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 저도 @연해님과 @꽃의 요정님과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더 많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요..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면 다음에 미셸 푸코 만나면 반가울거 같아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거북별85

YG
3부 5장은 흔히 『성의 역사』 1권으로 알려진 『앎의 의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푸코의 ‘권력 이론’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에리봉이 최대한 이 책에 근거해서 권력 이론을 설명하고 있어서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실 것도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의 후속 연구를 염두에 두고 제가 조금 도식화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
『앎의 의지』에서 푸코가 비중 있게 비판하는 억압 가설은 당시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젊은 세대가 열광했던 빌헬름 라이히(1897~1957)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 같은 사상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이 금기시되고 억압되었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푸코는 17세기(푸코의 세계관에서 고전주의 시기라고 불리는 때) 이후 오히려 성 담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기원을 따라가 보면, 이렇게 ‘성에 대해서 말하기’는 기독교의 고해성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봅니다. 푸코는 이 기독교의 고해성사가 근대의 정신의학, 정신 분석으로 이어졌다고 보고요.
푸코는 이렇게 성에 대해서 말하라고 부추기고, 나아가 성적 해방이 곧 자유라는 믿음 자체가 바로 권력의 “효과적인 간계”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자기의 내밀한 영역인 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부추김으로써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권력은 특정한 방식으로 ‘욕망하는 주체’를 ‘생산’한다!)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권력이 왕이나 국가라는 정점에서 아래로 투사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나온 말입니다만, 직관적으로 이 문장만 보고 이해되듯이 사회의 밑바닥 피지배 세력이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을 말하는 선언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비관적인 세계관이죠.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꽂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족, 학교, 병원 등 “사회조직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서부터 작동하는 다양한 힘의 관계로 짜인 그물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 내면에도 권력이 작동한다”라는 비관적인 세계관입니다.
*
제가 앞에서 『말과 사물』 편에서 해설하면서 영국의 니컬러스 로즈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로즈는 『앎의 의지』와 그 이후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연의 영향을 받아서 ‘통치성’ 연구로 확장합니다. 우리를 ‘직접’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운 개인’으로 스스로 관리하도록 부추기는 권력이 바로 통치성입니다.
심리학, 자기 계발 담론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건강, 행복, 효율성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죠. 푸코가 『앎의 의지』에서 ‘성(섹슈얼리티)이 곧 특정한 개인 삶의 형태 자체가 되는 방식’을 말했듯이, 미국 영국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통치성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책이 아주 많아요. 서동진 선생님의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2009)도 이런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연구 성과고요.
심지어, 제니스 펙(Janice Peck)의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2008)에서는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과 대중의 열광도 바로, 나의 상처를 고백하고 치유하며 더 나은 주체가 되려는 노력을 통해서, ‘자기 계발하는, 혹은 자기 관리하는 주체’를 만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통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답니다.
*
푸코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권력이 그물망처럼 어디에나 있다면, 저항 역시 어디에나 있겠죠. 권력이 중앙 집중되어 있지 않기에, 저항 역시 단일한 혁명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지점에서 일어나는 미시적 투쟁이 됩니다. 1970년대 이후 좌충우돌 세상을 낫게 만들기 위해서 실천한 푸코의 모습과 겹칩니다.
하지만 권력이 우리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말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즉 “예속화”를 통해서 “주체”가 만들어진다면 결국 이런 저항의 몸짓 역시 권력의 새로운 작동 방식 아닐까요? 로즈가 자기가 더는 ‘통치성’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알겠는데 그 저항의 방식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죠.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한국사회의 다양한 층위, 구체적인 맥락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논리가 어떻게 스며들고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신자유주의를 사회, 정치, 행정, 교육, 문화 등 자본주의 사회의 전 분야를 총체적으로 조직하는 '새로운 합리성'으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것. 이 책은 1980년대 산업구조조정에서부터 20년간의 흐름이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새로운 주체화 방식에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쓰레기 같다는 의미인 '트래시 TV'의 진행자에서 토크쇼의 여왕으로, 문화 아이콘으로, 대통령을 만드는 거대한 미디어 권력으로 성장한 오프라 윈프리. 인간 승리의 위대한 모델이자 전세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엘리트로 우뚝 선 오프라 윈프리를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시각으로 분석한 책이다.
책장 바로가기

향팔
지난번 YG님의 <말과 사물> 해설도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알기 쉽게 정리를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YG님의 글을 정독하며 책의 해당 대목을 다시 넘겨보니까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네요.

