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2. 여수, 상처인가요 구원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여수는 따뜻한 사랑이 기다리는 장소라기보다는 정선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마음의 방향/행선지에 가깝다고 봅니다.
정선은 소설 내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 정선이 굳이 여수로 향한다는 것은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움직이기로 했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수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확인하러 가는 장소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여수의 사랑’ 역시 안전하거나 다정한 사랑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고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상처에 가깝겠지만, 구원에 살포시 맞닿아있는 상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JIN

베오
도망치지 않고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태도
넘 멋진 표현이네요 ♥️
내로
문장 수집해주신 내용의 해석도 그렇고, 주인공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렇게 작품을 해석하니 또 새롭게 보이네요. 아프다는 사실을 확인하러 가는 장소에 가깝다는 표현이, 안타깝지만 수긍하게 돼요. 결벽으로 모든 것을 가리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과 남을 힘들게 할 뿐이고.. 무엇보다 욕지기는 끝까지 남아 고통을 주었죠. 토해낼 것도 없을텐데, 뭔가를 토해내야 하는 정선의 입장에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마 정선이 여수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여수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너무 늦게왔다고 통곡하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JIN
mission 3. 정선의 ‘그 후’를 상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는 정선의 삶이 그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수에 간다고 해서 곧바로 무언가가 해결되거나,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정선이 여수에 잠시동안은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습니다. 그 곳에서 자흔을 다시 만났을 수도 있고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만남 여부가 정선의 미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정선에게 중요한 것은 여수에서 누군가를 '다시 만났는지'가 아니라 더 이상 예전처럼 '완전히 모른 척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선이 머지않아 다시 서울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피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예전보다 조금 더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 왔을 것이라는 것. 이것 하나는 명확히 제가 그린 정선의 미래에 보입니다.
정선의 미래가 마냥 동화처럼 밝다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적어도 이 단편의 끝에서 정선은 아프지 않기 위해 살아가던 방식에서,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 도달한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정도의 변화가 가장 현실적인 ‘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로
@JIN 님의 시각화 능력이,, 대단히 날카롭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ㅎㅎ 정말 그럴 것 같아서요. 반대로 '완전히 모를 척할 수는 없게 되었다.'라는 표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넘겨짚어 말하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는 신비함이 드러나네요. 저런 표현들 때문에 제가 하루키를 놓치 못하나 봅니다. 표현하신 말들 대부분이 인상 깊지만, '자신이 피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예전보다 조금 더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 왔을 것.' 이라는 문장이 콕 와닿네요. 오늘도 산책하면서 회피나 후회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봐서 그런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마키아벨리1
여수의 사랑을 지나 질주, 어둠의 사육제를 읽는 중입니다. 소재가 슬픈 것은 맞지만, 주인공들이 그리 나약하지 않아 사는게 힘들지언정 슬프다는 느낌은 많이 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폭력의 강도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점입니다.
내로
아! 질주가 2 번째로 나온 여수의 사랑 <초판>을 읽고 계시군요. 개정판에서는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첨부 사진 참고) 괜찮으시면 아래 일정대로 함께 읽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함께 읽기 일정
한강 작가가 배치한 호흡 그대로, 3~5일에 단편 한 편씩 깊게 읽습니다.
- 1.10(토)~1.13(화): 여수의 사랑
- 1.14(수)~1.18(일): 어둠의 사육제
- 1.19(월)~1.22(목): 야간열차
- 1.23(금)~1.25(일): 질주
- 1.26(월)~1.28(수): 진달래 능선
- 1.29(목)~1.31(토): 붉은 닻 & 마무리

