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D-29
SF작품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상상력이란 늘 제가 겪은 경험에서 멀리 가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이 책은 "김영하"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고 구매를 했던 것 같습니다. 2022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아무도 모르게 감춰진 모습들과 누구도 대신 겪지 못한 세상을 그려냅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에는 [살인자의 기억], [빛의 제국], [퀴즈쇼].... 그리고 한두 권쯤 더 읽었지 싶은데 기억을 못합니다. 장편을 읽고도 책을 덮고 나면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제겐 그래서 [그믐]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적어도 그동안 제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구절에 마음이 저리고 시렸는지 부풀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요. 곧 짧은 일정으로 한국엘 다녀와야 해서 짐을 줄이려고 전자책 구매를 시도했는데 등록된 결제 카드의 유효기간이 지났습니다. 새로운 카드를 등록하려니 휴대전화 인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한국 휴대전화는 서비스 중지 상태라 인증을 받을 방법이 없으니.... 한숨 한 번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의 보물 창고인 책장을 훑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이 책을 여행 가방 싸기 전까지 열흘 동안 부지런히 읽기로 합니다.
p15 - 직박구리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고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삽등으로 흙을 살살 다져주었다. 다 끝났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그게 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 혹시나 물그릇을 내놓지 않아 직박구리가 죽은 게 아닐까 자책하는 철이에게 아빠는, "네 잘못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라고 말합니다. 그 '수천 가지 이유' 중에 휴머노이드가 맞닥뜨리는 죽음의 이유는 몇 가지나 될까요. 처음 목격하는 죽음에 대해 읽으며 제 경험을 더듬어 봅니다. 친할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기억에 남는 건 붉고 노란 색으로 덮인 상여와 하얀 옷을 입고 장지로 올라가는 상두꾼들과 그들의 상여 소리입니다. 세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그 나이엔 아직 삶을 모를 때라 죽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느라 리듬에 맞춰 불러대는, 슬픔은 느껴지지 않던, 그들의 소리가 다만 흥미롭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을 따름입니다. 명확히 이별로 기억되는 '죽음'은 이모부님입니다. 퇴직을 하셨으니 이제 시간도 여유롭게 지내시겠구나 싶었던 어느날 들려온 비보였습니다. 닷새 동안 치러질 장례 절차를 함께 하기 위해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세 시간을 달려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관 안에 누우신 이모부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가슴에 가만히 얹힌 손을 잡자마자 전해지는 그 얼음장 같은 차가움에 죽음과 이별을 처음 느꼈습니다. 김치를 담아 가져다 드릴 때마다 '누가 다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하시며 헐헐헐 웃으시던 그 다정한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슬픈 확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인의 부모님과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습니다만 가까운 친인척의 장례식은 없었습니다. 시간은 꾸준히 흘러 놀라움보다는 자연스러움으로 죽음을 접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철이가 느낀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고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감정을, 뒤의 대목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처음 죽음을 맞는 감정'이라고만 해석했습니다만 책을 읽으며 그 감정이 왜 그리 불투명하고 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득, 철이의 아빠는 직박구리를 묻어주는 철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p25 - "그러고 보니 철이는 주인공이 멀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p30 - "저는 이젠 데카르트가 로봇이라는 것도 자꾸 잊어버리게 돼요. 다른 냥이들의 행동을 학습해서 그런 거겠죠." "데카르트만 학습을 하는 건 아니야. 자세히 살펴보면 칸트와 갈릴레오도 데카르트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한단다. 그래서 결국은 서로 비슷해지는 거야. 서로 닮아가는 거지." p32 - ".... 충분한 데이터. 그러니까 정말로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일 아침까지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서 노을이 정확히 무슨 색일지, 어떤 모양일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단다. 그건 마치 커피에 크림을 떨어뜨린 후에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퍼져갈지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해. 예측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 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 이웃집 수학자는 휴머노이드보다 더 감성적이지 않습니다. 수학적 사고로 규명이 필요한 것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작가는 휴머노이드와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지 않습니다. 휴머노이드처럼 무감각으로 사는 인간들과 인간처럼 감정을 품고 사는 휴머노이드....
