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D-29
1. 인상깊은 부분 & 순간 1-1. 공포에 관해.. 작품 전반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단순히 독자의 몰입이나 향후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넘어, 무적호 승무원들이 콘도르호와 미지의 행성을 마주하며 느끼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공유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공포는 ‘놀람’에서 비롯되는 공포가 아니라,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증폭되는 ‘인지적 공포’로 느껴졌는데요.. 겉보기에는 멀쩡한 콘도르호와 그 주변에 흩어진 잔해와 인간의 뼈는 단순한 사고나 전투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을 암시하며 공포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위협 그 자체보다도, 이를 설명할 언어와 개념이 없다는 것이 그 공포를 배가시키고, 독자와 무적호 승무원 모두를 ‘미지의 세계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위치로 밀어 넣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암흑속에 있습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아는 바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제가 봤을 때 누군가는 콘도르호 선내에서 뭔가를 목격 했음에도 두려운 나머지 언급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으로 인한 집단 광기’라는 가설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냉혹한 사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콘도르호에서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광경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 아니 강력하게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스스로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고 여기는 이야기 말입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0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사르너(원자 물리학자)의 제안입니다. 이것이 무적호 대원들이 앞으로 이 공포를 헤쳐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이자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물론 소설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뒤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는 점에서 단정할 순 없겠죠).. 극복해 가나가고자 하는 작은 용기와 솔직함이 모아지면 이 행성에서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의지가 모아진다고 행성의 수수께끼가 풀릴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이후 전개를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차례대로 ‘로보캅(1987)‘,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 ‘브레인 스톰(1983)‘ 입니다.
1.인상깊은 부분 & 순간 1-3. 검은비 초반부터 그 정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검은 비의 정체가 결국 이 작품의 중후반부터 핵심적인 위협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를 가진 현상인지,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현상인지, 아니면 척박한 환경의 단순한 자연현상인지.. 어쨋든 비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콘도르호의 선원들이 왜 모두 죽어버렸는지, 심해를 제외한 지상이나 연안에서는 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서서히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밥심 님께서 검은 비의 정체는 진도를 나가다보면 정체를 알 거라 살짝 귀뜸해주셨는데,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신 조언에 감사드립니다~ㅎ
그것은 지구의 햇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서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따뜻함 대신 무엇인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만이 들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들이 열의에 차서 분주하게 진행하는 모든 일들에 어떤 거대한 자기기만으로 느껴졌다. 한마디로 그들은 또 다른 사고나 새로운 불행을 기다릴 뿐, 단지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람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사건과 사고들이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39~1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제가 아는 방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어떤 다른 것이 존재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지요. 우리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텔레파시…….”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그것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항상성을 갖춘 기계였기 때문에 혹독한 조건에서도 버틸 수 있었지요. 그들에게는 더 이상 명령을 내릴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7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게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이곳 행성에서 존재하는 동안 수백 세대를 거쳐 후손 기계들을 형태가 초기의 것과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라이라 문명의 결과물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선장님? 즉 무생물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기계 장치의 진화 말입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74~17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기계적 진화와 그 현상은 이때까지 인류가 은하계에서 접하지 못한 사건입니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p.18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구름>부터 레기스 행성이 가리고 있던 존재들이 점점 드러나지만 그럴수록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늘어나기만 하는 전개가 흥미로운데요. 안개를 뚫고 나가려고 전진하면 할수록 더 깊은 안개에 휩싸이는 기분입니다. 이번 주차의 일정에서 아래의 내용들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이번 일정의 내용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감상을 공유해주세요. 2) 라우다 박사의 가설에서 그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3) 라우다 박사는 함선의 분위기를 알고 있을 법 한데도 왜 먼저 단독으로 선장에게 자신의 가설을 직보고 했을까요? 이후 라우다 박사와 다른 과학자들 간의 토론을 어떻게 보셨나요? 4) 라우다 박사가 말한 가설들(행성에 일어난 일, 기계들의 발전과정, 기계의 지각 유무)에 대해서 동의하시나요? 또는 납득할 수 없거나 그와 다르게 생각거나 반대하는 내용들이 있으신가요?
