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실은 인문학 강의를 여러번 돈을 내고 들어봤는데..;; 외국의 open course 강의에 비해 형편없는 강의에 실망을 많이 했어요;; 정말... 원래 연구나 논문은 잘 썼을지 모르지만 강의 실력은 형편없는 교수님들이 많아서.. 이제는 첫번째 맛보기 강의를 먼저 들어보고 계속 들을지 결정하게 되요;; 보통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뿐만 아니라 학교를 다닐 때에도 어떤 교수님들 강의는 정말 몇년째 같은 강의를 하는 걸텐데 나아지지 않는 소문이 많은 강의가 많더라구요..(대신 이런 수업이 학점 따기는 쉽다고 소문이 나서 많이 듣긴 하더라구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borumis

거북별85
와!! 감사합니다.... 웹사이트 들어가보니 강좌 주제들이 만만치 않네요...우리나라에서는 학부모 대상으로 '금쪽이 솔루션' '나도 부자되는 법' 정도의 강좌가 다수인데 놀랍네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를 보면서 든 생각은 반드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가 대부분의 일반인 정도의 눈높이여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전에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쉴 때 지역강좌를 들을 적이 있는데 항상 가장 낮은 초급반만 운영하더라구요... 어쩌면 세상에는 숨겨진 천재들이나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소수라도 그들을 위한 강좌를 나라에서 운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sky의 대학강의를 무료로 몇 강좌 제공하거나 또는 콜레주 드 프랑스같은 형태의 교육기간이 있다면 우리나라 교육도 언젠가는 5지선다형에서 벗어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거북별85
다시 무질서에서 그 충만한 권리를 되돌려 준다? 이것이 아마도 '담론의 질서'를 세우는 강제성의 촘촘한 그물망에 항거하는 투쟁 속에서 푸코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일 것이다. 비록 그 질서를 무너뜨리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그것을 분석하고 백일하에 드러내며 그것을 가려 주고 있는 명중성의 탈이라도 벗겨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 특히 2차 대전 후 유행했던 철학이 창설자로서의 주체의 개념 근원적 경험 또는 보편적 매개의 개념을 통해 배제의 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배가했으므로 푸코는 모든 철학적 가치들의 판을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그가 행할 교육의 장에서 이 작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 그는 이중의 방법을 제안한다. 우선 담론이 그 속에 갇혀 있는 금기, 배제, 제한의 씨실들을 풀어버리는 '비판'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강제의 체계와 함께 또는 강제이 체계에도 불구하고 담론이 솟아나는 현장에서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계보학적' 방법을 쓴다.

거북별85
콜레주 드 프랑스는 아주 특이한 기관이다. 여기 교수들에게는 정확히 말해서 학생이 없다. 그들은 청강생을 갖고 있지만 그 청강생에게 학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들과 아무런 대화나 접촉이 없다. 단지 곡예사와 그의 신기한 곡예에 갈채를 보내러 오는 관객들과의 이상한 대면이 한 주에 한번씩 벌어질 뿐이다.

거북별85
“ 푸코가 마치 우물 파는 사람이 물속에 뛰어들듯 빠른 걸음으로 강단에 들어올 때 그는 자기 의자에 당도하기까지 몇 사람의 몸을 제쳐야만 했다. 그러고는 원고지를 놓기 위해 녹음기를 한 옆으로 밀고 윗옷을 벗고 램프에 불을 켠 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시속 100킬로미터처럼 신속했다. 그리고 자신에 찬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나왔다. 희미한 빛이 회벽 수반에서 올라오고 있는 이 낡은 강의실에서 확성기는 유일하게 현대성에 양보한 물건이었다. 3백석의 강의실에 5백 명이 밀려 들어 빈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 하나를 들이밀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경솔하게도 강의 시작 40분 전에 그곳에 갔다. 그 결과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창틀 위에 앉아 2시간을 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공기도 탁해서 숨이 막혔다.... 그의 말에는 웅변조가 전혀 없었다. 투명하고 무섭도록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전 해의 자신의 연구업적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1년에 12시간 공개강좌를 가졌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압축을 했고 마치 기사를 다 쓴 후에도 아직 쓸말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기자처럼 여백을 가득 메웠다. 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질문은 없었다. 혼잡한 군중 속에서 그는 혼자였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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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40분 전에 도착해도 창틀에 앉아 2시간 보내면서 기자가 쓴 기사이다. 웅변조가 없지만 무섭도록 설득력있는 푸코의 강좌가 궁금하다. 3백석의 강의실에 5백명이 밀려들어 듣는 강좌임에도 혼잡한 군중 속에서 그는 혼자였다.
수백의 군중을 집중시키는 그의 매력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borumis
1969년부터 푸코는 투쟁하는 지식인의 화신이 되었다. .... 1969년과 1970년의 그는 불안정한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라는 두 순간이 서로 교차되고 중첩되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34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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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이 무관심이야말로 "아마도 현대의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강령"일 것이라고 푸코는 주장했다. 여기에 푸코는 "죽음과 글쓰기의 유사성"이라는 제2의 주제를 덧붙였다.
『미셸 푸코, 1926~1984』 34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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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나는 구조가 거리에 나와 시위하지 않는다고 쓴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5월 사건이 뭔가 보여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조가 거리에 나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데모 현장에 그것을 써 놓았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행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행동의 내재적 특성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34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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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3부1장에서 실은 푸코보다 라캉의 이 두 발언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갈수록 변화를 거듭하는 푸코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푸코 자신도 아직 그의 발전 가능성이나 변화의 최종점을 완전히 파악 못하니까요.

