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철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신화가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철학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학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매우 무지하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수학이 따로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생물학이 따로 있다. 역사도 역시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가 따로 있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역사,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사회적 결정이 한데 뒤섞인 거대하고 광대한 연속성이다. 그 커다란 주제들, 예컨대 연속성, 인간의 자유의 효과적 행사,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결정의 연결 등을 건드리기만 하면, 혹은 그 세 개의 신화 중 하나를 스치기만 하면 그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역사의 침해 또는 역사의 살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 철학자들은 역사를 전혀 다른 양식으로 실천하는데 그것은 역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신화다. 내가 역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역사가 바로 그런 철학적 신화다. 그런 역사를 내가 죽였다면 나는 더 이상 그런 영광이 없겠다.
미셸 푸코, 1926~1984 296,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298쪽의 "이들은 구조주의의 여러 비행 중에서도 특히 완료형 앞의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아;;; 이런 이상한 번역이 있다니;;; 이건 문법을 얘기하는 게 아닌데;;
다들 이 말이 이해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전 무슨 문법 문제도 아니고 완료형 앞의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298쪽의 원문은: Cavailles, ...... qui a pourtant refuté d'avance ..... l'argument de ceux qui cherchent à discréditer ce qu'ils appellent le structuralisme en le condamnant à engendrer, entres autres méfaits, la passivité devant l'accompli. 저라면 이렇게 번역했을 것 같아요: 카바이예스는 ... 소위 구조주의자들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의 논쟁을.... 앞질러 반박할(refuter는 피하는 게 아니라 맞서서 반박) 수 있었다. 이들은 구조주의의 여러 폐해(비행보다는 폐해) 중에서도 특히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 수동적 자세를 야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즉, 구조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구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이루어진 역사는 어쩔 수 없다는 수동적 자세를 취하게 하는 위험이라고 구조주의를 반대했던 것 같아요.
저도 이 문장 도통 이해가 안돼서 물음표 쳐 두었어요. @borumis 님 번역을 보니 이해되네요!
수많은 고통과 희열 속에서 글을 쓰고, 머리를 숙인 채 고집스럽게 일에 전념하는 한편으로 나는... 내가 그 안에서 모험을 감행할 미로를 하나 마련한다. 그 미로 안에서 나는 내 가설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가설에 지하통로를 파 주기도 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그것을 깊숙이 땅에 박기도 하고, 그 가설의 경로를 요약해 주거나 또는 왜곡하는 돌출물을 가설하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길을 잃고, 결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시선들 앞에 내 자신을 노출시킨다. .... ....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미셸 푸코, 1926~1984 30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사상의 역사가 텍스트 판독을 통해 사상의 비밀스러운 운동들을 밝혀내려는 곳에서 나는 '말해진 것들'의 수준을 그 특수성 속에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조건, 그것들이 쌓이고 서로 연결되는 형식들, 그것들의 변형의 규칙, 그것들을 토막 내는 불연속성들을 보여 주고 싶다. 말해진 것들의 영역이 소위 '고문서'다. 고고학은 그 고문서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1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는 자기가 건 도박의 내기돈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들은 그를 사르트르의 후계자로 소개했는데, 스승은 가혹하게 반격했다. 판은 시작되었다. 그가 판돈을 싹 쓸고 싶으면 임박한 격전을 엿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미셸 푸코, 1926~1984 31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여하튼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혼합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게다가 '좌익'에 경도된 학생들이 이것을 도왔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입니다. 맑시즘이 여기에 기회(또는 용어)를 제공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역사의 간교(또는 우둔함)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32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현대 세계에서 그 어떤 것이 절대적 자기희생의 가능성과 능력, 그리고 그것을 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해관계, 어떤 야망, 어떤 권력욕에 전혀 물들지 않은 채? 나는 이 모든 것을 튀니지에서 보았다. 신화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증거를.....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반면 이론의 분명한 정립과 그것의 과학적 가치는 완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위한 진정한 원칙이라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사람들을 행동 속에 끌어들이는 미끼에 불과하다...."