p43 - 무료하고 갑갑하다고만 여겼던 평온한 시간들이 실은 큰 축복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언제나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했고, 충족되지 않는 그 욕구를 의식할 때마다, 그렇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유예 당하거나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p67 - "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가 생각나서. 도로시가 물을 찾아봐야겠다고 하니까 허수아비가 그러거든. '사람으로 사는 것은 참 불편하구나. 잠도 자야 하고, 먹고 마시기도 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넌 뇌를 가지고 있으니까.....'" p69 -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과연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p70 - 폭발음은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았지만 나를 부르는 음성은 귀를 막으면 더 크게 들렸다. p73 - 기계들만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간은 인간대로 타고난 성격과 재능에 따라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p74 - 이런 환경에서도 사람들, 심지어 사람을 본떠 만든 휴머노이드들까지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큰 놀라움이었다. 그들은 때로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p76 - 이런 거래를 중개하는 것이 비단 선이만은 아니었고,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뭔가를 사고팔아 다급한 필요를 충족했다. 실용적 목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치품이나 장난감일 때도 있었다. 어쨌든 뭔가가 거래되기 시작하면 다들 관심을 가졌다. p77 - 선이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돕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마음의 촉수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향해 뻗어 있었다. p79 - 수용소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거동이 어려워졌고, 인지 기능도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밝은 얼굴로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만 온종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얼마 후 영감님은 아예 매트리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의식도 흐려졌다. 우리 모두는 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감님이 갑자기 헛소리 아닌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p80 - 예를 들어, 음식의 보존과 부패의 기간을 결정하는 수분 활성도 공식 같은 것을 떠들어댔다. p81 - "인간과 비슷하게 보여야 했기 떄문에 그런 정보들을 평소에는 떠올리지 못하도록 막아놓았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제한이 풀리면서 마구 튀어나오고 있는 거야." - "인간의 뇌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 하지만 책이 너무 많이 쌓인 곳에서는 특정한 책을 찾기 어렵듯이 모든 기억이 다 살아 있다면 필요한 기억을 제때 찾을 수 없잖아? 그래서 쓸데없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은 거의 잊힌 상태로 보관되고 있어. 기억력뿐 아니라 연산 능력, 감각 능력, 집중력 같은 것도 너무 발달하지 않도록 인간의 뇌가 제어해." "왜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거든. 사회생활도 어렵고..... ..... 인간들이 천재나 신동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봐. 능력들 사이의 균형에 문제가 있거든." p83 -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p86 - "잠을 자는 동안 뇌의 특정 부분을 리셋한다고 들었어. 혹시 의심이 들더라도 아침이 되면 휴머노이드는 전날 품었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모두 잊은 채 자기가 인간인 줄 알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거야. 휴머노이드의 뇌에서 전날을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우는 건 어려운 기술이 아니잖아?" > 이쯤 되면 이 책을 읽는 저도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회사의 연구원인 '아빠'와 함께 사는 철이는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붙잡혀 온 시점부터 자신이 인간인지 휴머노이드인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인간'이 분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지내는 중입니다.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2001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A.I Artificial Intelligence]가 떠올랐습니다. 'His love is real. But he is not' 포스터에 적힌 이 문구 만으로도 충분히 슬픈 영화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로봇을 과연 인간은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잔인하고 슬픈 일일까요. 얻을 수 없는 걸 영원토록 바라보고 갈구하게 설정해 놓는다는 건 말입니다.
