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다음날 오전 나는 괜찮다는 자흔을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엑스선 촬영을 했다. 촬영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복도 철제 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때, 그녀는 줄곧 내리깔고 있던 눈길을 들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자흔의 눈길에는 온갖 미움과 질책과 원망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아득하게 배어 있어서, 어깨를 맞대고 있었지만 마치 불러도 들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떨어져 앉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당황한 내가 머뭇거리며 지폐를 받아 들자 그녀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내던졌다. 그녀는 "아아" 하고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을 빛냈다. 마치 방금까지 꾸어온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물 좀 주세요. 목말라요.
mission1. 내 몸이 먼저 반응한 문장 자흔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잠시 머물 곳이 생긴 것만으로 눈을 빛내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던, 괴로운 이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하던,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애타게 갈망하던 자흔. 그녀는 얼마나 닳아버렸길래, 미움조차 없이 그저 쓸쓸함만 남은 모습이 되었을까요. 안 그래도 마음이 아팠는데, 정선이 여수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흔을 지독히도 자신에게서 배척하는 대목에서는 누가 숨구멍을 탁 막기라도 한 것 마냥 순간 호흡을 멈췄습니다. 처음엔 워낙 감정적으로 강렬한 장면이라 그랬다고 생각했는데요. 돌이켜보니, 어렴풋이 비슷한 기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기다리면 상황이 더 나아지겠지' 같은 기대가 매일처럼 좌절되던 기억이 말이에요. 한때 슬프고, 어떨 때는 우울하고, 가끔은 분노하는 과정을 거치다, 어느 새부터 그와 관련해 아무 기대 없이 그저 공허함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별 거 아닌 일에 느꼈던 그런 흐릿한 기억이 겹쳐지면서, '미래가 없는 것' 같은 자흔에게 감정 이입했던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지면 참 좋겠지만 사는게 그렇지 않다보니, 결국 체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인생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가 되면 자흔같은 태도로 살게 되는듯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체념'하니 괴테가 떠오르네요. 괴테의 빌헬름 시리즈를 읽고 있는데, 괴테는 '체념'의 순간이 와야한다고 말했어요. 물론, 책이 청년을 주인공으로 다루다 보니 의사나 법률가, 장사꾼 등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 즉 '직업적인 관점'에서 체념을 말했죠. 다른 관점에서는, 끝까지 체념하지 않는 태도도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사람들이 역사에는 있어왔잖아요. 스토아 학파에서는 고귀한 인격? 또는 아름다움? (정확히 어떤 표현인지는 기억이..)을 유지할 수 없다면 자살도 하나의 선택지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밖의 종교인이나 사무라이.. 등도 떠오르네요.
자흔은 그날 이후 몇 차례 나에게 말을 붙여보려 했으나 잔인하게도 나는 아무 대답도 표정도 없이 뒷모습을 보여버리는 것으로 응수햇다. 그때마다 그녀는 꺼내려던 첫마디를 더듬으며 되삼켰고, 내 정수리 깊숙이 내리꽂히는 듯한 고통스러운 한숨을 몰아쉬곤 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mission 2. 여수, 상처인가요 구원인가요? 정선에게 여수는 본디 고통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콜레라 얘기 중 기침 장면), 선착장에서 겪은 아버지의 동반자살 시도, 동생의 손을 뿌리친 자신의 더러운 손바닥, 게워낸 토사물과 찝찔한 여수 바닷물의 기억이 정선의 결벽을 형성합니다. 여수는 그녀에게 ‘거짓말 같은 젊음’, ‘스스로 기쁨을 저버렸던 저 모든 나날’을 떠올리게 하는, 여전히 끔찍한 상처의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에 어떻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결될 수 있는지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여수는 사랑보다는 절망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꾸 읽다 보니, 여수 뒤에는 ‘사랑’이 붙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정선은 자흔과 함께 다닐 때면 행여 차에 치이지는 않을지,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지 한시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흔은 정선이 구토를 하고 힘들어할 때, 마치 따뜻한 어머니의 손과 품처럼 그녀를 감싸줍니다. 한때 자신을 그토록 배척했던 사람임에도, 정선의 트라우마가 극에 달했을 때 그녀를 진정시켜 줍니다. 둘은 서로의 아픔을 완전히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각자가 지닌 상처를 애틋하게 여겼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 관계를 떠올리며 ‘동병상련’이라는 단어가 스쳤습니다.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쓸쓸함을 견디며 마음 붙일 데 없이 떠돌아 살아온 자흔, 만성적인 신경통과 위경련에 시달리고 모든 사물에서 썩은 냄새를 맡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질린 삶을 살아온 정선. 그럼에도 자흔은 괴로워하는 정선을 신경 쓰고, 정선은 자신 때문에 갈수록 시들어가는 자흔을 보며 마음 아파합니다. 2. 이런 공감, 내지는 연민이 정선을 움직이게 합니다. 사실 정선과 자흔은 여러 면에서 물과 기름처럼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자흔은 여수에 마지막 희망을 걸지만, 정선은 여수를 혐오합니다. 자취 초반 자흔은 정선을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행동들을 반복하고, 정선은 자흔에게서 여수가 겹쳐 보이자 그녀를 자신에게서 철저히 격리시키려 합니다. ‘더럽다’는 말까지 내뱉으며, 자흔을 볼 때마다 더 심해지는 결벽증을 차마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선은 떠나간 자흔을 찾으러 떠납니다. 자흔의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녀가 죽지 않기를, 떠나지 않기를,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 바다의 찝질한 냄새를 상상만 해도 토해내는 사람이, 제발로 죽음으로 덧칠된 장소를 향해 나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가기 싫은데.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데. 그럼에도 제발로 고통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곳이기에, 여수는 절실한 사랑이 있는 장소가 아닐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혹시 A River Runs Through It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낚시 영화'로도 유명한데요, 저는 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명대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우리는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
