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D-29
제대로 보셨네요. <에이리언>이 1979년에 개봉했고, 이 소설은 1964년에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인 1968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72년에 <솔라리스>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두 영화는 우주선이나 정거장 내부를 하얀색의 깔끔한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한 것에 반해 <에이리언>은 통로에 파이프가 노출되고 기름 냄새가 나는 등 지저분한 스타일로 디자인했습니다. 1977년에 프랑스에 퐁피두 센터가 개관했는데 건물 바깥으로 파이프나 자재 등이 노출되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죠.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현이죠. 2년 뒤 개봉하는 <에이리언>은 이 시류를 타면서 모더니즘을 버리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갈아탄 셈이죠.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연대가 제일 빠름에도 불구하고 이미 포스트모더니즘 방식으로 우주선을 서술했고요. 이 관계를 인공지능에게 정리시킨 것이 첨부 사진이니 참조하세요.
아! 시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선택을 했군요. 확실히 <에일리언>의 함선이 깔끔하고 밝은 색감과 디자인이었다면 전혀 공포감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선택 덕에 다른 SF작품들과 구별되고 기억에 남는 차별화가 되었고요. 찾아보니 이런 아날로그적 전자기술 요소를 '카세트 퓨처리즘'이라고도 하네요. 첨부해주신 이미지의 Used universe가 어떤 의미인지 찾아보니, 스타트렉이나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느껴지는 '깔끔하고 새 것과도 같은' 디자인의 반대되는 개념을 말하네요.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스타워즈 사가에 담고자 한 전반적인 분위기나 시각적 요소를 지칭하는 단어인데 굳이 번역하면 '손때 묻은 우주' 라는 말인가 봅니다. 현실에서도 일상생활의 가전기기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은 이음새나 틈이 안보이거나 가려지는 방향으로 출시 되더라고요. 최근 전기차량들은 차 문 손잡이가 안에서 버튼을 눌러야만 밖으로 잡아당길 수 있게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일체화되고, 간소화되며, 정제된 느낌의 사물이 주변에 늘어나다 보니 오히려 전 무적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더 좋더군요.
어느덧 25년의 마지막 날이네요. 한 해 동안의 독서기록을 오늘 돌아봤습니다. 언제 그믐에 처음 왔는지 확인해보니 24년 겨울이었네요. 독서는 24년 4월? 5월? 즈음에 시작했는데 한동안은 혼자 읽다가 점차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해보고 싶어 여기저기 온라인/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모임을 찾아봤어요. 그때 여러 플랫폼과 앱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그믐을 기사로 접했습니다. 어플 기반이 아니면서도, 이모티콘 사용 없이 되도록 글과 문장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라는 게 눈길을 끌어서 가입했고요. 그렇게 한동안 온라인에서 모임을 하다가 오프라인을 나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 올해부터 몇 군데 이곳저곳 나가봤습니다. 생각과는 다른 경우들도 있었고, 막상 거리를 신경 쓰지 않고 가보니 이동하는 문제도 상당하더라고요. 한동안의 시도 끝에 현재는 여건에 잘 맞으면서도 모임 인원과 성격이 잘 맞는 곳을 찾아서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요. 24년에는 우선 이 책 저 책 손이 가는 대로 골라 읽었다면 올해는 점점 제가 원하는 방향이 뭔지, 좋아하는 책이 뭔지 찾아가며 읽었던 해였습니다. 올해는 29권을 읽었더라고요. 한 해에 40권가량 읽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책도 책이지만 그믐도 그렇고, 오프라인 모임도 그렇고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만난 시간이 더 뜻깊은 경험이었던 한 해네요. 다른 분들도 한 해 동안 고생하셨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전 바다 생물들이 기계에 대한 반응이 읽는 내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몸서리치듯 공포에 휩싸여 도망가던 물고기들이 무적호 탐사원들의 미래일 것 같은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조마조마하며 읽었습니다. 2) 첫 번째 조우까지 읽은 시점에선 ‘호르파흐’의 결단력에 감탄해 ‘로한’의 성격과 행동이 더욱 부족하게 느껴지며 호르파흐가 더욱 대단한 리더라는 생각에 견고해졌습니다. 3) 중대한 사건, 장면들마다 흔들림 없는 결단력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건과 경험을 겪어낸 것인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그런 호르파흐가 내 상급자라면 그 성질머리에 짜증과 뒷말을 하더라도 위급한 상황에 가장 먼저 의지하고 찾아갈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ㅎㅎ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니그렌이 물었다. “그들이 무슨 병이라고 걸렸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닙니다. 아마 그런 질병은 없지요, 박사?” “확실히 없어요.”