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D-29
과학자들의 토론이 정말로 눈 앞의 문제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토론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존감 세우기가 교묘하게 들어찬 장場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무적호를 보호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반구형 방어막이 부딪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미세한 폭발이 일어났다. 북극광을 백 배나 확대한 듯 번쩍이는 섬광이 풍경 전체를 비추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1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렇지만 그곳에는 녹슨 폐물을 빼고는 어떠한 자석도, 기계도 없었어요. 물에 씻겨 내려간 협곡, 자갈, 모래를 제외하고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그리고 동굴이 있었지."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3~13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오늘 오전부로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일부러 마지막 두 장을 읽을 때는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도 꺼두고 귀마개도 끼고 읽었어요. <솔라리스>와는 다른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책을 정독하려고 해요.
책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생명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말할 때 한 가지 떠오른 게 '관해파리'였습니다. 이름에 해파리가 붙긴 하지만 실제로는 해파리가 아닌데요. 관해파리는 군체생물로 서로 제각기 구분된 개체들이 하나로 결합된 채 활동하는 생명체집단입니다. 관해파리는 바다 속에서 떠다니기 위한 개체, 물을 뿜어 추진력으로 이동하는 개체, 먹이를 붙잡고 소화하는 개체, 번식을 하는 개체들이 전부 각자의 역할과 기능만을 전담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 특수하고 전문화 된 개체들이 하나로 뭉치면 서로의 활동이 조화롭게 유지되며 모두의 생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치 우리로 치면 각종 내장이나 얼굴의 감각기관, 팔/다리가 서로 다른 개체에서 태어났다가 하나로 뭉치는 느낌이죠. 관해파리에 대한 소개와 외형을 보면서 생명의 범주와 형태가 지구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이질적인데 외계에 만일 생명이 있다면 우리의 이해범주에 담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훗날 우주로 진출하더라도 생물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고요.
관해파리, 정말 신기한 동물이네요. 사실 생물과 무생물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바이러스는 생물이라고도 무생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죠.
관해파리. 옥토넛이라는 어린이만화에서 봤는데 이렇게 연결되니 재밌네요. 해파리는 여러모로 신기한 생명체같아요. 죽지않는 해파리도 있다더라구요.
생명체의 주요 특징이 죽음 아니었던가요? 죽지 않는 해파리가 있다니 놀라움에 찾아봤습니다. 홍해파리라는 녀석이더군요. 제가 찾은 자료에서는 홍해파리의 불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홑 개체로서 성적으로 성숙한 상태에 도달한 이후 성적으로 미성숙한, 군체를 이루는 단계로 완전히 되돌릴 수 있는 기능을 지닌 몇 안 되는 동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마디로 늙어 죽기 전에 다시 애기로 돌아가서 또 자라는 과정을 무한 반복할 수 있다는 의미같아요(병에 걸리거나 공격을 받아 죽지만 않는다면). 신기하군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해면과 더불어 해파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동물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온 종으로 알고 있어요. 이렇다 할 신체기관도 없는 굉장히 단순한 생물체지만 그래서 더 오래 살아남은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내용 중에서도 과학자들이 토론할 때 어째서 레기스에서는 신경계(통신계)가 고등한 오토마톤과 달리 구름이 경쟁에서 이겼는지를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죠. 지극히 간결하고 대체가능한 특성 때문에 오히려 유지보수나 제작에 유리한게 장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해파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로한이 처음에 파리떼에게 왜 공격당하지 않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거죠? 제가 놓쳤나 해서요. 그저 너무 놀라 정신줄을 놓아 그런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시 로한이 정신적인 충격 또는 공황상태에 빠져서 뇌의 전기신호가 비활성화 중이었다 라고 가설이 지나가듯 나오더라고요. 로한이 머리에 금속모자를 뒤집어 쓰고 혼자서 사건 장소로 가는 것이 꼭 과거 미국에서 외계인,UFO 음모론을 믿던 사람들이 알루미늄이나 쿠킹호일을 위에 뒤집어 쓰던 것과 겹쳐 보여 좀 웃겼어요. ㅎㅎ 그런데 사실 로한의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도 그렇고, 파리떼나 레기스 행성의 과거를 추정하는 가설도 그렇고 렘 작가는 독자들의 소설감상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만 제시할 뿐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솔라리스>가 겹쳐 보였는데요. 솔라리스는 이미 사람들이 여러 번 다녀갔고 몇십 년에 걸쳐 연구와 분석이 진행되었죠. 비록 거기서 나온 이론들 중에 정답이 없었지만 각자 조금씩 타당성과 논리가 깃들어 있었고요. 반면에 레기스는 이제 겨우 두 번 인류와 조우한 행성이고 그나마도 콘도르호는 전멸을 했기에 사실상 무적호가 첫 접촉인데 무적호의 과학자들이 내놓는 가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독자가 결정할 몫으로 남겨둔 것 같습니다. 