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D-29
즉 심정지는 더 이상 죽음의 징표가 아니며 이제부터 죽음을 입증하는 것은 두뇌 기능의 정지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더 이상 사고하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심장의 폐위와 두뇌의 대관식(상징적 쿠데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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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갑자기 대번에 몸집을 부풀렸다. 생명을 집어삼키는 걸귀. 그리고 현재는 가늘디가는 경계선일 뿐. 그 선 너머의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전화벨 소리가 시간의 연속성을 쪼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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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녀에게는 주위 공간이 물질에 내재된 가공할 에너지를 가둬 두느라 표면이 살짝 부풀어 오른 듯 보이기까지 했다. 원작 쪼개지게 되면 전대미문의 파괴력으로 변화할 수 있는 내부의 그 힘. ... 온 세상이 텅 비었더랬다. 도심에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주민들이 재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집 안으로 숨어 버린 것만 같았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뒤 창문 뒤에 딱 달라붙어서 적군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마다 전염력이 강한 불운으로부터 재빨리 비켜서 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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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선 으레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평범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동작이 어떤 의도를, 시몽의 상태가 불러일으킨 배려나 그 밖의 뭔가를 드러내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아직은. <아드님은 살아 있습니다.> 이런 확언을 망칠지도 모를 정보는 그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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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미소. 또 뵙죠. 용기를 내세요. 그러더니 온갖 소리들이 들려오는 곳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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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을 넘어가는 액체의 뜨거움에 집중한다. 그만큼 첫 문장의 첫 단어가 두렵다(턱이 움직인다. 입술이 열리고 옆으로 늘어진다. 이가 드러난다. 때로 혀끝이). 그녀도 안다. 불행으로 꽉 찬 그 문장이 이제 곧 형체를 드러내리라는 것을. 그녀 안의 모든 것이 뒷걸음질을 치며 문제를 떠넘긴다. .... 꽉 막힌 이 방을, 푸르스름한 이 빛을 벗어나서 예고된 소식 앞에서 달아나고 싶다. 그녀는 용감하지 않다. 천만에. 그녀는 몸을 비비 꼬고 물뱀처럼 요리조리 달아난다. 누군가 그녀를 안심시켜 주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서스펜스가 있다지만 달콤한 해피엔드가 보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자신이 지닌 건 전부 다 내줄 테다. 그녀는 지독한 겁쟁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버틴다. 흘러가는 1초 1초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고, 새롭게 열리는 1초 1초가 전진하는 운명에 제동을 걸고 있다. ... 레볼은 그녀가 알고 있음을 짐작한다. 그리고 무한한 친절함으로, 말을 꺼내기까지의 시간을 늘리는 데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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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감언과 거리가 멀다. 묘지에서 위로한답시고 들려오는 그런 역겨운 목소리들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마리안에게 배당된 자리를 가리켜 준다. 자리를.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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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결코 그 어느 것도, 그 여자 곁에 자리 잡고 앉아서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언어의 취약 지역을 함께 파 들어가면서 나아가는 것보다 더 폭력적이며 더 복잡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말 속에 자신의 육신을 새겨 넣어 그 육신이 말 속에 자리하게 하여, 의사의 선고가 공감이 되게끔 만드는 벙법. 그는 끌로 새기듯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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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검사죠? 사무실 안에 곧게 뻗어 나가는 마리안의 목소리와 아직 진행 중인 검사가 있다면 그 무엇도 확정된 게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 번뜩이는 그녀의 눈빛이 레볼의 경각심을 일깨우자 그는 상황을 휘어잡고 희망에 재갈을 물리려 든다. ... "시몽이 입은 손상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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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간결하다. 그들 네 사람 모두 자기네의 행운을, 끝내주는 행운을 의식하고 있음을 마리안에게 알려 주려는 목적의 극단적 간결함. ... 