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흐흐.. 전 어차피 푸코의 방대한 철학을 이 한 권의 평전으로 이해하기는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확장하지 말고 이 책의 내용에만 집중해서 읽자고 마음다짐을 해두었습니다. 헤겔의 철학까지 파고 들다간 책을 제대로 못 읽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기더라구요. 이 평전을 읽고 나서 더 관심이 가면 푸코든 헤겔이든 제대로 된 그들의 저서를 읽으면 된다고 위안삼고 있습니다.
@밥심 님, 아주 좋은 전략이십니다. :)
옷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철학과 거리가 먼지라.. 이 말씀이 위로가 되네요..
@borumis 제가 아는 한도에서만 얘기하자면, 헤겔-이폴리트-푸코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1. 장 이폴리트는 헤겔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그냥 철학 교사가 아니라 당대 프랑스에서 독일 철학(독일 관념론)에 가장 정통한 철학자였습니다. 푸코가 이폴리트에게 교육받으면서 당대 사유의 정점에 서 있었던 독일 철학의 정수를 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고, 푸코에게는 그것이 철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아주 큰 자극이 되었겠죠. 2. 하지만, 푸코가 위대한 것은 이폴리트로부터 받은 헤겔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폴리트 역시 단순히 헤겔 철학에 주석을 다는 철학자가 아니라 그 한계를 고민하는 편이었습니다.) 푸코와 (그의 또래 동료) 들뢰즈 등의 철학은 헤겔(또 멀리는 플라톤) 철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특징을 공유하면서 독특한 프랑스 현대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언급하신 변증법을 가지고 설명하자면, 헤겔 철학은 그 비판까지도 변증법으로 통합해버리는 궁극의 통합 철학입니다. 헤겔 철학(정)을 비판하면(반) 응, 우리 다시 합해야 해(합), 해버리는 식이니까요. 푸코는 이 헤겔 철학의 특징을 예민하게 사유했고, 헤겔 철학을 극복하려면 헤겔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헤겔 철학이 포용하지 못하는 사유의 방법을 개척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푸코의 고고학, 계보학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철학적 방법론이죠. 앞으로 뒤에서 계속 나올 테니, 일단은 이 정도로만 정리하겠습니다.
푸코 철학 여정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텍스트가 1971년에 나온 『담론의 질서』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읽었던 푸코 책인데요,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원래 1970년 12월 2일 콜레즈 드 프랑스 취임 강연 원고를 푸코가 직접 고쳐서 다음 해에 책으로 낸 것이죠. 앞에서 언급한 푸코의 철학 방법론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발표한 저서라서 푸코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로 읽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Mais échapper réellement à Hegel suppose d'apprécier exactement ce qu'il en coûte de se détacher de lui ; cela suppose de savoir jusqu'où Hegel, insidieusement peut-être, s'est approché de nous ; cela suppose de savoir, dans ce qui nous permet de penser contre Hegel, ce qui est encore hégélien ; et de mesurer en quoi notre recours contre lui est peut-être encore une ruse qu'il nous oppose et au terme de laquelle il nous attend, immobile et ailleurs." 저는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borumis 님은 아시니까. 아래는 제미나이 이용한 번역인데요. (제가 이정우 선생님 번역의 한국어판을 집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인터넷 검색했습니다.) "그러나 헤겔로부터 진정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그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헤겔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insidieusement), 얼마나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아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헤겔에 맞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 속에 여전히 헤겔적인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우리의 수단이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맞서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계략(ruse)일 수도 있으며, 그 계략의 끝에서 그가 꿈쩍도 하지 않은 채(immobile) 다른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것을 전제합니다."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헤겔 철학의 강고함을 푸코가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 내용 다음에 자기 사유가 장 이폴리트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었는지 언급하는 대목이 바로 이어집니다. 대충 어떤 영향과 관계인지 아시겠죠? 참, 『담론의 질서』는 결정판 번역본이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허경 선생님 번역입니다.