와, 여수 앞바다처럼 아주 깊이 감상해주셨군요. 사랑이 붙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 있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라는 의견에 감탄의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그럴 수 있겠어요. 물도 기름을, 기름도 물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가장 배타적이지만 반대로 지켜주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영화도 꼭 보고싶네요. 그런데 진제님... 어쩜 이 단편을 이토록 세심하게 들여다보셨는지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외로운 표정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서 손쉽게 발견되는 표정이기도 했다. 열차를 기다리며 승강장에 서 있는 얼굴들, 늦은 밤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차창 밖의 휘황한 네온사인을 바라다보는 눈빛들, 출근 무렵 살갗이 터질 듯한 지하철에 올라 말없이 몸 부대끼는 사람들의 메마른 광대뼈 같은 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기쁠 흔(欣) 자예요" 라고 뇌까리는 자흔의 목소리는 마치 그 모든 사람들의 외로움을 빻아다가 반죽해놓은 흰 떡살같이 고즈넉했다.' p14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다는 한강 작가의 '흰'을 여기서도 만나네요.. 왠지 저들 속에 헛헛하게 삶을 짊어지고 있는 제 모습도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자흔의 마지막 독백을 들으며 나는 어렴풋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자흔이 지쳤다는 것. 이십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때때로 자흔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고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그런 자흔을 보면서 나는 종종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지곤 했던 것이었다. p34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고호님 문장 수집이 저와 괘를 같이 하네요. 또 좀 빌리겠습니다. ^^;; 정선의 눈으로 보았을 때 자흔은 미래가 없는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버려져 전국을 떠돌며 살아왔기에, 언젠가 삶이 나아질 것이라거나 진짜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기대를 놓아버린 상태 즉 희망의 부재의 상황에서, 현실의 고단함에도, 개자식들 같은 욕설 조차 부드러운 노래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 견고한 평화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흔은 고통을 지워야 할 오염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일부로 수용합니다. 자전거 사고로 온몸에 멍이 들고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괜찮다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견뎌냅니다. 인생의 첫마디가 “너무 아파요”였던 그 아이가, 그 이후로 얼마나 일상적으로 아픔을 삼켜야 했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려 옵니다. 자흔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은 여수의 갯벌에서 근원적인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녀에게 여수는 실제의 고향이라기보다, 먼지나 진눈깨비가 결국 내려앉아야 할 안식처에 가까운 장소일 것입니다.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는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실존적 결단이며, 이러한 소멸에 대한 긍정이 세상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자흔의 태도를 설명해 줍니다. 작품 속에서 자흔은 이십 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있다고 묘사됩니다. 그 정도의 세월이라면 고통은 이미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자흔은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 상처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통이 지나간 결말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으며, 그래서 그토록 쉽게 무구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망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 어찌보면 너무 슬픈일입니다. (물론 자흔은 더이상 슬프지 않겠습니다만)
와, '소멸에 대한 긍정'이라는 표현이, 아리지만 아름답게 느껴져요. 먼지와 진눈깨비도.. 마음편히 내려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니.. 감히 <여수의 사랑>이 조금씩 입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네요. 또, 베오님이 정리해 주신 '그녀는 고통이 지나간 결말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러니 무구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 정선이 생각했던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다시 한번 콕 박히네요. 왜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걸까? 베오님의 생각대로라면, 자흔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고통스러운 현재'는 이미 달관했기에(혹은 달관하기 위해) 결말 이후 즉, 미래를 이미 살고 있다.