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10~11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이것이 익히 알려진 우주 만물의 원리입니다. 생명 혹은 거대한 형태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곤충은 육상 식물, 다른 종류의 좌우 대칭 생명체, 무척추동물 등의 동시적 발생 없이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1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책에서 나오는 좌우대칭생명체 또는 좌우대칭동물은 말 그대로 곤충, 어류, 파충류, 포유류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오늘날 좌우가 거울에 비춘 듯 대칭을 이루는 동물들을 말합니다. 동물은 다 좌우대칭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해파리,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들은 방사대칭동물이라고 하여 좌우가 같은 게 아니라 원의 방사형으로 대칭인 구조라 좌우대칭동물이 아니라고 해요. 오늘날 화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좌우대칭동물은 '이카리아'라는 고생물로 크기가 1cm도 안되는 벌레 같은 형태의 동물이었습니다. (2,3번째 사진) 진흙이나 물가 같은 무른 대지를 벌레처럼 몸을 구부렸다 펴며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들이 좌우대칭동물로 분류되는 이유는 화석에서 내장과 입/항문의 흔적이 있고 내장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형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명에게 있어 좌우대칭성이 중요한 이유는, 좌우 대칭의 구조를 통해 자신의 육체와 근육을 보다 자유롭게 움직임으로써 활동성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활동성이 늘어나면 그만큼 생존을 위한 다양한 행동의 가능성과 성공가능성도 늘어나게 되고요. 해파리 같은 방사대칭동물들은 원형의 형태로 몸의 모든 곳이 대칭이기에 힘을 줘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해요. 해파리들이 바다를 둥둥 떠다니듯 느긋하게 움직이는 걸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렇게 단정 지어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볼민이 외쳤다. “자네가 내 학생이었다면, 볼민 박사, 여기에 승선하지 못했을 걸세. 내 시험에서 떨어졌을 테니까 말이네.” 고생물학자가 냉정을 유지한 채 쏘아붙이자, 심각한 와중에도 나머지 사람들 얼굴 위로 미소가 번졌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1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과학자들의 토론이 정말로 눈 앞의 문제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토론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존감 세우기가 교묘하게 들어찬 장場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무적호를 보호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반구형 방어막이 부딪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미세한 폭발이 일어났다. 북극광을 백 배나 확대한 듯 번쩍이는 섬광이 풍경 전체를 비추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1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렇지만 그곳에는 녹슨 폐물을 빼고는 어떠한 자석도, 기계도 없었어요. 물에 씻겨 내려간 협곡, 자갈, 모래를 제외하고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그리고 동굴이 있었지."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3~13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오늘 오전부로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일부러 마지막 두 장을 읽을 때는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도 꺼두고 귀마개도 끼고 읽었어요. <솔라리스>와는 다른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책을 정독하려고 해요.
책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생명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말할 때 한 가지 떠오른 게 '관해파리'였습니다. 이름에 해파리가 붙긴 하지만 실제로는 해파리가 아닌데요. 관해파리는 군체생물로 서로 제각기 구분된 개체들이 하나로 결합된 채 활동하는 생명체집단입니다. 관해파리는 바다 속에서 떠다니기 위한 개체, 물을 뿜어 추진력으로 이동하는 개체, 먹이를 붙잡고 소화하는 개체, 번식을 하는 개체들이 전부 각자의 역할과 기능만을 전담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 특수하고 전문화 된 개체들이 하나로 뭉치면 서로의 활동이 조화롭게 유지되며 모두의 생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치 우리로 치면 각종 내장이나 얼굴의 감각기관, 팔/다리가 서로 다른 개체에서 태어났다가 하나로 뭉치는 느낌이죠. 관해파리에 대한 소개와 외형을 보면서 생명의 범주와 형태가 지구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이질적인데 외계에 만일 생명이 있다면 우리의 이해범주에 담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훗날 우주로 진출하더라도 생물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고요.
