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1. 현대사회의 우리들이 뭔가를 읽고 생각하고 영감을 얻고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리거나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일련의 활동들이, 고대로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속에서 법칙을 찾아 생활에 접목시키던 인류의 습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의 일상이었던 이 활동들이 모처럼 대단한 발견이라거나, 과학을 하고있다는 감각으로 재구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게, 별일 아닌듯이 하고 있는 이 사고과정들은, 어떤의미로는 기적같은 능력이구나, 하고.
하지만 케플러와 뉴턴의 노력을 진지하게 읽어내려가다보니, 내게 저절로 주어지는 영감이나 아이디어들을 너무 과대평가 했다 싶기도 했다. 그들의 집요한, 인생을 건 연구 앞에서 너무 쉽게 그들과 동질감을 느껴버렸구나. 어쩌면 지금의 과학도들 정도가 되어야 이런 가능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마, 특별하고 천재적인 옛 선지자들의 탐구력과, 우리들이 일상에서 향유하는 탐구력은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려치기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우리가 하고 있는 사유들도 천재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소중하고 반짝이는 조약돌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케플러와 뉴턴의 사유가 가져온 커다란 의미 속의, '탐구활동'이라는 동력이자 노력에 대한 감화랄까. ㅎ
2. 신학과 교회의 억압, 점성술의 비과학적인 미신들과 과학적 합리가 공존하거나 대립해왔던 것을 접하게 되니, 지금의 우리들이 가짜뉴스와 이성적 합리로 대립하는 것도 어쩌면 인간세상의 오래된 구도인것처럼도 느껴지는 것이다. 라고까지 쓰고 그믐페이지를 보니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라는 문장모음이 올라와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실패 또는 돌연변이와 순종을 교차하며 진화하는 것이겠지. 가짜뉴스나 비이성적 신념을 보면 학을 떼다가도, 그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케플러와 뉴턴이 점성술에 대해 그러했듯, 우리에게도 비합리와 비이성적 신념이 어느정도는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확연히 나와 의견이 갈리는 일마저도, 내가 동의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존재하는 인간활동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그들에게 완전히 빨려들어가지 않고 또 완전히 외면해버리지 않는, 그들과 나 사이의 어떤 인력을 인정하면서.
3. 이런 두뇌의 용씀을 꾀하고 있다가, 케플러가 원운동에서 타원운동으로, 완벽에서 불완전으로, 풍요에서 결핍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장면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부자이자 풍요로운 삶을 향유한 튀코 브라헤는 절대 알지 못했을, 가난과 결핍을 알기에 찾아낼 수 있었던 불완전한 지구와 우주의, 또는 신의 질서를. 그렇지만 부자로서 튀코 브라헤가 남긴 (나중에 뉴턴이 이론으로 다 일축해버리긴 했지만) 노력과 관측들이 케플러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그대로 자신의 기여를 한 것이겠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거나, 다양한 계급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듯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존하려는 노력을 해야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 세이건이 이 장 처음에서 언급한, 완벽과 고갈의 중간단계인 지금의 ‘결핍’의 상태에 어느정도 감사하며 사유의 마무리를 짓는다. 완전히 만족하지도, 또는 완전히 좌절하지도 않을 수 있는 이 상태의 지구, 그리고 나로서.
2026년 새해 첫 책은 코스모스!
D-29

아침의문
바닷가소년
말코손바닥사슴님의 대화: @바닷가소년
인간과 비인간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할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요.
생각해보니, 여기 그믐 모임방에서도 LLM을 통해 깎아놓은 밤톨처럼
매끈한 문법으로 다듬은 말들이 모여 있다면 소통 의지가 꺾일 것 같네요.
조금 거칠고,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속엣것을 꺼내놓는 발화와 발화가 부딪혀야
깨지고 마모되더라도 소통이 될 것 같아요.
'말하고 싶다' '듣고 싶다'는 소통 의지도 지속되고요.
(지금 저의 소통의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만..!!)
속엣것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이걸 전제하고 믿는 관계성이 중요한 걸까 싶고요.
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답글을 달아주시는 것 보면 소통의지가 활활 타오른다고 말씀 안 하셔도 알 것 같네요.
