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D-29
바깥의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자 잡지의 책장들이 선명해진다. 그러자 갖가지 색감의 푸른색과 초록색이 드러나며, 눈을 찌르는 순수한 코발트블루와 아크릴 물감으로 그어 놓은 듯한 짙은 초록색들이 보인다. 여기저기, 서핑으로 생겨난 골이, 거대한 물의 벽 위를 지나가는 아주 가느다란 흰 선이 나타난다. 젊은이들은 눈을 껌벅이며 중얼거린다. 우와, 쩐다 쩔어. 죽이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15
때가 됐다. 무정형이 형체를 드러내는 동터 오는 시간, 주위 환경이 서서히 드러난다. 하늘이 바다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수평선이 구별된다. 세 명의 젊은이가 여전히 의식을 치르듯 지키는 정확한 순서에 따라서 차근차근 채비를 갖춘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16
어쩌면 이제 그들의 심장이 흥분해서 흉곽 안에서 느리게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질량과 크기가 증가하고, 그 박동이 거세어질지도 모른다. 하나의 심박 안에 분명히 구분되는 두 개의 시퀀스, 늘 그렇듯 두 개의 울림. 그러니까 공포와 욕망. 그들은 바다로 들어간다. 체온을 보존해 주며 격렬한 동작에 방해가 되지 않는 유연한 재질의 막으로 꼭 맞게 감싼 몸을 담그면서 고함 한 번 지르지 않는다.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그래도 바닷속 자갈밭을 지나가면서는 얼굴을 찌푸린다. 바다가 급격하게 깊어진다. 바닷가에서 5~6미터 나아갔을 뿐인데 벌써 발이 바닥에 닿질 않는다. 그들은 몸을 숙인다. 보드 위에 납작 엎드린다. 두 팔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파도가 부서지는 지역을 넘어 난바다로 나아간다. 해변으로부터 2백 미터 떨어진 지점의 바다는 파동이 이는 긴장 상태 그 자체일 뿐이다. 바다는 가라앉았다가는 침대 위로 던져져 확 펼쳐지는 시트처럼 솟아오른다. 시몽 랭브르는 자신의 동작 속에 녹아든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17
그는 기다린다. 주위의 모든 것이 흔들린다. 느릿하고 묵직하고 딱딱한 현무암 덩어리처럼 보이는 수면이 한 번씩 뒤챌 때마다 바다와 하늘의 널따란 자락들이 통째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이 시몽의 얼굴을 불태워 피부가 당긴다. 속눈썹이 비닐 끈처럼 딱딱해지고 동공 뒤의 수정체가 냉동실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얼어들어 오고 심장은 추위에 반응하여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갑자기, 그것이 오고 있는 게 보인다.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단단하고 균일한 모습으로. 파도가. 약속이. 본능적으로.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19-20
28쪽까지의 상황이 긴박하고 중대하며 문장이 모두 좋아서 많이 옮겨 보았습니다 저는 자연을 늘 두려워해 왔는데, 그 중 물에 대한 공포는 특히 컸습니다 (우주에 대한 공포도 크지만 비현실적인 반면) 가족들과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거북을 보기 위해 바다에 나간 적이 있는데, 잠수를 통해 거북을 제대로 보려는 현지인들, 꼬마들이 보호 장구를 하지 않은 채 블랙 락이라는 바위에서 끊임없이 다이빙하는 것을 보고 공포를 느꼈어요 가족들도 구명 조끼 없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상황이어서 (구명 조끼를 입고 안전한 해안 쪽에 머물러 있던) 저로서는 특히 공포스러웠던 것 같아요 멕시코 칸쿤에서는 거대 동굴 안에서 수영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역시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서핑 관련해서도 기억이 있어서, 시몽 일당의 행위가 자세히 묘사된 앞부분을 읽으며 특히 겁이 났습니다 양양 인구해변이 서핑의 성지로 발돋움하던 무렵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시몽과는 달리 (구명조끼를 장착한 채) 얕은 해안 근처에서 스탠드업 패들보드를 빌려 타고 놀았는데도 망망대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작은 파도가 몰려올 때 보드가 꿀렁하는 자극적 재미도 즐겼지만, 보드가 먼 바다로 하염없이 흘러가 버리고 노젓기에 실패해 해안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이날은 가족 중 한 명이 핸드폰을 바다에 빠뜨리는 불상사로 마무리했는데, 깊은 물 속으로 빠져버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특히 긴장을 조성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 시몽이 만나는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제약을 벗어던지는 자유와 압도적인 경이로움으로 표현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행여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나 싶어 조마조마하며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연뮤 클럽이 다시 돌아와 너무 반가워요!! 작년 이맘때쯤 함께 ‘붉은 낙엽’ 읽고 관극한 생각도 나고, 이번 살수선도 작품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해 기대가 큽니다!
