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현재는 전공을 잘 못 살리고 있어서 (나이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기회를 자체적으로 만들기가 어려워 좋은 상황이 찾아와야 하는 전공이신 것 같군요. 아무쪼록 때가 찾아들기를 바랍니다.
1. 나를 살게하는 환상은 ‘이상적인 미래‘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충분히 쉴 때는 쉬며,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될거라는 환상이자 희망이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생각했던 시점에 상상대로 살고 있지 않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가끔합니다. 2. 세상에 무뎌지고 적응해가는 과정을 저는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춘의 열정과 무모함은 청춘일 때 가장 빛나는 것 같아요. 그게 사회에 자리잡을 나이를 넘어서까지 유지된다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안정이 없는 상태에서 꿈만 좇는다면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30대가 되기도 하구요. 40대에 이미 꾸린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거나, 노년이 되어 노후를 책임지지 못해 자녀에게 부양 받아야하는 경우 등등…이 있겠죠. 나의 이상을 위해 주변인을 희생하는 건 꿈의 실현보다는 이기주의인 것 같아요. (물론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채 꿈을 찾아 떠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이와 관해 2026년의 제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저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껍질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하고싶은것을 적절히 포기하고 해야하는 것 중 제일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왔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에 만족하는 것 같아요. 타협하고 살아왔지만, 그것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성숙한 것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3. 한 번 쯤은 떠날 것 같습니다. 뭔가 굉장히 라이트한 접근이기는 하지만, 하루 정도 의무에서 벗어난다고 큰일나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현실로 돌아와서 수습하는데 조금 애는 먹겠지만, 그렇게라도 숨통을 틔워놓아야 다시 껍질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거 아닐까요. 원래는 절대 떠나지 않고 관성적으로 사는 편이었는데, 몇 번 일탈을 해보니까 그게 주는 묘한 해방감이 있더라구요. 그런 경험 때문에 저는 아마 열차를 타고 떠날 것 같습니다.
@말티 정말로 내게 중요한 것,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염두에 두고, 타협과 무모함 사이 중용의 덕을 이루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저는 제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소신대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다짐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크고 작은 욕심들이 눈에 밟히네요. 무턱대고 빳빳이 고개 들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숙일 줄도 아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인생은 버릴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민감하고 함께 잘 살고 싶은 사람이라 더더욱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차가 분명히 있는 거 같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르게 살아가니까, 저와 달리 열정을 더 좇는 삶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궁금하기도 합니다.
'떠나리라는 것 때문에 동걸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강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탈출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켜줄 야간열차가 있으므로 그는 어떤 완성된 인생도 선망할 필요가 없었다. 살아가며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오욕들에게도 그는 무신경할 수 있었다.' p175 Q1.. 동걸의 떠남과 반대로 저는 멈춤입니다.. 언젠가는 세상과 연결된 모든 것을 멈추고.. 대문을 닫고.. '고요'와 '평안'만이 감도는 내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꿈꾸지요.. 세상은 너무 혼잡하고 소란스러워요..ㅎ
어릴 땐 돈 많고 힘 있는 삶을 꿈꿨던 거 같은데, 이젠 돈 없고 힘 없어도 되니 오로지 평안한 삶을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뭐가 옳고 그른 건지 판단하는 것도 힘들고, 옳다고 믿는 길을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건 더 힘든 것 같아요. 기상천외한 불행과 범죄 들이 세상에 넘쳐나기도 하고요.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GoHo 님을 나아가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림에 감탄이 나왔어요. 직접 그리신 건가요?
하.. 그림 설명이 빠졌네요.. 채수철 작가의 '집으로 가는 길' 이라는 작품입니다.. '안빈낙도'라는 제목으로 그린 작품들도 많습니다..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작품은 좋아합니다.. ^^
첫 번째.. 채수철 작가 '안빈낙도' 두 번째.. 이왈종 작가 '안빈낙도'
두 분 모두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네요. 이왈종 작가님은 서귀포에 미술관이 있으시네요? 제주도에 넘어가면 꼭 가봐야겠어요. (제가 3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요..^^ tmi..)
제주도.. 좋은 곳으로 가시네요.. 오래전 아주 짧은 여행 중 길에서 마주한 제주 분들의 인심에 많이 감사했었습니다.. 그런 이웃들 만나시길 바래요~^^ 그리고.. 왈종미술관 -> 이중섭미술관.. 도보로도 가깝네요.. (저는 둘다 아직 못가봤지만..) 이중섭미술관은 27년 2월 재개관 예정으로 공사중이라네요..