< 유추에 도움을 얻기 위한 문장들 모음집> 1. 그 물고기들은 죽었다. 2.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3. 조금 큰 활엽수들은 의연하게, 줄기가 여린 묘목들과 갈대숲은 송두리째 제 몸을 고통에 바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뿌리를 움켜 안은 대지도 놀라운 힘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4.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외로운 표정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서 손쉽게 발견되는 표정이기도 했다. 5. '함께 있다' '지금 함께 있다'하고 주문처럼 외우면서 선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면 그 사람은 옆에 없었지요. 당연한 일인데도 그걸 견딜 수 없었어요. 6.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7. 개자식들, 개자식들, 개자식들...... ... 그러나 뜻밖에도 자흔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오히려 그 얼굴에는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8.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예요. 난 너무 기뻐서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9. 내 옆자리에 앉은 오십대 후반의 아낙은 이 객실 저 객실을 옮겨 다니며 두 좌석이 나란히 비어 있는 곳이 눈에 띄면 거기 눕는 식으로 하여 세 시간 넘게 잠을 잤다고 했다. 누운 곳마다 자리 주인들이 비켜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아무 데에서도 잠들 곳이 없어진 뒤에야 아낙은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아든 것이었다. 여태 난 편안히 잤어, 아가씨두 나 없는 새에 누워서 한숨 붙이지 그랬어?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mission 3. 정선의 '그 후'를 상상해 봅니다 <여기는 미션과 관련없는 잡설입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맨 뒷부분에 번역가분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번역 시 한 요청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 중 이런 내용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감히 한강 작가님의 생각의 깊이와 밀도를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작가님께서 깔아두신 복선이라거나, 암시 같은 단어와 문장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너무 과한 넘겨짚기일 가능성도 큽니다...) 예컨대, 첫 문장부터 시작되는 여수에 대한 표현은, 이후 정선이 자신의 상처를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데 거의 그대로 사용됩니다. 단어들(녹슨 철선, 상처 입은, 멍든 속살, 몸 섞으며, 찝찔한, 통곡하는, 가슴이 찢어지고 그것이 영원히 아물지 않는 것 같은, ...)도 정선의 트라우마나 자흔에 대한 묘사에 계속해서 사용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 자흔이 물고기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지 - 계속해서 손바닥, 손가락이 강조되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지 - 자흔의 행동을 묘사할 때 '어머니의' 무언가를 비유로 드는 이유는 무엇일지 - 자흔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라고 말하며 무엇을 희망했을지 등이 뒤에 나올 줄거리를 함축하여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부터 미션 내용입니다> 제가 생각할 땐 자흔과 정선이 함께 살 것만 같은데, 마냥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 속 구절을 들고와 하나씩 풀어가보려 합니다!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 1: 물 속에 섞이고 싶어하던 자흔은 물고기를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녀가 키우던 물고기는 주인의 부재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죽고 맙니다. 관점에 따라, 자흔은 이미 물 속에 가라앉아 죽었다는 비유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저 정선의 감정선을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2~3: 그러나 악천후의 고통 가운데서도 놀라운 힘으로 인내하는 묘목과 갈대숲처럼, 자흔과 정선이 각자의 상처들을 꾸역꾸역 견뎌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가져봅니다.