(한국어판 p141 “발톱 자국을 보아 하니 사자가 한 일이다.” ㅋㅋㅋ)
저도 어제 알바 지원을 하는데 자기소개서 밤톨을 깎았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그렇게 밤톨처럼 깎아놓은 말들을 발견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우리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도 누군가는 오래 걸려서 손으로 밤을 깎을 것이고 누군가는 적당히 기계로 깎아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을 것이며 누군가는 기계로 깎은 밤톨을 다시 살펴보며 손으로 다듬겠지요. 저는 3번째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바닷가소년
조금 더 목표를 잡고 체계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매일매일 읽은 페이지를 엑셀에 기록해 남은 페이지를 계산하고, 완독하려면 하루에 몇페이지 읽어야 하나, 숫자로 나타내고 그래프로 그려놓으며 읽고 있습니다. 3기 내에 읽으려면 하루 9페이지, 4기까지 염두에 둔다면 하루 4.25페이지입니다.
P110 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y (1857-1935), Russian rocket and space pioneer. A deaf, largely self-educated provincial schoolteacher, he made fundamental contributions to astronautics.
독학으로 로켓의 기초 이론을 만든 치올코프스키를 생각한다. 동네 학교 선생이었던 사람을. 두달동안 실험을 해서 노벨상을 받은 인슐린 연구를 생각한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것은 끈기이다. 중꺾마라고 유행했던 말이 있다. 나는 그런 말이 좀 더 오래 유행하길 바랐다. 끈기 있게 코스모스라도 완독을 해보자.
I can remember as a child reading with breathless fascination the Mars novels of Edgar Rice Burroughs. I journeyed with John Carter, gentleman adventurer from Virginia, to “Barsoom,” as Mars was known to its inhabitants. I followed herds of eight-legged beasts of burden, the thoats. I won the hand of the lovely Dejah Thoris, Princess of Helium. I befriended a fourmeter-high green fighting man named Tars Tarkas. I wandered within the spired cities and domed pumping stations of Barsoom, and along the verdant banks of the Nilosyrtis and Nepenthes canals.
어렸을 때 읽은 SF 속 내용을 묘사한, 세이건의 글이 명랑하다. 이야기의 힘이다. 문화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량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숨은 가치와 영향력이 있다.
P112 But when we improve the resolution tenfold, when we begin to see detail as small as a hundred meters across, the situation changes.~
수 킬로미터의 작은 해상도부터 수미터의 큰 해상도까지 지구를 살펴봄. 재미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115 페이지에 수백킬로 해상도에서부터 줌인하는 사진 자료가 있다. 책 읽을 때 불편한 점이 있다. 여기서 이야기 한 내용이 한참 뒤에 사진자료로 있다든가, 사진자료가 먼저 나오고 한참 뒤에 관련된 글이 나온다든가. 이 비천한 나도 저 위대한 코스모스에서 지적할 점이 있다. 아마 이에 대해 인지 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으로 편집했겠지만.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밥을 먹을 때면 자주 보는 얼굴이 있다. 얼음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녹은 물이나 가끔 빨아먹으며 맹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청년이다. 그 청년의 ‘쓸모’를 생각할 때가 있다. 요즘 빈둥거리며 지내는 나의 쓸모를 생각할 때가 있다.
P113 A later multi-stage liquid-fuel rocket, the lineal descendant of Goddard’s early efforts. Apollo 11, commanded by Neil Armstrong, lifts off on July 16, 1969, from Cape Canaveral, Florida, on a three-day flight to the Moon. Courtesy NASA.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사진을 보며 1969년, 로켓을 타고 3일간 달을 향해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소름이 돋았다. 닐 암스트롱이 된 상상을 했다. 두려웠다. 이제 반세기가 흘렀다. 얼마 전 누리호 4차 발사를 보며 눈물 흘리던 기억이 났다. 반세기 정도만 더 기다리면 나도 가볼 수 있을까. 머스크께 감사를.
호박고구마
2장까지는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 일수 있는데, 난 평소 우주는 느끼고 살고 있었나?
3장부터는 사람이 등장하니 그래도 쉽게 따라 읽을 수 있었어요. 천문학자보다 점성술사가 10배 많은것에 저 자신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천재들의 등장부터는 2세기에 어떻게 저런 사고와 관찰이 가능하지? 의 놀라움. 저런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재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기계적 도움도 없는 상태에서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튀코 브라헤 같은 귀족 학자가 존재했던것이 연구에 도움이 되었겠다.