담론의 질서세창 클레식 6권. 푸코의 취임강연은 1970년 12월 2일 ‘담론의 질서’라는 제목으로 행해졌고, 이 강연은 다음 해인 1971년 푸코의 교정·검토 아래 동명의 제목으로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 1971년의 프랑스어본을 완역한 것이다.
우왓 감사합니다! 번역까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Ian McLeod가 번역한 영문판을 스캔한 pdf파일이 화질은 안 좋지만 있네요. 이폴리트에 대한 부분도 있어요. I consider that my greatest debt is to Jean Hyppolite. (...) But to make a real escape from Hegel presupposes an exact appreciation of what it costs to detach ourselves from him. It presupposes a knowledge of how close Hegel has come to us, perhaps insidiously. It presupposes a knowledge of what is still Hegelian in that which allows us to think against Hegel; and an ability to gauge how much our resources against him are perhaps still a ruse which he is using against us, and at the end of which he is waiting for us, immobile and elsewhere. 이걸 읽어보니 푸코나 이폴리트는 헤겔의 철학의 강고함을 인식하면서도 헤겔 철학을 넘어선 철학, 역사, 과학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탐구한 듯 하네요. https://monoskop.org/images/7/78/Foucault_Michel_1970_1981_The_Order_of_Discourse.pdf
딴 얘긴데 제가 일할 때 구글번역기를 돌린 다음에 그걸 엄청 많이 다듬고 수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불어나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제미나이는 비교적 잘 번역했네요! (그것도 insidieusement이나 immobile 등 원글의 단어를 넣어서)
@borumis 제가 2장을 읽어보니, 제가 기억하고 있던 인용 부분이 2장에도 앞뒤까지 인용이 되어 있네요. (이렇게 항상 읽을 때마다 새롭다니까요. :) )다들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41~42쪽의 인용과 같은 구절입니다!
우리 시대는 논리학을 통해서건 인식론을 통해서건, 그리고 마르크스를 통해서건 니체를 통해서건 간에, 모두 헤겔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헤겔에서 벗어나려면 우리가 그와 유리됨으로써 치르게 될 대가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록 공공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나마 헤겔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 며, 우리가 헤겔에 대항하여 사고할 때조차 그것이 여전히 헤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를 상대로 한 제소(提訴)가 실은 그가 우리에게 마련한 계략이며 그 끝에서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장 이폴리트에게 빚진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를 앞질러서 헤겔과 멀리 떨어지는 길을 지칠 줄 모르고 답파했기 때문이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헤겔과 거리를 유지했고,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나 그 길을 통해 헤겔에게 당도했으며, 이어서 다시금 그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 2장, 41~42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말씀하신 부분이 이 책 2장(41~42쪽)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것 같네요. '우리 시대는 논리학을 통해서건 인식론을 통해서건, 그리고 맑스를 통해서건 니체를 통해서건 간에, 모두 헤겔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헤겔에서 벗어나려면 우리가 그와 유리됨으로써 치르게 될 대가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록 공공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나마 헤겔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며, 우리가 헤겔에 대항하여 사고할 때조차 그것이 여전히 헤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를 상대로 한 제소가 실은 그가 우리에게 마련한 계략이며 그 끝에서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장 이폴리트에게 빚진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를 앞질러서 헤겔과 멀리 떨어지는 길을 지칠 줄 모르고 답파했기 때문이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헤겔과 거리를 유지했고,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나 그 길을 통해 헤겔에게 당도했으며, 이어서 다시금 그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푸코, 담론의 질서 pp.74-75라는 주석이 달려 있네요)
제가 한때 박사 학위를 염두에 뒀을 때, 학위 논문을 푸코와 그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로즈 등의 사유를 방법론으로 놓고서 '생명공학과 사회의 상호 작용'을 주제로 써보려고 이것저것 궁리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이 책 읽으면서 제가 어쭙잖게 얘기하는 것들은 모두 그때 주워들은 아주 얕은 얘기이니,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하시고 들으시면 좋겠어요. (전공자가 들으면 웃을 얘기가 아주 많을 겁니다.)