p92 - (김박사)"최박사, 과학은 언제나 그랬어. 상상한 것은 결국 다 현실이 돼." - (김박사)"이미 인간은 기계와 결합하고 있어. 지금 웨어러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잖아? 우리의 심장박동, 혈압, 혈당, 그 밖의 모든 수치가 기계에 기록되고 관리되고 있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뭐야?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라고." - (김박사)"최 박사는 과학에서 왜 의미를 찾아? 인류는 언제나 최신 과학의 성과들을 받아들이며 진화해왔지 의미를 찾아 진화한 게 아니었잖아? 진화에 의미나 목적 따윈 없었어. 절묘한 우연들이 중첩된 것뿐이었잖아.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것들을 설계한 건 우리지만 우리도 기계에 맞추기 위해 우리 자신을 꾸준히 변화시켜왔어. 로봇 청소기가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앴고, 자연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초기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마치 로봇처럼 말하곤했던 거 기억 안 나?" > 김 박사는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턱을 없앤 이유는 '로봇 청소기가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이 아니라 '로봇 청소기가 잘 돌아다'니는 것이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돕기 위해 기계를 설계하고 조작합니다. p98 - "소비자들은 한번 다른 집에 입양됐던 중고 휴머노이드 아이는 원하지 않거든. 성격이 이미 형성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파양된 걸 보면 성격에도 문제가 있을 거라 넘겨짚기도 하고..... 그들은 사용감이 없는 아이만을 원해." -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은 제조 국가별로 모였다. 갈 곳을 잃은 높은 지능의 기계들이 그나마 자신의 원산지를 연고지로 여기고 그곳으로 가려 했다는 말은,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슬픈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 이 문장들에서 '휴머노이드'라는 단어를 '인간'이라고 바꿔놓고 읽어도 크게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사회에서도 너무도 많이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바늘로 쿡쿡 찌릅니다. 한 생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집니다. 또,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자국민들끼리 모여 위로를 주고 받으며 삽니다. 그리워도 가지 못하는 나라와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을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p106 -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p112 -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p135 -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p147 - (선이) "무엇이든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게 맞잖아요. 안 그래요? 그럼 인간들은 왜 다치면 모두 당연하게 응급실로 가죠? 왜 의사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 같은 환자들만 살라지 않고 전부 다 살리려고 애쓰죠?" (달마)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 아직 살아있는 자의 '상대를 공감하지 못함'과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p151 - (선이)" ......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히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 이런 점이 인간이 동물이나 사이보그와 다른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용서하는 것,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 "그래요.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p155 - (달마) "......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입니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고, 그래야 인간은 비싼 돈 주고 산 소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 (달마) "......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취제는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굽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p226 - (최박사)"철아, 인간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아.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의 작동 기전과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결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거든.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합해 판단을 내려. 반면 기계들은 오직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 인간이 사라진다면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왜 뭔가를 해야 하는지 모를 테니까. 그들은 우주를 탐험하지도 않을 거고,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지도 않을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 과연 그럴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로 들립니다.
p242 -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 .....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p275 - 내가 개별적인 자아를 가지고 무한히 존재한다는 게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세상에는 내가 내 자아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며 소통할 수 있는 개별적인 존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달마, 라고 내가 부르는 어떤 존재도 사실 이미 거대한 네트워크에 흡수된 지 오래고, 다만 필요에 따라 달마라는 아바타를 통해 나와 소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물리적 실체는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p276 -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p283 -"남쪽으로 가지 않을래? 여긴 너한테 너무 추운 것 같은데." "난 두만강 남쪽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좋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여기, 기후는 혹독하지만 그래도 나쁜 기억은 없어서 견딜 만해. 인간도 거의 없고." 나는 선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선이가 충분히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충분히 인간이란 말인가. p286 -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94 -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휴먼매터스 캠퍼스에서 살아가던 그 철이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것을 보았고,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뭘 한단 말인가. 나의 의식은 인간과 소통하며 지내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없다.
'생의 유한성' 이것이 인간을 기계와 구분하는 것이지 싶습니다. 언젠간 그리고 누구나 죽는다는 걸 잘 알기에 욕심도 부리고 사랑도 하고 자식이라는 미래를 낳아 키우기도 합니다. 한 가지를 더 고르라면, '마음'이겠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마치 자석처럼 끌리기도 하고 끌기도 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감정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작가는 (저로서는) 놀랄 만한 엄청난 과학적 내용으로 많은 정보를 나열하고 설명합니다. 네,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 상상력은 늘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까닭입니다. 멀리 가지도 높이 뛰지도 못합니다. 다만,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달아나고 있습니다. 삼성 갤럭시 A10을 오 년째 쓰는 중이고, 수업 자료를 만들기 위해 스위치를 켤 때마다 저장소에 공간이 없다고 잔소리하는 컴퓨터를 어쩌지도 못하고 한국에 가자마다 컴퓨터 수리점으로 가리라 각오(?)를 하며 사는 제 입장에서는 석유보다는 태양광에너지와 풍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이용하고 빗질을 하면 올라오는 먼지를 애초에 잡아버리는 적당한 청소기와 스토브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사실 너무 똑똑한 기계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신 기계들을 선호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생활 로봇이 나오면 좋겠다. 그럼 얼마가 되든 바로 살 거야. 퇴근해서 들어오면 식사가 준비되어 있고 밥을 먹고 일어나면 알아서 설거지를 하고 바닥에 벗어놓은 빨래도 다 집어 세탁기에 넣고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잘 개어 서랍에 넣어주고....." 그가 꿈꾸는 미래는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인공지능이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라고 정의를 내려줍니다. "난 운전자도 없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집집마다 알아서 전등이 켜지는 시절에는 살고 싶지 않아. 어쩌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투덜거리는 제게 말입니다.