'발톱 자국을 보아 하니 사자가 한 일이다'라고 동료학자들이 인정한 때가 뉴턴나이 55세 였다니!!!
100세 운운하는 현대도 은퇴가 다가오는 나이인데 말입니다. 거대한 바닷가에 조개 껍데기를 줍는 아이로 자신을 비유한 천재가 있어 이렇게 우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어떤 인간을 통해서도 구현되지 않은 조합들이 아직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호박고구마
@외계가나디 저도 2장은 지식이 짧아서 인지 쉽게 읽혀 지지가 않았어요. 저는 인간의 질병 치료도 좀 더 발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 장을 읽으면서 들었어요
처음과시작
인간은 코스모스에 연줄을 대고자 안달을 하며 산다.
『코스모스』 3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117p,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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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모두 유기 화합물, 즉 탄소 원자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복잡한 미세 구조의 유기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 64,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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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외계 생명도 지구에서처럼 탄소를 기본으로 하는 유기물일까?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 65,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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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성간운에 유기 분자가 풍부하다는 사실은 생물의 기본 물질이 우주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 65,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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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나의 우주적 필연인 것이다.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 65,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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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루
코스모스 감상 기록 15 [영원의 벼랑의 끝]
"빛 또한 파동 현상이다. 소리와 다르게 빛은 진공에서도 전파된다. 그렇지만 도플러 효과는 빛에서도 나타난다." 411쪽 // 우리 우주가 영원무궁 팽창하는 우주인지, 아니면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우주인지 누구나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주 물질의 재고를 조사하는 것이 그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코스모스의 끝, 영원의 벼랑 끝까지 가 보는 것이다. 424쪽 // 우주가 팽창을 멈출 만큼 충분한 질량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열린 굽은 공간이다. ~ 충분한 질량의 물질이 있다면 우주는 닫힌 굽은 공간이다. ~ 그것은 우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전자 같은 소립자도 그 나름의 닫힌 우주이다. 그 안에 그 나름의 은하들이 우글거리는가 하면 은하보다 작은 구조물들도 있도 또 그들의 세계에 맞는 소립자들이 존재한다. 어디 그뿐인가. 이소립자들 하나하나도 역시 또 하나의 우주이다. 이 계층 구조는 한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우주들의 계층 구조가 이렇게 아래로만 연결되라는 법도 없다. 위로도 끊임없이 연결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하, 별, 행성, 사람으로 구성된 이 우주도, 바로 한 단계 위의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소립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러한 계층 구조는 무한히 계속된다. 아, 내 사고의 흐름을 절벽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433쪽
책이 쓰인 시기가 오래되었으니, 우주의 팽창과 차원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한번 알아보고 싶다.
송현정
“ 현대 기술 문명은 기기묘묘한 생화학 반응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만을 겨우 재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는 그 모든 화학 반응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척척 수행해 낸다. 생명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화학반응에 대한 실습을 수없이 많이 해 왔지만 인간은 이제 겨우 그 화학반응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DNA야말로 그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
『코스모스』 p.549,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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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루
코스모스 감상 기록 16 [미래로 띄운 편지]
452쪽 겨우 걸음마를 뗄 줄 아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라. 사람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배우려는 열망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 행동의 관습적 유형은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특성을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감정을 표출한다. 하나의 종으로 인간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뇌 피질이 사람을 동물적 인간에서 해방시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비나 도마뱀의 유전적 행동 양식에 더 이상 묶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자신의 뇌 속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각자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다른 분의 기록에서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와 웃음 표시를 봤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저도 뒤늦게 웃음에 동참합니다. 그렇지요.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고, 인간답게 만든 주인공 대뇌 피질에 따라 감정과 더불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힘껏 발휘하고, 성숙한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겠어요.
송현정
송현정님의 문장 수집: "현대 기술 문명은 기기묘묘한 생화학 반응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만 을 겨우 재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는 그 모든 화학 반응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척척 수행해 낸다. 생명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화학반응에 대한 실습을 수없이 많이 해 왔지만 인간은 이제 겨우 그 화학반응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DNA야말로 그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11장. '미래로 띄운 편지'는 왜인지 읽다 자꾸만 멈춰서게 되네요. 후루룩 읽어 넘기기에는 의문이 생기는 문장들이 자꾸 밟혀서요.
