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677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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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우주 탐사는 지구에 사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코스모스』 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677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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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우리의 에너지를 죽음과 파괴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이용해야 한다.
『코스모스』 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677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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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다시 말해서 지구와 지구인을 이해하는 동시에 외계 생명을 찾는 데 써야 한다.
『코스모스』 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677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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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권인
겸손과 겸허.
저도 책을 읽을수록 제 자신을 가장 많이 휘감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감사, 도요)
인류가 이룩한 짧은 역사를 걷어내니
더 오래된 지구의 기원, 우주의 시작 에 가닿을 수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을 되도록 지워야 전체를 볼 수 있는 것 같구요.
'자아를 키운다'
'자존감을 높인다'
이런 어휘 습관에서 보면 우리는 크고 작아지는 '자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죠. 하지만 <코스모스>가 거듭 강조하듯 우주적 관점에서 조망하면
'나의 위치' '나의 위상' '나의 자리'라는 맥락이 재정의됩니다.
'화해할 줄 모르는 증오심' (632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힌트를 얻은 느낌이구요.
우리가 얽혀 있는 관계망들이 새롭게 짜여나갈 수 있겠다, 하는 막연한 낙관도 하게 됩니다.
권인
맞아요. "감사"라는 단어도 깊이 와닿았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건 많은 우연과 운에 힘입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서로 반목하고 아웅다웅할 시간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해서 더 오래 살아남을 길을 도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코스모스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고요.
Uniya
결국 2기에 다 읽지 못하고.. 3기에 재도전합니다 ^^:
3기에는 완독을 기원합니다 ㅎㅎ
아, 남은 기간을 보니.. 4기에나 완독이 되겠네요 ^^;
말코손바닥사슴
@Uniya
시간이 참 빠르죠. 오늘이 벌써 20일입니다!
이렇게 공개 선언을 해주셨으니 꼭 완독까지 같이 가셔요 :)
말코손바닥사슴
[6장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후일담]
보이저호를 17세기 탐험선의 직계후손으로 간주하고
옛날 이야기처럼 역사적 사실을 전개합니다.
하위헌스의 과학적 전통과 상상력에 우주 탐사의 기원을 둔 매끈한 서사가
절묘하고 재밌었습니다.
물론 탐사의 역사가 초래한 식민주의적 아픔을 매스 미디어에서
오랫동안 외면해온 탓에 작금에 들어서 이 '탐험'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점이 대중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곤 있습니다만.
저는 '탐험'을 미지를 향한 열렬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관점 자체는 좋더라구요.
낯선 세계를 조우하며 내 세계를 조금 부수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죠.
모험과 탐험이 '지배욕구'에서 멈출 수만 있다면
탐험이란 떠나기 전 내 세계에 갇혀있던 비대해진 자아를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바람으로 '탐험'을 바라보는 것 같달까요.
저는 다소 순진할 수 있는 이 관점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보이저voyager호' 즉 '여행자'를 의인화하여
먼 우주를 헤매는 우주선의 묵묵한 발걸음을 상상하게 하는
이 매끈한 서사구조에도 설득이 됩니다.
우리에게 이 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칼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지는 장이었습니다.
요즘의 우주 탐사에는 이 진심이 얼마나 있을까요?
호기심과, 사리사욕, 인류애, 등등의 마음들 사이에서
가치의 우선순위를 잘 매기고 있는 걸까요?
외계가나디
7장~
이러한 사고의 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은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읽어 내기 시작했다.
- 342p
코스모스의 의미가 드러나는 구절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이유 모를 자연 현상들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믿던 그 세대에서 자연에도 규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주가 되던 사상을 거스르는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이런 사람들 덕분에 과학이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알프레도
7장까지 급히 읽으려 하다, 다시 차근히 3장까지 읽었습니다. ‘인간정신이 족쇄에 묶여 있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영혼'이라 소개하는 케플러의 삶과 그가 남긴 문장들을 보면서 테드창의 소설 [당신인생의 이야기]의 바빌론의 탑이 생각이 났습니다.
