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제3의 심급이 민중과 억압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고 당신은 확신합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 원한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중, 민중의 의지로부터 유리된 어떤 사람, 인민의 적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개인적인 적으로만 찍힌 어떤 사람 사이에 민중이 중개자로서 끼었을 뿐입니다... .... 두 당사자와 관련하여 완전히 중립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절대적 가치가 있는 정의의 관념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고 또 그 판결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민중적 사법의 개념에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민중적 사법의 경우에는 세 요소가 아니라 민중과 적이라는 두 요소가 있을 뿐입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06-40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실제로 억압의 제도였던 형벌체계에 관한 역사는 별로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국가장치로서의 사법은 특별히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중세까지 근본적으로 징세의 기능을 갖고 있던 형벌제도가 어느 시기에 갑자기 폭동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민중 봉기에 대한 억압은 그때까지는 군인의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그후에는 사법-경찰-감옥이라는 복합적인 제도에 의해 그 임무가 수행되었습니다. 사법정치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혁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법정치나 이데올로기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가 민중적 실천에 은근히 스며 들어가게 허용하는 모든 것을 몰아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07-40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재판은 또한 소송당사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카테고리가 있으며, 소송당사자들도 거기에 승복할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개념들은 부르주아지가 권력 행사를 위해 사용했던 무기들이다. 인민재판, 특히 지식인이 검사나 판사 역할을 하는 인민재판이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가 위에서 방금 내가 말한 주제들을 강요하고 퍼뜨린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인을 매개로 해서이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0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강제의 체계는 생산관게, 계급투쟁, 사회형태 속에, 다시 말하면 인간 정신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서구 문명에서 어떤 특정 시기에 광기가 과학적 연구와 앎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특정 사회 및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09-41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프롤레타리아는 지배계급에 대한 전쟁이 정의롭다고 생각해서 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이런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선 권력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의 권력을 타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전쟁을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 우리가 전쟁을 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이 정의롭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1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의 진단은 정말 마치 골수 생검처럼.. 뼈 때릴 정도로 솔직하다. 이 대담을 대학교때 읽었을 때는 촘스키의 편을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푸코의 발언이 더 와닿는다. 나는 그동안 어떤 사유의 역사를 가졌을까? 촘스키는 이것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정의를 말했는데, 그는 권력을 말했다." 그러나 그 '정의'라는 것에 대한 정의 또한 권력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 그가 발견한 정신분석학은 '억압적'이거나 '징벌적'인 성격을 전혀 띠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복고적인 것도 전혀 아니었다ᆢᆢᆢ그러나! 그것은 그가 나중에 광기에 대한 '과학'의 독백이라고 규정하게 될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4장78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는 다음과 같이 빈정거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진짜 심리학'을 정의하는 그 독단성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내포하는 무질서와 회의주의다. 만약에 '당신은 과학적이건 아니건 간에 생물학을 하겠는가?'라고 묻는 생물학자가 있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푸코는 덧붙인다.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4장80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얼마 후 프로방스에서 남편과 함께 부활절 휴가를 보내고 있던 자클린 베르도는 꽤 두툼한 봉투를 받았다. "부활절 계란을 보냅니다" 라는 글과 함께 푸코의 긴 글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서문이었다. 자클린 베르도는 그 부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문이 부문보다 더 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4장83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러고는 '그 안에서 경험의 형식들이 형성되고 발전되고 변형된 영역 다시 말해 사유의 역사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게 된 긴 여정을 펼쳐 보인 후 그는 "50년대 초 니체의 독서가 나를 현상학과 맑시즘이라는 이중의 전통과 단절시키면서 이런 종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4장88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는 정신병원에서만 심리검사자의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감옥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왜냐하면 1950년에 보건부가 프랑스 교도소 종합병원이 있는 프레스네 교도소에 전자뇌촬영 검사소를 개설하도록 조르주와 자클린 베르도 부부에게 명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푸코는 실험 심리학의 전문적 분위기를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의 견습은 이제 대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어떤 민속학자가 말했듯이 '현장' 속에서 이루어졌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4장 90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푸코는 1951년 가을부터 1955년 봄까지 작은 강의실인 카바이예스 홀에서 월요일 저녁마다 강의를 했다. 수강생 수가 대여섯 명을 넘기 힘든 고등사범에서 열다섯 명 내지 스물다섯 명이라는 숫자는 다소 많은 인원이었다. 수강생이 많았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크 데리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의 말솜씨에 놀랐다. 그것은 권위와 명석함과 웅변으로 빛나는 인상적인 강의였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5장91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민속그룹'의 일원으로서 푸코도 역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후에 이 시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았던 사회, 다시 말해서 나치즘을 허용하고 나치에 몸을 팔았으며 마침내 드골과 함께 침몰해 버렸던 그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필연성과 긴박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 모든 것 앞에서 프랑스 젊은이의 대부분이 전면적 거부라는 반응을 보였다ᆢᆢᆢ.
