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두 사람의 만남은 캉길렘의 강의 직전 소르본의 한 낡은 원형강의실 입구에서 이루어졌다. 푸코는 그에게 자신의 의도를 대강 설명했다. 고전주의 시대에 합리주의가 도래하면서 어떻게 광기를 배제하는 분리가 시작되었는, 그리고 정신의학적 지식이 어떻게 자신의 대상인 정신병을 만들어 내고 날조해 내고 오려 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들은 캉길렘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짤막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널리 알려져야겠군." 그러나 그는 논문을 읽고 "진짜 쇼크"를 받았다. 자기 눈앞에 펼쳐진 이 논문이 정말 일류 논문이라고 확신했고, 주저없이 보고자가 되기를 수락했다. 다만 그는 자기 생각에 너무 독단적으로 느껴지는 몇몇 구절들을 수정하거나 완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푸코는 이 책의 문학적인 형식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구절도 바꾸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논문은 캉길렘이 읽었던 최초의 형식 그대로 통과되고 출판되었다.
@YG님 말씀대로 당시 푸코를 인정하는 선배학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문적 분위기가 좀 폐쇄적이라면 그건 왜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그런 분위기로 이끈 무언가가 있겠지요???^^;;
푸코는 모든 면에서 그에게 적대적일 것 같은 이 사람의 고마움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밤과 낮 같았고 악마와 천사 같았다. 아리에스는 가톡릭 신자고 개혁 반대주의자며 오랫동안 왕당파였고 비록 극우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항상 우익사상을 표방해 왔다. 그보다 더 전통적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 역사가며, 대학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스스로 '일요 역사학자'라고 불렀던 이 경계인이야말로 아마도 학문적 범주화가 어렵고 도저히 분류하기 어려운 이 논문의 쇄신적 성격을 알아보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듯하다.
몇 분간의 막간 휴식을 취한 후 공연이 재개되었다. 심사위원장이 학위후보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푸코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며 긴장되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빠른 리듬 속에서 발표가 진행되었다. 하나하나의 말들은 마치 세공한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빛났다. (역시 구이에의 노트에 의하면) 연구초기에는 의사들보다는 광인들에 대한 책을 쓰려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의 시점이나 연대기 없는 역사서가 될 것이므로 불가능한 책이었다. 고문서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먼지 더미의 자료에서 "광기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문명의 현상"이라는 분명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 특정 사회 안에서 광기는 언제나 "다른 행동", "다른 언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광기를 광기라고 말하는 문화, 광기를 박해하는 문화들의 역사" 없이는 광기의 역사도 없다. "광기를 비-광기와의 관계 속에서 즉 광기를 포로처럼 잡고 있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광기를 접근하려는 방법론이 거기서 나왔다.
전 공학 계열이라 잘 모르겠는데 인문학 계열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 시 이 정도로 치열한 과정을 거치는가요? 예를 들면 청중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그러는가요, 공학 쪽은 심사위원들 앞에서만 하거든요. 아무튼 치열한 논쟁 과정이 @YG 님 말씀처럼 부럽고도 멋있게 보이네요. 195쪽 읽다가 ‘18세기말과 19세기 초의 독일 인간학을 프랑스의 인간론과 비교해보고 싶다’는 문장을 보고 도대체 인간학과 인간론이 뭐가 다르다는 건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사진을 참고하십시오. 인공지능의 정리를 보면서 약간 이질감을 느끼긴 했습니다. 제 공학 연구 경험을 볼 때 프랑스 연구원들은 말로 때우고 날짜도 잘 안 지키고 감성적인데 반해 독일 연구원들은 서류로 남기고 날짜 칼같이 지키고 이성적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프랑스의 인간론과 독일의 인간학은 반대네요. ㅎㅎ 그리고 2부 1장 읽으면서 팍 터진 부분은 논문 심사 위원장인 구이에가 한 논평에 대해 푸코가 “내가 좀 아무렇게나 쓴 문장”이라고 인정했다는 204쪽 내용이었어요. 그저 그런 식으로 해명해도 되는 건가요. ㅎㅎ
프랑스와 독일의 차이를 표로 보니, 덕분에 이해가 더 되어요.
저도 이과여서 모르겠는데 소르본느에서 대학원을 다닌 언니 얘기를 들어보면 어마무시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인종차별 등 주관적인 것도 엄청 많이 개입한다고..;; 푸코는 좀 뻥이 심한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요..ㅎㅎㅎ
이번 주말에 병행 독서한 책으로 이수지 선생님의 『자연스럽다는 말』(사이언스북스)이 있습니다. 푸코 평전과도 공명하는 책이니 여러분도 한 번쯤 살펴보시면 좋겠어요. 올해(2025년) 나온 과학책 가운데 최고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말 뒤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진화 인류학자 이수지 박사가 『자연스럽다는 말』에서 자연의 권위를 해부한다. 생물학과 신경 과학을 넘나들며 우리가 믿어 온 ‘자연스러움’의 신화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찜해두었습니다.. 이런 책 정보 너무 좋습니다!
