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dobedo 저는 그 대목 읽으면서 웃었는데요. 같이 사는 분들한테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장모님께서 친구들과 패키지 여행으로 미국을 가셨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일정에서 중도 포기하셨답니다. 자기는 도시가 좋은데 자꾸 나무랑 숲을 보여주다 이젠 물 떨어지는 걸 보라니, 하시면서요. 같이 사는 그 딸도 비슷한 성정인데. 여행갈 때마다 저는 자연 경관에 경이감을 느끼는 편인데 매번 심드렁하거든요. 하지만 또 장모님처럼 압도적인 인공물 이런 데에 오히려 경탄하더라고요. 저는 푸코도 이런 같이 사시는 분들 성향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웃었어요. 사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푸코가 아주 나르시시스트였고 또 자기 확신과 독선적인 면모가 강했던 것 맞아 보여요. 저는 그런 푸코가 또 수많은 스승을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를 흡수하고 계속해서 그 공을 인정했던 게 오히려 신기하기도 해요. 사람은 항상 다면적이니까요.
실은 저도 어릴적 부모님이 여행하면서 그런 경관을 감상하라고 자꾸 차 안에서 책 읽고 있는 제게 밖을 좀 보라고 잔소리할 때 성질내고 그랬는데 장모님과 부인이 저랑 비슷한 취향이신 것 같아요 ㅋㅋㅋ 그래도 이제 나이 드니 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긴 하더라구요.. 전 그나마 스마트폰 세대가 아닌데도 그러니 요즘 애들은 오죽할까요.. 전 그래도 그렇게 혼자 있길 좋아하던 푸코가 외국에선 이렇게 외교적인 면을 보여주는 걸 보니 참 신기해요. 사람은 정말 I나 E 등 하나의 잣대로 (아니 여러개의 잣대로도) 설명하기 힘들어요.
이맘때 국도를 달리다가 헐벗은 나무들이 이루는 산의 실루엣이 어린 짐승의 부스스한 털 같은 이미지라 귀엽다고 했더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일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리액션이 고장나버린 사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는데.... 폭포를 보면서 '물 떨어지는 거 보라니'라... 하하 푸코를 좋아하는 지인이랑 얘기하다가 푸코의 사상적 변화가 드라마틱하길래 참 치열하게 살았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반응하는 방식, 그러니까 '세상이 바뀌어야지'라고 하는지 아니면 '내가 맞춰서 적응해볼게'라고 하는지는 세계관의 차이라 잘 안 바뀌던데 푸코는 그런 면에서 변화가 있었던 거 같더라고요.
1953년에 쓰인 초기의 기고문에서 푸코는 순전히 ‘과학적인’ 심리학의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약간 신랄하게 암시했다. 그는 그 글에서 실험심리학의 소굴에 들어가자마자 그에게 던져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과학적 심리학을 하겠느냐 아니면 메를로-퐁티 같은 심리학을 하겠느냐’가 그것이다. 그리고 푸코는 다음과 같이 빈정거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진짜 심리학’을 정의하는 그 독단성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내포하는 무질서와 회의주의다. 만약에 ‘당신은 과학적이건 아니건 간에 생물학을 하겠는가?’라고 묻는 생물학자가 있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푸코는 덧붙인다.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81쪽 미셸 푸코, ‘과학 연구와 심리학’ ‘프랑스의 연구자들은 묻는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 주말에는 2부 1장 '시인의 자질'을 읽고 계시죠? 이번 장은『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 박사 학위 논문 심사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의 학문 풍토를 염두에 두면 이번 장을 읽고서 부럽기까지 했어요. (왜냐하면, 극히 일부분에 국한한 얘기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한국에서는 학위 논문 심사를 하러 오면서 논문도 제대로 읽지 않고 오는 교수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거든요.) 푸코를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세심하게 읽고서 자기 시각에서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학자-지식인을 응원하고 문을 열어주려는 선배 학자의 가이드. 이번 장에서도 푸코의 삶에서 또 프랑스뿐만 아니라 20세기 지성사에서 중요한 인물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조르주 캉길렘(1904~1995)이고 다른 한 명은 필리프 아리에스(1914~1984)입니다. 캉길렘은 과학철학, 과학사, 구조주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자취를 남긴 학자이고, '일요일의 역사학자'로 불리는 아리에스는 죽음과 아동기(어린이) 연구로 유명하죠.
저는 필리프 아리에스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주 보수적인 정치적인 입장이었으면서도 학문적인 태도에서는 누구보다도 열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생업과 연구를 평생 병행하면서 대학 틀 안의 학자보다 더 나은 성취를 보였다는 점 등 매력적인 요소가 한 둘이 아니거든요. 그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고 또 세상과 인간에 애정을 가진 사람인지도 알 수 있어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일요일의 역사가 - 필리프 아리에스 자서전제도권 학계 밖에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로 20세기 역사학을 뒤바꾼 아날 학파 3세대, 심성사의 대표 학자인 필리프 아리에스의 자서전이다. 전쟁과 이념 투쟁을 거치며 이분법적 대립이 극명했던 20세기, 보수주의자이자 전통주의자이면서도 정치적 격변과 기술 진보에 유연한 태도를 취한 독특한 지식인의 증언이기도 하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이 분 아동과 죽음에 대해 엄청난 벽돌책을 쓰신 분 맞죠? 제가 암 생각 없이 이 책들을 사고서 고이 다시 닫고 책장에 집어놓았는데.. 회고록은 많이 얇은 편이네요. ㅋ 이것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죽음 앞의 인간'죽음'이라는 화두를 주제로 삼은 필립 아리에스의 역작. 저자는 문학, 종교적 전례, 유언장, 묘비명, 도상 등 역시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자료들을 통해 중세 초기에서부터 현대까지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고찰한다.