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던 과거 자신들의 모습이 되돌아보니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거라며,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이었다며 말입니다. 4~8: 자흔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 자흔은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인 듯합니다. - 그 무언가는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있'고 싶어하고, 그러지 못해 그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 지금까지의 수많은 기대가 다 무너졌음에도, 자흔이 진작 생을 포기하지 않고, 여수의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고 어떻게든 쓸쓸함을 감내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모든 것에 지쳤'어도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을 수도 있습니다. - 너무도 지쳐 희망이라 할만한 것조차 닳아 없어진,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상태. 또 한편 그렇기에 순간의 충족감에 '어둠을 지워내버리'는 웃음을 지어낼 수도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설령 그것이 옆에서 뉴스를 보고 욕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견고한 평화'를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 자흔이 여수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던 이유도, 지금까지의 외로운 운명에서, '모든 곳이 낯선 곳'에서 벗어나서, 내가 머물어도 되는 '고향'의 모든 것과 함께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큼 함께하고 싶었기에 정선과 함께 살았던 것 아닐까요? - 다만, 정머리 없는 서울에 오래 못있을 것 같다고 했던 것처럼, 정선이 자신을 배척하는 모습에서 겨우내 고개 내민 기대가 꺾여버리고, 결국 여수로 가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9: 사실 오십대 아낙의 말이 저는 강한 암시가 아닌가 생각했는데요. 자흔은 여수로 가자마자 물에 몸을 던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자흔의 과거와 묘하게 겹쳐보이는 '오십대 후반의 아낙'의 말이 하나의 암시라면, 자흔은 지금까지 고향에서 그저 '편안히 잤'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정선을 떠나는 것이 자흔 '없는 새에 누워서 한숨 붙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 결론적으로, 저는 자흔이 아직 살아 그 동네 아무 여관에나 잠시 신세를 지며 지내고 있고, 정선이 그런 자흔을 겨우 찾아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엔 정선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흔에게 자신을 떠나지 말고 같이 지내자고 간청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흔은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은 경험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흔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함께 있을 누군가라고, 이 외롭고 지리하고 쓸쓸한 삶을 함께 해주고, 자신이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누군가라고 한다면, 자흔은 꼭 여수가 아닐지언정 다시 둘의 자취방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애초에 여수는 자흔의 고향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니까요. 말이야 쉽지, 정선이 그 지독한 결벽과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여수로 도착하자마자 만난 악천후나, 사라지지 않는 위경련과 신경통 같은 것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풀뿌리가 서로 힘을 합치든, 대지와 뿌리가 힘을 합치든, 둘이 서로를 놓지 않고 버텨내지 않을까요? 삶은 고통이고 미래는 없으나 두 부서진 존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했던 카뮈의 말처럼, 누구보다도 긴 절망을 겪은 둘 이기에, 그만큼 서로에게 얽매인 사랑의 뿌리로 기어코 삶을 긍정해내리라고 내심 기대해봅니다. (제발요...) (석 달 가까이 소설 속 인물을 죽이지 않으려고 하신 한강 작가님의 마음을 백만 분의 1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둘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네요...)
존 맥가헌의 좋은 글 정의에 따르면 한강 작가님의 글은 그야 말로 좋은 글의 정점이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모든 문장을 붙잡고 상징과 의미를 분석하고 싶어지는 그런 문장들입니다. 그래서 장편을 읽으면 힘이 드는 느낍입니다. 끊임없이 물길을 헤엄쳐 가야 하는 느낌이라서요. 여수의 사랑을 읽고 고민한 진제님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지는 글이네요. 저도 위에 짧은 글을 남기긴 했지만 문장별로 남기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자중했어야 했어요. 너무 비약적인가 싶은 자기검열도 있었고요. 글로 남긴다는 것이 그래서 힘드나봐요. 말을 나누는 독서모임이었다면 날것으로 토해내듯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쏟아져나왔을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에 둘이 서로 기대면서 같이 살아내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진제님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요. 진제 님은 좋은 사람인가 봅니다.