borumis
"혁명가로서 그대들이 바라는 것, 그것은 바로 지배자로서의 주인이다. 아마 그대들은 주인을 갖게 될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49-35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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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내 역할은 시카고에서 6명의 동료 선발위원들에게 '푸코가 괴물은 아니다', '괴물이기는커녕 그 반대다'라고 편지를 쓰는 것에 불과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35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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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선발위원으로서 나의 문제는 몇몇 지원자에 대해서 언제나 똑같은 것입니다. 견해나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의 크기를 측정하고,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능성이 분출하는 사람입니다." ”
『미셸 푸코, 1926~1984』 353-35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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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뒤메질이 푸코에 대한 불안감이나 거부감을 잠재우려고 보낸 앞의 편지도 마음에 들지만 레비 스트로스에게 보낸 이 편지는 참 공감이 가네요 (비록 그의 생각을 바꾸진 못했지만!) 저도 실은 면접 때 사람을 뽑을 때 현재 그 사람의 완성됨보다는 그 사람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는 편입니다. 너무 완성된 사람은 더 이상 적응하거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꽃의요정
저희는 누구를 뽑든 '신입연수'를 시작하면서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가끔 그렇게 해서 애써 뽑은 신입들이 다 나가는 경우도 있어 울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 정도의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일 안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그래도 매번 연수 도중에 그만둔다고 하면 진짜.....휴~~

borumis
하하 맞습니다. 실은 조금 있다 그만 둘 것 같은 사람을 걸러내는 능력이 요즘에는 면접관으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 같아요. 너무 뛰어나도 더 좋은 조건 있는 곳으로 금방 나가버리더라구요..ㅎㅎㅎ

borumis
“ 그러나 내게는 어떤 하나의 차원이 아직 탐사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광인들이 어떻게 광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어떻게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추방되어 감금되고 치료되었는지,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두고 가끔은 그들을 보살핀 기관이 무엇인지, 어떤 심급이 어떤 기준으로 광기를 결정했으며 그들을 강제하거나 벌주거나 또는 낫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사용되었는지, 결국 어떤 제도와 실천의 그물망 속에 광인이 사로잡히고 동시에 규정되었는지를 탐구해 보아야 한다.
.... 아주 정밀하고 명확한 지식이 거기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자 내게 하나의 목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도라는 복합적인 체계 안에 투입된 앎이 바로 그것이다.
... 그 앎의 가시적 실체는 이론적 담론이나 학문적 담론이 아니고 문학도 아니다. 그것을 일상적으로 규제받는 실천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35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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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의료행위는 불안한 혼합 속에서 정밀과학과 비과학적 전통을 한데 혼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균형과 일관성을 지닌 앎의 체계로 틀이 잡혀 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단순한 정신적 습관이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과학과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는 앎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
『미셸 푸코, 1926~1984』 35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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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거기서 나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결과와 마주쳤다. 그 하나는 '투입된 앎들'의 비교적 자율적이고 특수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 고유의 구조들이 각기 체계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 견해와 과학적 인식 사이에서 아주 특별한 층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앎의 층위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이 앎은 이론적 텍스트나 경험의 도구 안에서만 구체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실천과 제도 안에서 실체화한다. ”
『미셸 푸코, 1926~1984』 35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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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구성된 과학...과 견해의 현상... 사이에서 사유체계의 역사를 써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식 일반과 그것들의 조건, 그리고 인식하는 주체의 지위를 다시 검토하는 것으로 귀결할 것입니다."
(...)
사유체계의 역사는 그러니까 사유하는 인간 혹은 인간들의 역사가 전혀 아니다. 요컨대 유물론과 유심론의 갈등이 사람들을 적대적인 형제로 갈라놓은 것은 역사가 이 두번째 용어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사유의 주체로서 한쪽은 개인을, 또 한쪽은 집단을 선택하는데 여하튼 주체를 문제 삼는 것은 양쪽이 똑같다. .... 이원론을 포기하고 비데카르트적 인식론을 구성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즉 사유는 간직하되 주체를 제거하고, 인간이라는 자연이 배제된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359-36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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