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말/신년 시즌은 참 바쁜 일이 많네요 😥
3~5장은 특히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쏟아지는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네요. 사람들의 다양한 편향과 이를 이용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노리는 이들까지, 거짓된 정보에 관한 구조적인 이해에 대한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책에서 소개한 러시아의 사례에서도 확인되지만, 반복 노출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하는지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소셜미디어(트위터, 구 X)에서도 특정 시기에 특정 정파에 유리한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작전 세력(?) 추정 인원들이 있는데.. 실제로 여론이 간혹 바뀌는 걸 보면서 좀 무섭기까지 하더라구요. p.199에 인용된 한나 아렌트의 코멘트는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 더욱 유효한 것 같습니다.
이하는 발제문에 대한 답을 이어가며 생각을 정리해겠습니다.
Q1. 클릭 기반 경제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 하나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사 제목이나 유튜브 썸네일 앞에서 클릭을 참지 못하게 되나요?
→ @쏘뮤우 님 과 비슷하게, 제 상식을 벗어나는 제목에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보다 불확실한 (하지만 안전한) 이야기를 읽을 때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진다고 하는데, 저도 상식 밖에 이야기에서 뇌가 좀 더 활성화(?)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네요 😥
Q2. 자기기만은 때로 심리적으로 기쁘게 하고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저는 두 가지 이유에서 직면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첫째 이유는 개개인의 범위에서 생각해보았는데요. 가령 요즘 자주 언급되는 ‘메타인지’가 진실 직면의 한 형태일텐데요. 메타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어느 부분을 보강하고 또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사회적 범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팩트에 대해 사회적 합의 없이, 어떤 공공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정파성을 근거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갈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만, 진실을 직면하지 않고선 끊어낼 수 없는 갈등이 아닐까 싶네요.
Q3. 과연, 건강한 믿음과 자기기만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이게 제일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저 또한 예외가 아니겠지요. 결국 어떤 '지식'은 '믿음'의 영역에 머물게 될 텐데.. 그렇다면 타인의 믿음을 인정하면서 내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 건강한 믿음의 경계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어려운 것이, 그렇다고 '지구평평설' 같은 믿음까지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요? 특히 지난 코로나 유행기에 번졌던 백신 불신에 대한 믿음은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기까지 했죠.
명백한 사실 근거가 반박당한다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그렇다면 그게 '믿음'인가 싶을 뿐더러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답이 있을지 이 문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도서 증정] 정재승, 김경일 추천 도서『집단 망상』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
D-29

책판다
허당
Q1. 클릭 기반 경제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 하나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사 제목이나 유튜브 썸네일 앞에서 클릭을 참지 못 하게 되나요?
- 내가 알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상황에 대한 낚시성 제목에 클릭하게 됩니다.
Q2. 자기기만은 때로 심리적으로 기쁘게 하고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자기 기만적 행동을 합니다. 이로서 마음의 평온을 느끼거든요. 물론 그것이 향후에 큰 돌리킬 수 없는 파급효과를 준다면 생각해 볼 문제이자만 때로는 자기기만 행위는 필요합니다. 항상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 신념같이 굳어져 있지만 일부의 심리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 사회를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3. 과연, 건강한 믿음과 자기기만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있어서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극단적인 경계를 추구하고 또한 타인에 대하여도 극단의 경계를 그어주기를 원합니다만 실상 그 경계는 가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선을 그어버리는 순간 극단적인 믿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girl
자기기만은 나의 방어기제라고 했던 @모시모시 님의 의견에서 더 나아가, '어떤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 편이 건강하다'고 하신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만, 자기기만으로 심리적 평온을 유지하는 동안 내가 언젠가는 진실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전제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의견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