소형 트럭이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음은 쉽게 밝혀냈다. 추정 속도가 시속 92킬로미터이니, 이 구간의 허용 속도를 22킬로미터나 초과한 것이었다.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p. 27
저도 첫 문장부터 인상깊고 묵직하게 읽기 시작하였어요. 가볍지 않은 내용이라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28쪽까지 읽으니 이후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져서 먼저 조금더 읽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과속과 핸들, 브레이크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ㅎㅎ
초심자의 경우 더더욱, 특히 과속은 금물입니다 💚 안전 운전 하실 수 있도록 제가 개인 교습 해드릴게요 🧡
ㅋㅋㅋ 개인 교습, 흰구름 님이 제일 두려워 하실 것 같습니다.
@수북강녕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도 31일 정동마니아 할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집 청소를 하다 예전의 정동 극장 티켓을 찾았어요. <더 드레서> 관람 티켓이요. 이걸 당일에 가져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여름길 님도 계신데 @숲속길 님도 계시니 '길' 유니버스가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헤헿 @김새섬 님이 티켓 증빙 가져오시니 정동 마니아 할인 가능입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스무살이 된 녀석이 운전면허 따겠다고 열심이고 스무살의 자유는 술이 증명해준다는듯이 밤을 세우고 싶다고 하는 아들 녀석이랑 싸운 출근길 아침 책의 앞부분이 제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하네요.
스무 살의 자유는 술과 밤샘과 방탕이 증명해주는 거죠, 라고 쓰고 있는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는 말씀에 ㅠㅠ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네요... 여러 등장인물 중 '아들맘'의 비중도 상당해서, 감정이입하며 읽으실 것 같다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감상 많이 나눠 주세요 :)
그러게요.. 저도 막 술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아들을 둔 엄마로서.. 덜컥하네요;;
시몽 랭브르의 심장, 그 인간의 심장이 기계 장치에서 벗어나 버린 순간,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안다고 나설 수 없으리라.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8
앞의 폴 뉴먼 영화에서 나온 대사 My heart is full!도 실은 정확히 번역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구나'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나라면 '내 마음이 벅차오르는 구나'라고 번역할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리고 대부분 영미권 (그리고 프랑스어도)에서는 heart를 정신, 감정, 영혼이 있는 부위로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으니.. 지금 다른 독서모임에서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에 대해 읽고 있는데 physicalist인 나로서는 정신도 육체의 한 기능, 한 일면이라고 생각하는 한편인데 여전히 정신세계에 대한 논란이 활발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심장(우리 마음)에 대해 정확히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했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나온 논의로 과연 우리는 진정 육체가 없는 정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하고 지금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문장이 참 와닿네요.
아무 데나, 별거 아닌 일로도 끈질기게 그들의 프랑스어 사이에 박아 넣는 영어. 자기들이 팝송이나 미국 드라마 속에 들어가 있기라도 한 양, 자기들이 이방의 영웅이기라도 한 양. <삶>과 <사랑>같이 어마어마한 단어들을 <라이프>와 <러브>로 만들어 공기처럼 가볍게 떠오르게 하는 영어. 그리고 수줍은 구석도 있는 영어.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15
우리 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나 좀 힙한 디자인이나 IT업종의 사람들이 이런 경향이 많죠.. (오죽하면 보그체나 파주사투리라고 할 정도;;) 프랑스어도 옛날 사람들은 순수한 프랑스어를 고수하고자 하는 고집이 있지만 젊은 세대는 영어를 엄청 섞어 쓰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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