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 1) 나에겐 슬픈 실험이라기보다는 사고실험의 과정입니다. 한강작가님의 작품은 함께 읽고 나눌때 더 깊게 이해되었습니다. 나의 속도로 읽고 나누면서 다른분들의 이야기로 더해보는 시간을 만들어가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곰곰이
내로
@곰곰이 환영합니다! 이미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나눠보셨군요. 의미있는 시간이 되신 것 같아 이번 모임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쌓여서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연말되세요 :)

곰곰이
내로님의 다정함, 감사합니다. '여수의 사랑'(1995) 들어가기 전에 한강 작가님의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눈 한송이가 녹는동안'(2015)을 읽습니다.
그 첫문장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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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온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나는 열흘 가까이 떨어지지 않는 밭은기침을 하며 책상 앞에 웅크려 앉아 있던 참이었다. 외풍이 센 방이어서, 유리창에 올록볼록한 비닐을 붙였고 커튼도 쳤지만 코끝이 찼다. 보일러 온도를 더 높여야 하나. 의자에 걸쳐둔 솜조끼를 스웨터 위에 겹쳐 입고 일어서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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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삶과 죽음을 어떻게 풀어낼지... 한강 작품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내로
@니콜 환영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시군요. 그렇다면 조금은 불쾌하거나 어렵고 무거울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강 작가님이 바라시는 바로 그 상태에 계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ㅎㅎ (물론 한 강 작가님이 우리가 늘 그런 상태로 머물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함께 작품에 담긴 삶과 죽음의 시선을 가늠해봐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반달
한강 작가님이 20대에 여수로 직접 여행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작가에게 여수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로
@반달 님, 환영합니다! 오, 영상이 있었군요(아래 링크). 정말 풋풋하셨군요ㅎㅎ 저는 정말 놀랐던 게, 23~24살에 걸쳐서 <여수의 사랑>에 담긴 단편 6편을 모두 썼다고 해요. 어떻게 23년의 경험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XBzGRTr6ZEs
지혜
@내로 님의 이 실험에 대한 소개글에 이끌려 신청합니다. "희망찬 다짐 대신", "가장 깊은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와닿네요. 이 실험을 신년 초에 한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내로
@지혜 님 환영합니다^^ 이 슬픈 실험 소개글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니.. 보통 분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년 초에 이 실험을 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매력적인 실험이 된 것 같아요. 그 말씀을 들으니 '초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저희는 이 모임을, 그러니까 26년 1월 후반부를 꽉 채울 이 달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정말 궁금하고, 함께 끝까지 나아가 그 끝에 남을 감각, 또는 생각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곧 뵙겠습니다.

베오
한강님 작품은 '슬픈' 실험일지언정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북커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처음 읽은 채식주의자는 기괴(grotesque)하다는 인상이 강했고, 솔직히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라는 시집으로 다시 만난 한강 작가님은, 폭력의 상처와 그 슬픔을 마치 유전적 불치병처럼 지닌 채 살아가는, 그럼에도 계속 살아 가야 한다는 구원의 서사를 가늘지만 끈질기게 노래하는 예술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희랍어 시간은 산문의 아름다움 덕분에 그 시집의 연작시를 읽는 듯한 감각으로 읽혔습니다. 이후 몇 편의 중단편과 에세이를 더 읽었고, 소년이 온다는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앞으로도 못 읽을 것 같지만, 다른 소설들은 기회가 되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읽을 기회가 생겨 무척 반갑네요. 기대를 품고 같이 읽을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알라딘 heeskinner
내로
@베오 님 환영합니다! 한강 작가님과의 역사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아직 접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단편을 읽으며 틈내어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먼저, 이어 채식주의자까지 접하면서 더 이상 한강 작가님과 만날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희랍어 시간으로 재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보다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소갯말에 있는 "Lego, ergo beor."가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로
안녕하세요, 모임지기 내로입니다. ‘첫 질문'에 다들 밀도 높은 인사와 답글을 남겨주셔서.. 하나하나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진제 @마키아벨리1 @작가와책읽기 @말티 @김준1 @곰곰이 @니콜 @반달 @지혜 @글빛 @베오
혹시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보셨나요? 저만 읽기엔 아까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더라고요.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글에 '저도 그래요', '반갑습니다' 하고 슬쩍 인사를 건네보시 는 건 어떨까요? 서로의 온도를 미리 맞춰두면, 10일에 만날 때 훨씬 덜 춥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솔직히.. 여러분의 글을 읽다 보니 일정을 1월 초로 당겨서 얼른 모임을 시작해버리고 싶다!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1월 초는 새해라 마음이 많이 들뜨고 부산스럽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가장 잠잠한 상태에서 이 책을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때까지 이 귀한 ‘초심’들, 잘 간직하고 있어주세요^^ 곧 뵙겠습니다.