케플러의 연구흐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케플러 법칙을 배웠습니다. 다만 행성이 우리의 이미지처럼 수평하게 3차원에서 공전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아마 읽다보면 혹은 다른 도서에서 해결할 듯 싶었습니다.
“ 우리는 아직도 왜 행성이 아홉 개 밖에 없는지,(명왕성퇴출로 8개이지만,) 그리고 왜 지금과 같은 거리를 두고 행성들이 공전하는지 알지 못한다.” 라는 문장이 지금에도 유효한 문장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말코손바닥사슴
@알프레도
테드 창 '바빌론의 탑' 저도 좋아하는데, 케플러의 궤적과
맞닿은 포인트를 찾아 재독하고 싶네요!
알프레도님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
귀동냥 기억도 더듬고 최신 정보를 정리해보았는데요.
1. 행성이 수평하게 공전하는가?
어느 정도 수평하게 공전하지만, 옆에서 보면 완전 수평은 아니고 조금씩 어긋나 있습니다.
태양계 형성 초기 행성들 사이의 중력 차이로 인한 밀고 당기기의 흔적이라고 하는데요.
수성의 궤도면은 지구의 궤도면보다 7도 기울어져 있고, 달은 5도 기울어져 있구요.
*참고
NASA 이미지 https://svs.gsfc.nasa.gov/4790
이처럼 대체로 중심별의 적도와 거의 수평한 공전 궤도의 질서는
많은 항성계에서도 흔한 형태인데, 태양계, 별, 행성의 탄생하는 원리와
관련 있습니다. 즉 항성(별)이 처음 형성될 때, 성간구름 가스에서 물질이
뭉쳐지고, 붕괴하고, 수축하면서 납작한 피자 도우 같은 원반 형태가 형성되는데요.
그 원반의 중심쪽에 물질이 모여 있고, 이윽고 탄생한
행성들도 별의 적도와 ‘거의’ 나란하게 됩니다.
이때 '각운동량 법칙'이라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을 따름으로써
원시 행성계 원반을 구성하는 물질은 갑자기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거나
역회전 할 수 없었는데, 태양계 형성 초기의 이 법칙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 참고
SOAK 콘텐츠 (각운동량 보존) :
https://soak.so/ko/video/237?text=ko&voice=kohttps://soak.so/ko/video/295?text=ko&voice=ko
NASA 이미지 : https://svs.gsfc.nasa.gov/12278
2. 아직도 왜 행성이 8개밖에 없는가?
1930년에 발견되었던 명왕성이 2006년에 행성 지위를 잃었죠.
명왕성을 대신할 제9행성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에 존재한다! 라는 가설을
내놓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칠레에 있는 베라 루빈 천문대에서
제9행성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해왕성 너머에 지구보다 5배~10배 질량의 거대 행성의 모습일 수 있구요.
(저희 팀 동료는 네거티브 하게 전망하네요!
SOAK에서도 곧 관련 콘텐츠가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참고
태양계에 제9행성이 존재한다면?
https://soak.so/ko/video/208?text=ko&voice=ko
NASA가 설명하는 제9행성
https://science.nasa.gov/solar-system/planet-x/
안될과학(항성의 우주속으로 - Planet 9편)
https://youtu.be/iqeazcKeLdE?si=JiHa2K-2UnZladoe
SOAK 콘텐츠 (행성의 기준, 명왕성)
https://soak.so/ko/video/360?text=ko&voice=ko
3. 행성들은 어떻게 지금 자리에 있는가?
태양계 행성의 형성과 배열을 설명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이론은
니스 모형인데 요. 2000년대에 등장한 이론이라서 코스모스가 쓰여질 당시의
지배적 설명 모델과 차이가 있겠더라구요.