루크
mission 1.
"...... 그 책의 첫 구절은 아직도 기억나요. 사랑이여, 그대는 내 영혼이 애타게 갈망하는 모든 것...... " p 32.
이 문장을 통해 제목 '여수의 사랑'에서의 '사랑'이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흔이 마음에 품던 대학생이 사실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황에서 등장하는데, 자흔의 대학생을 향한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드러내어 줍니다. 이와 더불어 자흔은 여수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영혼이 애타게 갈망하는 듯한 여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보여줍니다.
"난 그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당의 흙이 내 상처 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 오게 하고 싶었어요." p. 57
위 문장처럼 자흔은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위 문장들은 제게 있어서, 나는 영혼이 갈망하는 정도의 사랑을 했던 적이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무의식 속의 사랑 속의 외로움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ission 2.
정선은 결벽증 증상이 심해져 자흔을 떠나보내게 된 후, 홀로 남은 집에서 자흔이, 자흔의 여수가 자신의 뼛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느낍니다. 이후, 정선은 여수로 떠나게 됩니다. 정선이 결벽증 환자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여수는 본인에게 뭍은 더러운 것입니다. 실제로도 트라우마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선은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정선은 손이 더러우면 손이 아플때까지 손을 씻습니다. 이처럼 정선은 여수에서 트라우마를 상기하게 되는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자흔이 뼛속에 있기에, 여수의 상처를 걷어내면 여수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상처를 확인하는 고통의 장소이지만, 그 고통이 구원으로 승화되는 장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mission 3.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선은 여수를 찬찬히 둘러보며 어린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릴 것 같습니다. 떠올린다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과거 경험을 다시 체험하는 수준의 여정이 될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자흔은 여수에서 재등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이든 어딘가에서, 여수에서 상처를 치유받고 구원받은 정선과, 여수에서 어린시절의 공허함을 채움받은 자흔이 다시 만나 지갑을 도둑맞아 못봤었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내로
아.. 결벽의 완성이군요...! 자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구원. 말씀하신 대로 함께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하루를 지내는 소소한 일상이 정선에게 가능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영혼이 갈망하는 정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57p에서 표시한 사랑이 과연 그러한 사랑이라면... 하.. 정말 그게 사랑일까 싶기도 하네요. 저는 다른 사람과 섞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가 구별된 존재로 존중하고 수용하는 방식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춘기 때에는 좀 달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 기억이 나진 않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로
[1.14~1.18] 『어둠의 사육제』 깊이 읽기 미션
두 번째 단편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여수의 사랑>처럼 어둡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켜두었던 '삼십 촉짜리 백열전구'처럼, 우리의 대화가 서로에게 작은 불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 번째 단편부터는 문체부터 훨씬 가벼워지니, 이 단편을 함께 잘 이겨내 보아요.)
Q1. 먼저, 책의 제목인 <어둠의 사육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명환은 창밖의 야경을 보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저 야경뿐”이라고 말합니다(117p). 하지만 주인공 영진에게 그 불빛들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 여기 숨 쉬고 있어, 나도 밥 먹고 살아가고 있어!"라고 아우성치는, 혹은 서글픈 생존의 시위처럼 느껴졌지요(115p, 127p). 이윽고 희망이 아닌 미련이라고 절규하듯 내뱉기도 합니다.
서울의 야경.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축제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치열한 비명인 이 도시의 아이러니. 여러분이 바라보는 2026년의 서울(혹은 도시)은 어떤 모습인가요? 명환처럼 '(마지막) 위로'로 다가오나요, 아니면 영진처럼 '서글픈 아우성'으로 들리나요? 여러분이 느끼는 '어둠의 사육제'에 대해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Q2. 명환의 파격 제안. “집이 필요하지 않소?” “아가씨가 적격자요.”
명환은 자신이 떠나기 전, 영진에게 자신의 집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영진은 매번 도망치듯 거절합니다. 영진은 왜 굴러들어온 복(집)을 발로 차버릴까요? 그저 낯선 남자의 호의가 부담스러워서였을까요? 아니면 명환이 내민 손이 '구원'이 아니라, 함께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기자는 '유혹'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여러분에게도 누군가의 호의나 위로가, 감당하기 벅찬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의 거리'는 어디쯤일지, 영진의 선택을 보며 든 생각을 나눠주세요.
Q3. 영진은 시집 속에서 "너는 음지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바람이 너를 햇빛 속으로 나를 것이다"라는 아름다운 구절을 읽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 시집을 던져버립니다. “소리 내어 책을 덮었다. 있는 힘껏 불빛들을 향해 내던졌다. 베란다 창살에 부딪친 책은 내 발치에 맥없이 굴러떨어졌다." _100p
그녀는 마치 그 희망찬 문장이, 그리고 창밖의 불빛들이 자신을 조롱하기라도 한다는 듯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영진은 왜 '희망'을 집어 던졌을까요?
그리고, 살면서 "다 잘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이 오히려 폭력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진짜 위로'란 무엇인지, 영진의 행동을 통해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요.

마키아벨리1
1.1여년 전 까지 다른 곳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와서 서울이 전에 살ㄷ전 곳과 다른 것을 느낍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거의 인사를 하지 않고 무뚝뚝하고, 사람들이 보다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저녁 7시 정도에 미리 엄청 취해서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나 조금 맛이 간 사람들도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절규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 자주 느낍니다.
2. 그런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없거나, 좋은 줄 알았던 것이 별볼일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3. 조금 분위기가 다르지만 전 직장에서 상사가 먼저 퇴근하면서 굿 럭이라고 하는 걸 안 좋아했습니다. 난 모르겠고 너가 다하고 책임도 져라 하는 뜻으로 여겨져서 ...
내로
서울로 다시 돌아가셨군요. 짧은 사이에 분위기가 바뀐 걸 느끼시나봐요. 지하철에 탄 맛간 취객은 뭔가 한강 작가님의 소 설에서는 뭔가 따뜻하게 다뤄질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그나저나 굿럭이라고 말하는 상사는... 본인 스스로 아주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GoHo
Q1.. 제가 느끼는 2026년의 도시는 황금빛 입니다..
모두들 투자 이야기네요..ㅎ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전과 다르게 '대부분' 투자 이야기 '뿐'이라는거..
사람을 위하는 일의 세계에서도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의 대화가 희미해지고..
대신 투자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믐에 오면 만나게 되는 이 한 문장이..
새삼.. 더욱 꼭 붙들어야 할 동아줄 같습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내로
뭐든 열심히 하는 한국 사람들이죠...^^ 트렌드는 계속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라는 슬로건이 저는 비유인 줄 알았어요. 근데 말 그대로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지면 세상이 안 좋아진다.. 더 나아가 문명이 종말한다...! 뭐 그런 늬앙스더라구요! (그믐의 탄생기 :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46489)
저는 @GoHo 님처럼 아직 그믐 모임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참여할 때마다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며 인생 수업을 받는 듯해요. 매 수업마다 새롭게 알아가는 삶의 진실 덕분에 제 삶의 폭이 확장되는 느낌이요. 끝까지 함께해요~~
GoHo
Q2..
'이지러진 달이 칠흑 같은 서편 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달은 나직한 신음 소리와 함께 어둠에 물어뜯기 고 있었다.' p127
'이지러진 달의 둥근 면은 핏기 없이 누리끼리했고, 베어져 나간 단면에는 검푸른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그 깊숙한 혈흔(血痕)을 타고 번져 나온 어둠의 타액이 주변의 천체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p69
영진은 명환이 지닌 어둠에 삼켜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어둠을 지닌 영진은 벗어나고자 견디는 인물로 명환의 어둠이 스며들도록 자신을 놓아두고 싶지 않았을 듯..
내로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슬픔을 가지고 있었고,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엔 실패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영진이 명환의 부탁에 기꺼이 자신의 베란다에 초대 아닌 초대를 하면서 명환의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용해주신 문장들이 정말로, 아름답고 강렬합니다.