마리안 역시 뒤로 넘어가는 그 여자를 바라보면서 자신과 그 여자 사이에, 그들과 그녀 사이에 놓인 구렁텅이를,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그 심연을 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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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온갖 말들로 그녀를 뒤덮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애정을 그녀에게 보여 주려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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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간호사는 레볼이 그에게 무슨 소식을 알려 올 참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할 수도 있으리라. 보다 높은 효울성을 위해 비극을 표준화해 표현하는 그 문장을. 소생의학과의 환자 한 명이 뇌사 상태입니다. 최종 선고처럼 울려 퍼지는 사실 확인이지만 천만에, 토마에게는 그 선고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서 행동 개시를, 절차의 시작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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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명의 주인공 대신,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있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형식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마리안이 각각의 의료인들과 접하면서 계속 고조되어 가는 감정 속에서 점점 확실히 다가오고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마주해야하는 현실에 최대한 그녀를 배려하고 기다리면서도 거짓 선의로 포장하려고 하지 않는 자세들이었습니다. 저는 의사든 간호사든 아무리 힘든 공부와 트레이닝 그리고 업무에 시달려도 이것만큼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을 것 같아요. ❓2. 이 참담하고 혼란한 상황에서, 독자로서 특히 마음이 쓰이는 또는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마리안에게 가장 마음이 가는데요. 특히 마지막에 '온갖 말들로 그녀를 뒤덮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애정을 보여 주려'하는 부분이 너무 공감이 가더라구요. 제발.. 그럴 때 어설프게 도와주려고 한답시고 더 혼란과 고통을 늘리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더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는 '그들이 기다릴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주는 게 최선입니다..
오늘은 무엇이든 예측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토마 레미주는 대기 중이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언제 소생의학과에서 전화가 올지 모르니까. 그게 원칙이다. 매번 그렇듯이, 텅 비었으나 사용할 수 없는 그 시간들(어쩌면 권태의 또다른 이름일 수 있는 그 역설적인 시간들)과 타협하고 이런 대기 시간을 다스려야 하지만, 어쩔 줄을 모른 채 쉬는 것도 아니고 이 자유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아닌 대기 상태에 묶여 망설임으로 몸이 굳는다. … 그래서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병원 번호를 발견하자, 토마는 실망의 아픔과 위안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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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 잘 몰라서 여쭤봅니다. 연극보고 뒷풀이하는 일정 나온 공지는 어떻게 보는건지 잘 못찾겠어요. 31일 2시 공연 예매했는데 맞나요?
1/31(토) 14시 공연 단체관람, 맞습니다! 우리 모임 화면 아래 부분에 불이 타오르는 듯한 아이콘을 누르시면 '화제 모음' 글만 보실 수 있습니다 글을 올릴 때 모임지기(와 특정한 목적에 의해 모임지기가 지정한 참가자)는 '화제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 진도, 뒤풀이 공지 등은 제가 작성할 때부터 연노란색 바탕으로 눈에 띄게 올리고, 이후에 다른 글이 많이 쌓이더라도 해당 아이콘을 누르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리디]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레볼은 오래전부터 거기에서 또 다른 것을 길어 올리고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의식 말이다. 그건 권력에 대한 의식이나 과대망상적 흥분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그러니까 그의 동작들을 제어하고 그의 결정들을 걸러 내는 명철함의 작용. 냉정함의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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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사람은 그보다 살짝 어리다. 1960년대 말에 태어난 세대. 그들은 늘어난 평균 수명이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세상을, 죽음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빠져나가 일상의 공간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대신 전문가들이 죽음을 도맡는 병원으로 달아나 버린 세상을 살아간다. 저들이 시신과 그저 조우라도 해봤던 적이 있을까?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다든가, 익사자를 끄집어냈다든가, 생의 마지막에 이른 친구의 곁을 지켰다든가, 그런 경험이 있을까? 그들이 「바디 오브 프루프」, 「CSI」, 「식스 피트 언더」 등의 미국 드라마들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을까? 레볼, 그는 가끔씩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영안실을 기웃거리기를 좋아하는데,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죽음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정말 병원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되었네요.
책을 읽다가 홀바인 2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이라는 그림 이야기가 나와서 예전 연뮤클럽 <백치>를 모임을 찾아가 보니 당시에 올려주신 @borumis 님의 그림이 잘 남아있네요. 극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져 흔히 상상하는 예수의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도스토옙스키가 푹 빠졌던 그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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