베오
@내로 님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유명한 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Lego Ergo Sum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변형을 했고
그 후 제 아이디인 Beo가 행복하게 하다 복을 내리다는 beatus 에서 왔 기에
Lego, ergo beatus sum.
→ “나는 읽는다, 그러므로 행복하다.”
(beatus는 beo의 파생형 형용사로 ‘행복한’이라는 뜻. 가장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문장)
을 거쳐서 가장 간략하면서 제 아이디가 그대로 드러나는 다음 단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Lego, ergo beor.
→ “나는 읽는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해진다.”
(beor는 beo의 수동태 현재형으로 “나는 행복하게 된다/복되게 된다.)
저는 라틴어에 문외한이고 그저 마담보바리의 샤를 보바리(남편)이 어렸을때 학교에서 ridiculus sum (나는 멍청합니다) 문장을 20번 쓰라는 벌칙을 받는 장면을 읽다가 sum에서 위의 cogito ergo sum 을 떠올렸고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되었답니다. ㅎㅎㅎ
내로
멋지군요! 읽는 행위 자체에 신성이 부여된 것 같기도 하면서, 반대로 인간적인 소박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저는 beor를 과감히 beer로 해석하여 '나는 읽는다, 고로 맥주를 마신다(취한다)"로 이해했더랍니다...^^
진제
@베오 안녕하세요 베오님! 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는데요. 한강 작가님의 문장으로 생생히 전달되는 고통과 폭력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이 주는 지독한 슬픔이 가슴을 후벼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여운으로는 (베오님 말씀처럼) 그 가운데 기어이 희망을, 지극한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신기했었어요. 베오님께서 읽으신 한강 작가님의 작품 개괄(?)을 남겨주셔서 저도 더 찾아 읽고 싶어졌습니다. 같이 여수의 사랑 읽을 날이 기대됩니다!

베오
@진제 님 안녕하세요.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괘차하신 것이겠지요. 부디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이북으로 구해놓았는데 차마 못 읽고 있는 작품이에요.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있답니다.
시지프 신화를 언급해주셔서 생각해보았는데요. 저는 카뮈와 한강이 어느정도 닮은 점이 있는 작가라고 느낍니다. 두 사람 모두 세계를 부조리와 폭력으로 점철된,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로 바라본다는 점에서요. 다만 전자는 그것을 광기나 철학적 인식으로, 후자는 슬픔으로 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 다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카뮈가 순응처럼 보이는 저항을 말한다면, 한강은 슬픔을 감싸안은 채 구원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카뮈의 저항은 엄청난 의지를 요구하는 고독하고 영웅적인 개인의 행위라면. 한강의 슬픔은 부서진 연약한 존재들의 연대로 작을지언정 단단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시지프스가 더 와 닿았는데 지금은 다음 한강의 시에서 해골이 건네는 마지막 말에서 더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진제
넵 베오님! 병원에는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입원했던 거라, 거기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런 경험을 했던 걸까, 기이한 수준이에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D
베오님께서 간략히 써주신 글을 보니 감탄이 나오네요. 특히 '고독하고 영웅적인 개인의 행위'라고 말씀해주신 게 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카뮈의 지론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왠지 모르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카뮈가 바라는 삶의 태도가 '부조리하다는 걸 기억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과 '할 수 있는 순간마다 행복을 느끼고 추구해라'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매일 산꼭대기까지 돌을 굴리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세상은 단 한순간도 내 신념에 맞게 구성된 적이 없다'는 부조리함을 인식하지 않는 삶이 낫지 않나. 우리 모두는 영웅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참 고통스러운, 그런데 그게 맞는 건지 사실도 확신도 서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섬세한 묘사로 폭력과 고통 앞에 우리 인간은 어쩜 그리도 연약한지 눈살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기어코 끈질기게 살아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을 보여주시는 거 같았거든요. 마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정심이 보여주었던 것처럼요.
해부 극장 시를 보니 저 시집도 언젠가는 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어쩜 이리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건지, 감동적인 시입니다.
dulce06
노밸문학상을 수상하신 한강 작 가의 첫 소설집이라 더 관심이 가네요. 슬픔보단 희망이, 고통과 연민보단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차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에 대한 반전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네요. 여수의 사랑이 내포하는 상징적인 요소들과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메세지는 과연 무엇일지, 나름 기대됩니다.
ID: soymuybuena
내로
@dulce06 님, 환영합니다! 저도 몰랐지만 한강 작가님은 단순히 주제의식을 너머 반전 등 이야기적 재미를 잘 활용하시는 꾼 중의 꾼이셨어요. 말씀하신 기대가 충족되셨으면 좋겠네요. 모임 때 꼭 뵙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