아동의 탄생700여 페이지에 걸쳐 '아동과 교육 그리고 가족의 탄생'을 추적하고 있는 이 책은 주제의 신선함과 함께 각종 놀이, 민요, 개인 서신, 가정일지, 각종 판화와 그림들 등 그동안 역사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어온 인간의 무의식의 기록들을 역사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흥미로운 지적 모험을 펼치고 있다.
@borumis 덜컥 사시지 마시고 항상 자서전이나 회고록이나 평전부터. :) 그게 제 독서 방법 가운데 하나랍니다. 하지만 아리에스 책은 읽을 만해요. 푸코 책보다 훨씬!
헉..ㅜㅜ 근데 이 책은 절판이군요.. 아쉬비..
@borumis 앗, 벌써 절판인가요? ㅠ.
도서관에서 찾았습니다! 다행이에요.
이 책은 저희동네 도서관엔 없고 옆동네엔 있는데 서고에 갇혀 계시네요. 폐기처분 되지 않게 얼렁얼렁 산책시켜드려야겠어요.
아아주 오래전에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죽음 앞의 인간>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늘 내릴 때 쯤이면 눈물콧물 범벅이 되었었더랬죠.. ㅋㅋㅋ(감동해서가 아니란 거 아시죠?! ㅠㅠ) 사실 출퇴근용 도서로 적절한 책은 아녔습니다만 괜한 오기가 발동해서 꾸역꾸역 읽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상학에 관한 책이었고, 번역 상태가 영 메롱이었으며 중세의 무덤, 묘비명, 해골 등을 담은 흑백 도판이 으시시하게 느껴졌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작가분이 매력캐라는 건 @borumis 님과 @YG 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제가 가진 건 동문선 판인데 위에 올려 주신 새로운 번역가의 새물결 판본으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평전도 함께요 ㅎㅎ
"필립 아리에스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미사를 드리러 자기 교구의 성당에 꼬박꼬박 나가기는 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우스꽝스러운 의식과 대면하지 않기 위해 소음방지용 귀마개로 귀를 막는 것을 잊지 않았다" p.190 이런 유머 너무 제 취향입니다. 책 어렵고 잘 읽히지 않아 중단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리에스 덕분에 위기를 넘겼네요. 이책에 나오는 인물들중 한 10% 정도도 알까말까 그것도 이름만 들어본정도에서인데 yg님은 대체 어떻게 다 아시는 겁니까?! 이과이신데 저도 이과인데 어떻게.. 읽는다고 다 기억에 남는것도 아닌데.. 그만 주절거리고 오늘 분량 읽으러갈게요
ㅎㅎ 저도 이 대목 읽으면서 웃었어요.
그쵸 정말 사랑스러운..ㅎㅎㅎ
두 사람의 만남은 캉길렘의 강의 직전 소르본의 한 낡은 원형강의실 입구에서 이루어졌다. 푸코는 그에게 자신의 의도를 대강 설명했다. 고전주의 시대에 합리주의가 도래하면서 어떻게 광기를 배제하는 분리가 시작되었는, 그리고 정신의학적 지식이 어떻게 자신의 대상인 정신병을 만들어 내고 날조해 내고 오려 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들은 캉길렘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짤막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널리 알려져야겠군." 그러나 그는 논문을 읽고 "진짜 쇼크"를 받았다. 자기 눈앞에 펼쳐진 이 논문이 정말 일류 논문이라고 확신했고, 주저없이 보고자가 되기를 수락했다. 다만 그는 자기 생각에 너무 독단적으로 느껴지는 몇몇 구절들을 수정하거나 완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푸코는 이 책의 문학적인 형식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구절도 바꾸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논문은 캉길렘이 읽었던 최초의 형식 그대로 통과되고 출판되었다.
@YG님 말씀대로 당시 푸코를 인정하는 선배학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문적 분위기가 좀 폐쇄적이라면 그건 왜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그런 분위기로 이끈 무언가가 있겠지요???^^;;
푸코는 모든 면에서 그에게 적대적일 것 같은 이 사람의 고마움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밤과 낮 같았고 악마와 천사 같았다. 아리에스는 가톡릭 신자고 개혁 반대주의자며 오랫동안 왕당파였고 비록 극우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항상 우익사상을 표방해 왔다. 그보다 더 전통적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 역사가며, 대학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스스로 '일요 역사학자'라고 불렀던 이 경계인이야말로 아마도 학문적 범주화가 어렵고 도저히 분류하기 어려운 이 논문의 쇄신적 성격을 알아보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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