'니스 설명' 모델에 따르면 지금의 태양계 행성들의 배열은
우주 초기에 각자의 자리를 찾는 '대충돌 시대'기를 거친 결과라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목성과 토성이 가까이 붙어 있다가 지금처럼 멀어지면서 안정을 찾은 셈이구요.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태양계를 무질서하게 오가면서 충돌도 잦았구요.
달에 움푹 패인 크레이터도 대표적인 흔적이고..
초반에는 자리 이동의 각축전이 벌어지다가 지금과 같이
부딪히지 않고 각자 태양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져서 공전하는
흐름이 정착되었다고 하는데요. 좀 더 엄밀한 원인은 아직 현대 천문학이 찾고 있다고 하구요.
*참고
SOAK 콘텐츠 (나스 모형 설명) : https://soak.so/ko/video/208?text=ko&voice=ko
이미지 자료 : https://www.britannica.com/video/discussion-model-Nice-formation-planets-structure-belt/-207325
알프레도
짧은 질문이었는데도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주셔서 놀랐습니다!
책을 읽고 맴돌던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케플러의 원형궤적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측면에서 바빌론의 탑 결말을 떠올렸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과정은 현재의 패러다임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을 만들었습니다.
태양도 은하 내에서 공전을 한다는 사실과, [삼체]를 생각하며 궤도의 규칙성에 의문을 가졌는데, 각운동량이라는 법칙이 카오스 같은 우주 공간에 질서(cosmos)로 자리잡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물리학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코손바닥사슴
@알프레도
저야말로 같이 알면, 딱 좋은 주제들을 던져주셔서 좋았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각운동량 법칙을 생각하면 분명 혼돈 속의 질서인데..
마침 <카오스>라는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또 '혼돈'에 빠졌습니다.
공고했던 뉴턴의 고전 역학/결정론적 세계관을
'카오스 이론'이 뒤집었다. 이 카오스 이론은 천체의 궤도 예측 문제,
그중에서도 삼체문제를 해석하다가 도출된 이론이라는 부분인데..
혼돈(카오스)과 질서(코스모스)는 사실
동전의 앞뒷면처럼 같은 본질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비유하는 것처럼 무 자르듯 나누어
상반되는 개념으로 둘 수 없다, 하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진짜 현실은
결정론적 법칙을 따르면서도, 너무나 복잡하고
나비효과로써 장기 예측은 불가능한 현상 그 자체, 카오스라는 것인데.
우리는 카오스의 세계를 코스모스로 읽어내면서도
카오스 그 자체로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코스모스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미지의 카오스가 펼쳐지는 것 또한 하나의 '질서'일 수도 있겠고요.
(제가 두 가지 뜻으로 '카오스'란 단어를 혼용한 것 같지만)
왠지 알프레도님은 이에 정리된 생각이 있으실 것 같아요!
참고:
천체 세 개의 공전 궤도는 왜 알기 어려울까? (삼체문제)
https://www.soak.so/ko/video/133?text=ko&voice=ko)
송현정
삼체 이야기가 나와 생각났어요.
아이를 낳고 일상이 흔들린다며... 언제쯤이면 살만해지느냐고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너 삼체문제 아냐?' 하니
아하! 하고는 '살만해질 날'을 깔끔히 포기하더라고요 ㅎ
말코손바닥사슴
@송현정
아앗! 세상에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가 산적하니,
괴로움과 나아짐의 흐름을 기대하기보다는
문제에 문제의 연속일 뿐이군요!
우주좋아
첫출근으로 바빠..그간 못 남기다가 13장을 읽어 중간 내용을 남깁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마치 신화의 서사시처럼 들렸을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신화이다. 현대 과학이 서술한 우주 진화의 내서사시인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들어진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하다니. 우주에서 벌어졌던 진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이해하노라면, 거대한 수소 산업의 최종 산물로서 태어난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도 우리와 같이 놀랄 만한 돌연변이를 이룩한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 먼 곳 어디에선가 우리에게 들려줄 그들의 흥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외계가나디
7장 끝
위대한 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이면을 보게 된 것 같은 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코스모스가 설명될 수 있는 실체라고 사람들에게 과학의 동기를 크게 불어넣었으나, 반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사실들은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어요.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제한하고 노예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는 등의 것들... 그들이 이루어낸 대단한 업적들이 물론 많지만 어떠한 사상들 때문에 일찍 꽃 피지 못한 과학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지구와 지구인이 자연에서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아리스타르코스! 그의 노력을 생각하며 앞으로는 '해가 떴다'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이자 지구 중심 우주관이 남긴 말 대신, '지구가 자전해서 태양 쪽으로 몸을 돌렸다'라고 해야겠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큰 질타를 받으면서도 연구를 계속 했을지 생각하면 존경스러워요.