미셸 푸코, 1926~1984 1부5장93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사실 정치적으로나 지성적으로 푸코를 '스탈린주의자'의 반열에 넣기는 좀 힘든 일이다. 열성당원 중의 하나였던 르 루아 라뒤리는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미셸 푸코는 과격한 스탈린주의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물론 그 강의는 정통 맑스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푸코는 거기서 스탈린을 언급했다고 파스롱은 말했다. 그의 강의는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는 알코올 중독의 가난한 구두장이 예화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예화는 바로 스탈린의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리가 가난과 착취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그것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가난한 구두장이를 예로 들었던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5장96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가 1953년에 탈당한 것은 확실하다. 이 탈당의 이유는 물론 복합적이다. 우선 이 점이 아주 중요한데, 푸코는 동성애를 부르주아의 악덕, 퇴폐의 징후로 보는 당에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동성애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갈라놓는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때 동성애 때문에 세포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있었다. 한 특별한 증인이 이 해석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루이 알튀세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푸코가 왜 공산당을 떠났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즉각 "동성애 때문에"라고 답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5장101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푸코는 한 번도 자신의 우상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바타유는 푸코가 프랑스로 되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블랑쇼나 샤르와도 아무런 교류를 맺지 못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1부5장107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2월 23일 화요일에는 3부 3장 '어둠의 교훈'을 읽습니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취임하고 나서 곧바로 푸코는 감옥 정보 공개 운동에 뛰어듭니다. 제소자의 인권 개선 운동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68 혁명 이후 수용된 시위자의 탄압 문제와 연결되면서 폭발적인 반향을 얻게 되는데요. 이번 장에서는 그 전개 과정과 그런 활동의 결과물로 나온 『감시와 처벌』(1975)을 소개합니다.
소책자는 (감옥정보그룹으로 서명되었지만 푸코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서 감옥정보그룹의 목표들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재판소, 감옥, 병원, 정신병원, 노동의학, 대학, 언론기관, 이 모든 제도들을 통해 그리고 각기 다른 가면 밑에서 억압은을 자행되고 있는데 그것은 결국 정치적 업압의 뿌리다. 피착취계급은 이 억압을 언제나 잘 알고 있었다. 그 계급은 억압에 항거하기는 그친 적이 없으나 역부족으로 그것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지식인, 기술자, 사법인, 의사, 기자 등 새로운 사회계층이 그 억압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의와 건강과 정보의 배포를 책임진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일 속에서 정치권력의 억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참을수 없음'이 이미 오래전부터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행해졌던 투쟁과 조우했다. 그리고 이처ㅓㅁ 합쳐진 두 참을 수 없음은 19세기 이래 프롤레타리아가 형성해 온 수단들을 재발견했다. 그성은 우선 노동자들 자신에 의한 노동조건의 조사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감옥정보그룹은 70년대 초에 미셸 푸코의 큰 사업이었다. 이것은 진정 그의 운동이었다. 그 자신의 그리고 다니엘 드페르의 운동이었다. 수많은 뱅센 시절의 동료들이 이들과 합류하여 함께 일했다. 물론 분명한 형태가 없는 막연한 동조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당이 아니므로 가입이나 당원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죄수행동위원회는 곧 이 유명한 대부들과 헤어져 독립할 것을 요구했다. 세르주 리브로제는 한 인터뷰에서 미셸 푸코가 범법과 불법에 대해 익명의 글을 <리베라시옹>지에 썼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1974년 2월 19일 이렇게 선언했다. "분석의 전문가들은 이제 지겹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말하기 위해 나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감옥정보그룹은 이미 주도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활력도 또한 함께 꺾였다. "그들은 계속한다. 그러나 어떤 메아리가 있는가?" 라고 다니엘 드페르와 자크 동즐로는 1976년의 한 기고문에서 죄수행동위원회의 투사들에 관해 이렇게 말하며 감옥정보운동을 결산했다. 씁쓸함, 실패의 감정, 이것이야말로 감옥정보 그룸의 자동해체 이후 푸코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미셸은 이 모든 것이 무위로 끝났다는 감정을 가졌다."고 질 들뢰즈는 1986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들뢰즈는 그러나 지식인의 참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시험해 볼 수 있었던 이 '모험'이 '경험'이 푸코에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더 이상 고상한 가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참여가 아니라 이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실에 시선을 돌리는 참여였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보여 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말로 그것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옥정보그룹은 또한 '언표생산'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고 들뢰즈는 덧붙였다. 푸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보기에 감옥정보그룹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감옥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언표가 여기 있다. 직접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진 이 언표들은 과거에는 결코 말해질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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