과학자들이 생명 밖에서 끙끙대며(?-는 과학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만...) 수행해 내는 실험들이, 우리 육체 안에서는 술술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그러니까.. 난생 처음 먹은 마라탕을 나의 소화기관은 이게 뭔 줄 알고 말끔히 소화해 내고... 가끔 독성 물질을 먹어도(김장철에 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던 게 생각납니다?) 어찌저찌 몸 밖으로 내보내 처리하고... 하는 것들요...

말코손바닥사슴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 후일담
"우리가 아는 생물학은 '지구의 생물학'일 뿐이다."
이 관점이 뚜렷한 장이었습니다.
'우주 생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구'를 먼저 이해하는 과정.
그래서 46억 년 지구의 탄생, 그리고 40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를 조망합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생명', '생물학'이란 말의 앞에는
사실 늘 '지구'라는 주어가 붙어야 합니다.
'지구의 생명' '지구의 생물학'
그래야 지구 바깥의 타자들을 인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요런 지점을 강조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전체가 아닌 부분 중의 부분이라는 "자각"은
이처럼 한번 아하, 깨닫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동안 익숙했던 개념들에 새롭게 적용하고
몸안에 새겨나가는 시간이 쌓여야 가능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푸가'에의 비유는 참 절묘했어요.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흐름을
하나의 단일 성조라고 생각하니
전 우주에는 아주 수많은 단일 성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히고설킨
다종다양한 생명계가 웅장하게 흘러넘치는 '푸가'가 흐를 것이라는
청각적 비유에 살짝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보통 감정선을 슬쩍 터치하는 비유와 묘사는 화자가, 자신의 주장으로
상대를 끌어오기 위하여, 혹은 무언가를 호도하고 미혹하기 위해 쓰이곤 하는데
칼 세이건이 비유와 묘사는 세상을 보는 내 눈을
더 또렷하게 비춰줄 때가 많은 듯합니다. '수사'라는 형태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태도의 문제인가 싶어요.
여튼 그렇게 2장은 지구의 탄생과, 초창기 원시 지구,
캄브리아시기 대폭발 전후로 존재했던
미력한 지구 생물들을 톺아보며
40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를 조망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유기 분자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우리와 나무는 분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자각.
이 자각은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대표적인 통찰인 것 같아요.
이어서 푸가의 비유로 귀결하며
우주에 존재할, 우리의 상상력을 보기 좋게 벗어날,
다종다양한 생명체를 둘러싼 진화적 발상.
이를 위해 진화론의 기본 개념을 아주 솜씨 좋게 갈무리하지만,
지구의 역사, 진화의 기본 원리, 지구 생명의 공통 조상을 넘나드는
이 광대한 스케일에 벅찰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지구의" 작은 세포가 태동한 시초와
40억 년 생명사, 우주의 성간운,
그리고 내 몸속에 자리한 진화적 흔적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관점 자체가 중요한 듯한데요.
결국 우리가 인위적으로 나눈
'분과'로 인해 오히려 우리 머릿속에 인지적 장벽이 생긴 건 아닐까 해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때는 기존의 지식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과정도 필요한데,
빅히스토리 유의 스토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일단 낯선 것을 눈에 익힌다.
설익은 것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나중에 발효시켜본다, 하는 여유로
단숨에 이해가지 않는 것들을 품어두는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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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ef
3장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3장은 2장과 달리 재미있네요!
프톨레마이오스 ⟶ 코페르니쿠스 ⟶ 케플러 ⟶ 뉴턴 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그로부터 1000년 동안 천문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흠... 부정적인 문투로 서술된 이 문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은 행성의 움직임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가 가진 세계의 구조—처절하게 틀렸다 할 지라도— 안에서 최선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중 한 명과 일해야 한다면 전 프톨레마이오스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종교적이고 교조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닌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가 아닐까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는 기하학의 신을 굳게 믿은 셈이니까요. (뉴턴이 등장하기 전에는 관성의 법칙도 몰랐을 테니 지동설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이어지는 케플러의 이야기는 소설처럼 근사합니다.