항상웃는바보
코스모스와 사이언스를 눈으로 읽어본 1인입니다. 누구나 읽어야 한다 해서 읽긴 하였습니다. 고로 읽지 않았습니다.^^ 좋은 기회 만들어 주셔서 이번에 읽어보려 합니다. 코스모스는 과학자가 쓴 역사서, 사이언스는 역사학자가 쓴 과학서란 말처럼 과학과 서사의 환상적인 결합을 경험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두근 합니다! 추운 날씨 건강관리 잘하시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바닷가소년
대뇌피질-변연계-R-complex의 3단계 뇌 구조 이야기가, 최근 연구 결과에서도 타당한 지식일까? 이 모델은 폴 맥클린의 ‘삼위일체 뇌’ 모델이며 틀린 모델이다. 파충류-포유류-인간 식 순차적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본능/감정/이성 능력이 각 뇌에서 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맥클린이 1970년에 책 낸 직후부터 강한 비판이 쏟아졌으니, 코스모스에서 이 모델을 가져다 쓴 것은, 칼 세이건이 비판받을만 하다. 실망스러울 정도이다.
쇼미더머니는 한국 힙합에서 논쟁거리다. 크기를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더 좋냐, 내실을 다지고 그 다음에 크기를 키우는 것이 더 좋냐 문제다. 쇼미더머니는 전자였다. 과학 대중화와 소통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다. 재미가 먼저냐 사실이 먼저냐. 나는 재미가 먼저냐 파에 속해 있었는데, 세이건의 삼위일체 뇌 모델을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세이건을 보고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책에 나와있는 정보의 타당성에 의문을 느끼고 책을 비판할 정도로 자라면, 그 책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았나싶다. 그러나, 세이건에게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음으로서, 감동이 적어지고, 감동이 적어지며 과학에 덜 빠진다면 이 또한 손해 아닌가? 결과적으로 재미보다 사실과 신뢰가 중요해진다. 나는 참 오락가락맨이다. 물론 재미와 사실 다 끌고 가는 게 옳은 길이다. 그거야 말할 필요 없이 ‘이상’적이다.
P334 It has two rules. First: there are no sacred truths; all assumptions must be critically examined; arguments from authority are worthless. Second: whatever is inconsistent with the facts must be discarded or revised.
과학이 종교와 가장 다른 점. 답을 정해놓지 않는다. 특정한 정답이 답이 아니며 과학적 방법을 답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없다.
P335 In great personal danger, she continued to teach and publish, until, in the year 415, on her way to work she was set upon by a fanatical mob of Cyril’s parishioners. They dragged her from her chariot, tore off her clothes, and, armed with abalone shells, flayed her flesh from her bones. Her remains were burned, her works obliterated, her name forgotten. Cyril was made a saint.
히파티아의 비극적 최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올리는 이야기. 과연 이게 사실일까? 성내기 전에 사실인지 찾아보자. 칼 세이건에게 신뢰를 약간 잃었으니까.
P345 끝
드디어 다 읽었다. 여행 한번 다녀온 기분이다. 수련하듯 읽어냈다. 성취감이 조금은 있다. 코스모스를 세번째 읽는다. 이제 타인에게 굳이 추천은 하지 않겠다. 두세번씩 읽을 필요가 있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책이다. 전처럼 최고의 책으로 꼽긴 어렵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