1) <구름>의 초반부에 더 이상 이렇다 할 사건이 없어지자 승무원들과 로한 모두 긴장이 사라지고 무덤덤해하는 묘사가 기억에 남았어요.(137~140p)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이라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라도 그 조건에 장기간 노출되면 그걸 당연시하게 되는 인간의 인식을 잘 묘사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슬픈 일이나 힘든 순간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거나, 또는 그땐 그랬지 하며 돌아볼 수 있게 되죠. 레기스 행성의 환경과 그 곳에서 일어난 사건은 지구와 전혀 다르지만 그럼에도 무적호 승무원들은 일상을 유지하죠.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 같습니다. 뒷장에서 라우다 박사가 가설을 설명하면서 구름도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자연은 인간의 가치판단과 무관하게 존재하므로 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하죠. 우리가 자연의 풍경이나 동식물을 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그런 환경에 이미 오래도록 노출되고 적응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지구 밖의 세계도 나름의 자연법칙이 존재하고, 또 거기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면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우리의 입장에서는 외계이지만, 외계에서 봤을 때는 지구나 지구에서 온 우리가 '외계'일 테니까요. 무적호의 승무원들이 콘도르호 사태에 익숙해지고 점차 위기의식도 없어지고, 기억에서 잊는다고 하여 그들이 공감능력이 없거나 본성이 냉혹한 사람들은 아니죠. 그들에게는 그 환경이 일상이 되어간 겁니다. 구름이 자연물이 되었듯, 인간도 자신의 주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거죠. 우리에게 당연한 것, 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가치판단이 굉장히 자의적인 개념임을 말한 것 같습니다.
2,3) 라우다 박사의 가설의 설득력도 흥미롭지만 함선 안에서 과학자들끼리 가설을 갑론을박 하는 구도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치 가설을 무기처럼 이용하여 서로 대결을 하는 느낌이거든요. 볼민 박사가 항의를 하자 대학원생도 못할 거라고 면박을 주는 라우다의 태도나, 라우다 박사의 보고 이후 그에게 유독 비판을 집중하는 회의 장면도 그렇죠. 가설 자체의 설득력이나 과학적 논거와는 별개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언변을 일종의 신분이나 계급처럼 서로 자랑하며 구별 짓는 모습입니다. 아마 라우다 박사가 호르파흐에게 먼저 직보고 한 이유도 이런 의도이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본인이 과학자들 집단 내에서도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함장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가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호르파흐의 의견에 영향력을 주길 원했던 게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라우다 박사는 가설을 과학자로서 접근하고 사용했다기 보다는 한 명의 권위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같고요. 그 전까지 미묘하게 유지하던 힘의 균형을 라우다 박사가 먼저 깨버렸기에 다른 과학자들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습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것 같은 사람들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달까요. 과학이라는 객관적인 영역이 얼마나 주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교묘한 정치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라우다 박사의 가설을 읽으면서 이전 대화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제임스 P. 호건의 <생명창조자의 율법>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호건의 작품에서도 내용과 방향성이나 주제는 전혀 다르지만 기계에 의한 진화를 다루고 있는데요. 먼저 이 작품을 따로 읽어보셨거나, 아니면 제 과거 모임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두 작품에서의 진화의 조건과 방향이 다르게 흘러가는 데서 흥미를 느꼈을 듯 합니다. 호건의 작품 초반부에서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불시착한 기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문장들을 일부 가져와 봅니다. 두 작품의 상황 모두 자원이 희소한 환경임에도 한 쪽은 환경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율적 의사결정과 판단의 방향성으로 움직인 반면, 레기스에서는 다른 경쟁 개체들을 제거하면서 자가복제와 대응이 쉬운 방향으로 발전하는 차이가 재밌네요.
생명창조자의 율법미래의 문학 8권. 장편소설 <별의 계승자>로 이름을 알린 작가 제임스 P. 호건의 1983년 작품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의 시대상과 과학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융합시킨 제임스 P. 호건의 초기 명작이다.
바위투성이 해안 절벽에서 내륙 지방으로 공장들이 계속 퍼져 나갔다. 부모 소프트웨어의 원본이 가지는 불안정성은 자식 세대의 사본들에서도 계속 발견되었고, 새로운 공장과 다양한 종이 섞인 로봇 후손들은 갈수록 형태와 역할 모두가 분화해나갔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0,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대부분의 장소에서 원자재가 부족했으며, 그로 인해 선택압이 발생했다. 공장과 로봇으로 구성된 공동체에는 탐색, 조달, 공장의 필요에 따른 제각각의 '입맛'을 가진 청소부 로봇이 일정 비율로 존재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0~21,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청소부 로봇과 부품 회수 로봇이 앞으로 찾아올 기묘한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공장의 작업 관리자들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와는 관계없이, 당장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로봇은 결국 필요한 부품이 존재하는 로봇 뿐이었다. 그리고 부품의 재고 여부는 결국 부품을 탐지해내는 청소부 로봇의 능력, 또는 다른 로봇을 분해 즉 '소화'시켜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부품을 만드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1,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곳의 모든 로봇은 백업 모드만을 사용했으며, 해당 공장에서 파생한 다른 모든 공장들도 같은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이는 곧 그런 공장들의 가동 거리가 극도로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런 '결함'은 결국 결함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채집 부대는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움직이며 보다 넓은 영역을 통괄하기 시작했고, 종종 지리적으로 외딴곳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던 사냥감을 회수해 돌아왔다. 선택압은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로봇의 구조를 천천히 개량해나갔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4,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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