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D-29
그 떨리는 침묵을 사랑한다. 그 흐릿한 빛들도(희미한 빛에 잠겨 깜빡거리는 기계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모니터들. 혹은 라 투르의 그림 속 촛불 같은 책상 램프. 예를 들자면 라 투르의 「갓난아기」).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20
라 투르의 갓난아기, 그의 촛불, 저 마지막 그림의 코믹한 연출이 이 작가님이었네요.
그녀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가, 아직까지도 따끈하고 속이 꽉 찬 육중한 한 시기가, 현재로부터 떨어져 나가 만료된 시간을 향해 기우뚱 기울어지더니 떨어져 내리며 자취를 감춘다. 그녀는 흙이 굴러떨어지고, 사태가 나고, 두 발을 딛고 선 땅이 쩍쩍 갈라지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무언가 닫혀 버린다. 무언가 이제부터 닿을 수 없는 곳에 자리한다(절벽 일부가 고원에서 떨어져 나가 바닷 속으로 무너져 내린다. 반도가 대륙에서 뽑혀 나가 홀로 난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멋진 동굴 입구가 갑자기 바위에 막혀 버린다). 과거가 갑자기 대번에 몸집을 부풀렸다. 생명을 집어삼키는 걸귀. 그리고 현재는 가늘디가는 경계선일 뿐. 그 선 너머의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전화벨 소리가 시간의 연속성을 쪼개 놓았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시간, 공간, 감정의 뒤얽힘으로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함이 인상깊습니다.
한 시간 뒤, 죽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이 자신의 도착을 알려 온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40p.
심정지는 더 이상 죽음의 징표가 아니며 이제부터 죽음을 입증하는 것은 두뇌 기능의 정지이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34
온 세상이 텅 비었더랬다. 도심에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주민들이 재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집 안으로 숨어 버린 것만 같았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뒤 창문 뒤에 딱 달라붙어서 적군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마다 전염력이 강한 불운으로부터 재빨리 비켜서 버린 것만 같았다(두려움은 눌러도 다시 튀어오르고, 이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상점 진열창에는 셔터들이 내려져 있거나 차양이 내려져 있었다. 강 하구의 도시 위로 흩어져 날던 갈매기들만이 그녀의 주행에 경의를 표하며 달리는 차 위를 맴돌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녀의 차가 풍경 전체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개체였다.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생명을 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동 캡슐. 핀볼 머신의 유리 덮개 밑의 쇠구슬처럼 바닥에 바투 붙어 튀어 나가는 이동 캡슐(완강하고, 혼자이며, 진동으로 부르르 떠는). 외부 세계가 서서히 팽창했고, 부르르 떨리기까지 하더니 희뿌얘졌다. 사막의 대지 위 공기층이 태양열에 달궈진 도로의 아스팔트 위 공기층이 부르르 떨리면서 희뿌옇게 보이듯, 그 세계는 저 멀리 달아나는 배경으로 바뀌어 갔다. 점점 희끄무레해지다가 소실될 참이었다. 그사이 차 안의 마리안은 한 손으로는 차를 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남김없이 훔쳐 냈다. 그 눈묻들. 그러고는 계속해서 도로를 달리며 전화를 받은 뒤로 마음 밑바닥에 앙금처럼 걸린 직감을 떨쳐 내려고 애썼다. 그녀에게 부끄러움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직감. 아르플뢰르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리고 르아브르를 빠져나가는 출구. 운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 입체 교차로. 움직임 없이 닫혀 있는 숲. 병원.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57-58
불운은 다른 모든 사람을 비켜 가고 오직 내게만 닥쳤습니다 이 세상이 평온하고, 아름답고, 행복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흑흑 (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 눈물 닦는 장면에 과하게 공감이입 되네요 ㅠㅠ)
저도 이 장면ㅜㅠ 엄마가 된 후에는 모든 상황을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거 같아요.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그 공포... 마리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작년 초에 딸아이가 울면서 전화해서 "엄마, 나 학폭 당하고 있어."라고 말하던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지던 것 같은 기분과 그후 해결되기 전까지 불안, 공포, 걱정, 슬픔, 분노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엄마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식도 엄청난 불안, 공포, 걱정, 슬픔, 분노를 느낄 거예요 ♡ 사실, 카톡에 "ㅠㅠ" 보내는 것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괜히 걱정하고 놀란다고 해서요
전 반대로 저희 엄마 아빠가 밤중에 갑자기 전화하면 놀라니까 꼭 카톡 먼저 보내고 전화하라고 말씀드려 놨어요.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 가슴이 철렁 하더라고요. (그러기엔 저희 엄마 올해 70세 ㅎㅎㅎ)
진짜 문장 수집이 어찌 저와 다 같으신지요 .신기합니다.ㅎㅎㅎ 저는 끝부분에 그녀에게 부끄러움과 고통을 불러오는 직감.부끄러움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요..ㅠㅠ 근데 그 단어가 더욱 슬픕니다.
