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

D-29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
자신들을 내리 누르는 엄청난 무게를 맨손으로 들러 올리려는 사람들의 봉기다. 세계 전체의 질서라는 그 무게는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지만 특히 제국 국경의 농부며 석유 노동자인 그들을 더욱 힘겹게 짓누른다. 아마도 지구 전체의 체제에 대항하는 역사상 처음의 봉기가 아닐까. 그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저항이다. 그리고 가장 무모한 저항이기도 하고.
미셸 푸코, 1926~1984 49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존의 '혁명적' 모델에 부합해서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중동의 정치적 조건, 다시 말해서 세계 전략의 균형이라는 조건을 뒤흔들어 놓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때까지 운동에 강한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그 독자성은 앞으로 다른 지역에까지 확장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가장 허약한 체제를 뒤엎으면서, 그리고 가장 강력한 체제를 위협하면서 앞으로 이 지역 전체를 불 지르게 될 운동은 아마도 '이슬람' 운동일 것이다. 단순히 종겨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역사와 문명의 산물인 이슬람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거대한 화약이 될 것이다. 바로 어제부터, 이제 모든 무슬림 국가는 그들의 유구한 전통에서 출발하여 내면으로부터의 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49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샤 체제가 깊은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시위대를 피로 물들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탄압이 이란 민중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을 형성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겠다. 샤가 패배하여 이란을 떠날 줄 것을 모든 사람들이 원했었다. 그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서였다.
미셸 푸코, 1926~1984 494,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것은 좌절된 소명감에 대한 고백이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채 확신을 수정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채로 남아 있으면서 판단의 전환을 해야 하는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의 토로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확신에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지는 말 것"을 충고하는 메를로-퐁티의 교훈을 매일매일 지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50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이란 혁명을 전 지구적 체제에 대한 첫번째 대규모 봉기라고 해석한 것, 국제무대에서 이슬람이 맡게 될 정치적 역할에 대한 강조 등은, 사람들이 그에게 비난했듯이 맹목적이기는커녕, 거의 예언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 특히 과격한 공격으로 표출되는 무슬림 세계의 전면적 거부 등 매 단계마다 그가 보여 주었던 우려는 오늘날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미셸 푸코, 1926~1984 500,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우리가 그의 분석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결국 비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블랑쇼가 말했듯이 '비판'은 관심, 현장의 확인, 관용으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주문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501,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는 연구서가 너무 많이 팔린다는 것은 책의 정당한 수용을 위해 불길한 일이며 수많은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작품이 그 진정한 수취인, 즉 이것이 다루고 있는 문제와 그 근거의 전통적 이론을 알고 있는 연구자들의 테두리를 넘어설 때 이 책은 ... '앎의 효과'만이 아니라 '여론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미셸 푸코, 1926~1984 50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연구서가 베스트셀러인 프랑스가 부럽기도 하지만 푸코의 말대로 '여론의 효과'는 SNS 등의 매체가 더 발달할 수록 더 무서워진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도려내서 판단하는 북 인플루엔서들이 정말 많다.
여론의 구미에 맞는 책만 팔리고 그것들만이 언론에 언급된다는 문제도 있다. 이 총서의 목적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학술 서적을 대량 유통의 경로에 내맡기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다만 동질적인 요소들, 즉 공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공부하는 사람들에 이르는 그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어려운 책의 독서가 널리 확대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출판양식이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미셸 푸코, 1926~1984 505,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논쟁의 조건들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진지한 작업들이 출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세계 역사에 대해 아무것이나 이야기하고, 또 고정관념의 문구나 슬로건으로 근대사를 재구성하는 성급한 책들이 쇼윈도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미셸 푸코, 1926~1984 50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감옥정보그룹은 여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죄소들의 이름을 빌려 그들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감옥정보그룹의 목적은 개량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감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죄수들이 억압적 형벌제도 속에서 당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죄수들 자신이 폭로한 이 사실들이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빠르게 널리 확산되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감옥 안팎의 동시적인 투쟁 속에서 정치적, 사법적 투쟁을 효과적으로 통합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76p,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서로 다른 이념들 사이의 교환, 토론, 요컨대 활발한 논쟁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잡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폐쇄적인 동인들의 잡지거나, 아니면 미적지근한 혼합의 형태일 뿐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잊혀지고 있는 것은 비판적 연구의 기능이다. .... 책을 한 권 읽고 그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또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책에 대해 성실하게 말하거나 또는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책을 충분한 거리를 두고 말하려는 그 노력은 글에서 글로, 책에서 책으로, 작품에서 평론으로 어떤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 그런데 비평은 이 기능을 잊어버리고 정치적, 사법적 기능으로만 향하고 있다. 정적을 비난하고 상대방을 판단하여 유죄선고를 내리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잘 봐주면서 그에게 월계관을 엮어 준다. 참으로 빈약하며 재미없는 기능이다. 나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개인들의 반응이 제도의 메커니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임은 바로 거기에 있다. 여하튼 오늘날 진정으로 비판의 기능을 담당하는 출판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507-508,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이 선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승리로, 다시 말해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의 관계가 수정된 것으로 체험된 듯하다. 그렇다고 통치받는 자가 통치하는 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결국 정치계급 안에서의 자리바꿈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사회당이 포함하고 있는 위험과 함께 사회당 정부 안에 진입했다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한 정부에 협력하여 일하는 것은 전면적인 수락이나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협력하면서 동시에 비협조적일 수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짝을 이룬다고까지 나는 생각한다.