YG
1974년에 나온 스티븐 룩스의 『권력: 급진적 접근』은 권력 이론에 대한 중요한 사회학 고전 입니다. 이 책에서는 권력을 1차원, 2차원, 3차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룩스의 권력 이론을 푸코의 권력 이론과 비교해 봐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 볼게요.
*
룩스는 권력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합니다.
1차원 권력은 “A가 B에게 무엇인가 강제하는” 눈에 보이는 권력입니다.
2차원 권력은 “A가 B의 의제 자체를 제한하는” 눈에 보이지 않은 권력입니다. 이때 눈에 보이는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B는 A로부터 속박되었다고 분명히 인식하죠.
3차원 권력은 “A가 B에게 인식과 욕망을 형성해서, B가 A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권력입니다. 이때 B는 자기가 A로부터 억압당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하죠.
*
여기서 자크 라캉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푸코의 선배, 알튀세르의 권력 이론도 살짝 언급할 만합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는 개념으로 유명합니다(1970). 학교, 언론, 교회가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서 우리가 스스로 ‘국가의 선량한 시민’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룩스의 3차원 권력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모두 ‘권력의 비가시성’에 주목합니다. 또 지배 세력이 피지배자의 욕망 자체를 형성해서, 피지배자가 자발적으로 지배에 복무하게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
하지만 룩스의 3차원 권력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와 푸코의 권력 이론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습니다. 룩스와 알튀세르에게는 권력의 배후가 있습니다. 룩스에게는 ‘지배 권력’이고,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의 집행 기관인 ‘국가’죠. 하지만 푸코에게는 권력의 관계망이 있을 뿐, 그 권력을 만들어서 행사하는 배후가 없습니다.
룩스와 알튀세르에게는 진실과 거짓(이데올로기)의 구분이 있습니다. 이때 권력은 피지배자에게 ‘오인’하도록 만들어서, 자기 이익에 반하면서 오히려 지배 권력에 복무하는 ‘가짜 진실’을 만들죠. 반면, 푸코는 주체가 어떤 담론을 ‘진실’이라고 믿는 과정 자체에 주목합니다. “나는 이런 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야”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것은 자기를 구성하는 진실이 되죠.
*
룩스나 알튀세르에게 여전히 저항은 “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 진짜를 보자”가 됩니다. 하지만 푸코에게 있어서는 이데올로기와 진실을 구분하는 일이 의미가 없을뿐더러,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둘을 구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은 진실 자체도 나를 만드는 특정한 시기 권력의 작동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죠.
룩스와 알튀세르는 “누군가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푸코는 눈 자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황을 고발했다고나 할까요? 아예 눈을 들어내지 않는 한, 푸코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3차원적 권력에 대한 근본적 해부현대적 권력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자 필독서인, 스티븐 룩스의 불멸의 고전인 ‘Power-A Radical View’ (2021년에 출판된 제3개정판)의 완역이다.

아미엥에서의 주장
책장 바로가기

YG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읽으신 분들은 『멋진 신세계』와 『1984』의 디스토피아를 비교해 놓은 대목이 룩스/알튀세르와 푸코의 권력 개념의 차이와 연결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

거북별85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YG님이 과학기자라고 소개되었던 거 같은데 이번 책읽으면서 철학에 대한 YG님의 깊이에 감탄만 나옵니다!!^^

FiveJ
시선을 또 넓혀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룩스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도 급 읽어보고 싶어졌네요

YG
@FiveJ 대학교의 사회학 과정에서 꼭 읽히는 필독서 가운데 한 권이니 한번 살펴보셔도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에서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옛날 판을 가지고 있는데, 링크 건 책은 2021년에 나온 개정판이라서 푸코의 권력 이론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룩스는 1941년생입니다.)

