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작품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상상력이란 늘 제가 겪은 경험에서 멀리 가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이 책은 "김영하"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고 구매를 했던 것 같습니다. 2022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아무도 모르게 감춰진 모습들과 누구도 대신 겪지 못한 세상을 그려냅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D-29

Nina모임지기의 말

Nina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에는 [살인자의 기억], [빛의 제국], [퀴즈쇼].... 그리고 한두 권쯤 더 읽었지 싶은데 기억을 못합니다. 장편을 읽고도 책을 덮고 나면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제겐 그래서 [그믐]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적어도 그동안 제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구절에 마음이 저리고 시렸는지 부풀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요.
곧 짧은 일정으로 한국엘 다녀와야 해서 짐을 줄이려고 전자책 구매를 시도했는데 등록된 결제 카드의 유효기간이 지났습니다. 새로운 카드를 등록하려니 휴대전화 인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한국 휴대전화는 서비스 중지 상태라 인증을 받을 방법이 없으니.... 한숨 한 번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의 보물 창고인 책장을 훑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이 책을 여행 가방 싸기 전까지 열흘 동안 부지런히 읽기로 합니다.

Nina
p15
- 직박구리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고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삽등으로 흙을 살살 다져주었다. 다 끝났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그게 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 혹시나 물그릇을 내놓지 않아 직박구리가 죽은 게 아닐까 자책하는 철이에게 아빠는,
"네 잘못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라고 말합니다. 그 '수천 가지 이유' 중에 휴머노이드가 맞닥뜨리는 죽음의 이유는 몇 가지나 될까요.
처음 목격하는 죽음에 대해 읽으며 제 경험을 더듬어 봅니다. 친할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기억에 남는 건 붉고 노란 색으로 덮인 상여와 하얀 옷을 입고 장지로 올라가는 상두꾼들과 그들의 상여 소리입니다. 세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그 나이엔 아직 삶을 모를 때라 죽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느라 리듬에 맞춰 불러대는, 슬픔은 느껴지지 않던, 그들의 소리가 다만 흥미롭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을 따름입니다.
명확히 이별로 기억되는 '죽음'은 이모부님입니다. 퇴직을 하셨으니 이제 시간도 여유롭게 지내시겠구나 싶었던 어느날 들려온 비보였습니다. 닷새 동안 치러질 장례 절차를 함께 하기 위해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세 시간을 달려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관 안에 누우신 이모부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가슴에 가만히 얹힌 손을 잡자마자 전해지는 그 얼음장 같은 차가움에 죽음과 이별을 처음 느꼈습니다. 김치를 담아 가져다 드릴 때마다 '누가 다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하시며 헐헐헐 웃으시던 그 다정한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슬픈 확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인의 부모님과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습니다만 가까운 친인척의 장례식은 없었습니다. 시간은 꾸준히 흘러 놀라움보다는 자연스러움으로 죽음을 접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철이가 느낀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고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감정을, 뒤의 대목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처음 죽음을 맞는 감정'이라고만 해석했습니다만 책을 읽으며 그 감정이 왜 그리 불투명하고 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득, 철이의 아빠는 직박구리를 묻어주는 철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p25
- "그러고 보니 철이는 주인공이 멀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p30
- "저는 이젠 데카르트가 로봇이라는 것도 자꾸 잊어버리게 돼요. 다른 냥이들의 행동을 학습해서 그런 거겠죠."
"데카르트만 학습을 하는 건 아니야. 자세히 살펴보면 칸트와 갈릴레오도 데카르트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한단다. 그래서 결국은 서로 비슷해지는 거야. 서로 닮아가는 거지."
p32
- ".... 충분한 데이터. 그러니까 정말로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일 아침까지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서 노을이 정확히 무슨 색일지, 어떤 모양일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단다. 그건 마치 커피에 크림을 떨어뜨린 후에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퍼져갈지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해. 예측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 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 이웃집 수학자는 휴머노이드보다 더 감성적이지 않습니다. 수학적 사고로 규명이 필요한 것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작가는 휴머노이드와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지 않습니다. 휴머노이드처럼 무감각으로 사는 인간들과 인간처럼 감정을 품고 사는 휴머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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