미셸 푸코, 1926~1984 32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튀니지를 떠나면서 푸코가 쓰려다 만 마네에 대한 책 대신 나온 책입니다. 튀니스 강연 녹음 등을 기반으로 만든 이 책은 꽤 괜찮은 책 같아요. 실은 전 마그리트 그림들을 참 좋아하는데 푸코와 마그리트 간의 서신도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마네의 발코니 원작과 마그리트가 그린 마네의 발코니입니다
푸코가 마네에 대한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관련 책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실은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들 시대를 시대배경 순으로 배우지 않고 그냥 작품들을 접하면서 알아가서 르네 마그리트나 페르낭 브로델, 알랭 바디우 등이 푸코와 같은 시대에 살았는지도 몰랐어요. ^^;; 이렇게 전기를 통해 보니 주변 상황과 인물들이 함께 보여서 좋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2월 22일(동지) 월요일에는 3부 2장 '곡예사의 고독'을 읽습니다. 푸코가 만 44세(1970년 12월 2일)에 콜레즈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을 하는 장면을 시작과 끝으로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되는 과정과 더불어서 나중에 『담론의 질서』로 묶여 나오는 취임 강연의 핵심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간에 지원 과정에서 푸코와 동료의 시선에서 그의 이전 작업이 정리도 되니 그것도 유용합니다.)
저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같은 교육 기관은 정말 훌륭한 시도 같아요. 당대의 가장 훌륭한 연구자가 자기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보장하되, 그 대가로 1주일에 한 번씩 일반인을 상대로 자기 연구를 소개하는 강연을 해야 한다는 발상. 그리고 그 강연 주제는 1년에 한 번씩 바뀌어야 한다는 조건. 푸코는 앞으로 그 강연을 토대로 콜레즈 드 프랑스 취임 이후 세 권의 책을 출간하고(첫 번째 책이 『감시와 처벌』), 그 당시의 강연 녹취가 죽고 나서도 계속 공개되면서 아직까지도 푸코 르네상스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 저도 콜레주 드 프랑스 같은 교육기관이 있는게 무척 신기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더구나 푸코의 강의를 듣기위해 수백명이 모였다니.. 더구나 취재하는 기자는 조금 늦게 갔다고 창틀에 매달려 봐야 했고..^^;; 푸코는 토론이 힘들다고 좀 아쉬워했지만 어떻게 일반인들이 이렇게 철학강의에 관심을 갖는지 무척 신기했고 부러웠습니다. 이런 교육기관이 가능한 프랑스의 문화나 역사적 배경도 좀 궁금해지더라구요....
심지어 늦은 것도 아니고 40분 전에 가는 바람에…ㅎㅎㅎ 좌석에 앉으려면 적어도 두세시간 전에는 갔어야 했나 봅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아이돌 콘서트도 아니고 참석하면 봉사점수나 또는 경품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참여하다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이 그냥 이런 종류의 시험만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평가하는 5지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에서 탈피하자고 하지만 이런 기반이 없이는 그냥 탁상공론이 될 거 같아요... ^^;;
@거북별85 @향팔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지금도 여전히 그 기관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운영하고 있네요. - 푸코가 활약했던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학위도 없고, 수강 신청도 없고, 누구나 석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답니다. - 푸코 때와 마찬가지로 매년 자기의 최신 연구 성과를 새로운 내용으로 강의해야 한답니다. 오히려, 1970년대와 비교하면 더 오픈된 점도 눈에 띄네요. - 푸코도 강연할 때마다 수많은 녹음기를 치워야 할 정도였다고 하잖아요. 요즘에는 아예 모든 강의가 영상과 오디오로 저장되어 홈페이지, 유튜브, 팟 캐스트 등으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답니다. - 1970년대가 아카데믹한 주제 중심이었다면, 요즘에는 정규 강좌 외에도 인공지능(AI), 기후 위기, 빈곤 퇴치, 사이버 보안 같은 세계의 주요 현안 문제를 다루는 1년 단위 강좌도 개설된다고 해요. 한국에서도 이렇게 보통 시민을 상대로 한 고등 교육 기관이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힘들겠지만요. :(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모든 강의, 세미나, 컨퍼런스가 녹화되어 공개되는 웹사이트입니다. https://www.collège-de-france.fr
오! 푸코의 강의들도 있네요. 비록 79년 이전 강의는 잡음이 심하게 들어가있지만.. 81년의 Subjectivité et vérité 같은 강의는 들을 만해요. 뭐랄까 syllable 하나하나에 강조를 두며 힘차게 말해서 정말 학생들이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을 것 같네요. 푸코가 한 건 아니지만 Catherine Soussloff가 푸코와 미술회화에 대해 강의한 건 캐나다인이어서 그런지 발음이 좀 프랑스본토발음은 아니지만 아주 천천히 강의해서 프랑스어초보도 들을 만하네요. 게다가 유튜브여서 영어자막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college-de-france.fr/fr/enseignements/audios-videos?key=foucault&sort_bef_combine=date_DESC&pag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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