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아아악! 하며 계단을 함께 헛디딘 느낌이 들어요. 어찌 이런 묘사가 가능하신지 관찰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다리만 털석하는게 아니라 몸 전체가 크게 움찔하지 않나요? ㅎㅎ 저는 군대에서 이런 경험을 많이 했었어요. 움찔하고는 옆에 누가 본 사람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보곤 했었던 것 같네요.
@내로 저는 다리만 움찔하고 깨는 경우도 많아요. 가끔은 정말, 딱 계단을 헛딛는 그 느낌이에요.딛혀야 할 계단이 몇 밀리미터 어긋나서 발바닥이 허공을 휘젓거리며 내려오는 추락. 그 나노 세컨드 같은 찰나에 심장이 고무줄에 매달린 것처럼 쑥! 하고 내려갔다가 튀어 오르는 느낌이요. ㅎㅎ
계단을 헛딛는 느낌이라고 하시니 불현듯 그 장면이 제 기억에서 재생되는 기분이 드네요. 휴,
mission 2. 여수, 상처인가요 구원인가요? "내가 뿌리친 자흔의 손, 그녀가 가지런히 허공에 펼쳐 보이곤 했던 열 손가락들이 내 수많은 혈관들을 비집고 살갗 속으로, 숭숭 구멍 뚫린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수의 사랑에서 평론가들이 자흔을 정선의 분신이나 쌍둥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를 뒷받침 하는 표현들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자흔이 죽은 동생 미선의 귀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자매라고 사람들이 말한 점. 동생과 비슷한 나이. 이름 자체는 난자한 흔적이라는 음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웃지 않는 얼굴로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자흔. 하늘에서 내리는 진눈깨비나 적요한 햇빛속의 먼지처럼 세상을 부영하면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온 자흔은 미선의 영혼같은 존재라고 느껴져요. 5살이 되어서야 (어쩌면 이때가 미선이 죽었을 나이였을지도 모를 그 나이) 너무 아파요가 인생의 첫마디였을 그 아이. 그래서 여수의 진제 마을의 갯벌의 흙이 혈관속으로 스며들어 찬란하게 소멸하기를 갈망하는 자흔. 정선이 밀쳐냈던 자흔의 손은 결국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던 미선의 손이었어요. 그리고 그 손들이 이제 정선의 혈관으로 살갗으로 뼛속으로 스며들어 일체가 되어버렸어요. 진눈깨비가 따뜻한 여수의 바닷물에 녹아드는 것 처럼요. mission 3. 정선의 '그 후'를 상상해 봅니다 자흔은 흙으로 돌아가 찬란한 소멸을 가질 거에요. 죄책감의 트라우마에 미선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정선은 이번 여수 여행으로 아마 그게 가능해질거에요. 구원이에요. 하지만 한강의 구원은 강려크(?)한 희망의 빗줄기가 비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에요. 여전히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치는 바람이 여수에 내린 나를 맞는 첫상대이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이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혀요. 그래도 구원인 것은 자흔의 웃음소리과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기때문이에요. 정선은 서울의 그 자취방으로 돌아올거에요. 노란 칫솔과 늘어날 테이프를 지닌 채로 아마도 매일 청소는 하겠지만 또 때때로 손을 강박적으로 씻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요한 햇빛 속의 먼지를 아름답게 여기며 같이 공존하는 삶을 살거에요.
와.. 저는 자흔을 분신이나 쌍둥이로도.. 베오님이 해석한 미선의 귀환으로도 보지 않았네요. @GoHo 님이 앞에서 진눈깨비를 "안식을 찾아 흩날리는 슬픔 같다"고 해석해주셨는데, 베오님의 해석과 함께 진눈깨비는 정말 잃어버린 동생 미선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베오님의 결말처럼 담담하며 단단하게 살아갈 정선을 응원하게 됩니다.
1. 뒤돌아보았을 떄 미선의 조막손과 조그만 머리통은 거품을 뿜으며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2. 가지말아요라고 말한 것 처럼 자신의 결벽증을 깨고 애정을 표현한 대상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느껴 따뜻하 사랑이 있는 곳이라 여겨 집니다. 3. 자흔을 만나지 못하지만 자신의 고향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롭고 지칠 떄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여수를 만들면서 세월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여자는 무척 지친 기색이었다. 오랫동안 여행하다가 돌아온 사람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피로와 너그러움이 그녀의 얼굴에 저녁 역광 같은 따뜻한 그늘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어딘가 친숙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외투째로 두들겨 빨아주고 싶을 만큼 단정치 못한 그 여자에게 막연한 호감을 느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19~20, 한강 지음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젊은 그녀에게서 미래를 지워내버린 것인지, 아무런 희망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자흔이 지쳤다는 것, 이십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때때로 자흔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그런 자흔을 보면서 나는 종종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지곤 했던 것이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33~34, 한강 지음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p9 '녹슨 철선'들은 왜 '노후한 휴식'이 되지 못했을까...