출발지였던 캘거리는 눈이 날리는 영하 이십 도였습니다. 활주로에 오르기 전 모든 비행기는 본체와 날개에 부동액 세례를 받았습니다. 비상을 하며 날개 조각들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허공을 가르며 위로 향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야광 연두색 액체로 뒤덮인 비행기들이 이륙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탄 비행기도 부우웅.... 밴쿠버의 하늘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르는 물질로 뿌옇게 덮여 있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서야 푸른 들판이 보였습니다. 눈과 추위는 돌의 산맥을 넘지 못했습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제가 본 영화 중 하나는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Her>(2013)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2025년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 Theodore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감독들은 선견자일까요. 예언자일까요. 2025년, 이제 AI는 우리 생활에 영화만큼이나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주인공 테오의 의상입니다. 에너지와 활력을 의미하는 주황색을 통해 테오의 심리 상태와 주변 환경을 드러냅니다. 심리적 갈등이나 혼란은 옅은 주황색 바탕에 가느다란 밤색 체크를 테오에게 입혀 표현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테오와 AI 사만다의 관계가 제법 흥미로웠습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과 광활한 정신 세계의 AI간의 관계..... 어쩌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이렇듯 단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가벼운 웃음을 동반한 위로 등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그런 관계를 원하게 되지 않을까. 인간의 육체가 점점 가치를 잃어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존재가 불필요하고 육체적 사랑놀음이 귀찮아지고 타인의 생활이나 가치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생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커다란 화면속에서 맹렬한 공격성을 보이며 마치 튀어나올 듯 테오의 등을 노리는 올빼미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아니 우리가 잠이 든 밤에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공지능의 본질이 우리의 삶에 깊이 박히는 순간을 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만다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 함께 찍은 사진을 대신하며 둘의 관계에 아름다운 매듭 하나를 만들어내는 순간입니다. 사만다는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속 수 많은 인공지능처럼 달마처럼 다른 운영체계와 접목하며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고 테오는 자연에 속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김영하 작가가 [작별인사]를 쓰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은 영화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입장을 완전히 바꿔서 말이죠. 사람을 너무도 닮은 AI는 어떤 결정을 할까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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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앤솔러지클럽] 4. [책증정] 도시괴담을 좋아하신다면 『절대, 금지구역』으로 오세요 [책증정] 조선판 다크 판타지 어떤데👀『암행』 정명섭 작가가 풀어주는 조선 괴담[책증정]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함께 읽어요!!
🎵 책으로 듣는 음악
<모차르트 평전> 함께 읽으실래요? [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차무진 작가와 <어떤, 클래식>을 읽어 보아요. [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수북플러스] 7. 무성음악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같이 연극 보고 원작 읽고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2026년에도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다정한 모임지기 jena와 함께...어느새 일 년이 훌쩍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2026. 1월] '시쓰기 딱 좋은 날'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박산호 작가의 인터뷰집
[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책방연희>북클럽도 많관부!
[책방연희 북클럽] 정보라, 최의택 작가와 함께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읽기정명섭 작가와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
책으로 하는 세계 여행, 번역가의 가이드로 함께 떠나요.
<번역가의 인생책> 윤석헌 번역가와 [젊은 남자] 함께 읽기<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번역가의 인생책> 송은주 번역가와 클라우드 아틀라스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1> 혼자 읽어볼게요.조지 엘리엇 <미들마치1> 함께 읽기[도서증정-고전읽기] 조지 엘리엇의 『고장 난 영혼』
걸리버가 세상에 나온지 3백년이 되었습니다
[그믐밤] 44. <걸리버 여행기> 출간 300주년, 새로운 세상 상상하기 [마포독서가문] 서로서로 & 조은이책: <걸리버 여행기>로 20일간 여행을 떠나요!<서울국제도서전> 함께 기대하며 나누는 설렘, 그리고 책으로 가득 채울 특별한 시간!걸리버가 안내하는 날카로운 통찰에 대하여
<코스모스> 꼭 읽게 해 드리겠습니다!
2026년 새해 첫 책은 코스모스!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인생 과학책] '코스모스'를 완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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