미셸 푸코, 1926~1984 512,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동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옆에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523,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 내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카드 게임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에 푸코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부르디외의 전략은 두 이름을 고의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었고, 푸코의 전략은, 좀더 큰 전체 속에서 용해시키기 위해서건('지식인 그룹') 아니면 자신이 노조 지도부의 유일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건, 이 두 이름의 연합을 깨는 것이었다.
미셸 푸코, 1926~1984 527,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내가 말하려 했을 때는 말을 못하게 하더니, 내가 침묵을 지키니까 사람들은 내 침묵에 놀라고 있다. 그 결론은 한 가지 뿐이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견해일 때에만 내게 말할 권리를 준다.
미셸 푸코, 1926~1984 529,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2월 26일 금요일에는 3부 6장 '맨손으로 하는 저항'을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잠시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푸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과는 최악이었죠. 이란 현지까지 가서 친미 독재 정권을 저항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대안으로 '이슬람 공화국'을 내세우며 이슬람 혁명을 미화하는 데에 앞장서게 되었으니까요.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근본주의 이슬람 정권이 현재까지 이란 사람과 또 여성과 소수자 등에게 가한 끔찍한 억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요. (솔직히, 저는 작가나 지식인 등이 저널리스트 흉내를 냈다가 성공한 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널리즘도 아주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전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요즘에 지식인이라는 말은 별로 ‘인기’가 없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정확한 의미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나는 지식인이다. 사람들은 내가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전체의 커다란 필연성에 비해 볼 때 그런 식의 죽음, 그런 식의 함성, 그런 식의 봉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의 일반원칙이 중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전략가라면, 그 전략가가 정치인이든 역사가든 혁명가든, 또는 샤나 아야톨리의 추종자든 나는 개의치 앓는다. 나의 이론적인 도덕은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비전략적’이다. 개인이 봉기할 때는 그것을 존중하고, 권력이 보편적 법칙을 위반할 때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간단한 선택이고 불안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역시의 밑에서 역사를 단절시키고 뒤흔들어 놓는 어떤 것을 엿보아야 하고 동시에 정치의 뒤에서 무조건적으로 정치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감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나의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첫 번째 사람도 아니고 유일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3부 6장, 498~499쪽, 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하지만 이 선언은 푸코의 사상이나 지식인의 실천을 놓고서 아주 중요한 인용이라고 생각해요. 찬찬히 읽어보시면서 짐작하셨겠지만, 푸코는 지식인이 상황을 A부터 Z까지 분석해서 장악하고 최선의 실천 전략을 내세우는 그런 모습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필연성)을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던 ‘보편적 지식인’ 모습에 대한 반발이죠. 푸코는 자기가 역사의 전체 그림을 알고 있다고 믿지 않으니, 눈앞의 ‘사태’ 그 자체에 주목할 뿐이죠. 그러니까, 개인이 권력에 맞서 일어서는 순간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하니 ‘지지하고’ ‘연대하는’ 게 맞습니다. 또 권력이 인권과 같은 “보편적 법칙”을 위반할 때는 또 그 상황에 맞춰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게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임기응변’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태 전체를 장악할 수 없는 지식인의 한계 속에서 최선의 윤리적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인용문 가운데 “역사의 밑에서 역사를 단절시키고 뒤흔들어 놓는 어떤 것을 엿보아야 하고”라는 대목은 푸코의 사상과 관련해서도 중요해 보여요. 푸코는 역사를 연속적인 발전으로 보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폭발, 반란, 불연속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현재의 권력 또 그것이 생산한 개인(주체)이 당연시하는 것들의 균열이 생기는 지점을 감시해야 합니다. @borumis 님께서도 언급하신, 『미셸 푸코』의 저자 프레드리크 그로 등은 이 선언이 푸코의 마지막 강연 주제인 ‘파레시아(Parrhesia,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하기)’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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