 이 모든 언술의 솟아남, 거기에 있을 수 있는 모든 폭력적, 불연속적, 전투적인 것, 위험하고, 무질서한 것들, 다시 말해서 담론의 끈입없이 혼잡한 웅웅거림에 대한 일종의 막연한 두려움인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64p,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는 3부 5장 '우리는 모두 지배받는 자들이다'를 읽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읽기에 좋은 장은 아니지만, 또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의 탄압에 맞서 마드리드까지 건너가서 기자 회견을 하는 푸코와 그의 동료의 모습은 뭉클해지기도 하고,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지하 시인 같은 분을 살리고자 연대했던 외국의 저명한 지식인의 모습과 겹치기도 하지요. 저는 추억 속 배우로만 남아 있는 이브 몽탕 부부와 푸코의 인연도 애틋하고요. 뒷 부분에서는 1976년에 나온 푸코의 『앎의 의지』에 정리된 권력 이론이 자세하게 요약되고 있습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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