Q3.. 저는 무모함이 별로 없는 사람.. 나무 같다.. 라는 말을 듣는.. 늘 그자리에 있는.. 주어진 편도 티컷을 손에 쥐고 있다면.. 2026년의 청량리역에서는 과감히 열차를 타겠습니다.. 낯설음이 주는 새로움으로 에너지를 전환하고 싶어지네요..
무모함, 이라고 하시니 아래 영상의 부부가 떠올랐어요. 일단.. 저는 그들처럼 못합니다..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tp485oF6b-0
모든 창에 불이 꺼질 때 야간열차는 떠난다. .. 제 정수리로 어둠을 짓부수며 야간열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새벽을 향해 미끄러져 간다. p145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나는 여전히 껍데기였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이 새벽, 출근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 선주, 아침 밥상, 주름살투성이의 어머니, 석유곤로에 데워진 세숫물, 아랫목에서 뒤척이는 동걸의 분신, 그것이 현실이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182, 한강 지음
나는 모든 것에 실망하고 있었고 그 실망을 견디기 위해 모든 것을 빈정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정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그것을 부려둘 데가 없었다. 정열이 달구어질수록 나는 그것을 짐스러워하고 있었다. p150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대화 중간중간에 함부로 박혀 있던 욕설이 제거된 녀석의 말씨에서 어딘가 모르게 기성세대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내가 나의 무력한 젊음이 헐거워 견디지 못할 때 동걸은 이토록 몸에 꼭 끼는 생활을 치러내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나는 더욱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p157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떠나리라는 것 때문에 동걸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강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탈출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켜줄 야간열차가 있으므로 그는 어떤 완성된 인생도 선망할 필요가 없었다. 살아가며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오욕들에게도 그는 무신경할 수 있었다. p175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으악... 어젯밤에 올린다는 걸 까무룩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마감기한을 놓쳤네요... 다른 분들이 더 올리시기 전에 후딱(!) 올리고 야간열차 미션도 하겠습니다! 흐름을 끊어 매우 죄송합니다... <<<어둠의 사육제>>> [1번 질문] a. 빛에 대한 해석 전 빛이 미련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책을 읽어보자 했지만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렴풋이 느낀 점을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빛> -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 연약하여 쉽게 스러져버리는 것 - 따뜻한 것 - 합류하고 싶은 것 - 숨길 수 없게, 외면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버리는 것 - 희망 - 명환이 꿈꾸어왔던 행복 - 살아남고자 하는 손짓 - 언젠가 찾아올 진짜 삶 <어둠> - 짐승 같은 것 - 조각조각 찢고 잡아먹는 것 - 절망 - 철면피 -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도 괜찮게 느껴지게끔 하는 것 - 죽이는 것 - 가장 원하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빼앗아가는 것 - 눈을 어둡게 만들어,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눈 돌리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 빛은 어둠에 잡아먹히고야 마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삶을 놓지 않게 만드는 꿈, 희망, 의지 같습니다.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몸부림치다 견디다못해 차라리 스러지고 싶은데, 그럼에도 죽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러니 이건 '미련'의 동의어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같은 대상도 복합적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니까요. 인물별로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봤는데... - 명환: 나는 결코 저기 들어갈 수 없지만, 그토록 바라왔던 장면이기에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라도 주고 싶은 것. 나는 빈 손으로 가지만, 다른 이는 자신 대신 누렸으면 하는 행복한 삶. - 영진: 고통을 끝내지 못하게끔 하는 멍청한 미련같지만, 어쩌면 눈밭 가운데서 순간 따뜻함을 느끼는 달콤한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삼십 촉 전구를 밝히듯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 꼭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막연히 살 수 있게 만드는 용기. 내가 선한 사람으로 남을 수 없는 곳이란 걸 알지만, 인숙언니 또한 그랬을 것이기에 가슴 속 멍울이 풀리게 만드는 것. - 인숙언니: 되돌려 얻을 수 없는, 한 때의 젊음과 희망. 억울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어둠에 던져서라도, 죽어가는 자신을 그냥 쳐다만 보는 세상이 너무 미워 (검은고양이처럼)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더라도... 계속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그런 악다구니의 모습에 가깝게 만든 것. 빛은 어둠 앞에 물어뜯기고 쉽게 스러져버립니다. ('어둠들이 창날을 세우고 덤벼드는 족족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파리한 가로등 불빛의 입자들, 차량들의 꽁무니마다 매달려 몸부림치는 붉고 노란 후미등의 불빛들') 어떻게든 잘 살고 싶어 매달리지만 불가항력의 부조리 앞에 무너집니다. 어둠은 인물들을 절망에 휩싸고, 목숨을 앗아가려 합니다. 전 이런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빛은 분명 미련에 가까운 것이지만, 누구나 그런 미련 하나쯤 있기에 언젠가 때가 되어 만나는 작은 행복도, 평안도 존재하는 거라고 믿어요.