케플러의 도약이 멋집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과 반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측정 결과는 과감히 무시했지만, 튀코 브라헤 측정 결과와 자신의 이론의 오차 '8분'은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8분 오차는 0.1333..도 라고 하는데 천문학에 문외한인 제겐 작게 느껴지는 오차입니다. 이를 무시하지 않은 케플러가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그 정직함과 정념과 끈질김을 원료로 6000년간 풀리지 않은 신의 퀴즈를 케플러는 마침내 풀어냈습니다. 이는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라 '케플러처럼 1년을 살아라'(https://youtu.be/IP0sQD9Z5tw?si=d_KINSqdlvZ5R5Wm) 와 같은 방식으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인류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과학적 점성술사가 우리가 만난 최초의 천체물리학자였던 것이다〉는 문장은 점성술을 비판했던 앞장의 서술과 호응해 묘한 여운을 줍니다. 그는 점성술사였으며 천체물리학자였으며, 분명 신비주의자였습니다.
〈다수가 그른 길을 걷지 않는 한, ⋯⋯ 나 역시 다수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까닭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과학을 설명해 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바이다.〉 케플러, 참 대단합니다. ⋯ 그런데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생이지만 제가 마주친 사람 중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요, 정말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뉴턴의 성격도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 이론 물리학자에게 이런 종류의 성정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이란
오늘 저녁에 코스모스를 펴들고 3장까지 다 읽었네요...일주일동안 3장 정도를 읽는 분량이지만, 매일 꾸준히 조금씩 읽기가 쉽지 않아서 대부분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7일이라 억지로 책을 피면서 정말 읽기 싫다, 여기서 내가 걸러지는 건가...생각했는데...그래도 내용이 재미있어서 1시간 정도 걸려서 다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 제 자신이 기특하네요..
3장의 내용은 고대부터 발전해 온 점성술과 천문학이 케플러, 브라헤, 뉴턴 등에 의해 점점 구분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활동했던 시절은 신학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과학의 암흑기라 불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 객관적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과학자들도, 이러한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는 모습도 간간히 보이죠.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신념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사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게 참 쉽지가 않죠 ...행성을 관측한 같은 결과를 보더라도, 결국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 본인이 틀에 같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걸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단련해야 하는 자세 같습니다.
케플러나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들이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어쩌면 그 당시의 사상에 휘둘리지 않고, 관측 데이터를 가장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낸 것이 원인일수도 있겠네요. 만약 그 분들이 관측결과를 신의 행동으로 해석하려 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우리가 전율을 느끼는 그들의 올바른 추론을 만나기 어려웠겠죠?
김이란
자몽이자몽다님의 대화: 힘이 들때 책으로 피하곤 합니다. 오늘도 관성처럼 코스모스를 읽고, 나사에 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노트북을 열었는데 그만 위로받고 말았네요. 아직 읽어야할 코스모스가 10장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남은 10장을 읽는 동안 하나씩, 치우고 고치고 새로운 나무도 심어볼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무도 심다 보면 숲이 되고 꽃도 필 거에요. 그래도 책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 것 같아 다행이네요 :)

야옹야옹야옹이
가봅시다

우주여행자
오늘까지 2장을 읽었습니다. 코스모스.. 외관에서 풍기는 무시무시함(?)과는 달리 매우 재밌게 잘 읽히네요.
갑자기 생물학과 진화, DNA까지 섭렵한 작가님이 너무 멋져보이네요. 요즘 말로 뇌섹남이자, 진정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십니다.
오늘 읽은 것 중에 밑줄을 그은 대목들은요.
83p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DNA 조각들을 서로 교환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살아간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낳는 일을.. DNA 교환하는 일로 생각하니 재밌더라고요^^
92p 분자 수준에서 나무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은 화학 반응을 통하여 생명 활동을 영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임 그루트..
103p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자 이제 저 웅장한 우주 생명의 푸가의 남은 성부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생물학이 갑자기 철학적으로 다가옵니다. 또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결국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이 설득력 갑인 문장에, 감탄합니다. 게다가 음악에 비유하는 멋짐까지.
이 책이 아주 오래 전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저자의 생각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즐겁습니다. 3장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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