베오
Q1.
제가 사는 도시의 밤은 서울보다 좀 일찍 찾아옵니다. 나름 반짝 거리지만 서울에 비할데가 아니지요. 도로의 가로등도 서울보다 한층 명도가 낮은 듯 합니다. 무엇보다 조용합니다. 서울이라면 추운 날씨라도 앞에 편의점에 그저 산책삼아 다녀 올듯도 한데 이 도시에서는 퇴근 후 바깥을 나서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네요. 아마 여기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그러지 싶습니다. 나름 대도시라서 특유의 익명성, 다양성이 어우러져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인 경제 침체의 영향인지 마치 영진이 지하철에서 발을 밟은 사람을 노려보던 그런 날선 감정이 번져나가는 도시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게 서울은 어둡든 밝든 언제나 어딘가에서는 사육제가 일어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입니다. 아마 그 속에서 살지 않는 '방문객'이기게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겠지요. 삶으로서의 서울은, 특히나 심신의 여유가 없는 사람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끝같은 베란다에 몰린" 사람들에게 서울은 "순장된 값싼 보석"같은 밤 불빛이 둘러싸고 있는 "석관"일 수 있겠지요.
내로
베오님의 글을 읽고, 저는 영진이 공감 능력이 상당히 높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명환의 시나리오에 기꺼이 동참해주는 거예요. 영진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자신은 훌훌 떠나는, 그런 결말. 명환은 오랫동안 집을 줄 사람을 찾았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딱 영진이었던 거잖아요. 아마 그 모습이 자신과 같아 보였던 것 같고, 적어도 자본주의에서 돈이 있다면 최소한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어찌됐든 영진도 '돈' 때문에 악독하게 변하기도 했으니까요.

베오
Q2. 이건 질문이 많네요. ㅎㅎ
영진은 명환을 마주했을 때 "성냥불을 당겼을 때 피어오르는 황 냄새"와 같은 "불가항력인 파멸의 냄새"를 맡습니다. 명환이 집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은 그가 죽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며 영진이 제안을 거절하는 기간만큼 그의 죽음이 연기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만약 영진이 그 집을 받았다면 그녀는 명환의 재산을 물려받는 수혜자가 되는 동시에 그의 자살을 방조하고 완성하는 공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내가 당신이 빈 손이 되는 것을 도우리라고 생각했는가"라고 반문하는 영진의 선택은 "피를 빨아먹는 환형동물 같은 미련"과 같은 타인의 불행으로부터 벗어나, 비록 가난하고 삭막할지언정 자신의 발로 딛는 현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지켜야 할 마음의 거리는 어렵네요.
착한 아이, 착한 어른 콤플렉스에 걸린 우리는 흔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선(善)이라 믿지만, 영진의 사례는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비극이 개인의 삶을 잠식하려 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리두기가 필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심신이 강건한 사람이라면 명환에게 연민에서 나온 공감으로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네 옆에 있어주겠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답니다, 그게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요. 영진처럼 피해버리는 삶을 마냥 비난 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벼운 호의에는 감사를 표하고 다음에 비슷하게 보답하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적으로 부채를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요. 그래서인지 부담스러울 정도의 큰 호의와 위로는 딱히 기억에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런 게 필요하다는 인상을 안주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럴 리도 없겠지만 이제는 혹시라도 누가 큰 호의(특히나 재정적인 면에서)를 베푼다면 오~~ 개이득 하면서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ㅎㅎㅎ
GoHo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비극이 개인의 삶을 잠식하려 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리두기가 필요할 수도 ..'
베오님의 통찰에 한참 들여다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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