연해
저는 이 두 대목 덕분에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조금 더 이해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꼼꼼히 정리해주시다니! 매번 정말 감동입니다:)
"룩스나 알튀세르에게 여전히 저항은 “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 진짜를 보자”가 됩니다. 하지만 푸코에게 있어서는 이데올로기와 진실을 구분하는 일이 의미가 없을뿐더러,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둘을 구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은 진실 자체도 나를 만드는 특정한 시기 권력의 작동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죠.
룩스와 알튀세르는 “누군가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푸코는 눈 자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황을 고발했다고나 할까요? 아예 눈을 들어내지 않는 한, 푸코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도롱
푸코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눈을 들어내지 않는 한' 다르게 보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돼요. 어쩌면 다시 헤겔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구요!
YG 님의 올 해의 추천책 감사합니다. ^^ YG님 의 추천은 술술 읽히는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잘 정리된 책을 추천해주시는 것 같아서 배울 내용도 많고 기대가 됩니다~

borumis
실은 푸코의 참여정신보다 전 더 이끌렸던 게 이런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점이었어요. 전에 YG님 말대로 비록 진단만 하고 치료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해도.. 정확한 진단이 없는 치료는 그냥 사이비 약장수?같은 느낌이어서.. 전 진단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메스는 수술집도의만 드는 게 아니라 조직생검을 위해서도 드니까요!

거북별85
“ 당신들, 오늘의 범죄가 어제의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들은 이성적인 추론의 능력이 없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최소한 우리처럼 당신들도 자의적인 힘에 도취되어 잠자고 있는 사법의 피해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들은 또한 역사적 위험물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제도에 대한 연구 없이 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 사법제도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문장모음 보기

거북별85
“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도 이 책에서 나온 말이다. 이 문장과 이것이 야기시킨 오해에 관해 푸코는 그것을 거두절미하여 읽어서는 안 된다고 수차 강조해야만 했다.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큰 덩어리로 나뉘어 위에서 아래로 서로 반향을 일으키며 점차 제한적인 그룹으로까지 내려와 결국 사회조직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러한 전면적 이분법적 대립은 권력관계의 원칙이 아니며 그것의 일반적인 모태도 아니다. 차라리 생산기구나 가족 또는 제한된 그룹이나 제도들 안에서 형성되고 행사되는 다양한 힘의 관계가 사회조직 전체를 둘로 쪼개는 단절의 효과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문장모음 보기

거북별85
“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 의연하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 국제 시민권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피지배자며 그런 점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세계 시민의 의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이 결코 말없는 정치적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권력자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의 기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문장모음 보기

연해
“ 언제나 그렇듯이 푸코는 이 역사적 조사를 자기 혼자서 직접 할 생각이었다. 그의 역사 연구 방법은 그런 것이었다. 즉 어떤 문제나 어떤 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자신이 직접 가서 보는 식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아마도 푸코가 철학적 사유방식에 도입한 가장 큰 단절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사변적'ㆍ이론적 성찰은 역사에 대해서 소원한, 어쩌면 약간 오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철학자들은 생생하고 '정밀한' 1차자료로 간주되는, 그리고 가끔은 매우 수준 높은 역사서를 읽고는 잠시 성찰한 후 자신이 직접 얻은 것이 아닌 진실과 의미를 거기에 부여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용납되는 관행이었다. 너무나 손쉽게 용납되었으므로 그 누구도 이미 되어 있는 연구 결과를 기초로 자신이 연구를 한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것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
『미셸 푸코, 1926~1984』 p.46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문장모음 보기

FiveJ
정부가 독점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 개인들의 의지를 새겨 넣읍시다. 정부로부터 이 독점을 매일같이 조금씩 빼앗아 내야 하겠습니다
『미셸 푸코, 1926~1984』 47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문장모음 보기

FiveJ
어렵지만 푸코가 숨겨져있던 권력의 모습들을 드러내는 그의 생각을 보면서, 정말 내가 서 있는 이 사회에 형성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꽃의요정
YG님~ 올 한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작년에도인가?)
비문학 분야는 문외한이라(문학도 마찬가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도저히 모를 때가 많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길에 등불을 들고 앞장 서서 저를 인도해 주시는 느낌을 항상 받거든요.
다 읽지는 못해도 참고하라고 올려 주시는 정보들도 책 읽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아프지 마시고(이건 제 이기적 욕심입니다. 아프면 책을 못 읽으니까!), 꼭 100살까지 건강눈 유지하시기를 바라요~
노안 오면 제때 수술 받으시고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YG
@꽃의요정 님, 저 이미 노안 왔어요. 4년 전에. :(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