58p에 같은 의미의 문장이 나오네요. "여수, 그 앞바다는 아직도 검푸른 파도를 세우며 선착장의 철선들을 향해 밀물져 오르고 있을 것인가." 뒤에 가족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철선은 잃은 동생을 상징하는 걸까요?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25, 한강 지음
mission1. 내 몸이 먼저 반응한 문장 기쁘고 슬픈 순간에는 왜 그 순간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 들까요. 모든건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매번 감정과 감각에 속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기쁠 때도 많지만, 그 기쁨이 실망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반면 슬픔이 영원할거라는 착각 때문에 더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말티 앗! 저도 이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한 때가 지나면 또 새로운 한 때가 찾아올테니...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어보이는 때가 와도, 매순간을 버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시간을 반추할 때, '그 땐 참 어리석었던 거 같아' 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실제 몸의 통증을 삶의 진실로서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하게 되는 문장이에요. 한강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실제로 작가님은 많이 아파보신 분 같아요. 꿈을 소설의 소재로 자주 활용하시는 것을 보면, 꿈을 많이 꾸시는지 숙면도 못취하시고... 아무렴 이런 글을 써낸다는게 보통 일은 아닐 거예요. 작가님의 표현을 빌린다면, '온갖 욕망과 고통과 좌절이 뒤범벅되어 있던 시궁창'을 끊임없이 상상하다 보면 아플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그런 감각이 가장 생생했던 시기가 사춘기 시기가 아닐까 해요. 결국 망각될 텐데, 영원할 것처럼 기뻐하거나 슬퍼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죠. 내가 도대체 왜 그랬지? 하는 순간의 연속들인 시기였지만 이렇게 소중하게 추억이 될 경험이라면 오춘기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작가님께서는 많이 아파하신 것 같아요... 신판 작가의 말에 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출처: https://www.yes24.com/product/goods/6396011 신판 작가의 말 중에서 문장에 대한 고심보다 어렵게 느껴진 것은 기억들이었다. 한 편씩 읽어가는 동안 그 시절의 공기, 내 몸과 마음의 상태 같은 것들이 차츰 생생하게, 종내에는 숨 막히도록 강렬하게 가까워오는 것을 느꼈다. 이를테면 「어둠의 사육제」는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교정을 보는 것인데도 힘에 부쳐 여러 번 쉬었다. 이 소설을 쓴 것은 기록적으로 무더웠던 1994년 여름이었는데, 석 달 가까이 ‘명환’을 죽이지 않아보려고 소설을 붙들고 있었다. 마지막 밤의 ‘영진’처럼 때로 몸이 떨리고 뜨거운 눈물이 솟았던 캄캄한 시간들이 아직 원체험처럼 남아 있다. 그 밖의 다른 소설들을 읽을 때에도, 아무도 모르게 그 속에 숨겨둔 사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다시 떠올랐다. 한 사람―이 소설들을 쓰던 나―에게 이상한 방식으로 뒤늦은 인사를 건네는 기분이었다. 낯설고도 친숙한 그 사람, 가까스로 그렇게 태어나고 있던 그 사람과, 불가능한 굳은 악수를 나누고 싶었다.
아... 몸으로 쓰셨군요. 그래서 작가님이 쓰신 책 <빛과 실>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중략) 그런데 ‘나’는 원래 누구였던가? 예전에 나였던 사람은 이미 이 소설로 인해 변형되었으므로 이제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저도 한강 작가님의 글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그리고 지금 여수의 사랑까지 세 편을 읽어보았는데 매번 우울하고 슬픈 느낌을 받았어요...ㅎㅎ 오춘기가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은 조금 신선하네요! 사실 저는 다시는 사춘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동시에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순간을 다 끌어안고 가고 싶어요!
미래의 측면에서 '오춘기의 유용성'을 고려했지만 오춘기가 정말 다시 온다면.. 싫네요. 사춘기 시절의 제가 정말 안타까워요. 그런데 그때의 모습만큼 '나 자신'을 순수하게 보여준 때가 없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충동적이었죠. 여러 장면들이 기억나는데, 몇몇 장면은 정말로 픽션이었다고 믿고 싶네요. 그런데 말티님 말씀대로.. 모든 순간을 끌어안기로.. 모든 순간이 나였다!
때늦은 두꺼운 외투를 걸친 여자의 얼굴에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손수건도 없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손바닥으로 그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닦는 동작에 너무도 몰입해 있어서 이를테면 마치 이목구비까지, 더 나아가 고유한 존재까지도 손바닥으로 닦아내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흡사 들지 않는 칼날로 단단한 과일의 내피를 도려내려는 것 같은 집요한 손놀림이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18, 한강 지음
그믐에서 함께 책 읽는 것은 <여수의 사랑>이 처음입니다. 아직 그믐의 화면에 적응이 안된 것 같은데, 차차 적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소설 속 '과로하시는군요?'(p.24)란 문장에 뜨끔했습니다 ㅎㅎ 새해엔 과로하지 않기로 했는데... 과로하지 말고 건강한 26년이 되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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