저도 '부끄러움'을 곱씹어 읽고 필사하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번역가님께 DM 을 보내 볼까 싶은 생각도 했는데 부끄러웠어요 :)
@수북강녕 저도 같은 부분 필사했었는데...읽으면서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하....생각만해도 끔찍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일것 같아요.
이 장면, 작가가 실제 경험한 것이 아닐까싶게 생생하고 인상 깊었어요.
@후시딘 맞아요. 경험하지 않고 이런 글을 썼다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으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네요.
레미주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지체 없이 녹색 서류 파일을 연다. 그는 주의 깊게 서류들을 넘겨 보면서 그 일에 빠져든다. 수치들을 외우고 데이터들을 비교한다. 차츰차츰 시몽의 육체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판단이 또렷이 형성된다. 일종의 우려가 그를 엄습한다. 앞으로 밟아 나갈 절차의 단계들과 지표들을 익히 알고 있다 해도, 그 절차가 기름칠이 잘 되어 있는 소형 기계 장치와 얼마나 다른지 또한 잘 알고 있어서다. 그건 정해진 문장들을 읊조린다고, 체크 리스트의 각 항목에 사선으로 줄을 긋는다고 굴러가는 톱니바퀴가 아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목청을 틔우고 생드니에 있는 의학국에 전화를 건다. 이제 그 단계까지 갔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94-95
마리안 랭브르뿐 아니라, 독자로서도 벌써 숨이 가쁩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구요 ㅠㅠ 싱싱한 청년 시몽에게 닥친 엄청난 사고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데 벌써 코디네이터의 등장이라니요 (하지만 레미주에 대한 신뢰는 이 작품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23페이지의 페요테(선인장)를 찾아봤는데 먹을 수도 있다는 꽃이 어여쁩니다 ㅎ
그녀가 가방을 움켜쥐면서 돌아섰다.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던 딸아이와 맞닥뜨렸다. 오, 루.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끌어안는 대로 자신을 내맡겼지만, 아이의 마음속의 모든 것은 어머니를 향해 묻고 있었고, 어머니는 질문을 비껴갔다. 실내화 신어. 스웨터 챙기고. 가자. 마리안은 계단 통로를 향해 난 문이 등 뒤에서 쾅 닫힐 때 불현듯(선뜩한 칼날로 긋기) 다음번에 다시 자물쇠에 열쇠를 꽂을 때면 시몽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한 층 아래. 마리안은 어떤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다시 한 번 눌렀다(일요일 아침이라 아직 잔다). 그러고 나니 어떤 여인이 문을 열어 줬다. 마리안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병원. 사고. 시몽. 심각하대요. 상대방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끄덕이고 다정하게 대꾸했다. 루는 우리가 돌볼게요. 잠옷 바람의 여자아이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열린 문틈으로 엄마에게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문밖 계단참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엄마! 그러자 마리안이 빠르게 계단을 되짚어 올라왔다. 딸아이의 키와 같은 높이가 되게 무릎을 굽히고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아이의 두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오싹한 그 후렴구를 되뇐다. 시몽. 서핑. 사고. 갔다 올게. 곧 돌아올게. 아이는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이웃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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