제목만 언뜻 보고 볼까말까 했었는데 덕분에 바로 담았습니다.
논쟁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요. 그건 이미 설득된 사람만 설득시키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은 더 강화시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225쪽 2부 2장,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지인들 모임에서 정치나 종교를 주제로 이야기 하지 말라는 조언 있지 않습니까. 푸코가 데리다와의 싸움을 경험하고 나서 했다는 저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1999년 내가 <게이 문제에 대한 고찰>을 출간했을 때 이 책에서 푸코에 대해 쓴 부분을 읽고 데리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 정도로 고통을 받았는지 나는 전혀 몰랐어요. 그런 고통이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타인들과의 관계를요.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을 수 없군요.” 죽는 날까지 푸코를 특징지웠던 섬세한 감수성, 비록 그것을 병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여하튼 아주 예민한 그 감수성이 그의 ‘고통’과 깊이 그리고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미셸 푸코, 1926~1984 226쪽 2부 2장,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자기 자신의 양식을 확인하는 것은 이웃 사람을 감금하고서가 아니다. ce n'est pas en enfermant son voisin qu'on se convainc de son propre bon sens 여기 좀 번역이 어색하던데.. 원서의 느낌은 '이웃을 가둬 놓는 다고해서 자신이 제 정신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의미인 듯해요..
이 문장 뭔 소리야했던 기억이 나네요. 뒷문장으로 유추해야했던..굳이 양식이라는 한자어로 번역했어야했나 싶었어요. 잘 모르는 분야를 읽느라 힘든데 표현때문에 막히면 답답함이 짜증으로 변하더라구요^^; 말씀하신 번역이 훨씬 이해 쉽네요. 원서 읽을 수 있으시니 너무 좋으시겠어요!!
실은 제가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한글 어휘도 너무 딸리거든요;; (아까 밑줄친 문장 중 문체의 불비함에서 '불비하다'라는 단어도 난생 처음 들어본 말;;) 그래서 한글 번역으로 읽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면 원서를 보는 게 더 이해가 잘 갈 때도 많더라구요..;; 마침 kindle에 french version이 있어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 푸코의 문체는 몰라도 에리봉의 문체는 읽기 수월한 편이에요. (대신 속도는 엄청 느려요! 이제야 7장 끝을 읽어가네요;;헥헥)
저도 불비하다라는 단어 처음 봤어요. 아마 전에 한두번 봤을 수도 있겠지만 기억이 없으니 난생 처음본거나 똑같죠. 이 단어는 "양식"보다 더 답답했던 번역이었네요. 왜 더 쉽게 표현한지 않을까요? 오역될까봐 그런건지..
그쵸.. 문제는 원서엔 그런 단어가 있지도 않았어요.. malgré le style.. 그 문체에도 불구하고.. 라고만 쓴 건데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푸코 식의 '기교를 부린 (alambiqué)' 단어로 수식하고 싶었던 건지..;;
@oh @borumis 이 책을 번역하신 박정자 선생님께서 1943년생으로 올해 82세라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할 듯해요; 1995년(52세)에 처음 번역을 하고 나서 2012년(69세)에 개정판 번역을 손 보실 때 그런 오랜 언어 습관을 고치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건 편집자가 손을 대야 할 영역인데,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서 나온 게 지금의 번역이 아닐까 싶어요. 참고로 박정자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미셸 푸코를 1979년부터 한국에 선구적으로 소개한 분이시죠. 이 책도 다음 세대 번역가가 번역했더라면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긴 해요. (저도 이번에 읽을 때는 전에 읽을 때보다 더 서걱거리는 부분이 많긴 합니다.)
웬지 민음사 세계문학의 여러 노교수님들이 하신 번역처럼 그 당시에는 많이 쓰이던 표현들이 아니었을까도 의심해봅니다. 개정판이 나와도 대부분 내용은 안 건드리고 커버만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이게 95년에 나온 걸 감안하면 꽤 읽기 수월한 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푸코의 글 자체는 원문 자체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alambiqué (지나치게 섬세한, 너무 기교를 부린)이라는 불어 단어도 처음 배웠는데 정말 푸코의 문체를 잘 설명한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문학적이기도 하고 확실히 개성이 강한 문체이긴 합니다. 캉길렘이 논문 지도 교수로서 좀 표현을 다듬어주고 싶어했는데 결국엔 자기 원문을 고수하고 싶어서 그대로 제출하고 정말 말 그대로 '답정너'식 통보하는 게 되었던 점에서 푸코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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