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D-29
그래서 그 두 남자는 청중 앞에 나섰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비가역 코마>라고 부르는 것의 확인된 징후 등을 기술하고, 더 이상의 두뇌 활동을 보여 주지 않지만 인공호흡기를 달아 놓으면 심장과 호흡 기능은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환자들(소생의학에서 사용되는 기계와 기술의 개선이 없었더라면 뇌에 혈액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심정지에 의한 사망으로 바뀌었을 환자들)의 여러 가지 케이스를 상세히 나열했다. 그러더니 그들은 소생의학의 비약적 발전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이 분야의 발전으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내리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47
… 그 고립된 분위기. 그 폐쇄성. 블랙홀을 향해 발사된 우주선이나, 심해를 향해, 마리아나 제도의 해저를 향해 내러가는 잠수정과 닮은 업무. … 자기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의식 … 그의 동작들을 제어하고 그의 결정들을 걸러 내는 명철함의 작용. 냉정함의 분출.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튀어 오르고 울렁대고 벅차오르고 깃털처럼 가볍게 춤추거나 돌처럼 짓누르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는지(사랑),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며 덩달아 빨리 뛰던 다른 심장을 가진 엄마로서 작품의 시작부터 눈물 날 지경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심장이 빨리 뛸 때 그 일을 반기며 또는 걱정하며 덩달아 빨리 뛰는 다른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댓글만 봐도 쿵쿵 합니다 ㅠ
(아무 데나, 별거 아닌 일로도 끈질기게 그들의 프랑스어 사이에 박아 넣는 영어. 자기들이 팝송이나 미국 드라마 속에 들어가 있기라도 한 양, 자기들이 이방의 영웅이기라도 한 양. 〈삶〉과 〈사랑〉같이 어마어마한 단어들을 〈라이프〉와 〈러브〉로 만들어 공기처럼 가볍게 떠오르게 하는 영어. 그리고 수줍은 구석도 있는 영어.)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11
병원에서 소생의학과는 갈림길에 선 생명, 절망적인 코마, 예고된 죽음들을 맞아들이며, 그처럼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 걸쳐 있는 육신들을 수용하는 별도의 공간이다. p.19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그 떨리는 침묵을 사랑한다. 그 흐릿한 빛들도(희미한 빛에 잠겨 깜빡거리는 기계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모니터들. 혹은 라 투르의 그림 속 촛불 같은 책상 램프. 예를 들자면 라 투르의 「갓난아기」).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20
라 투르의 갓난아기, 그의 촛불, 저 마지막 그림의 코믹한 연출이 이 작가님이었네요.
그녀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가, 아직까지도 따끈하고 속이 꽉 찬 육중한 한 시기가, 현재로부터 떨어져 나가 만료된 시간을 향해 기우뚱 기울어지더니 떨어져 내리며 자취를 감춘다. 그녀는 흙이 굴러떨어지고, 사태가 나고, 두 발을 딛고 선 땅이 쩍쩍 갈라지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무언가 닫혀 버린다. 무언가 이제부터 닿을 수 없는 곳에 자리한다(절벽 일부가 고원에서 떨어져 나가 바닷 속으로 무너져 내린다. 반도가 대륙에서 뽑혀 나가 홀로 난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멋진 동굴 입구가 갑자기 바위에 막혀 버린다). 과거가 갑자기 대번에 몸집을 부풀렸다. 생명을 집어삼키는 걸귀. 그리고 현재는 가늘디가는 경계선일 뿐. 그 선 너머의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전화벨 소리가 시간의 연속성을 쪼개 놓았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시간, 공간, 감정의 뒤얽힘으로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함이 인상깊습니다.
한 시간 뒤, 죽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이 자신의 도착을 알려 온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40p.
심정지는 더 이상 죽음의 징표가 아니며 이제부터 죽음을 입증하는 것은 두뇌 기능의 정지이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34
온 세상이 텅 비었더랬다. 도심에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주민들이 재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집 안으로 숨어 버린 것만 같았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뒤 창문 뒤에 딱 달라붙어서 적군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마다 전염력이 강한 불운으로부터 재빨리 비켜서 버린 것만 같았다(두려움은 눌러도 다시 튀어오르고, 이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상점 진열창에는 셔터들이 내려져 있거나 차양이 내려져 있었다. 강 하구의 도시 위로 흩어져 날던 갈매기들만이 그녀의 주행에 경의를 표하며 달리는 차 위를 맴돌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녀의 차가 풍경 전체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개체였다.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생명을 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동 캡슐. 핀볼 머신의 유리 덮개 밑의 쇠구슬처럼 바닥에 바투 붙어 튀어 나가는 이동 캡슐(완강하고, 혼자이며, 진동으로 부르르 떠는). 외부 세계가 서서히 팽창했고, 부르르 떨리기까지 하더니 희뿌얘졌다. 사막의 대지 위 공기층이 태양열에 달궈진 도로의 아스팔트 위 공기층이 부르르 떨리면서 희뿌옇게 보이듯, 그 세계는 저 멀리 달아나는 배경으로 바뀌어 갔다. 점점 희끄무레해지다가 소실될 참이었다. 그사이 차 안의 마리안은 한 손으로는 차를 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남김없이 훔쳐 냈다. 그 눈묻들. 그러고는 계속해서 도로를 달리며 전화를 받은 뒤로 마음 밑바닥에 앙금처럼 걸린 직감을 떨쳐 내려고 애썼다. 그녀에게 부끄러움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직감. 아르플뢰르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리고 르아브르를 빠져나가는 출구. 운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 입체 교차로. 움직임 없이 닫혀 있는 숲. 병원.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57-58
불운은 다른 모든 사람을 비켜 가고 오직 내게만 닥쳤습니다 이 세상이 평온하고, 아름답고, 행복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흑흑 (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 눈물 닦는 장면에 과하게 공감이입 되네요 ㅠㅠ)
저도 이 장면ㅜㅠ 엄마가 된 후에는 모든 상황을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거 같아요.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그 공포... 마리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작년 초에 딸아이가 울면서 전화해서 "엄마, 나 학폭 당하고 있어."라고 말하던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지던 것 같은 기분과 그후 해결되기 전까지 불안, 공포, 걱정, 슬픔, 분노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엄마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식도 엄청난 불안, 공포, 걱정, 슬픔, 분노를 느낄 거예요 ♡ 사실, 카톡에 "ㅠㅠ" 보내는 것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괜히 걱정하고 놀란다고 해서요
전 반대로 저희 엄마 아빠가 밤중에 갑자기 전화하면 놀라니까 꼭 카톡 먼저 보내고 전화하라고 말씀드려 놨어요.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 가슴이 철렁 하더라고요. (그러기엔 저희 엄마 올해 70세 ㅎㅎㅎ)
진짜 문장 수집이 어찌 저와 다 같으신지요 .신기합니다.ㅎㅎㅎ 저는 끝부분에 그녀에게 부끄러움과 고통을 불러오는 직감.부끄러움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요..ㅠㅠ 근데 그 단어가 더욱 슬픕니다.
저도 '부끄러움'을 곱씹어 읽고 필사하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번역가님께 DM 을 보내 볼까 싶은 생각도 했는데 부끄러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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