존 맥가헌 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저는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 꼭 그런 기분을 느꼈어요. 그런데 이번 한강 작가님의 <여수의 사랑>과 다음 편인 <어둠의 사육제>를 읽을 때, 다시 한번 느꼈네요. 2-3년 전에 같은 이유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중도 포기했던 것 같아요. 제 그릇에 비해 조금 과하게? 느껴젔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읽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이 작은 단편에도 진제님이 언급하신 포인트처럼 무수한 질문들이 있을텐데, 하, 뭔가 벽돌책은 아닌데 벌써부터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오십대 아낙의 말을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아마 작중에 표를 들이밀며 '나오세요 아줌마. 제자리에요.' 라고.. 무심히 외쳤을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그 아낙에게 자흔의 모습이 비쳤네요. 고즈넉한 웃음이나 피로함 같은 것들.. 자흔은 정말로 여수와 '함께' 죽음을 택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진제님은 새로운 결말에서 자흔을 살렸고, 정선과 '함께'하는 것으로 이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하셨네요. 저도 그 결말이 참 좋네요.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자흔이 '함께 있'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진제님의 주장에 하나의 근거를 보태고 싶네요. 44p에서 자흔이 말하죠.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라고. 이어서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괴롭지도 않아요..." 하고 말하죠. 그리고, 정선을 불가해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죠. 그때 정선의 잠든 혈관이 깨어나요. 뭔가 자흔의 고통이 비로소 '함께 있'음으로 인해 해소되는 대목 같았어요. 그러고보니 32p에서 자흔이 짝사랑했던 남자를 떠올리며 '함께 있다' '지금 함께 있다'고 주문까지 외울 정도면..ㅠㅠ
그리고,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요. 자흔이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라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때 속으로 '응? 그럼 계속 있지 그랬어. 왜 다시 서울로? 마치 구원자처럼...?" 하고 생각했어요. 자흔 마음 한켠에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어떤 희망을 품고 전국을 돌며..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가장 정없는 서울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던 걸까요?
@진제 님도 같은 의문을 제기하셨죠. 저는 이 부분을 일종의 소설적 장치로 보았어요. 소제 마을에 들르게 된 상황 자체가 버스 고장이라는 설정이니, 다른 곳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는 게 현실적인 차원의 대답일 테고요. 그런데도 여기저기 떠돌던 자흔이 굳이 책임감에 묶여 떠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은 자연히 들죠. 그렇다고 자흔이 그냥 머물러 버리면 소설은 거기서 끝나버리거나 여수 밤바다 같은 서정적인 노래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겠지요. 그렇다보니 독자들은 작가가 쥐어주지 않은 이유를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우리처럼요. 소설에 뚜렷한 복선이 없으니까, 독자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흩어져 있는 상징들을 이어붙여 보게 되는 거겠죠. 저는 자흔이 그때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다”는 걸 깨달았지만, 아직은 그 몸을 벗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거죠. 그래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몸을 입고 있어야겠다고, 서울 같은 곳에서 마지막의 힘을 소진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전거 사고가 그 시간을 앞당겼을 수도 있고요. 이쯤 되면 자흔은 언제 자신의 별 B612로 돌아가야 하는 지를 아는 어린 왕자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다만 때를 기다리다 떠나는 기이한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복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흔의 모든 행동이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순간, 그는 이해 가능한 인간이 되어버리니까요. 한강 작가님은 끝까지 자흔을 우리가 완전히 따라갈 수 없는 저 너머의 어떤 존재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오.. 정말 그래요. 우리는 그녀의 '때'를 결코 알 수 없지요. 우리가 소설의 여러 복선을 통해 그녀의 서울행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여수행도 예상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별안간 주인공에게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다음 날 휙 하고 떠나버리죠. 마치 작가님이 여러분 자흔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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