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가 집사님이었군요 ㅎㅎㅎ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도롱

거북별85
“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아주 열심히 들었다. 주제는 매우 다양했다. 왜냐하면 그는 학사과정 전체를 포함하는 세 학년을 다 맡았기 때문이다. 어느 학년에는 니체를 강의했고, 또 너느 학년에게는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을 통해 데카르트를 강의했다. 미학에도 시간을 할애하여 환등기로 명화들을 보여 주면서 르네상스에서 마네까지의 회화의 흐름을 해설했다. 심리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투사'에 대해 강의하는가 하면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의 이론들을 강의하기도 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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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들르달의 기억에 의하면 푸코는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거의 패닉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강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의 그의 모습을 한번만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극심한 공포증을 갖고 있었고 온몸에서 땀을 흘렸으며 손을 비비 꼬았다. 그런데 일단 강의실에만 들어가면 그는 완전히 강의의 주제를 장악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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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어떻게 극심한 강의 공포증이 있는데 무대에만 쓰면 무대를 휩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도 매번 공포증을 느끼는 푸코는 자신의 강의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싫어했을까? 자신이 인기있는 것은 알았을테고 혹시라도 완벽한 강의에 한점의 실수라도 있을까봐 강박 때문에 공포증이 있었을까? 지금도 이런 강연자가 있는지 궁금하고 또 푸코의 강의도 들어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

거북별85
“ "현대 세계에서 그 어떤 것이 절대적 자기희생의 가능성과 능력, 그리고 그것을 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해관계, 어떤 야망, 어떤 권력욕에 전혀 물들지 않은채? 나는 이 모든 것을 튀니지에서 보았다. 신화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증거를....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 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반면 이론의 분명한 정립과 그것의 과학적 가치는 완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위한 진정한 원칙이라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사람들을 행동 속에 끌어들이는 미끼에 불과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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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
“ "니체의 기획은 인간에 대한 질문이 한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마침표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신의 죽음은 사실 절대성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동시에 인간 자신을 살해하는 이중살해의 제스처로서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은 영원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원을 부정하는 존재며 동시에 영원을 예고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신의 죽음이 완성되는 것은 인간의 죽음 속에서다." ”
『미셸 푸코, 1926~1984』 p. 28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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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
이 부분이 책 ‘말과 사물’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하는 데요, 니체와 어떤 연결지점이 있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니체의 영향력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borumis
“ "내가 푸코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이러저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또 이러저러한 시기부터는 사람들이 어떠어떠하게 생각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뭐, 그건 좋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푸코들이 그런 일을 그토록 오만하게 말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
『미셸 푸코, 1926~1984』 279,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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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고다르의 이 말이 너무 재미있어요! 중국여자란 영화는 못봤지만 궁금해지네요.

borumis
실은 이 챕터에서 특히 좋은 문장들이 많고 질문이 많았는데.. 주말에 천천히 복습하면서 올리겠습니다.

borumis
참, 283쪽에서 '인간과학 속에서 자신의 실증성을 만들었다가 없애 버리기를 되풀이하는 인간을 부단히 해체하고 있다.'의 해체는 원서에서는 défaire 해체하다, 부수다, 흐트러뜨리다 라는 뉘앙스고 바로 뒤의 '레비 스트로스가 말했듯이 이 두 학문은 인간을 해체하고 있다'의 해체는 원서에서는 dissolvent (dissoudre)이고 의미는 용해하다, 녹다, 해산하다, 파기하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 (psychoanalysis)와 민족학(ethnology/anthropology)의 두 반과학 외의 다른 인간과학 (앞에서 말한 일반언어학, 정치경제학, 생물학)은 유행에 뒤쳐져있다(contre-courant)고 하는데, 이 두 반과학과 함께 언어학이 인간을 스스로 인식의 대상이 되도록 돕는다고 하는데 여기서 언어학은 앞에서 말한 일반언어학과는 다른 것인가요? 아니면 '유행에 뒤쳐져있지만' (저는 아직 contre-courant의 이 번역에 동의 못하겠지만..;; 뒤처진다기보다는 '시류를 거스르는'이 나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반과학과 함께 인간을 인식의 대상이 되도록 돕는 것인가요?
숨쉬는초록
찾아보니, "인간이 스스로 인식의 대상이 되도록 돕는" 언어학은 구조주의 언어학이겠네요. 라캉의 정신분석학,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민족학) 모두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borumis
감사합니다. 즉 여기서 말한 일반언어학은 구조주의 언어학과 대비되고 그 이전 19세기의 비교언어학을 얘기한 것이군요.
밥심
전 2부 5장 첫쪽에 나오는 ‘그것은 책의 주제들을 예고하는 일종의 ’발문‘으로 푸코는 여기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추가된 이 화려한 대목이 이 책의 성공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워낙 유명하고 인기있는 그림이고 해석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작품이라 대중들이 푸코가 뭐라고 분석했는지 궁금해했을 것도 같아요.

borumis
제가 한글로는 이 책을 안 갖고 있어서 못 담는데.. 꽤 인상적이에요. 첫 장 제목이 Las Meninas(시녀들)인데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제 책의 문장을 구글 번역기 돌려봤습니다.
어쩌면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에는 고전적 재현의 재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공간의 정의가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재현은 이미지, 그것을 바라보는 눈, 드러내는 얼굴,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몸짓 등 모든 요소를 통해 스스로를 재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동시에 한데 모으고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이 분산된 것들 한가운데, 사방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공허함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재현의 토대가 되는 것, 즉 그것이 닮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눈에는 단지 닮은 존재일 뿐인 사람의 필연적인 소멸입니다. 바로 이 동일한 주체가 생략된 것입니다. 마침내 재현은 자신을 가로막던 관계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형태의 재현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Perhaps there exists, in this painting by Velazquez, the repretation as it were, of Classical representation, and the definition of the space it opens up to us. And, indeed representation undertakes to represent itself here in all its elements, with its images, the eyes to which it is offered, the faces it makes visible, the gestures that call it into being. But there, in the midst of this dispersion which it is simultaneously grouping together and spreading out before us, indicated compellingly from every side, is an essential void: the necessary disappearance of that which is its foundation - of the person it resembles and the person in whose eyes it is only a resemblance. This very subject - which is the same - has been elided. And representation, freed finally from the relation that was impeding it, can offer itself as representation in its pure form.
밥심
아아.. 그림을 다시 보면서 올려주신 푸코의 분석을 읽어보는데 알듯 모를듯 결국은 잘 모르겠군요. 당시 프랑스 대중들도 잘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제 마음대로 생각해봅니다.
aida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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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2부 5장 말미에 다시 그림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그리트와의 일화인데 푸코는 마네가 그린 ‘발코니‘를 재해석해서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에 대해 질문하죠. 찾아보니 이 두 그림의 원조는 고야의 그림이더군요. 한 번 구경하시죠. 어느 것이 누구 그림인지는 보는 순간 아실겁니다.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마네의 회화’라고 푸코가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 있길래 빌려왔습니다. 크게 어렵지 않으면 뭐라고 썼는지 한번 읽어보려구요. ㅎㅎ




도롱
원조가 고야의 그림이군요! 덕분에 좋은 참고가 되었어요. 푸코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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