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D-29
모든 사람들이 가슴의 쿵쾅거림을 느꼈고, 고개를 기기들 가까이로 숙이며 땀이 가득한 손으로 제어용 레버를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방금 사령관의 결정적인 외침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었다. 비록 모래 구덩이일지언정 드디어 실제로 사막 행성의 땅을 밟고 일출과 구름, 바람이 있는 세계를 조우하는 것이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함께 읽게 되어 기쁩니다. 첫 챕터인 검은 비 만 읽었는데도 상당한 흡인력을 느낄 수 있네요. 실제로 본 것처럼 묘사하는 풍경이나 우주선과 주위 환경의 상호작용을 여러가지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모래 사막 묘사를 흥미롭게 만들고 로한과 선장의 묘한 긴장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고요. 검은 비 마지막에 등장하는 먹구름이 단순한 기상 현상인지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인지도 궁금해집니다.
먹구름은 낮게 움직이며 차츰 퍼졌다. 그러고는 뭉실뭉실한 팔을 늘어뜨려서 착륙 지점을 에워싸더니 이동을 멈췄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5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역시 렘입니다. 왕년에 <우주 순양함 무적호>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은 읽지 않은 이유가 '무적호'라는 촌스러운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만든 SF 영화 '승리호'를 만났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비슷했죠. 이렇게 밖에 제목을 짓지 못하나 하는 한숨이... 하지만, 이번에 <우주 순양함 무적호>를 읽으면서 렘의 매력에 또 다시 빠져들 수 밖에 없네요. 일요일에 대출했는데 벌써 100쪽을 넘게 읽었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결말을 읽고 보니 마지막 장의 부제와 책의 제목을 서로 바꿔도 근사했을 것 같네요. 무적이라는 말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과학소설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지금의 제목도 나름 괜찮게도 느껴지네요.
심지어는 상대를 적이라고 인식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적에게 무적호라는 이름이 부여된 인류 최고 기술의 결정체가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아이러니!
그렇군요! 제목에 소설 전체를 관통히는 아이러니가 포함되어 있었군요… 저는 왠지 일본 만화 느낌나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깊은 고민과 계획이 들어있는 이름이었네요.
전 처음 읽을 때 콘도르호의 운명을 보고 무적호도 불길한 미래가 기다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찾아보니 콘도르의 상징은 힘, 자유, 얽매이지 않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지상으로 추락한 콘도르호의 상태와 이름의 연관성을 보며 무적호도 그 이름이 암시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패배라면 패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콘도르호와 같은 길을 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콘도르호에도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었군요! 이렇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 속에 상징, 은유, 철학이 많이 들어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저는 '패배' 부분의 전투 장면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깊은 내면도 전해지는 것 같았고요. 의식도 의지도 없는(??) 기계구름의 내면마저도 번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상당히 공포스러운 장면이었어요.
사이클롭스와 구름의 대결을 보면서 레기스 행성의 과거에는 이런 일이 일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죠. 현실에서도 점점 드론과 AI를 전투에 활용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때도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띄고요. 두 기계의 전투도 강렬하지만 전 사이클롭스의 위력에서 만족과 복수심을 대리로 느끼는 승무원들의 감정묘사가 재밌더라고요. 자신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기계에게 맡기고, 거기서 감정의 유대를 갖지만 다르게 보면 인간 본연의 힘이 아닌 기계에게 의지하고 위탁하는 의존적인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결말부를 생각하면 오히려 무적호가 가진 강대한 도구들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인간의 지혜와 끈기로 목적을 이뤄냈죠. 외부의 힘을 통해서가 아닌, 인간의 내재된 힘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로한이 문을 열었을 때 기술자 두 사람이 벽 패널 뒤에서 일종의 실물 환등기를 꺼내더니 곧 나머지 조명은 모두 꺼 버렸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5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환등기가 뭔지 몰라서 찾아봤더니 예전 영화에 종종 보이던 프로젝터였네요. 사진이나 얇은 필름을 스크린에 비춰 보여주는 도구이죠. 파괴광선과 저온수면, 광속에 가까운 비행을 하는 전함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ppt 발표 대신 작가가 활동할 당시의 기기가 등장하는게 고전소설의 묘미네요.
아~ 저는 ohp필름 영사기 생각했는데 그것보단 나은거였네요. 고전sf읽을때마다 이런 지점이 재미있어요. 우주선 바깥 비추는것도 rgb모니터였죠.
OHP는 저 대학 때도 사용했었어요~ 으악!! ㅎㅎ 저 나름 노트북 들고 대학교 다닌 세대인데 왜인 거죠?. 초경량 3.5kg 보급형 센스 노트북이 제 첫 노트북이었습니다............
노트북을 안 써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요즘 제품인 LG그램 노트북이 1kg 조금 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ㅎㅎㅎㅎ
나이대를 들킬까봐 차마 아는 물건이라고 못할 것 같아요..ㅎㅎ
정말 젊은분들은 환등기를 모르시겠네요. 저 어린 시절, 사진 찍고 필름을 인화하기위해 사진점에 맡길 때 환등기 슬라이드로도 만들어달라고 해서 집에서 다 같이 모여 앉아 찍은 사진을 환등기로 벽에 비춰 보곤했어요. 제 세대는 아날로그 제품부터 디지털 제품까지 모두 섭렵한다는 장점이 있네요. ㅎㅎ
알고 싶지 않은데, 저 초등 아니 국민학교? 중학교 때까지도 썼던 거 같아요....
앗..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단어 하나에서 세대 차이가 드러나게 될 줄은.. 😂
주말에 이북 미리보기를 보다가 중간에 끊을 수 없어서 끝까지 다 봤어요. 주말오후를 완전히 반납했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습니다. 스토리를 알았으니 이제 천천히 음미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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