일단 헤겔의 변증법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분석, 이에 반하는 니체의 도덕 계보학, 그리고 니체에서 더 나아가 도덕만이 아닌 문화, 역사 등에 적용한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이 얽혀있다는 정도만 알고 넘어가겠습니다. 벌써 머리가 아파오네요. ㅠㅠ
아뇨,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전 정말 현대철학이나 헤겔이나 푸코에 대해 거의 모르기 때문에.. 어떤 책부터 읽어봐야하나..했는데 책 추천 감사합니다. 책도 얇고 발췌와 평을 보니 허경선생님 번역이 괜찮네요. 지식의 고고학과 함께 읽어볼게요. 그나마 다른 현대철학에 비해 푸코는 가독성이 좋은 듯합니다.
@borumis 님, 너무 어렵게 시작하지 마시고 서문에서 디디에 에리봉이 언급한 '계몽이란 무엇인가'부터 한 번 찾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푸코가 죽기 직전에(1983년) 기고한 글입니다. 칸트가 100년 전에 썼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소논문에 대한 푸코의 응답이죠. 인터넷에서 영어판은 쉽게 찾을 수 있고, 대충 번역해 놓은 한국어판도 저한테 있으니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말씀하시면 드릴게요.
1,2장까지 오면서 헤겔에서 멈칫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이드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는 chatGPT 요약버전으로 만족하고 지나갈께요.. ㅋㅋ 푸코 ― 「계몽이란 무엇인가」 요약본 제목: 미셸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요약 1. 글의 목적 푸코는 칸트의 질문, “계몽이란 무엇인가?” 를 오늘의 철학적 주제로 다시 설정한다. 그에게 계몽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태도이다. 2. 푸코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 “현재성의 비판” 푸코는 계몽을 **“현대성(modernity)의 태도”**라고 부른다. 이 태도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현재에 대한 비판적 관계 -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실천.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 - 사회가 규정한 정체성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를 변형하는 작업. 자유를 실험하는 태도 - 제도·규범·담론의 ‘당연함’을 의심하고 자유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천. 3. 푸코가 보는 칸트의 의미 칸트는 계몽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이라고 정의했다. 푸코는 이를 ‘현재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해석한다. 4. 푸코의 계몽 개념 푸코에 따르면 계몽은 다음과 같다: 완성된 해방 상태가 아니라, 사회·지식·규범의 작동을 끊임없이 분석하며 자유를 만들어가는 비판적 실천방식 그는 이를 “우리 자신을 만드는 작업, 변형의 윤리” 라고 부른다. 5. 칸트와 푸코 비교 정리 구분 칸트 푸코 계몽 이성의 자율성 비판적 실천의 태도 현대 역사적 전환 자기-변형의 실험 자유 규범의 자기입법 권력-담론 속에서의 실천적 자유 6. 결론 푸코에게 계몽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비판적·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론이다. 즉, “계몽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비판적 탐구이며,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지속적 실험이다.”
ㅋㅋㅋ 저만 헤겔의 이름을 보고 겁먹은 게 아니라 다행;; 푸코의 글에서 헤겔이 꿈쩍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미지가 웬지 무섭게 느껴져요..ㅋㅋㅋㅋ 안그래도 제미나이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chatGPT같은 LLM의 AI가 나오면서 헤겔이 다시 언급되는 기사를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여기서도 나오는 헤겔... 우리는 과연 헤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https://www.newstatesman.com/ideas/2023/07/hegel-against-machines-ai-philosophy
오죽하면 헤겔 이후의 모든 철학은, 헤겔 철학의 주석일 뿐이라는 얘기까지 있겠습니까? 프랑스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헤겔 붐이 그런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요.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헤겔 이후 독일 철학(사상)의 주석으로 보는 책도 있을 정도니까요. 니체-푸코, 프로이트-라캉, 마르크스-부르디외 등.)
‘정반합‘이 머리 깊숙히 콱 박혀있지요. ㅎㅎ
앗 서양철학이 플라톤의 주석이 아니라 현대철학이 헤겔의 주석이었군요.. 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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