관해파리, 정말 신기한 동물이네요. 사실 생물과 무생물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바이러스는 생물이라고도 무생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죠.
관해파리. 옥토넛이라는 어린이만화에서 봤는데 이렇게 연결되니 재밌네요. 해파리는 여러모로 신기한 생명체같아요. 죽지않는 해파리도 있다더라구요.
생명체의 주요 특징이 죽음 아니었던가요? 죽지 않는 해파리가 있다니 놀라움에 찾아봤습니다. 홍해파리라는 녀석이더군요. 제가 찾은 자료에서는 홍해파리의 불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홑 개체로서 성적으로 성숙한 상태에 도달한 이후 성적으로 미성숙한, 군체를 이루는 단계로 완전히 되돌릴 수 있는 기능을 지닌 몇 안 되는 동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마디로 늙어 죽기 전에 다시 애기로 돌아가서 또 자라는 과정을 무한 반복할 수 있다는 의미같아요(병에 걸리거나 공격을 받아 죽지만 않는다면). 신기하군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해면과 더불어 해파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동물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온 종으로 알고 있어요. 이렇다 할 신체기관도 없는 굉장히 단순한 생물체지만 그래서 더 오래 살아남은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내용 중에서도 과학자들이 토론할 때 어째서 레기스에서는 신경계(통신계)가 고등한 오토마톤과 달리 구름이 경쟁에서 이겼는지를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죠. 지극히 간결하고 대체가능한 특성 때문에 오히려 유지보수나 제작에 유리한게 장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해파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로한이 처음에 파리떼에게 왜 공격당하지 않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거죠? 제가 놓쳤나 해서요. 그저 너무 놀라 정신줄을 놓아 그런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시 로한이 정신적인 충격 또는 공황상태에 빠져서 뇌의 전기신호가 비활성화 중이었다 라고 가설이 지나가듯 나오더라고요. 로한이 머리에 금속모자를 뒤집어 쓰고 혼자서 사건 장소로 가는 것이 꼭 과거 미국에서 외계인,UFO 음모론을 믿던 사람들이 알루미늄이나 쿠킹호일을 위에 뒤집어 쓰던 것과 겹쳐 보여 좀 웃겼어요. ㅎㅎ 그런데 사실 로한의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도 그렇고, 파리떼나 레기스 행성의 과거를 추정하는 가설도 그렇고 렘 작가는 독자들의 소설감상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만 제시할 뿐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솔라리스>가 겹쳐 보였는데요. 솔라리스는 이미 사람들이 여러 번 다녀갔고 몇십 년에 걸쳐 연구와 분석이 진행되었죠. 비록 거기서 나온 이론들 중에 정답이 없었지만 각자 조금씩 타당성과 논리가 깃들어 있었고요. 반면에 레기스는 이제 겨우 두 번 인류와 조우한 행성이고 그나마도 콘도르호는 전멸을 했기에 사실상 무적호가 첫 접촉인데 무적호의 과학자들이 내놓는 가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독자가 결정할 몫으로 남겨둔 것 같습니다. 가령 레기스의 기계들이 서로 경쟁 끝에 파리 같은 곤충형 개체들만이 생존했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초반부에 보면 동굴에 들어갔던 탐사대원 중 하나가 사고를 당해 기억과 의식이 지워지는 사건이 있었죠. 그런데 작중 묘사를 보면 파리떼들은 동굴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파리 떼가 따라 들어오거나 했을 수는 있어도.. 동굴 안에 다른 오토마톤의 폐물 흔적들이 있던 걸 보면서 전 레기스에 남아 있는 기계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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