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들어서 그들의 속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그들이 분노와 절망의 몸짓 속에서 권력과 나눈 말일 뿐이다. 즉 ‘이 불행한 사람들’이 다른 ‘불행한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또는 가족이나 이웃 등 자신의 세계에서 뒤죽박죽이 된 모든 것에 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고 왕에게 청원하는 때의 말일 뿐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47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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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글을 쓰는 것은 다소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책을 한 권 끝낸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책을 사랑하는 동안 책을 쓰지요. 그러나 일단 그것을 사랑하기를 그치면 그때 그 책을 쓰는 일도 그칩니다. ”
『미셸 푸코, 1926~1984』 47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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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 의연하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 국제 시민권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피지배자며, 그런 점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세계 시민의 의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이 결코 말없는 정치적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력자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의 기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임무의 분산, 즉 개인들은 분노하고 말하며, 정부는 숙고하고 행동하는, 그런 식의 임무 분산을 거부합시다. .... 정부가 독점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 개인들의 의지를 새겨 넣읍시다. 정부로부터 이 독점을 매일같이 조금씩 빼앗아 내야 하겠습니다. ”
『미셸 푸코, 1926~1984』 47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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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 푸코는 독자가 자신의 책을 잘못 읽고, 잘못 이해했다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도 독자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왜 책을 쓰는지 아는가?” 라고 그는 클레르몽페랑의 조교였던 프랑신 파리앙트에게 언젠가 말했다. “사랑 받기 위해서야.” ”
『미셸 푸코, 1926~1984』 470쪽 3부5장,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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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푸코의 시위 참여와 같은 적극적 행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조에 의해 많은 것이 정해져버림을 자신의 철학을 통해 주장했는데 그럼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의 저항을 계속 하자.’
꽃의요정
'말과 사물'은 "진짜 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말은 그의 '열정'으로 밑받침되는 저작들이 광기, 범죄, 섹슈얼리티 등에 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미셸 푸코, 1926~1984』 349p,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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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 내가 보기에는 담론에 대한 이 외관상의 존경, 이 외관상의 사랑 밑에 일종의 두려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금기와 장벽과 문턱 그리고 한계들을 쳐 놓아 담론의 가장 위험한 두터운 부분을 얇게 만들고, 그 무질서는 가장 통제하기 좋은 형태로 재편성한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언어와 사상에 침투한 흔적마저 지우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기울인 것만 같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는, 아니 모든 사회에는 각기 그 양상은 다르지만 아주 깊이 언어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하다. 사건들, 말해진 것들의 거대한 덩어리, 이 모든 언술의 솟아남, 거기에 있을 수 있는 모든 폭력적, 불연속적, 전투적인 것, 위험하고, 무질서한 것들, 다시 말해서 담론의 끈입없이 혼잡한 웅웅거림에 대한 일종의 막연한 두려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