책판다
“ 이념은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세속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일 수도 있는데, 종교 및 정치 학자 하미 샤미드에 따르면, 사회에서 종교적 신앙이 쇠퇴하면 세속적 이념이 점점 더 일종의 종교적 열정 같은 걸로 대체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깊은 신념은 승화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384,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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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판다
평소에 제가 짐작했던 걸 입증해주는 문장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적어봅니다. 아이돌 덕질이라든지, 정치인에 대한 (절대적) 지지 등등이 종교적 신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제 짐작이 이렇게 뒷받침되는 걸 보니 처음엔 반갑다가도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저 또한 예외가 아니겠죠. 특정 정치인 혹은 집단에 대한 믿음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씁쓸함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하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드러내는 종교적 신념(중립적인 단어를 쓰고 싶은데, 대체할 어휘가 떠오르지 않아서 계속 씁니다.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유념해주시길!)을 다른 누군가가 ‘생각 없는’ 일로 여기며 비난하기 때문이었습니다(케이팝 팬들에 대한 멸칭이나 타 정당 지지자 사이의 적개심 같은 예를 들 수 있겠죠). 뇌과학 서적을 읽을 때마다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같은 것도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앞선 장에서 보았듯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 정말 모순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하나는 그래서 우리가 차이를 극복해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아직 9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현대의 공동체는 숫자로만 상상 가능한 거대한 집단이 되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수천만 혹은 억단위의 사람들을 같은 가치로 아우를 수 있을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네요. 혹시 아우른다 해도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동체가 될 것 같구요(그 가치가 느슨할수록 사람들은 자기만의 신념을 찾아 갈라지지 않을지).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끝까지 읽은 후에 이런저런 의견들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모임 종료가 얼마 안 남았는데 부지런히 읽어야겠네요.

책판다
“ 정체성 기반 이념이 문제 기반 이념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는 메이슨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반대 진영에 대한 혐오로 움직일 때, 설사 그들의 주장이 검증된 사실이라 해도 믿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우리 사이에 공통분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더더욱 힘들 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비단 ‘반사회적 미디어’뿐이 아니다. 아이엔가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정치 캠페인에 줄곧 부정적인 주장이 등장했으며 그 주장이 정체 중계를 마치 스포츠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감정적 양극화는 한층 더 심화되었다. ”
『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317,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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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판다
머쓱하게도 바로 위에 적은 ‘거대한 공동체를 아우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힌트가 불현듯 떠올랐네요 ^^;; 8장의 정체성 기반 이념과 관련된 설명 덕분이었는데요. ‘정체성 기반 이념’을 간단히 아는대로 정리해보자면,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의 정체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행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인용문에서 확인하셨듯이 정체성 기반 이념이 정치적 결정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고 하는데, 최근 유사한 주장이 자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조너선 하이트 같은 학자가 있겠고(관련해선 저도 아직 읽지 못한 『나쁜 교육』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고 합니다), 수전 니먼이라는 철학자의 저서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어요. 이중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나마 읽어본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자인 수전 니먼은 스스로 좌파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체성 정치에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인데요. 비단 전통적 좌파 이념(산업 사회에서 불리한 위치로 몰린 이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을 보호하는)과 크게 관련이 없을뿐 아니라, ‘부족주의’의 연장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정체성 이념은 자기 정체성이 주류가 되는 것 이상의 목표가 없을 뿐더러, 필연적으로 반대 부족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반대 정체성 사람들의 강력한 백래시가 유발되었죠(여기에 첨언하자면, 수전 니먼은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이 사소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전통적 좌파 이념만으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족이 길었는데, 이걸『집단 망상』과 이어서 생각해보면, 우리 정치에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지 잘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용한 내용에서 보셨듯 정체성 기반 이념은 공통분모의 존재를 부인하게 만들면서 감정적 양극화도 깊이 유발하는데요. 그렇담 ‘정체성’과는 다른 가치를 소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졌네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경제권을 포함한 ‘보편 인권’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사족 같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대목인 듯하여 정리해봤습니다.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교육단체 수장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대단한 비진실’들이 어떻게 미국의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오늘날 대학 공론장 악화의 배경에는 세 가지의 잘못된 믿음, 즉 대단한 비진실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왼쪽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망각한 시대에 건네는 강렬하고도 도발적인 비평과 성찰을 담았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이자 신중하고 원칙적인 좌파 사상가라 평가받는 도덕철학자 수전 니먼이 빼앗긴 ‘좌파’라는 단어를 되찾아 오기 위한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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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irl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의 경우,처음 본 책인데, 내용이 아주 흥미롭네요. 저도 꼭 다음에 살펴 보겠습니다. :D
느티나무
“ 망상이란 객관적인 증거와 모순되거나 대부분의 다른 사람이 믿는것과 상반되는 믿음이다. 망상은 대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극단적이고 완고한 확신이 수반되며 개인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31,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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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 믿음과 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믿음은 의심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만일 무언가가 의심 없이 사실로 알려져 있다면, 그것을 믿는 것은 믿음의 행위보다는 아는 행위일 것이다. 믿음이란,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을 가슴으로 아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