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전차 B의 혼잡>

D-29
혹시 어떤 계기로 도쿄 시내에 유언비어가 퍼지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그 책임의 절반은 시민이 져야 한다. ... 대지진과 대화재가 한창인 와중에 폭동이 일어나 도쿄 시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고 주요 건물에 폭탄을 마구 던진다는 뜬소문이 퍼졌다고 치자. 그때 시민 대다수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전차 B의 혼잡 23-24,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나카지마 아츠시의 '순사가 있는 풍경' 외에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쓴 작품이 여기에도 있군요. 연소 전파의 이론을 통해 가짜 뉴스는 만드는 사람도 문제지만 믿는 사람도 어느 정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네요.
화가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데셍이 정확하다" 혹은 "부정확하다"는 말도 결국 이런 의미에서 '심리적으로 진실한 묘사'를 하라는 뜻 같다. 이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캐리커처야말로 가장 정확한 초상화인 셈이다.
전차 B의 혼잡 29,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결국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에 같은 물체라도 길고 짧음, 멀고 가까움이 제각각 달라진다. 두 개 막대기 중 어느 쪽이 자이고 어느 쪽이 주걱인지 알 수 없게 되므로 이 세상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과학이 번창하고 문학이 활기찰 뿐만 아니라 비평가라는 이상한 작업이 성립하리라.
전차 B의 혼잡 30,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책을 늦게 읽기 시작했지만 참 재미있네요. 저도 이과생이고 극T의 성격이어서 가끔 문과생만 가득한 저희 가족과 유머코드나 취향이 안 맞을 때가 많은데 이 분과는 잘 맞는 것 같아요^^
나는 과학 상식이란 일부러 천왕성 거리를 암기하거나 갖가지 비타민 종류를 터득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작용하여야 하고, 판단 기준이 돼야 마땅하다.
전차 B의 혼잡 25-26,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무슨 연유로 벌이 도마뱀을 공격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사업상 경쟁자'라는 말로 쉽게 설명될 법한 행위 동기가 여기에도 적용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활극은 내게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자연현상에서 인간에게 알맞은 윤리가 반드시 도출되리란 법은 없다.
전차 B의 혼잡 34,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물론 곤충의 행위는 곤충의 행위로, 인간과는 무관한 일이다. 인간이 곤충보다 못하다는 결론 따윈 오늘날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런데도 곤충이 행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실로 재미있다. 감탄이 나올 뿐, 결코 화가 나지 않는다. 내게는 그걸로 충분하다. 인간이 하는 짓을 보며 화만 내는 많은 이여, 잠시 짬을 내어 곤충의 세계를 구경해보길.
전차 B의 혼잡 37,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저도 이 문장이 참 좋았어요. 당시 시대상이 맘에 들지 않던 데라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요.
그쵸.. 저도 현재 사태에 화가 치밀어오를때 잠시 자연세계를 관조해 보아야겠습니다.
의심하기에 알고, 알기에 의심한다. 깜깜한 밤에 촛불을 들고 한 걸음 내디디면 밝음도 한 걸음 나아가지만 어둠도 한 걸음 나아간다.
전차 B의 혼잡 97,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p.097│ 물리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앎의 학문이면서 의심의 학문이다. 의심하기에 알고, 알기에 의심한다. 깜깜한 밤에 촛불을 들고 한 걸음 내디디면 밝음도 한 걸음 나아가지만 어둠도 한 걸음 나아간다. 다만 어둠은 무한하고 밝음은 유한하다.
"의심하기에 알고, 알기에 의심한다" 이 말은 정말이지 데라다의 철학을 한문장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합리적인 의심은 과학자로서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도 propaganda와 가짜뉴스 등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 같아요.
│p.098│ 기초 원리와 원칙을 밝혀내는 위대한 과학자는 언제나 가장 무지하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기 마련이다. 학교 교과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선인들 연구를 남이 쓴 책을 통해 익히며 아무 의심 없이 지식을 쌓아 박학다식해진 자는 이토록 훌륭한 업적을 완수하지 못한다.
│p.100│ 의심하고 고찰하며 자연 속에서 직접 스승을 찾은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
│p.100│ 독서는 물론 매우 필요하지만, 단 하나를 읽고 열을 의심하며 백을 생각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지식을 한 걸음 진전시키려는 자는 현재 지식의 경계선까지 나아가야 마땅하다. 이미 경계선에 서서 경계 밖 자연을 포착하려는 자는 공연히 눈을 가린 채 망상만 해서는 안 된다. 눈을 크게 뜨고 자연 본모습을 응시해야 한다. 자연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의심해야 한다.
고양이 새끼라도 형제간에 개성 차이가 있는 걸까,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다. 고양이는 열 마리면 열 마리, 털색만 다를 뿐 성질은 다 비슷할 거라 어렴풋이 생각했더랬다. 동물 가운데 고양이의 지위가 조금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전차 B의 혼잡 40,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우리 가족과 밥상 일부를 나누는 식구나 다름없는 고양이가 도마뱀을 먹다니, 가족의 밥상 전체를 모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 네발짐승은 내 머릿속에서 인격화되어 있었다.
전차 B의 혼잡 50,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고독한 이기주의자에게는 이런 동물이 어중간한 인간보다 더 믿음직한 삶의 벗일지 모른다.
전차 B의 혼잡 50,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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