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끝내 미련을 가지고 살아낸 사람들을 위한, 짧을지언정 분명한 선물이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b. '어둠의 사육제'란 제목에 대해 이런 어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다... 문득 '어둠의 사육제'라는 제목은, 매정한 도시 사회가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그런 의미로 쓰인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 선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는, - 돈으로 구원을 사고자 하는, - 외면에서 오는 죄책감을 없애고 싶은, - 조금이라도 손해보게 하면 그 배로 갚게 만드는, - 철면피가 되고 우악스럽게 만드는 사회. - 지하철의 거지와 고아들이, - 겨우내 전세금을 마련했을 고향 동생이, - 교통사고로 파멸당한 한 집안의 가장이, - 오갈 데 없어 수치를 무릅쓰고 불편한 하숙살이를 하는 사촌 언니가, 불쌍하기보다는 나에게서 떨어뜨려야 할 어둠이 되고, 내가 (잘) 살기 위해 외면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그런 타인을 향한 안타까운 무감함이... 어둠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상황을 만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그런 도시의 모습을 그려내신 것 아닐까요? 그래서 그토록 많은 불빛이 있는데도 오히려 외롭고 참담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어둠이 마음껏 사람들을 잡아먹게 만드는 모습을 표현하신 건 아닐까 싶습니다. [2번 질문] 영진은 어둠에 잡아먹힐까 두려워, 명환의 고통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거부합니다. 특히 자해 흔적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했고요.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저 또한 그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신력은 한정되어 있고, '선한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실정이며, 그토록 깊은 어둠을 직시하면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분명 받을 것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해서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도 많은 걸요.) 물론 이 문장조차, 언젠가의 저나 어느 순간의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폭력적인 문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 거리를 정하기가 어렵네요... 개인적으론 명환의 집을 받았으면 했습니다. 명환은 정말로 공범이 된다거나, 자신의 죽음에 동조하길 원했던 게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빛을 사랑했고, 빛이 사그러드는 이를 보고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뿐 아닐까요.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한다는 걸 배운 영진이기에, 마냥 호의로만 받아들이긴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였어도 부담스러워서 도망갔을 듯해요. [3번 질문] 나의 이상은 저 멀리 아름다운 모습인데, 내 현실은 시궁창임을 인지하는 순간. 나의 시선을 이곳 말고 저 먼 미래로 두라는 말은 가히 폭력적입니다. 무작정 '조만간 행복해질거야!', '다 잘 될 거야! 돈 워리!' 이런 말은 그 속에 담긴 절 향한 따뜻한 마음만 감사히 받고 표현 자체는 싫어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땐 이런 표현을 가급적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한 때가 오면, 또 새로운 한 때가 오고간다. 지금 이 순간이 반드시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는 말자'고 스스로 되뇌이곤 합니다. 그저 묵묵히 한 때를 견디고, 불분명한 또 다른 때를 기다려보자는 말이 현실적인 위로가 되거든요. 먼훗날 돌이켜보면, 그토록이나 괴로워하지 않았어도 될 것을, 이렇게 회상할 수 있길 바라면서요. (그런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의 괴로움을 아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책에서도 이렇게 위로해주시는 것 같아서 몇 구절 들고와봤어요. 한강 작가님이 만약 '여수의 사랑'과 '어둠의 사육제'에서 위로의 의미를 담은 구절을 넣으셨다면... 분명 이 부분이리라 생각합니다. 불분명한 현실을 외면하지도, 무작정 긍정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어요. '한데 그 위안의 손짓 같은 찬란한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인숙언니의 야윈 얼굴이 그 야경 위로 하루하루 아련하게 시들어가는 동안, 내 앙가슴에 맺혔던 피멍울도 어느 사이엔가 함께 풀리어갔다. 멍울이 맺혀 있던 그 자리에 모호한 미련들이 뒤이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눈도 없고 코도 없는 그 멍청스러운 미련이란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아무것도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한다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라도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불분명한 용기였다. '밤하늘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다. 베란다 방에서 여러 번 밤을 지새워본 나는 아파트촌 위의 하늘이 가장 어두울 때를 지나서 새벽이 동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지독한 어둠이 가장 확실한 새벽의 징후임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새벽을 의심했다. 고질병을 가진 사람이 한차례의 통증이 지나갈 때마다 죽음을 확신하듯, 나는 얼마 안 있어 지나가고 말 어둠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이 집의 많은 것을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들을 그토록 괴로워했을까. 나는 자신의 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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