가령 레기스의 기계들이 서로 경쟁 끝에 파리 같은 곤충형 개체들만이 생존했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초반부에 보면 동굴에 들어갔던 탐사대원 중 하나가 사고를 당해 기억과 의식이 지워지는 사건이 있었죠. 그런데 작중 묘사를 보면 파리떼들은 동굴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파리 떼가 따라 들어오거나 했을 수는 있어도.. 동굴 안에 다른 오토마톤의 폐물 흔적들이 있던 걸 보면서 전 레기스에 남아 있는 기계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1. 인상깊은 부분 & 순간 1-1. 공포에 관해.. 작품 전반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단순히 독자의 몰입이나 향후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넘어, 무적호 승무원들이 콘도르호와 미지의 행성을 마주하며 느끼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공유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공포는 ‘놀람’에서 비롯되는 공포가 아니라,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증폭되는 ‘인지적 공포’로 느껴졌는데요.. 겉보기에는 멀쩡한 콘도르호와 그 주변에 흩어진 잔해와 인간의 뼈는 단순한 사고나 전투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을 암시하며 공포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위협 그 자체보다도, 이를 설명할 언어와 개념이 없다는 것이 그 공포를 배가시키고, 독자와 무적호 승무원 모두를 ‘미지의 세계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위치로 밀어 넣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암흑속에 있습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아는 바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제가 봤을 때 누군가는 콘도르호 선내에서 뭔가를 목격 했음에도 두려운 나머지 언급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으로 인한 집단 광기’라는 가설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냉혹한 사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콘도르호에서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광경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 아니 강력하게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스스로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고 여기는 이야기 말입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0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사르너(원자 물리학자)의 제안입니다. 이것이 무적호 대원들이 앞으로 이 공포를 헤쳐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이자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물론 소설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뒤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는 점에서 단정할 순 없겠죠).. 극복해 가나가고자 하는 작은 용기와 솔직함이 모아지면 이 행성에서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의지가 모아진다고 행성의 수수께끼가 풀릴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이후 전개를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차례대로 ‘로보캅(1987)‘,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 ‘브레인 스톰(1983)‘ 입니다.
1.인상깊은 부분 & 순간 1-3. 검은비 초반부터 그 정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검은 비의 정체가 결국 이 작품의 중후반부터 핵심적인 위협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를 가진 현상인지,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현상인지, 아니면 척박한 환경의 단순한 자연현상인지.. 어쨋든 비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콘도르호의 선원들이 왜 모두 죽어버렸는지, 심해를 제외한 지상이나 연안에서는 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서서히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밥심 님께서 검은 비의 정체는 진도를 나가다보면 정체를 알 거라 살짝 귀뜸해주셨는데,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신 조언에 감사드립니다~ㅎ
그것은 지구의 햇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서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따뜻함 대신 무엇인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만이 들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들이 열의에 차서 분주하게 진행하는 모든 일들에 어떤 거대한 자기기만으로 느껴졌다. 한마디로 그들은 또 다른 사고나 새로운 불행을 기다릴 뿐, 단지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람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사건과 사고들이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9~1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제가 아는 방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어떤 다른 것이 존재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지요. 우리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텔레파시…….”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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