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D-29
바깥 세상이 그 사건의 여파를 흡수하고 여진을 집어삼키고 마지막 떨림까지 남김없이 빨아먹기라도 한 듯. 충격파의 진폭이 줄어들며 길게 늘어지다가 약해져 평평한 하나의 선이 되기라도 한 듯. 공간 속으로 뻗어 나가 다른 선들 전부와 뒤섞이고 세상의 폭력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다른 선들과 한데 합쳐져 버린 그 단순한 선. 그 슬픔과 잔해의 뭉치. 시선을 아무리 먼 곳까지 던져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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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생겨난 시몽의 이미지들이 노략질하듯 잇달아 그녀를 공격해 오면 그 파상 공격을 막아 낼 제방을 쌓고 가능하다면 그 이미지들을 각목을 휘둘러 멀리 쫓아 보내기. 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벌써 추억으로 구축된다. 기억의 시퀀스들로 이뤄진 19년. 하나의 덩어리. 그 모든 것을 멀찌감치 떼놓기. 그녀가 레볼의 그 골방 같은 사무실에서 시몽을 떠올렸을 때 갑자기 들이닥쳤던 기억의 폭발이 그녀로서는 무능하게도 통제도 축소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그녀의 가슴속에 심어 놓았다. 고통을 다스리려면 기억을 뇌 속에 자리 잡게 한 뒤 초정밀 컴퓨터가 인도하는 주사기 바늘로 마비 용액을 주입해야 하리라. 하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기억은 몸 전체의 소관이라서, 그녀는 뇌 속에서 그저 행위의 동력, 기억할 수 있는 능력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난 그 머리통 속에서 한 철 일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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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고 그녀의 뇌를 찢어발겼다. 그건 이전의 삶의 목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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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시간이 선적인지 아니면 훌라후프처럼 빠르게 도는 원들을 그리는지, 시간이 완결된 원들을 만드는지 아니면 소라 껍질의 나선형처럼 말리는지, 시간이 파도가 꺾이며 생성된 튜브, 그 어두운 이면으로 바다와 우주 전체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튜브의 형체를 띠는지를 어느 날엔가는 그녀가 알아야 하리라. 그렇다. 흐르는 시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그녀가 이해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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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그 목소리의 시간 착오에 종지부를 찍고 그 목소리를 여기, 비극적 사건의 현재 속에 다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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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으로 몸을 날리기 전 돌처럼 굳어 끌어안을 때의 그런 포옹. 어쨌든 세상 끝 날의 그 무엇. 그 순간, 그것은 그 둘을 같은 시간, 정확하게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접속하게 만드는 몸짓이자(입술끼리 부딪힌다) 둘 사이의 거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없애 버리는 몸짓이기도 하다. 그 둘이 서로를 풀어 줄 때, 그 둘이 마침내 서로를 놓아줄 때, 얼이 빠지고 기진맥진한 그 두 사람은 흡사 조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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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과 마리안의 이런 모습들.. 너무 슬프고 괴롭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시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정말 작가의 문장들이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마음을 쓸고가는 듯합니다.
마리안이 시몽에게, 그녀의 눈에 그토록 길어 보인 적이 없었던 시몽의 그 육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한 가까이 다가간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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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Holbein이나 Mantegna의 그림도 체 게바라의 사진도 보면 다 길게 늘어진 모습인데요.. 이런 모습들에서 느껴지는 건 항상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상시에는 수직으로 있고 수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반면, 죽은 사람을 보면 살아 있을 때보다 길게 가로로 늘어져 있고 가만히 있기에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오, 네, 정말 그렇네요. 쓰신 글을 보니 위에 발췌하신 부분이 더욱 와닿습니다!
내 몸은 나의 것임을 단호하게 밝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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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문신, 그거 평생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지? 그리고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되돌아온다. 돌이킬 수 없음. 비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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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늘어난 평균 수명이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세상을, 죽음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빠져나가 일상의 공간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대신 전문가들이 죽음을 도맡는 병원으로 달아나 버린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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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어찌해도 번역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언어 이전의 언어로 그들을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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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인 그 소녀는 차츰차츰 생명체의 무한한 다양성에 대해 뭔가를 깨닫게 된 동시에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내게 됐고, 학교 축제 때 연극 무대에 올라 언젠가는 경이로운 돌연변이가 인간을 변모시키고 개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단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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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린, 그게 시몽이란 말입니다. 우리 아들이요. 이걸 이해하겠소?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157p.
저와 친한 언니의 여동생이 전에 이식센터의 간호사라고 했어요. 콜을 받고 수술실에 들어갈 때면, 누군가에게는 생명,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라는 이중적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머리가 너무 복잡한지 잘 읽히지가 않아요 ㅠㅠ 문장도 단어도 하나하나가 밀도 있게 느껴집니다. 이제 마리안이 병원에 도착해서 시몽을 찾는 장면까지 읽었어요!!!
문장이 툭툭 끊기고, 중간중간에 형이상학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근데 문체 매우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저도 최대 집중력 유지하면서 읽으려고 하는데... 엠씨스퀘어가 필요하네요!
유연한 시간표. 막중한 책임. 부족한 것투성이. 소생의학과는 닫힌 공간이며 자기만의 규칙에 복종한다. 토마는 자신이 차츰차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밤과 낮의 나뉨이 자기 안의 그 무엇에도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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