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D-29
거기에는 떨리는 손을 이마에 얹은 채 피로에 찌든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로한은 벌써 사 년째 호르파흐 밑에서 복무하면서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지금에야 어째서 호르파흐에게 아무것도 없는지, 왜 벽에는 지구에 남기고 온 가까운 사람들의 오래된 사진 한 장마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전부는 언제나 여기에 있었고, 그에게 지구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물건 따위는 필요 없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등장인물에게 기억에 남는 서사를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때론 간단한 대사나 간접적 묘사만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 호르파흐가 어떤 인물일지 머리속에서 여러 상상이 뻗어나갔습니다. 애초에 지구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적도 없는, 외부행성이나 우주 출신인 사람일 수도 있고(그렇기에 고향이라고 할만한 개념이 없는) 지구 출신이지만 가족들과 헤어지거나 어떤 사고를 당한 것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평생을 자신의 업에 전념하며 살아온 인물일 수도 있고요. 어느 쪽으로든 독자가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들어 흥미를 불어넣으면서도 여전히 미지의 안개에 싸여있는 인물임을 유지하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저도 완독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 작가님 다음 작품도 빨리 읽고 싶어요!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바로 그 순간, 선장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고, 또 으레 그래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2~26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호르파흐와 곁에서 보좌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지체할 필요 없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같은 명령을 절대 내리지 못할 것 같았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선내에서 그들 네 사람의 빈자리를 계속 느끼게 될 테고, 모든 것이 이전과 절대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승무원들은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문득 그날 밤 함선을 돌아다니다가 깨달은 사실이 떠올랐다. 장차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품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할 터다. "봤지? 대원 네 명을 남겨 두고 그냥 떠나 버렸다고."
우주 순양함 무적호 p .2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러나 우리 임무는 그것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실종자 네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사령관은 로한이 모든 학자들, 즉 인공두뇌 학자들과 전략가들보다, 이른바 컴퓨터로 작업하는 그들보다 더 완벽한 방안을 혼자 마련해 내리라고 기대한 것인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69~27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곳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혼자 들어갔다가…… 돌아 나올 수 있네. 헬멧, 차량, 무기도 없이 말이야……."
우주 순양함 무적호 p.27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스스로 생각했을 때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신기한 점은 위협적인 주변 환경, 즉 시선이 닿는 모든 경사면에 뻗어 있는 검은 덤불을 점점 덜 신경 쓰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0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가 생각하기에 네 번째 실종자의 사망은 불 보듯 뻔했으며, 그 사실은 이미 무적호에 있을 때부터 거의 확실히 예상했던 바이다. 로한이 이곳에 온 까닭은 확신을 갖기 위해서였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1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전 뒤로 갈수록 로한의 생각에 깊이 이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으로서 호르파흐의 위치와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도 인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공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대화> 부분을 읽으면서 호르파흐도 결국 똑같은 인간이었구나를 느꼈습니다. 선장이라는 직급과 위계가 만들어내는 기대감과 권위의 뒤에는 마찬가지로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극심한 압박과 부담을 느끼면서도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고충 말이죠.
이제 로한은 실종자들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서, 더불어 이 행성을 지금 상태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서 함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1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는 어둠 속에서 등을 잔뜩 구부린 채 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거대한 별빛 하늘이 내려앉은 사막을 부질없이 헤매고 있었다. 황량항 모래 사막은 그에게 구원처럼 느껴졌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1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로한이 지금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 귀환 좌표의 숫자뿐이었다. 그는 헤드라이트가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프차는 한동안 덜거덕거리며 어둠 속을 지나갔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2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신호탄 총이 로한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차량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허리를 세우고 보폭을 지나치게 크게 벌리며 불안정하게 걷기 시작했다. 로한은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려고 주먹을 움켜쥔 채 20층 높이의 함선을 향해서 똑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흐릿한 하늘을 배경으로 쏟아지는 불빛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 채 우뚝 서 있는 우주선은 너무도 장엄하였으므로 단연 무적호라고 할 만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32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처음 읽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읽을 때 보니 <첫 번째 조우>의 끝에서 방어막에 부딪치던 알갱이들이 구름이었나 봅니다. 저는 그냥 레기스 행성의 독특한 자연현상이나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 같은 건 줄 알았어요. 이미 제목에 해답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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